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색깔은 없어

[이주 배경 청년의 목소리] 멘티가 자라서 멘토가 되기까지

팔레트 | 기사입력 2022/10/26 [20:58]

세상에 나쁜 색깔은 없어

[이주 배경 청년의 목소리] 멘티가 자라서 멘토가 되기까지

팔레트 | 입력 : 2022/10/26 [20:58]

※국제결혼 가정이나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한 청(소)년들, 아동 청소년 시기에 중도 입국한 청년 등 다양한 이주 배경을 가진 청년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청년 담론 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주 배경 청년 당사자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직접 들어봅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편집자 주]

 

최근에 나와 같은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 몇 명과 함께 ‘멘토링’ 동아리를 결성했다. 우리가 만나는 ‘멘티’들은 한국에서 다문화가정이라고 불리는 국제결혼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외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부모의 이주 등을 이유로 한국에 오게된 중도입국 청소년들이다. 일주일에 6시간 정도, 맞춤형 과외 지도를 해주고 있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2세들이나 중도입국자의 경우, 학교 수업 과정을 잘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봉사활동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게 된 계기는, 나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나홀로 알림장을 따로 받는 초등학생

 

나는 외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한국이지만, 유아 시절 어머니의 나라에 가서 지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한국어도 전혀 몰랐고, 당연히 내가 한국인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아버지의 무능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빠는 가정에 무책임했했고, 때문에 동생의 출산을 앞둔 엄마는 나를 고향에 있는 큰이모(엄마의 언니) 집으로 맡긴 것이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긴 했지만, 큰 이모집에서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생활했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거나 특별한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사촌 언니는 나보다 약 20살이나 나이가 많아서 가끔은 사촌언니가 엄마 같았고, 이모와 이모부는 할머니, 할아버지 같이 느껴졌다. 어린이집에도 가고, 연말에 학예회 같은 발표회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나를 응원해주러 온 가족들이 다른 친구들 못지 않게 많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나이가 되자 갑자기 한국에 오게 되었다.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모른 채 어린이집에 다녔다. 고맙게도 그 시기에, 엄마 나라의 언어를 전공한 대학생 멘토가 우리 집까지 방문해서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다. 멘토들의 도움을 받아서 조금씩 한국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두 번이나 국경을 넘은 경험에 비해 무난히 성장했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초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혼자 있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누군가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온종일 혼자 지내는 자존감이 낮은 아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을 때, 손을 들어 발표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당시에 돌봄교실 선생님이 내가 숙제하는 걸 도와주셨지만,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어졌다. 학원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초등 3학년 때까지는 매년 담임선생님이 ‘부모님 중에 외국에서 온 분이 있는 학생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교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학생 조사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손을 들어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다 나를 향하게 되는 것이 정말 싫었다. 또 학교에서는 다문화가정 자녀라는 이유로 영화도 보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우리 반에서 나 혼자만 따로 봉투(알림장) 하나를 더 받고, 따로 선생님을 만나고, 따로 다른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것이 혜택이 아니라 차별처럼 느껴졌다.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무시를 당하거나 동정을 받지 않을지 노심초사하셨다고 한다. 부모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반 아이들에게 ‘학교에 오지 말라’는 얘길 들은 아이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그런 괴롭힘을 겪지는 않았다. 한 번은 선생님이 반 아이들 앞에서 나를 칭찬했다. 엄마가 외국에서 왔는데도 받아쓰기를 100점 받았다는 것이 기특하다는 거였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아이들도 내게 다가와서 2개국어를 할 수 있어서 좋겠다며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집에 와서 그 얘기를 했더니 엄마는 “다행이다”라고 하셨다.

 

다양한 색깔의 색종이

 

중학생이 되면서 나와 같은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이주여성들을 위한 단체 행사나 프로젝트 등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거기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여성들을 만났고, 그 자녀들과 어울렸다. 부모가 어떤 나라에서 왔든 상관 없이 우리의 생활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쌀밥을 먹는 것이나, 핸드폰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싶어하는 거나,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하는 것 등 관심사나 욕구, 고민 등이 비슷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한국의 언어와 문화뿐 아니라 또 다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다.

 

▲ 세상에 어떤 색깔이 맞고, 틀릴 수 있는가. ‘다름’에 대한 이질감과 경계의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원한다. (출처: pixabay)

 

그 시기에 멘토링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했던 친구들 중에서 한 명이 피부색의 차이로 인해 학교에서 반 아이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경험을 토대로, 멘토와 함께 동영상을 제작한 것이 생각난다. 영상은 다양한 색깔의 색종이를 들고서 ‘이 중 틀린 것이 무엇인가’ 묻는 말에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야’라고 대답하는 내용이었다.

 

사실 나에게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학교와 학원에 다니는 동안 아이들이나 선생님으로부터 노골적인 차별을 겪지는 않았지만,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적은 있다. 그것은 ‘다름’에 대한 이질감과 경계의 표현이며, 그런 시선을 받는 당사자로서는 기분이 나쁜 건 물론이고 말과 행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차이와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색종이에 비유해 풀어낸 동영상을 보고, 어른들은 굉장히 좋아하셨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당시 그 영상 제작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나를 ‘다문화가정 자녀’라는 말로 소개하고 싶지 않았고, 내 얼굴이 찍힌 동영상이 어딘가에서 공개될 수 있다는 것이 꺼림칙했다.

