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과 공격이 심각한 백래시 시대,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로 다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스무 편이 연재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군대와 여성
캐나다의 영화감독 노먼 맥라렌(Norman Mclaren)의 작품 중 <이웃들>(Neighbours, 1952)이라는 단편영화가 있다. 마당을 나누어 쓰는 두 개의 집, 그 집에 사는 두 명의 남성이 마당에 핀 한정된 재화, 꽃을 두고 갈등에 휘말리는 스토리다. 사소한 듯 시작된 갈등은 점차 격화되고, 물리적인 폭력까지 서슴지 않던 두 남성은 마침내 서로의 집에 들어가 여성과 아이를 살해한다. 몇 차례 영화를 보아도 이 장면은 언제나 충격적이다. 전쟁을 결정하고 수행하는 것은 대부분 남성이지만, 전쟁의 희생자 다수는 여성과 어린이라는 사실, 전쟁이 일어날 때면 수많은 성폭력이 발생해왔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환기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이 군대에 간다고 해도, 같은 임무를 다한다 해도, 그의 삶은 남성과 결코 동일하지 않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셰이비치(Alexievich Svetlana)가 만났던 여성 참전군인들은 말했다.
“우리는 열여덟, 스물 나이에 전선으로 떠났다가 스물, 스물넷이 돼서 돌아왔어. 처음엔 기쁨에 들떴다가 나중엔 무서워졌지. … 우리는 과거를 숨기며 살았어. 훈장도 내놓지 못했지. 남자들은 자랑스럽게 내놓고 다녔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 받아야 했지. 완전히 다른 시선.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 분하고 억울했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스베틀라나 알렉셰이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중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여성군인 역시 그러했다. 김엘림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용군은 남성과 동일하게, 오히려 더 열심히 군인의 임무를 수행했지만,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전후 상당한 편견과 낙인에 노출되었다. 군은 여군을 여성-‘군인’이기보다 ‘여성’-군인으로 취급함으로써, 이들을 온전한 ‘군인’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이다.(김엘림, 「6·25 전쟁기 여성의 참전과 그들의 전쟁 경험」, 한국여성학, 2022)
“어떤 사람들[다른 여자의용군]은 뭐 하라 그러면 ‘싫어요’ 그러는데 나는 싫단 말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 남자하고 똑같이 보초도 섰어요. … 나는 군대 빠따도 맞아봤어. 여군들 중에는 나밖에 그렇게 한 사람 없어요.” “우리 시어머님이, … 내가 제대할 때, 하유, 인사계님 사인 좀 내가, 써놓고 갈게, 참, 이 나중에 찾아서 읽어보세요, 만나고 싶어요, 그래면서 사인 잘 한 거를 썼거든요. 근데 그것도 다 버리셨어. (속삭이며) 군대 갔다온 게 싫으셔서 시어머니는.” (이복순, 여성의용군 2기)
남성들의 전쟁 경험이 무용담이 되고 절단당한 신체가 훈장이 될 때, 여성들의 전쟁 경험은 어째서 숨겨야 하는 과거가 되고 절단당한 신체는 부끄러움이 되었을까?
페미니스트 평화학자 베티 리어든(Betty Reardon)의 분석에서 실마리를 찾아본다면, 성차별주의와 전쟁 체제가 ‘여성혐오’라는 공통된 뿌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 연결고리는 ‘타자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과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는 능력’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이원적 대립을 통해 그러한 능력과 권한은 남성에게 부여되었고, 개인들의 수행과 정치, 사회 구조 사이의 복잡하고 내밀한 상호작용 가운데서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이 더 강한 군사력의 필요성을 바탕으로 선제타격론을 논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인식의 흐름이다. 현재 대통령이 후보 시절 너무도 투명하게 속내와 수준을 드러냈는데, 사실 분단된 한국에서 이러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기도 하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인 것 같은 분단은 현재 진행 중이며, 젠더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분단과 젠더가 연관되어 있다고?
