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사회가 돌봄에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드러내었고, 서로 돌보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돌봄 사회를 위하여,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돌봄 현장을 조명하고, 다양한 돌봄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길고양이는 사회를 측정하는 척도
한국은 시간과 돈을 아껴서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것이 미덕인 사회이다. 옆으로 눈길을 돌리거나 샛길로 새는 걸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길고양이 돌봄에 대한 이야기는 SF 공상 영화만큼이나 엉뚱하고 이상하다. 8년 차 고양이 활동가이지만 아직도 길고양이 돌봄을 증명하거나 설득해야 한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일을 굳이 설득해야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이 활동이 부끄럽거나 사회에 악을 끼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야 할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매달 길고양이들을 위해서 나가야 하는 비용은 설득에 적잖은 방해물이다. 적게는 매달 삼, 사만 원부터 병원비가 들 경우에는 예상을 뛰어넘는 금액을 지출하기도 한다. 시간은 또 어떠한가? 집 앞에 놓인 작은 고양이 급식소에 밥을 넣고 깨끗한 물로 갈아주고 주변을 챙기는 행동을 하더라도 30분은 적잖게 소요된다. 덕분에 장기 여행이나 휴가를 내기가 쉽지 않다. 개인적 스케줄을 고양이에게 설명할 수 있다면 말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정된 자원인 돈과 시간을 타인에게, 그것도 한낱 미물로 여겨지는 고양이에게 쓰는 것은 내 인생의 한 치 앞도 모르는 사회에선 대단한 낭비다. 과연 이 돌봄이 무엇이길래 나는 나를 설득하고 주변을 설득하면서 계속하는 걸까?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2022)를 연출한 정재은 감독은 길고양이가 한국 사회의 척도라고 이야기했다. 척도란 평가하거나 측정할 때 기준이 되는 말인데, 길에서 사는 고양이가 어떻게 사회를 측정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일까.
집을 구하는 사이트에 가면 몇 가지 좋은 동네의 기준이 되는 말이 있다. ~세권라는 말에 여러 생활 편리 시설이나 권역 조건들이 앞에 붙는 형식이다. 지하철이 가까우면 역세권, 심지어 맥도날드가 근처에 있으면 맥세권이라 불리며 살기 좋은 동네 평가 기준이 된다. 아파트 단지 내에 초등학교가 있으면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라는 신조어도 있다.
우리가 낯선 동네에 갔다고 상상해보자. 그 동네의 인상을 사로잡는 것이 몇 가지 있을 것이다. 우연히 방문한 그곳에서 위에 나열한 지하철이나 맥도날드, 초등학교 같은 조건은 그 동네를 파악하는데 그다지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길에 편안하게 뒹굴고 있는 고양이 몇몇을 본다면 그 동네에 갖는 긴장은 조금은 누그러질 것이다. 배를 뒤집고 길에 천연덕스레 철퍼덕 누워있는 고양이 행동 하나로 이 동네는 고양이를 학대하거나 해코지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마 귀 끝이 잘려있는 것(TNR 표식)까지 발견한다면 어느 살가운 이웃에 의해서 적극적 돌봄이 되고 있다는 것까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길고양이가 사회의 척도라는 말은 바꿔 말하면 낯선 타자에 대한 환대 기준이다. 냥세권이라고 붙여도 무방하겠지만 부동산 가격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
고양이로 연결된 이웃
동네에 사는 고양이를 관찰하면 그들의 사정에 대해서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사람의 일, 고양이의 일』(마티, 2022)을 쓴 단단은 집 앞 공터에서 일어나는 고양이의 사정을 우연히 관찰하게 되면서 그들에게 개입하게 되는 과정을 적는다. 대부분 비슷한 과정으로 고양이 사정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참견하게 되는데, 일단 고양이 밥과 물부터 챙기기 시작한다. 그러다 고양이로 연결된 새로운 이웃이 만들어지는 것도 그 무렵이다. 같은 고양이를 두고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각자가 아는 고양이 사정을 이야기하고 푸념과 걱정을 늘어놓는다. 그런 상대가 생긴다는 것은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도시 생활에 조금 낯선 일이다. 그 이웃은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주말 오후 세 시쯤 전화하는 초등학교 4학년 진우는 매번 첫마디가 ‘이모, 쿠키가 안 보여요.’다. 쿠키는 아파트 단지에 사는 나이 든 삼색이 고양이인데 인근 재건축된 아파트에서 넘어온 고양이다. 마무리 인사는 ‘이모가 어제 만났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한번 찾아봐.’로 전화를 끊는다. 고양이로 인해 남녀노소 불문하고 안부를 묻는 이웃이 생기는 것이다.
