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이후, 내가 여전히 소중한 사람임을 알았다’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 전 국가대표 유도선수의 미투(상)

이은의 | 기사입력 2022/11/10 [16:16]

‘미투 이후, 내가 여전히 소중한 사람임을 알았다’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 전 국가대표 유도선수의 미투(상)

이은의 | 입력 : 2022/11/10 [16:16]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이 된 성폭력과 미투 사건들을 맡아 해결해 온 이은의 변호사의 기록,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체육계 미투, 지도자로부터 겪은 성폭력

 

2019년 1월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심석희 선수의 미투(#MeToo)로 체육계 성폭력 문제에 대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미투 사건을 연달아 맡았던 나는 여러 문의를 받으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주중의 일과에서 소화 못한 서면을 쓰려고 출근한 어느 일요일, 생면부지 신입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청소년 시절, 코치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있는데, 2018년 3월에 제기한 고소가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되었고, 검찰에서는 기소중지가 되어있다고 했다. 사건을 열심히 취재하고 법도 공부한 흔적이 느껴졌고, 무엇보다 피해자의 딱한 사정에 대한 진심이 묻어나는 연락이었다. 기자는 ‘피해자가 가난한데, 만나주면 안 되냐’ 청해왔다.

 

그렇게, 다음날 밤에 내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전 국가대표 유도선수 신유용이었다. 2019년 1월 15일, 신유용의 첫인상은 벙거지 같은 모자를 눌러 쓰고 두꺼운 화장을 해서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급성 공황장애 증상이 온 상태였다.

 

가해자는 그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잊을만하면 연락을 해왔다. 신유용은 2018년 봄, 과거의 고통과 현재의 불안을 끝내고자 고소를 결심했다. 하지만 수사기관도, 국선 조력 제도도 학창 시절부터 오랫동안 엉킨 상황이나 피해자의 상태를 제대로 보아주지 않았다. 피해자는 성인이긴 하지만 아직 학생이었고, 주변에 도와줄 어른이 없었다.

 

가해자가 처벌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SNS에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 피해 사실도 공개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반향이 없었다. 그러던 중, 심석희 선수의 미투로 체육계 성폭력에 관심이 쏠리며 뒤늦게 전에 SNS에 썼던 피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됐다.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인터뷰 의뢰가 밀려왔고, 피해자는 불안과 절망 속에 닥치는 대로 모든 인터뷰에 응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피해 경험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던 끝에 공황장애 증상이 발현되어 쓰러졌다. 나를 만나기 직전에 병원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고 온 것이라고 했다.

 

▲ 만16세에 학교 유도부 코치로부터 겪은 성폭력을 세상에 알린 신유용의 ‘미투’ 형사재판 과정에서 지역 여성-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피해자를 지지하며 피켓팅을 하고 방청연대를 하는 등 큰 힘을 모아주었다. 고등학생 시절 피해자에겐 자신을 도와줄 어른이 없었지만, 이제는 곁을 지켜주는 많은 사람들이 생겼다.  (사진: 신유용 제공)

 

피해 사실을 듣고, 수사가 흘러온 과정을 살펴 보니 답답했다. 하지만 나에겐 사건을 더 맡을 여력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마침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에서 신유용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검사에게서 연락이 온 김에,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해보려고 전화를 바꿔달라 했다. 검사가 ‘변호사님이 이 사건 하시는 거냐?’라고 반색했다. 일단 그렇다고 말하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신유용의 고소 사건은 다행히 그동안 피해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시한부 기소 중지된 경우였다. 담당검사가 추가 진술을 하겠냐고 물었고, 얼마든지 응하고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유용에게 방금 검사에게서 들은 형사고소 사건 진행 상황을 설명해주는데, 군산지검에서 전화가 다시 왔다. 내가 이 사건을 맡았다고 위에도 보고를 했다면서, 당장 조사일자를 잡자고 했다. 전화를 끊고 ‘아무래도 이 사건은 내가 할 팔자인가보다’ 말했다. 그러자 신유용이 말했다. ‘저는 어떻게든 변호사님께 꼭 맡아달라고 할 각오로 왔어요.’