분단과 젠더. 사뭇 거리가 있어 보이는 두 단어를 함께 볼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삐라’이다. 남과 북이 서로의 체제 선전을 위해 살포했던 삐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검색하며 만나게 된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 잊히지 않는다.
대북 선전용 삐라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콘텐츠는 여성이었다. 성애화된, 헐벗은 수많은 여성의 모습을 삐라에서 발견할 수 있다. 주요한 메시지는 삐라 속 여성이 남한 땅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을 포용하겠다, 나(여성, 자유,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과 북의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 메시지를 구성하는 방식 모두 젠더화되어 있다.
여기서 누가, 어떤 욕망으로, 누구를 이용하고 있는가. 이토록 적나라하게, 쉽게 여성의 성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왜인가.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외부의 위협이 존재하기에, 안보를 위해 남성(성)에 더 많은 힘이 체계적으로 부여되는 동안, 여성(성)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 왔는가. 질문을 이어가다 보면, 또다른 모습으로 소비되는 여성들을 관찰할 수 있다.
“남남북녀”라는 관용어가 함의하고 있듯, 북한은 굉장히 자연적이고 순수한 여성으로, 이를 개발하고 자유를 확대하려는 남한은 남성으로 표상되기도 한다. 종편 TV 채널을 중심으로 남한의 미디어가 북에서 온 여성을 고분고분하고 순응적인 여성으로 묘사하거나, 북한 ‘미녀 응원단’의 돋보이는 자연미, 순수함, 성형하지 않음, 민족적-전통적인 특성에 주목하는 보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이원화는 남북 내부에서도 작용하는데, 일례로 잔칫날이나 공식 행사에서 남북의 남성들은 대부분 양복을 입지만 여성들은 한복을 입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에 더해, 2000년대 이후 시장의 발달과 함께 북의 여성들은 가정의 생계도 책임지고 가사 노동도 책임지는 ‘슈퍼우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모습 역시 남과 닮았다. 남과 북의 지도부가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 같지만, 상대와의 대립을 통해 자신의 권력과 군사력 강화를 정당화하는 묘한 공생관계를 맺는다는 백낙청의 분단체제론. 이쯤 되면 한반도적 관점에서 남북을 바라보려는 시도가 ‘젠더’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가부장제와 군사주의를 중심으로 남과 북의 남성들이 동맹을 맺고 있으며 서로를 강화하는 모습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군 복무’와 ‘위문편지 쓰기’라는 성역할
“요즘은 안 그러지 않아요?” 삐라 이야기, 북한 여성 이야기를 하면 듣게 되는 말 중 하나다. 반은 맞지만, 반은 사실과 다르다. 분단과 무관하게 여겨지지만, 군사 행위에 있어 보호자-남성과 피보호자-여성의 젠더 역할을 호출하는 일은 계속 진행 중이다. 올 초 ‘논란이 되었던’ 사건이 있다. 진명여자고등학교의 여성 학생이 남성 군인에게 보낸 위문편지에 비하와 조롱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서운했겠네. 해당 위문편지의 내용을 보고 먼저 든 생각이다. 편지를 받은 군인은 타의로 입대했을 확률이 높은데, 자신의 희생과 고생을 놀림거리로 삼는 듯한 말에 충분히 서운했을 수 있다. 편지를 받은 당사자도 ‘대부분 다 예쁜 편지지에 좋은 말 받았는데 혼자 저런 편지 받아서 의욕도 떨어지고 너무 속상했다. 차라리 쓰질 말지 너무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졌다.
그런데 서운한 건 마찬가지다 싶었다. 진명여고 학생이 위문편지를 쓰게 된 맥락을 알게 되고 나서 든 생각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손편지는 정말 진심이 우러나야 쓸 법할 텐데 봉사 시간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 ‘선택’인 듯 ‘선택’ 아닌 ‘선택’으로 쓰게 된 편지, 생판 모르는 남성에게 감사함을 쓰도록 강요받은 학생의 마음은 또 얼마나 불편했을까.
