베트남전 민간인학살 국가배상소송, 원고 탄 씨의 말들

한국군에 의한 학살 피해생존자 “진실의 힘을 믿는다”

박주연 | 기사입력 2022/08/12 [19:51]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국가배상소송, 원고 탄 씨의 말들

한국군에 의한 학살 피해생존자 “진실의 힘을 믿는다”

박주연 | 입력 : 2022/08/12 [19:51]

지난 1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로 들어선 응우옌티탄 씨와 응우옌득쩌이 씨는 입구에 써 있는 문구 “대한민국은 6.25 전쟁 당시 자유 우방의 지원에 보답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베트남에 국군을 파병하였습니다”를 보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한국군은 우리를 도와주러 온 게 아니었는데요?”

 

▲ 8월 1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응우옌티탄 씨와 응우옌득쩌이 씨와 함께하는 ‘베트남 평화기행 in 대한민국’이 진행되었다. 사진은 통역의 설명을 들으며 문구를 바라보고 있는 응우옌티탄 씨와 응우옌득쩌이 씨.  ©일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퐁니·퐁녓 학살 사건(1968년) 피해생존자로, 2020년 4월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을 시작한 응우옌티탄 씨가 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참고 기사: 정부는 ‘베트남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 조사하라 https://ildaro.com/8371) 9일 진행된 재판에서 원고로 증언하기 위해서다. 이번 한국 행엔 응우옌티탄 씨의 삼촌이자 베트남전 당시 남베트남군 민병대원이었던 응우옌득쩌이 씨도 함께 했다. 응우옌득쩌이 씨는 한국 방문이 처음이다.

 

재판에서의 증언과 기자회견 등의 일정을 끝낸 두 사람은 한국 시민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11일 낮엔 약 한 시간 반 동안 용산 전쟁기념관 탐방을, 오후엔 <베트남전쟁 국가배상소송 원고 응우옌티탄을 만나다> 좌담회에 참석했다. 좌담회엔 8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 이 날 행사는 모두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네트워크’에서 주최했다.

 

이 날 두 행사를 통해 응우옌티탄 씨와 응우옌득쩌이 씨가 한국 시민들에게 전하고자 한 말들을 정리했다.

 

평화에 기여한다면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왜 죽였나요?

 

전쟁기념관 본관 앞에 모인 응우옌티탄 씨와 응우옌득쩌이 씨, 통역을 맡은 응우옌응옥뚜옌 씨(한국 이름 시내), 한베평화재단 권현우 활동가와 시민들은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권현우 활동가는 이번 전쟁기념관 탐방이 ‘한국 사회가 전쟁, 특히 베트남전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응우옌티탄 씨와 응우옌득쩌이 씨에게 보여주고 이들의 생각을 듣는 자리’라는 점부터 밝혔다.

 

시작은 3층 해외파병실 입구에 적힌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베트남에 국군을 파병하였습니다”라는 문구였다. 이에 대한 통역의 설명을 듣던 응우옌득쩌이 씨는 헛웃음을 지었고, 응우옌티탄 씨는 “(한국군은) 우리를 도와주러 온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베트남에서 벌어졌던 일은 (평화와는) 정반대였다”고 덧붙였다.

 

전시 안내 곳곳에 적혀있는 ‘베트콩’(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베트남 전쟁 중 미국과 연합한 남베트남에 대항한 조직)이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권현우 활동가의 질문엔 “우린 베트콩이 아니라 해방군이라고 말했다”고 답했다. ‘남베트남 사이공 함락으로 패망’이라는 안내에 대해서도, “한국이 남베트남 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쓴 것 같다. 우린 ‘남베트남 해방의 날’이라고 한다”고 했다.

 

베트콩이 숨어서 전열을 가다듬으며 게릴라 전법을 준비했다고 알려져 있는 지하동굴을 재현한 모형 모습 앞에선, 자신들 또한 (이런 지하동굴은) 처음 본다며 낯선 표정을 지었다. 한국군 모형을 봤을 땐 “한국군은 저런 얼룩무늬 철모와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다. 딱 저런 모습이었다”라고 증언했다.

 

채명신 장군의 훈령이었던 “한국군은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말을 보고선 또 한번 헛웃음을 지었다. 응우옌득쩌이 씨는 “말이 안되는 말이다. 결국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고, 응우옌티탄 씨 또한 “백명의 베트콩을 죽이는 것보다 민간인을 돕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왜 우리 마을에 와서 민간인들을 죽였느냐”라고 했다.

 

▲ 응우옌티탄 씨와 응우옌득쩌이 씨와 함께하는 ‘베트남 평화기행 in 대한민국’ 중, 용산 전쟁기념관 내에서 중대전술기지 모형을 보고 있는 모습  ©일다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도로 공사, 교량 공사, 학교 신축, 태권도 교육 등을 했다는 말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응우옌득쩌이 씨는 “개인적으로 그런 모습들을 본 적이 없다. 군인들이 초소로 들어오기 위한 도로 공사는 했을지 몰라도, 주민들을 위한 도로 공사는 없었다”고 기억했다. 크나큰 크기를 자랑하는 중대전술기지 모형을 보면서는 “저런 걸 만들기 위해 집을 다 없애고, 심지어 묘지도 다 없애고 불도저로 밀어버렸다”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으로 한국군이 전쟁 중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서는 “가족이랑 떨어지면, 저렇게 연락하는 건 우리랑 비슷하네요”라는 말을 남겼다.

