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개] 여성들의 말과 글이 세상에 더 많이 퍼지고 새겨져야 한다고 믿으며, 서점에서 퍼뜨리고 싶은 여자들의 책을 고른다. ‘살롱드마고’의 신간 책장에서 마음에 새겨지는 책을 한 권씩 밑줄 그으며 꼭꼭 씹어 독자들과 맛있게 나누고자 한다.
“영주야, 난 너랑 같이 있어서 좋아. 너랑 같이 풍기역 앞을 걷고 이천원 주고 도넛을 사 먹고 인삼 사이를 지나다닐 수 있어서 좋아. 좋은 만큼 무서운 마음이 들지만 그것보다 더 크게 좋아. 우리 엄마도 그랬을까. 엄마도 링고 이모랑 그랬을까.” (‘링고링’ 중에서)
얼마 전 마트에서 장을 볼 때였다. 매대를 영혼 없이 훑어보며 머릿속으로는 <책방에서 밑줄 긋기> 이번 원고 타자를 치고 있는데, 순간 어디선가 날아든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야, 니들 사귀니?” 어리둥절해 주위를 둘러보니 근처에 젊은 남자직원 둘이 소곤거리고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직원이 그들에게 던진 말이었다.
“니네 사귀냐고!” 처음에는 놀리듯 장난스레 말했던 직원은 마트의 모든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쩌렁쩌렁 소리쳤다. 장 보느라 여념이 없던 손님들의 눈길이 그쪽을 향하자 두 사람은 이내 흩어졌고, 소리친 직원은 그제야 만족한 듯 조용해졌다. 왜인지 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까끌까끌하고 불편한 감정이, 익숙한 화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피어 올라왔다.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사소’한 일상과, 무심해서 더 무참한 현실이 숨 막히게 지겨웠다.
마트를 나오며 다시 머릿속에서 타이핑을 멈춘 채 깜박이는 커서로 돌아가 “사랑하는 것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것도 헛되지 않다”고 한 ‘작가의 말’을 곱씹었다. 조금 전 툭 던져진 말 한마디로 울퉁불퉁해진 마음에 순한 연고를 발라주는 것 같았다. 이 무례하고 야만적인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그런 생각을 계속 간직하며 살아갈까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질문을 우물거렸다. 아직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저 말을 머금고 살면 적어도 길은 잃지 않을 것 같아. 누가 하는 말인지 모를 답이 쓸쓸한 손등 위를 다정하게 포갰다.
“그녀는 사람에게 다가가 마음을 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먼저 주고, 준만큼 되돌려받지 못해도, 다시 자신의 것을 주었다. 결국 그건 자기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했다. 멀리, 크게 보면 그렇다고.” (‘나뭇잎이 마르고’ 중에서)
김멜라의 소설집 『제 꿈 꾸세요』에 수록된 여덟 개의 작품들에는 꿈과 현실, 죽음과 삶이라는 무대가 공통적으로 펼쳐진다. 경계의 양 끝에 존재하는 그 시공간들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거나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자연스럽게 오가며 흘러간다. 작가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끌며, 현실을 떠난 낭만적 사랑의 달콤함이 아니라 현실 너머 우리가 잊거나 잃은 사랑의 ‘힘’을 (어떤 기자의 표현을 빌어) ‘솜사탕’처럼 건넨다.
그 사랑의 중심에 여자들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소설에서 퀴어 작품이나 주인공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데, 다양한 풍경의 레즈비언 서사가 보태져 더욱 반가운 마음이다. 더불어 이런 시도들이 모여 ‘퀴어’를 다루었다는 사실만으로 ‘화제’가 되거나 궁금함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사회로 나아갔으면 한다. 이성애자의 사랑 이야기를 쓴 작가에게 “왜 이성애에 대해 쓰냐”고 아무도 묻지 않는 것처럼.(김멜라뿐 아니라 퀴어 작품을 쓴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왜 그 주제를 썼는지에 대한 질문이 무수히 반복된다.)
“네가 뭐라고 불리든 너와 너의 연인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어. 그러니 당분간 천국에 갈 시간은 없겠어. 사람들에게 말해줘야 하니까.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살아 있을 때 뭐가 중요한지, 삶과 죽음, 우리가 단절되어 있다고 믿는 그 사이에 어떤 힘이 있어 우리를 서로에게 연결해주는지. 어떤 논리도 너에게서 기적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할 거야.” (‘논리’ 중에서)
『제 꿈 꾸세요』의 수록작 다수에는 청소년, 장애인, 딸과 엄마 등 레즈비언을 둘러싼 주변의 관계나 그와 포개진 다른 정체성이 교차되어 함께 등장한다. 그들은 예기치 않은 폭력을 경험하며 혼란을 겪기도 하고, 유령이 되어 사랑하는 이 주변을 떠돌기도 한다. 작가는 이들의 입을 빌어 직접 말하기보다, 따사로운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보며 마음을 세심하게 읽어낸다.