고양이 활동으로 생긴 또 다른 이웃은 인근 고등학교 길고양이 동아리 모임 선생님과 학생들이다. 내 모교이기도 한 이 학교는 졸업 이후 나와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 그러다가 2017년 둔촌동 재건축 아파트에서 길고양이 이주 프로젝트인 ‘둔촌냥이’ 활동으로 학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에 살던 몇 마리 고양이가 갈 곳이 없어 학교 선생님과 행정실, 교장, 교감 선생님의 도움으로 방학 동안 아주 잠시 고양이들을 계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사가 완료된 3마리 고양이인 뚱이, 단비, 호동이는 학교 마스코트가 되었다.
이 모든 활동의 주축이 되어서 둔촌냥이와 학교를 조율한 선생님은 실은 고양이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이었다. 그러나 고양이를 환대하고자 하는 용기로 주변을 설득했고, 결국 학교 내에 길고양이 동아리가 만들어지더니 구청 지원까지 받으면서 활동 영역을 점차 넓혀갔다. 고양이를 중심으로 학교 내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학생회는 뚱이, 단비 마스코트 배지를 제작했고, 마음의 위로가 필요했던 한 학생은 고양이들에게 위로받아 동물행동학 관련 전공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점심시간마다 뚱이 털을 고르면서 고3 생활을 버텨낸 학생 소식도 듣곤 했다.
외부적으로 나는 이 고양이들을 위한 대외협력처 같은 역할을 한다. 한 학기에 한 번씩 있는 강연에는 길고양이 강사인 김하연 작가를 비롯하여 대학 길고양이 동아리 활동가들을 섭외하였고, 동물자유연대와 포스코에서 제작한 길고양이 급식소를 유치했다. 고양이 신변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겼을 경우 통덫을 들고 가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귀찮거나 부담되는 일은 아니었다. 학교 내부에서 고양이를 환대하는 마음과 안정적인 돌봄이 마련되었고, 그 활동을 조금 더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은 나에게 적잖게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 마스코트였던 세 마리 고양이 중 2021년에 호동이가, 올해 초에 뚱이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마지막까지 이들이 좋은 곳으로 가도록 빌어줬던 선생님과 학생들의 다정한 환대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모든 곳에서 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진 후, 오래간만에 청명한 하늘을 보여준 날씨였다. 고양이 밥 주러 가기 딱 좋은 날이다. 고양이를 만나러 간다고 꼭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아파트에서 이주시킨 고양이를 만나는 것은 그날의 행운이다. 그 중 꼭 찾아보는 고양이가 있는데 '크림'이라고 불리는 고양이다. 크림이는 공원에 터를 잡았다. 사람 왕래가 잦은 그곳에서 그는 인플루언서다. 길고양이답지 않게 베이지 색 털을 가지고 있고 풍채 또한 남다르다. 그런 그를 누구는 '하루'라고 부르기도 하고, 가장 고급스러운 프랑스산 버터 이름을 따서 '라콩비에트, 라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양이 낮잠 시간인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이라 못 만날 수도 있겠다 예상은 했는데 역시나 항상 앉아 있는 자리에 크림이는 없다. 몇 군데 주변을 좀 더 찾다가 결국 포기했다.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찰나, 거구의 한 남성이 풀숲을 등산 스틱으로 헤치면서 옆을 지나간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성한 풀 속 어딘가를 세차게 내려쳤다.
고양이 활동을 하면서 불길한 느낌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 후다닥- 허연 무언가가 튀어 올랐다. 내가 찾던 크림이었다. 그는 뭐가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부르면서 한 번 더 막대기를 세게 내려쳤다. 그 행동을 계속하게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때리지 마세요.” 거구의 남성과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뒤를 돌아봤다. 이럴 때 움츠러들거나 화를 내면 안 된다. 단호하게 다시 한번 말했다. “막대기로 고양이 때리지 마세요.”