 

전시 탐방을 끝낸 응우옌티탄 씨는 “시민들과 함께 이 전시를 보면서 베트남전에 대한 내 생각을 말했고, (이 전시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사실들을 지적했다. 이제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응우옌득쩌이 씨는 “기회가 된다면 우리 마을에 한번 꼭 와 달라. 어디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 정확히 알려 줄 수 있다”며, 이 전시에서 말하지 않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을 봐 달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진실과 책임을 인정하라, 사과를 원한다

 

전시 탐방이 끝난 후 응우옌티탄 씨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베트남 전쟁 진실과 책임을 인정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이후 서울시공익활동공간 삼각지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다시 한번 한국 시민들과 만남을 가졌다.

 

사회를 맡은 권현우 활동가는 응우옌티탄 씨에게, 십년 전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활동가가 한국 사람들 앞에서 말해보겠냐고 물었을 때 ‘말하고 싶다’고 했던 심정이 무엇인지 물었다. 응우옌티탄 씨는 “학살이 나에게 너무 큰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학살로 가족을 다 잃었고, 살아남은 나와 오빠는 중상을 입었다. 아직도 그 상처 부위가 아프다. 이건 잊을 수 없는 일이고, 이것이 한국군에 의해 일어났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 서울시공익활동공간 삼각지에서 열린 좌담회 <베트남전쟁 국가배상소송 원고 응우옌티탄을 만나다> 현장  ©일다

 

그런 결심 이후 응우옌티탄 씨는 2015년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했고, 한국 시민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참전군인들에게 사과 한 마디를 듣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증언 내용을 부정했다. 응우옌티탄 씨는 “그걸 목격하면서 너무 놀라웠다”고 했다. 크게 마음 먹고 한국에 왔지만, 자신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했다. “너무 슬펐”던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후 한국의 시민들이 지속해서 관심을 가졌고, 한국 변호사들 또한 베트남을 찾아갔다.

 

2018년 다시 한국을 방문했고 ‘시민평화법정’에 서게 되었다. 다시 한번 “사실대로 증언”했다. 그리고 법정에서 승리했다. 물론 실제로 법적인 효과가 있는 법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쁜 결과였다. 응우옌티탄 씨는 이 법정에서 했던 마지막 발언을 다시 한번 전했다. “마지막 증언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지금 이 현장에 와 계신 참전군인이 있다면 무대로 올라와 나에게 손을 내밀어 달라고요. 그게 소원이라고.”

 

2019년엔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피해자 103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그리고 베트남으로 돌아가 국방부의 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국방부의 답은 전혀 만족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한국군인이 학살에 관여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후 응우옌티탄 씨는 한국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국가배상소송을 시작했다. 어쩌면 이기기 어려운, 고난한 시간이 예상되는 소송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응우옌티탄 씨는 재판에서도 증언했다는 말을 다시 강조했다. “나는 피해생존자다. 이걸 인정했으면 좋겠다. 나는 학살 사건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사람도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순 없을 거다. 이 사건의 진실, 진상 규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어려운 소송을 시작하게 된 이유 또한 “진실의 힘을 믿기 때문”이라는 것을 재차 짚었다.

 

이 여정을 끝까지 ‘함께 해 달라’

 

길지 않은 한국 방문 일정 동안 재판에서의 증언부터 고단한 일정을 이어나간 중인 응우옌티탄 씨는 좌담회 내 발언 중 때때로 힘들어 하고 눈물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엔 언제나 당당함이 묻어있었다.

 

▲ 응우옌티탄 씨와 응우옌득쩌이 씨와 함께하는 ‘베트남 평화기행 in 대한민국’ 중 마지막, 소감을 이야기 중인 응우옌득쩌이 씨(왼쪽)와 응우옌티탄 씨(오른쪽)  ©일다

 

그는 지난 세월 동안 괴로운 증언을 반복하는 등의 힘든 시간들을 보냈지만, 함께 한 여러 사람들 덕분에 “아픔과 고통이 위로되었다”는 점도 빼놓지 않고 말했다. 많은 한국 시민들과 단체들이 자신의 마을에 방문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을 달래줬기 때문에 마음이 바뀐 부분들이 있다는 응우옌티탄 씨는 좌담회에도 “내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와 줬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고 밝혔다.

 

“과거엔 한국인, 한국 남성을 보면 사나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무서웠는데 나에게 친절할 수 있는 한국인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 응우옌티탄 씨. 베트남전 참전군인 중에서도 사과를 전하는 몇몇의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 후련해 진 부분도 있다”고 했다. 이번 재판에 한 참전군인이 증인으로 참여한다는 것도 피해생존자들에게 기쁜 소식이었다고 덧붙였다.

 

82세라는 고령의 몸으로 한국에 방문해, 학살 당시의 상황에 대해 법정에서 4시간 가량 증언했다고 한 응우옌득쩌이 씨 또한 “우리들을 응원하는 한국 시민들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며 “마음이 든든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좌담회를 정리하면서, 권현우 활동가는 쉽지 않은 길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이길 마음으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 여정을 끝까지 할 수 있게 응원해 달라”고 강조했다.

 

진실을 믿는다는 응우옌티탄 씨의 여정이 순항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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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ram 2022/08/14 [22:46] 수정 | 삭제
  • 베트남의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가 한국의 전쟁기념관에 방문해서 전쟁참전 미화 역사기록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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