주인공들은 세상의 상처에 처연하게 아파도 일상에서 스스로 재생할 에너지를 잃지 않고, 억울하고 외로운 순간에도 곳곳에 유머가 피어난다. ‘긍정’이나 ‘낙관’ 같은 뻔한 말보다 편혜영 작가의 추천사처럼 ‘명랑하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다. 파 한 단, 인형 하나에도 일일이 이름을 붙여 불러주고 ‘반려’하는 인물들의 삶의 태도는 혐오와 차별이라는 세상의 벽을 ‘설탕’처럼 녹여버린다. “그들은 결혼해서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와 같은 가부장제의 완벽한 해피엔딩 각본과는 다른 상상력의 결말로 우리를 인도하며, 비록 지금은 ‘빈 괄호’더라도 서로가 있는 한 자신과 미래 모두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킨다.
그러나 현실의 사랑이 그렇듯 김멜라의 작품들은 그저 말랑말랑하거나 쉽게 위로를 꺼내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삶에서 어떤 충격과 갈등을 경험하는 동안 작가는 독자가 이야기의 구경꾼으로 남지 않도록, 현재의 위치성을 질문하며 긴장과 반전을 이끌어낸다. 지금 우리 주변에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세상과 어떻게 싸우는가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어떻게 끌어안는가를 보여주며 ‘사랑’을 말한다. 이들의 사랑에 남성은 존재하지 않지만, ‘레즈비언 커플에게 버려진 딜도’의 이야기를 통해 ‘성기(혹은 섹스)’로 자신을 주체화한 남성들의 실존적 두려움(?)까지 유쾌하게 다루며 전복된 남성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왜 나만 버려져야 하나. 날 위한 안전망, 법적 장치, 사회보장 시스템은 어디 있는가. (중략) 어쩌다 여자들이 이토록 섹스를 업신여기게 된 걸까. 섹스 없인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들이, 섹스 없인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들이, 섹스에 등돌리고 섹스의 상징이자 육체의 중심인 나를 버리겠다니. 나는 두 여자가 미웠다. 날 이렇게 만든 너희, 너희 두 여자. 죽을 때까지 함께 살기로 한 여자들. 질 좋은 음식을 요리해 먹고 안전하고 깨끗한 집에서 잘 살아보겠다는 너희 여자들!” (‘저녁놀’ 중에서)
꿈으로 시작해 꿈으로 끝나는 소설집과 “당신의 꿈에 나오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꿈의 의미를 더듬어보았다. 예전에 나는 막연하게 꿈이란 그저 허망한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개인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꿈분석 작업을 하면서, 꿈이란 ‘의식의 차원에서(깨어 있을 때)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이 무의식이라는 공간에서(잠들었을 때) 영화처럼 펼쳐져 내게 말 거는 곳’임을 알게 되었고, 꿈을 통해 나를 깊이 탐색할 수 있었다. ‘말이 되지 않는 곳’인 꿈은 다시 말하면 ‘그래서 무엇이나 가능한 곳’이었다. 깨어 있는 동안 뾰족하게 세워진 날을 거둬들여 돌보지 못한 나의 그림자에 밝은 빛을 쪼여주는 시간이었다.
무엇이나 가능하리라는 순전한 믿음 속에서 무의식의 자아와 자유롭게 유영하듯 접속하는 우리가 그리는 새로운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살아갈까 궁금해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고꾸라지게 만드는 세상에 맞서느라 쉬이 지친 모두가 그렇게 서로의 꿈을 향한다면. 한가한 볕을 맞으며 배를 보이고 누워 서로를 그루밍해주는 고양이들처럼, 다정하고 포근하게 속삭이고 싶어진다. ‘제 꿈 꾸세요.’
[필자 소개] 달리. 전북 남원에 있는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 ‘살롱드마고’의 공동운영자이며 에세이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2021)의 작가이다. ‘고요한 해방, 나의 목소리를 찾는 글쓰기 여행’, ‘삶의 빈 칸을 채우는 글쓰기’ 등 여성들과의 글쓰기 활동을 기획,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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