‘군 복무’와 ‘위문편지 쓰기’라는 행위는 각각 그 역할이 부여된 성별과 그 역할 수행의 사회적 의미를 생각했을 때 결코 동등한 층위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자발적 선택의 가능성이 적었다는 측면에서 두 사람의 입장은 유사하다. 그래서 두 사람의 서운함과 불편함, 서로를 적대적 관계로 위치시키는 상황을 보며 이제는 내가 서운해졌다.
징병제에 따라 군대에 가야 하는 남성/청년과 봉사 시간을 획득하기 위해 위문편지를 써야 하는 여성/청소년을 각각 비난할 뿐,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냥 다 서운하고, 다 불쌍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그의 소설 서문에서 “나는 이 책을 읽을 사람도 불쌍하고, 읽지 않을 사람도 불쌍하고, 그냥 모두 다 불쌍해……”라고 말했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여성(성)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는 교육
베티 리어든은 군사주의와 성차별주의의 상호 강화 요인 중 하나를 ‘여성(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설명한다. 모든 남성은 어린 시절부터 여성처럼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려워하도록 교육받는다는 것. 열등한 타자인 여성(성)에 대한 두려움은 달리 보면 군사주의를 지탱하는 “빨갱이가 되느니 죽겠다”라거나 “명예를 잃느니 죽음”을 택하는 정신 상태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평화/교육활동가로서 나의 고민은 이 지점과 연결된다. 두려움의 감정이 여성혐오와 적대시의 핵심 기제라면, 그것을 안전하게 드러내고 나누는, 두려움을 토닥이는 교육의 역할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 말이다. 동시에, 두려움의 감정을 오히려 이용하거나 강화시키는 교육에 대해서도 비판할 필요가 있다.
노골적인 적개심을 담은 교육은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여전히 학교 교육에서는 군부대, 보훈처 등과 계약을 맺고 나라사랑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군 복무를 수행하는 상당한 수의 남성들은 ‘정신전력’ 함양을 위해 정훈교육과 군사훈련을 받게 된다. 더 많은 권한, 심지어는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며 군인이자 보호자가 되어가는 남성들이 타자를 피보호자가 아닌 ‘동료 시민’으로 만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군인-보호자 남성성을 습득하는 체계적인 교육이 한쪽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다면, 배운 것을 잊어버리고 타자와 동등하게 만나기 위한 ‘재사회화’ 교육을 해볼 수는 없을까? 실제로 UN은 무력 분쟁이 끝난 지역에서 분쟁에 참여한 소년병을 포함한 모든 군인들의 재사회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성차별주의도, 전쟁 체제도 함께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는 서로를 넘어설 수 없기에, 거대한 구조 앞에서 한 번의 교육과 만남의 효과가 미약해 보이는 순간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인간 존재 내부의 중요한 심리 변화가 결여된 공적 질서의 구조적 변화는, 심지어 그것이 혁명적일지라도 비효율적인 것이 되고 만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번의 만남과 감정의 나눔만큼 확실한 변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모두의 취약함, 서운함, 두려움을 안전하게 드러내며 서로 돌볼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세계를 변화시킬 어마어마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교육의 시공간을 평화운동의 ‘현장’으로 규정하며 힘을 얻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권력 없는 이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성차별주의와 전쟁 체제를 뛰어넘는 데 필요한 근본적인 변화이기 때문이다.
덧.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마리아 미즈는 “가부장제의 평화가 여성에게는 전쟁”이라고 말한다. 페미니즘은 익숙한 권력 관계를 낯설게 보이게 하고 재사유하는 인식과 실천이므로, 대부분의 전쟁과 폭력이 명분으로 삼는 ‘안전 보장’이라는 개념에 같이 도전해보는 것부터 당장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남성에 의해 이미 해석되어 제시되거나 혹은 은폐되어온 ‘안전’ 말고, 대체 어떤 안전인지, 누구의 안전인지, 무엇을 위한 안전이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지 말이다.
[필자 소개] 영철. 평화와 배움, 평화와 일상을 연결하는 플랫폼 ‘피스모모’ 활동가. 평화라는 단어 안 쓰면서 평화교육하기, 활동가처럼 안 보이면서 활동하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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