 

‘다른 존재’에 대해 편견을 갖는 세상이 바뀌길 바라면서도, 그 편견을 깨고자 하는 동영상에 직접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는 얘기가 모순적으로 들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편견을 당하는 쪽 사람이 백날 ‘편견을 깨라’고 말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차별에 반대하는 교육용 영상은 많고도 많다. 학교에서도 차별과 편견은 나쁜 것이라고 배웠다. 그럼에도 편협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내가 이런 동영상을 찍는다고 바뀔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하는 일이다.

 

엄마 나라의 언어 배우기

 

한국에서 살아가며 나의 주변은 한국인으로 채워졌다. 한국어 실력이 늘수록 모국어 실력은 낮아지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엄마 나라의 언어를 잊지 않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모국어를 배우기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다문화가정 자녀를 위한 프로그램인 ‘엄마 나라의 언어, 문화 배움터’에 참석해 언어를 익혔다.

 

그러나 한국에서 멘토들을 통해서 제공받은 언어 교육은 체계적이거나 전문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나는 모국어를 더 잘 배우고 싶었다. 결국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전공으로 엄마 나라의 언어를 선택했고, 대학에 와서는 아직 학부생이라 과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관련 전공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대학에서 같은 언어를 전공하는 친구들 몇 명과 멘토링 동아리를 만들었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주민 2세와 중도입국 청소년의 멘토로 활동하면서 이들이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멘토링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고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내가 한국에 입국했을 당시에 멘토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어를 배우고 적응해나갔던 것을 떠올리며 나도 커서 사회에 반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이주2세와 중도입국 청소년의 멘토로 활동하면서, 내 어린시절을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나 또한 멘티들과 같이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다. (일러스트_두두사띠)

 

멘티들을 만나보니, 어릴 적의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특히 유아 시기를 지나서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한국으로 온 중도입국자의 경우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어서 굉장히 답답해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자기가 원해서 한국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 것이다.

 

중도입국 청소년들이 교과 과정을 따라가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고, 한국어를 모르는 것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도 모르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도 지장이 많다. 그런 채로 한국에서 학교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견뎌야 한다. 멘티들을 만나며, 한국 사회에는 이들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정책이 미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과외 지도 외에도 한국 문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함께 다양한 곳들에 놀러 다니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싶다.

 

사실 멘토와 멘티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고 받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다. 멘토링을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나 또한 멘티들과 같이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다.

 

출신이 뭐 중요한가요

 

나는 이주 배경을 가지고 성장한 사람으로서, 물론 어려움도 겪었지만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뿐 아니라 엄마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요즘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 ‘소통’이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도 최근에는 하게 된다. 그러나 언어능력 같은 것은 부차적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한국인 청년들에 비해 출신이나 인종 같은 문제에서 타인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다문화가정의 자녀와 중도입국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는 멘티들을 만나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최근에 마음이 불편한 일을 겪었다. 이주 2세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자원활동을 하러 갔을 때, 한국인 자원봉사자 중에 한 명이 어떤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뒷담화하는 것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멘티가 자기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더라며, “그게 자랑할 거리인가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자신이 외국에 나가 살면서 ‘한국에서 왔어요’, ‘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소개했는데 주위 사람들이 ‘그게 자랑이냐?’라고 반응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한편으로는 그렇게 국적이나 출신에 대한 선입견과 차별의식을 가진 사람이 이주 배경 아이들을 위해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는 게 의아하기도 했다. 그저 의미있는 활동을 한다는 것 때문에, 혹은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넣기 위해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실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문화가정 자녀와 중도입국 청소년에 대한 편견은 우리 사회에 많이 깔려 있다. 가정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버릇이 없을 거라는 등의 선입견 말이다. 거기에 어떤 국가 출신 사람들은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하며 주로 나쁜 쪽으로 일반화시키는 말들도 이 사회에는 정말 많다.

 

나는 출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에 와서 받았던 여러 도움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지만, 내 국적이 한국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한국을 좋게 생각하고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어느 지역, 어느 문화 속에서 자란 사람인지 이야기하기 위해 출신을 밝히는 것이지, 사람 자체를 국적이나 핏줄이나 인종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냥 다 같은 한 인간이고 하나의 존재인데, 이야기를 나눠보았을 때 자신과 잘 맞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주변의 여러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사회의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주민이나 2세를 향해 ‘이상한’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사회가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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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겔다 2022/10/28 [18:55] 수정 | 삭제
  • 아.. 정말 선입견 심각합니다. 남자가~ 여자가~ 했던 것들처럼 이제는 국적 가지고 또 구분하고 그러나 싶구.. 사람을 국적이나 인종으로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너무 당연하게 기본값으로 예의로, 지켜지는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 코스모 2022/10/27 [19:03] 수정 | 삭제
  • 이주 배경 청년이라는 말도 처음 들어봤고, 다문화가정 아동이라는 말만 들어봤는데, 나 역시도 어느 정도는 그들을 대상화하지 않았는지 반성했다. 청년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연재된 글들을 읽어보니까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고, 내 가까운 곳에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게 확 와닿는다.
  • 공감 2022/10/27 [12:41] 수정 | 삭제
  • 한국은 다문화 말만 하지 다문화를 받아들이려면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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