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 어떤 자가 말했다. 대의를 위해서 지금은 온 신경을 거기에 집중해야 할 때인데 페미니즘 같은 작은 조개를 줍고 있을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의’는 과연 무엇일까. 페미니즘은, 여성의 일은 결코 ‘대의’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위 발언은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래 마땅하다. 약자의 권리에서 우선순위를 나누기 시작하는 순간, 망하게 된다. 이 단순한 논리를 사회는 종종 잊는다.
※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나 창피하게 하지 마요”
김미조 감독의 영화 〈갈매기〉의 주인공 오복은 중노년 여성이다. 딸을 셋 두고 있으며 그중 첫째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시장에서 생선 가게 일을 하고 있는데, 시장은 용역들에 의해 밀릴 위기에 놓여있다. 시장 사람들은 붉은 조끼와 ‘단결 투쟁’이 적힌 머리띠를 나눠 매고 용역들과 대치 중이다. 오복 역시 이 투쟁에 참가하고 있다.
영화의 첫 씬은 상견례 씬이다. 오복은 곱게 차려입고 남편과 딸과 함께 둥그런 테이블에 앉아 신랑과 신랑 측 사람들을 기다린다. 영화의 첫 대사가 여기서 등장한다. “오늘은 나 창피하게 하지 마요.” 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딸이 오복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단숨에 알 수 있는 대사다. 자랑스럽지 않은 엄마, 부끄러운 엄마 오복은 짧게 항변한다.
상견례는 하나의 쇼 같다. 한국식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는 명제와 딱 일치하는 자리다. 이에 걸맞게 양쪽 집안사람들은 어색한 대화만 주고받는다. 허례허식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모처럼 근사하게 차려입은 오복은 상견례를 마치고 시장 조합 자리에 참석한다. 어두운 밤 시장 사람들이 모여서 스티로폼 박스 위에서 술을 마신다. 오복은 처음에 거절하지만 결국 한 잔 두 잔 마시게 된다. 카메라도 덩달아 취하는 듯 포커스가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한다. 카메라 포커스의 거친 이동은 이 영화 전체를 틀어 이 장면뿐이다. cut to 기법(동일한 씬 내에서 시간 흐름을 컷으로 끊어 표현하는 방식)이 사용되는 장면도 역시 이 장면뿐이다. 정신없는 이 장면 이후 화면이 암전되고 트로트 반주가 잠시 나온다.
오복은 이날 밤 시장 사람 측 입장을 대표하는 노동조합 대표 격의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하지만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관객은 오복이 이날 성범죄의 피해를 겪음을 뒤늦게 알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 사실을 빠르고 정확하게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폭력적 묘사를 사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폭력이 된다. 관객은 이런 방식의 씬 배치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게 된다. 내용의 전개를 위해 피해 사실을 묘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김미조 감독은 씬의 배치로 대신 설명한다. 술에 취한 오복의 씬 – 암전 – 해가 뜰 무렵 홀로 시장을 걸어 나오는 오복 – 지하철 계단을 힘들게 올라오는데 뒤따라올라 오던 여성이 오복의 치마에 피가 묻었음을 알려주는 씬 – 목욕탕에서 속옷을 빨래하는 오복의 씬 연결로 폭력적인 묘사를 대신한다. 목욕탕에서 빨래를 하지 말라는 목욕탕 주인의 말에 오복은 기운 없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미안해요.”
오복은 첫째 딸과 함께 탄 차에서 딸에게 겨우 이 사실을 털어놓게 된다. 하혈을 하냐는 딸의 질문에 오복은 말이 없다. 그리고 차가 서 있는 컷으로 바뀐다. 깜빡이가 틀어진 차가 멀리서 보인다. 그리고 다음 컷은 차 안의 두 모녀를 비춘다. 오복은 말한다. “아빠한테 말하지 마.” 첫째 딸은 벙 찐 표정으로 차를 나가는 오복을 그저 바라본다. 김미조 감독은 이처럼 직접 언급 없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드러낸다. 다른 영화들의 게으름을 비판하듯 세심하게 연출해낸다.
오복은 처음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첫째 딸의 결혼식도 신경 쓰이고 시장 사람들의 입장도 신경 쓰인다. 사실 오복이 신경 쓸 것들이 아니다. 사회가 피해자에게 부과한 짐들이다. 가해자는 와중에 오복의 집에 선물을 가져다주고 상황을 모르는 남편은 그저 좋다고 받는다. 자꾸만 오복이 빨래를 한다는 셋째의 말에, 첫째는 며칠째 시장에도 나가지 않는 오복을 걱정하게 된다. 분노와 억울함이 쌓인 오복은 가해자의 수산 수조에 벽돌을 던진다. 복수의 시작을 알리는 통쾌한 한 방이 어둠 속에서 벌어진다. 하지만 상황은 순순히 흘러가지 않는다.
같지만 다른 붉은색
상황을 알게 된 시장 사람들에 의해 2차 피해가 이어진다. 한강에 배 한 번 지나갔을 뿐인데, 지금 시장 상황도 안 좋다며 오복의 고소를 비난한다. 고소를 하기 전 오복은 생리대를 하고, 생존권 확보가 적힌 조끼를 입고, 단결 투쟁 머리띠를 맨 채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장 사람들의 모습을 창문으로 본다. 오복을 연기한 정애화 배우의 옆모습은 많은 감정을 담는다.
