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서 하는 포옹은 괜찮으신가요?

페미니스트 국어 선생들이 말하는 ‘요즘 학교 어떤가요’②

전띠로리 | 기사입력 2022/10/08 [18:43]

숨어서 하는 포옹은 괜찮으신가요?

페미니스트 국어 선생들이 말하는 ‘요즘 학교 어떤가요’②

전띠로리 | 입력 : 2022/10/08 [18:43]

[기획의 말]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하는 국어 교사들이 모여 교실과 학교에서 성평등한 국어 교육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평등 국어교사 모임’을 만들어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만들어 온 국어 교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운동장에서 포옹을 한 죄

 

최근 이런 일이 있었다. 사무실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다급히 학생 두 명이 교무실에 소환되어 혼나고 있었다. 큰 일이 일어났구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이유는 싱거웠다.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교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여학생과 남학생이 포옹을 한 죄였다. 사실 처음엔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이내 ‘이게 이렇게 심각한 일인지’ 지도하는 교사에게 반감이 들었다. 나는 이것이 무슨 학교 규정에 반하는 것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었고, 해당 선생님은 다정하고 단호한 말투로 ‘풍기문란’이라는 용어를 언급하였다.

 

풍기 문란(風紀紊亂)

풍기 문란 「001」 풍속이나 규범 따위를 어기고 어지럽히는 일.

 

이럴 수가, 풍기문란이라니. 학교라는 곳은 빠르게 변하면서도 동시에 참 변하지 않는 곳이다. 언제적 용어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이 용어가 우리 학교 학생들의 벌점 규정에 버젓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래도 학교가 그동안 참 많이 변하긴 변했다. 이런 규정을 정할 때 학생들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된다. ‘학생자치’는 꽤 시스템적으로 잘 되어있다. 학생들이 뽑은 학급회장과 부회장이 진행하는 학급회의를 거쳐, 대의원회의가 이루어지고, 그를 통해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된다. 물론, 한계는 있다. 사안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상태였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런 시스템으로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청소년들도 풍기문란으로 해석할 수 있는 ‘청소년들의 스킨십’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학생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규정을 정할 때 ‘학생답게’ 보이는 것을 꽤 선호한다. 그래서 스스로의 권리를 상당 부분 제한하기도 한다. 청소년 인권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 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직접 학생들에게 물어봤을 때, 꽤 많은 학생이 청소년들의 스킨십에 대해 ‘부러워서’, 혹은 좀 ‘학생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킨십을 하더라도 안 보이는 곳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학생들의 반응에는, 공공장소에서의 스킨십을 불편해하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학교 규정에는 ‘풍기문란’ 이 네 글자밖에 없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서 적용하는 것인지는 해석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뜻이다. 학교는 정말 다양한 학생들 사이에서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그래서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세상 이렇게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곳도 없다. 어려운 일이다. 한쪽에서는 청소년들이 성과 관련된 것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며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손잡고 지나가는 교복 입은 커플을 보고도 ‘풍기문란’으로 벌점을 주기도 한다. 누군가는 청소년의 임신과 피임에 대해 고민하고, 누군가는 드라마에서 청소년의 임신에 대해 너무 쉽게 그려내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을 한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이 학교라는 곳에서 동시대에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우리 학교에서 일어난 일도 절대 헤프닝이 아니다. 단순히 ‘그건 영 아니다’라는 이유로, 자유롭게 포옹하고 싶은 학생들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벌을 줄 수는 없다. ‘이성 간 운동장에서 껴안기’가 교육적인 개입이 일어나야 할 만큼 문제가 되는 행동이라고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교육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 일단 나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적어도 우리 학교 학생들을 설득하지도 못한 듯 보인다.