그 남자는 미간이 찌푸려지면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여자가 대거리냐. 내가 때린 거 봤냐?” 조용했던 오전 시간 공원은 이 남자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남편을 끌고 공원 밖으로 데리고 나갈 때까지 그 소음은 계속됐다. 그가 공원 밖을 나갈 때까지 나도 지지 않고 계속 쳐다봤다. 그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긴장이 탁 풀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슬펐다. 가만히 햇볕을 쬐고 앉아있는 고양이에게 웃으며 폭력을 가해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에 슬펐고, 당신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해도 나는 아침부터 대거리 한 여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 또 슬펐다. 고양이 활동을 하면 할수록 사회가 더 나은 쪽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보기보다는 더 벽이 느껴지고 싸울 일만 생겨서 슬펐다.
일상의 고양이와 위기의 고양이
길에 사는 고양이는 크게 일상을 유지하며 사는 고양이(일상의 고양이)와 위기에 봉착된 고양이(위기의 고양이)로 나눌 수 있다. 인간 선택에 따라 처해지는 고양이 상황을 아주 거칠게 둘로 나눈 것이다. 각 상황에 따라 사람이 고양이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 방식은 조금씩 달라진다.
‘일상의 고양이’는 사람과 고양이가 각자의 영역에서 공존하면서 사람이 제공하는 먹이로 안정적인 영역을 꾸려가며 생활한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우리 동네 상황은 큰 위기 없이 매일 비슷한 상황이 지속된다. 가끔 고양이가 싫다는 내색을 거칠게 하고 가는 사람이 한둘 있긴 하지만 개인이 즉각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다 고양이 중심으로 사람들과 느슨한 연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가끔 고양이들에게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느슨한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해결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위기의 고양이’는 조금 다른 문제다. 로드킬, 재건축, 재개발, 학대 등 한 개인의 노력으로 가볍게 해결할 수 없는 종류의 일들이다. 2017년 옆 동네에서 일어난 대단지 아파트 재건축이 그런 일이었다. 고양이 활동을 하다 보니 옆 동네에서 일어날 길고양이 이주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이때는 느슨함 이상의 조직화가 필요하고 구청과 시청 등 기관의 협조도 필요하다. 시간과 돈은 물론 활동가 각자의 정신력 관리와 체력도 요구되고,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문제 해결과 이성적 결정을 위한 냉철함도 요구된다.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는 길고양이 학대 사건도 ‘위기의 고양이’에 해당된다. 이때는 경찰과 사법계의 도움이 필요한데, 현재 우리나라 동물보호법 양형이 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 노출되는 고양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고양이 활동가들은 사회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면서 활동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굳이 이런 일까지 신경 써야 하냐’는 가벼운 시선에 이중으로 몸살을 앓기도 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돌봄 당사자인 고양이마저 좋은 마음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려는 우리에게 적극 협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거를 앞둔 드넓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한 활동가가 에니멀 커뮤니터(동물과 교감을 할 수 있는 사람)를 섭외해서라도 고양이에게 떠나도록 말해줘야 하지 않겠냐고 푸념했던 말에서,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느꼈다.
도시 고양이 현실은 일상의 고양이와 위기의 고양이로 전환이 빈번하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고 쉽게 위험에 노출된다는 말이다. 많은 고양이 활동가(캣맘)들은 일상의 고양이 상태가 유지되도록 노력한다.
최근 강 주변 근린시설 중심으로 너구리 가족 출현이 이슈다. 우리와 함께 살고 있었으나 그동안 사람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도심 내에 깊은 숲에서 서식하던 개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원 재정비나 재건축 등으로 서식지가 파괴되어 사람 눈에 많이 띄게 되었다.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이러다가 ‘너굴맘’도 나오는 게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도심에서 비인간 동물 돌봄활동은 결국 인간 중심적으로 운영되던 시스템에서 발생한 오류를 극복하고자 벌이는, 공존을 위한 최후의 노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필자 소개] 김포도. 도심에서 사는 비인간동물에 대한 관심이 많다. 쉽게 죽어야 할 목숨은 없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매거진 탁! 을 연 2회 발행하고 있다. Instagram @magazine.t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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