생존권 확보를 외치는 조끼도 붉은색, 단결 투쟁을 외치는 머리띠도 붉은색, 그리고 성폭행을 당해 나온 출혈도 붉은색이다. 하지만 왜 어떤 붉은색을 위해 다른 붉은색은 꽁꽁 생리대 속에 감춰져야만 하는가. 투쟁 현장을 멍하니 바라보는 오복은 그들이 말하는 정의에서 자신은 배제되어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2차 피해는 가족 내부로부터도 일어난다. 첫째 딸은 결혼이 무마될까 봐 걱정이고, 남편은 성폭력은 피해자 여성의 동의 없이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망언을 뱉고 만다. 오복의 편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오복의 딸들이 연대하기 시작한다. 함께 사는 첫째 딸과 셋째 딸이 증언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함께 나선다. 끝내 딸들이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하기 시작하는 순간은 가슴을 벅차게 한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는 마리옹 꼬띠아르가 해고당할 위기에 처한다. 한 명을 자르는 대신 월급을 더 주겠다는 반장의 말에 마리옹 꼬띠아르가 표적이 된 것이다. 투표로 이뤄지는 이 부당한 처사를 막기 위해 마리옹 꼬띠아르는 주말 내내 직원들을 찾아간다. 연출은 문을 중심 오브제로 사용한다. 어떤 이는 문 앞에서 거절하고 어떤 이는 문에 서서 이야기한다.
오복도 한 명, 한 명 찾아간다. 하지만 문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증언을 해줄 것처럼 했던 한 남성과는 골목길에서 대화를 나눈다. 골목 끝까지 보이는 좁고 긴 골목길이 오복이 헤쳐나가야 할 여정처럼 보인다. 남성은 하지만 결국 약속한 경찰서 앞에 나오지 않고, 오복은 또 한 번의 고비를 맞게 된다.
고정된 앵글과 최소한의 컷, 오복의 옆모습
이 잔혹한 여정을 카메라는 묵묵히 담는다. 고정된 앵글로, 롱테이크로, 최소한의 컷으로 담는다. 한 씬 내에 서너 컷 이하로 촬영을 했다는 김미조 감독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서스펜스 대신 다소 지루할지라도 불안감을 자극하지 않고 카메라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오복을 바라본다. 김미조 감독의 이 방식은 집안 구석구석을 보여주기도 하고, 시장의 면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롱테이크는 관객의 시선이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여기저기를 훑을 수 있다.
영화 초반 오복이 엄마와 통화하는 장면이 있다. 우연히 지나가다 들른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오복은 엄마와 통화를 한다. 감독은 오복의 옆모습을 끈질기게 바라본다. 오복은 엄마에게 말한다. 학교를 왜 보내주지 않았냐고. 오복은 이 사건에 대응하지 못하는 자기 상황의 답답함을 여기서 풀어내듯 눈물을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오복의 정면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생리대를 붙이고 투쟁하는 동료들을 바라볼 때도, 목욕탕에서 빨래를 하다가 사과할 때도, 중요한 감정의 씬마다 오복의 옆모습을 보여준다. 응시하되 정면에서 바라보지 않는 이 자세는 옆에서 묵묵히 바라보는 그것이지, 치근덕대며 따라붙는 끈질긴 샷이 아니다. 이 앵글의 선택으로 관객 또한 오복의 옆모습을 묵묵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오복의 변화
사건을 듣고 고소하자는 첫째의 말에 오복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 나이에 망신살 뻗칠 일 있냐.” 하지만 오복은 점점 변화한다.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을 보면서, 자기편이 아무도 되어주지 않는 시장 사람들을 보면서 오복은 점점 적극적으로 변해간다. 후반부 오복은 손톱을 깎고 글을 써 내려간다. 끝내 가장 최후의 방법을 택한 오복의 엔딩씬은 힘이 넘친다.
오복은 피켓을 들고 가해자의 수산 앞에 선다. 감독은 이때도 피켓의 내용을 보여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오복의 표정이다. 드디어 오복의 정면이 가까이 보인다. 달리 인이 들어간다. 점점 가까워지는 결연한 눈빛의 오복, 그리고 영화 초반에만 잠깐 등장했던 음악이 비로소 다시 등장한다. 트로트다. 중노년을 대변하는 트로트 곡조는 힘이 넘치면서 우울하지 않다. 트로트가 커지면서 영화는 끝이 나고, 궁서체에 투박한 크레딧이 올라간다. 트로트와 어우러져 마치 이 음악의 크레딧인 듯 보인다. 이 투쟁을 지지하는 반주자들의 명단처럼 올라간다.
한 사람의 인권을 짓밟으면서 외치는 ‘대의’라는 것이 과연 정의일까. 여성의 인권은 그 말도 안 되는 ‘대의’ 타령 앞에서는 ‘소의’인 것일까. 어떤 것이 대의이며 정의일까. 피해자들이 고발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내가 대의를 해치는 사람인 양 취급하는 사회 때문이다.
갈매기는 육지를 맴돈다. 맴돌며 사람들의 과자를 먹기도 하고 조류 중 나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하지만 육지에 실망한 갈매기는 어디로 날아가야 할까. 우리가 새로운 육지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필자 소개] 신승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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