 

▲ 아직도 꽤 많은 어른들이 청소년을 사랑/연애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그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지 출처: pixabay)

 

그와 관련된 일은 계속되었다. 운동장에서 껴안은 ‘죄’로 학생들이 혼나고 난 후,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교가 생활자치부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연애를 금지한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커플이었던 학생들은 내가 속해있는 생활자치부를 비장하게 쳐다보기도 했고, 피해 다니기도 했다. 저 일이 있은 후에도 ‘지나친 스킨십’에 대한 선생님들의 지적은 몇 번 더 있었고, 충분히 커플들의 입장에서는 심기가 불편한 부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학생들의 스킨십을 지도했던 교사들은 ‘공공장소에서의’ 포옹을 불편해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일까. 그런데, 학생들은 이를 다르게 해석했다. 학생들은 사귀면 손을 잡고, 포옹하기도 하고, 스킨십을 하면서 산책(데이트)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지적하는 건 ‘연애’를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청소년은 연애를 하되 스킨십을 하지 말라’ 혹은 ‘뭘 하든 안 보이는 곳에서 하라’는 의도를 숨기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연애를 금지한 건 아니니까 학교 측에서는 억울해할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의 해석에도 일리가 있다. 사귀니까 스킨십을 하는 것이고, 학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생활하는 학생들이니까 학교에서 그것도 쉬는 시간에 스킨십을 하는 건데 뭐가 잘못된 건지..

 

학생들은 더 예리해서 ‘동성 친구들끼리 껴안는 것은 괜찮다’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그렇다. 동성 친구들끼리의 ‘진한’ 스킨십은 코로나19 상황이 아니고서는 학교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교는 동성 간의 연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교사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다 보면, 청소년들이 함께 사회를 이루며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생략할 때가 많다.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가르침의 대상으로 인식하곤 한다. 굳이 교사가 아니더라도 흔히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의 주체성을 까먹곤 한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정신적인 토대로 이루어진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그 누구에게도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기도 하며, 누군가는 강한 성적 욕망이 동반된 사랑을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에는 당연하게도 청소년들이 있다.

 

손끝만 닿아도 두 볼이 빨개지고 손편지로 마음을 확인하며 스킨십은 생략한 채 잘 성장하여 짜잔~ 어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잘 알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랑이라는 큰 세계를 담아낼 수 없다. 게다가 청소년들은 놀랍게도 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고, 사랑을 하며,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존재이다.

 

우리는 알고 싶지 않고 보기 싫은 것들은 종종 지워버리곤 한다. 풍기문란이라며 공공장소에서 청소년들의 사랑을 지워버리기도 하고, 드라마에서조차 청소년들의 임신이 등장하는 것을 껄끄러워한다. 청소년들은 ‘이쁜’ 사랑을 했으면 좋겠고, ‘발랑 까진’ 스킨십까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알고 싶은 것만 알기를 바라는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과감한 스킨십을 상상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성 경험이나 임신 등과 관련해서는 더 난감해하고 머뭇거린다.

 

꽤 많은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청소년들이 말할 용기를 잃고 입을 다물게 된다. 더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침묵은, 고립으로 이어진다. 고립은 한정된 정보와 외로움을 낳고, 고립된 인간은 종종 잘못된 선택을 하기 쉽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잘못되면, 우리는 쉽게 ‘개인의 탓’이라며 잘못된 화살을 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은 잘못이 아니므로, 우리는 사랑을 멈출 수 없다. 사랑의 주체는 누구나 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청소년들은 사랑의 주체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좋은 경험이건 나쁜 경험이건 앞으로의 긴 인생의 토양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눈앞에 있는 것을 인정하고, 난감한 마음을 홀가분하게 벗어던지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 누구의 사랑도 지지하기로 하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사랑은 사랑이다.

 

*위 글은 성평등 국어교사모임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이메일 주소 femi_literacy_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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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O 2022/10/15 [15:55] 수정 | 삭제
  • 저런 일로 교무실 끌려가선 안 되지 않나요. 요즘 학교도 답답하네 ㅠㅠ
  • hug 2022/10/08 [21:49] 수정 | 삭제
  • 학교 규정을 정할 때 학생들이 보수적으로 정한다는 얘기에 공감했어요. 저도 그런 걸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규율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단속이 아니라, 인권을 존중하는 방법으로의 합의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 서랍 2022/10/08 [21:40] 수정 | 삭제
  • 운동장에서 포옹했다고 교무실 끌려가는 학교의 분위기 알만 하네요. ㅠㅠ 숨어서 하는 포옹은 괜찮으신가요? 딱 그렇게 묻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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