 

네 번의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정황

 

사건을 맡으면서 몇 가지를 정리했다. 앞으로 빠른 시일 안에 기소될 수 있도록 수사에 집중하고, 그 전에는 불필요한 오해나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피해자가 직접 언론을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피해자에게는 무엇보다 심신안정이 절실했다. 언론에 이제 법률대리인이 있으니 피해자를 힘들게 할 수 있는 연락을 자제해달라 공지하고 싶었지만, 어디다 해야할 지 난감했다. 아쉬운 대로 내 페이스북에 간단히 써서 올렸다. 다행히 미투가 한창이었기 때문인지 이것도 전파력을 가졌다.

 

2019년 40여일 정도의 남은 겨울 동안, 군산지검에서의 보완 수사가 4차례나 이어졌다. 조사는 오전에 시작되어 오밤중이 되서야 끝났다. 네 번 중 세 번은 마지막 기차 시간을 목전에 두고 끝났고, 나머지 한 번은 막차가 떠난 후까지 이어졌다. 조사를 하는 이도, 받는 이도, 배석한 이도, 길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당시는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이 만14세 미만이었다. 신유용의 피해는 만16세에 시작되었다. 코치의 성폭력이 1년 이상 지속되었고, 그의 지도를 받는 학생이었던 피해자는 신고하지 못했다. 법원 밖에서라면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들도, 자신의 범죄 행위를 부인하거나 상황을 왜곡하거나 사실 관계를 달리 말하는 피고인의 죄를 다투는 법원에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피해자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유도부 장학금을 준다는 학교로 오게 됐고, 같은 학교법인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코치로 부임한 가해자는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심각하게 행사했다. 신유용이 주말에 집에 다녀오면, 몸무게가 맻백그램씩 불어왔다는 이유로 ‘단무지’라고 불리는 노란 호스로 때리고 심지어 목을 졸랐다. 유도부원 모두가 보는 앞에서 기절할 때까지 맞은 적도 있지만, 말려주는 이는 없었다. 그러잖아도 서열이 분명한 운동부 안에서 코치의 폭력에 길들여지면서, 유도 외의 것을 생각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폭력이 시작됐다. 처음 강제추행이 일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폭행이 일어났고,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성폭행을 한 직후, 가해자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유도부가 없어진다’, ‘둘 다 한국에서 못 산다’는 취지의 말들을 했다. 피해자는 어렸고, 앞이 막막했다. 혼자 4남매를 키우며 세차장에서 일하는 엄마는 학교에 자주 찾아올 수 없었다. 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엄마에게 큰 절망을 안기게 될까 봐 걱정됐고, 엄마가 이 엄청난 상황을 해결해줄 힘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때까지 엄마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 고소인 수사에 응하러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으로 가기 위해, 고소인과 함께 몇 차례나 방문했던 익산역. (사진: 신유용 제공)

 

반복적인 성폭력에 노출된, 가난하고 어린 피해자의 상황은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오래된 편견의 벽에 부딪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할 때가 많다. 피해자가 어떻게 성폭력 피해에 노출되고, 어떻게 가해자에 의해 은폐되며, 피해자가 얼마나 속수무책인지가 설명되고 설득되어야 한다. 더구나 경찰, 검사, 판사는 전혀 다른 삶의 이력을 걸어온 이들이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는 이렇게 묻든, 저렇게 묻든 같은 결과에 도달하는 검증을 거친다. 이것이 피해자의 진술이다.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더해줄 여러 증거들을 닥닥 긁어모으는 과정도 수반된다.

 

우리는 증거로 휴대폰을 통째로 제출했고, 고등학교 때 쓰던 온갖 내밀한 이야기들이 담긴 다이어리도 찾아서 제출했다. 신유용을 기억하는, 고등학교 당시 전지훈련을 함께 한 이가 온라인에서 메시지를 보내와 진술해주기도 했다.

 

묻는 검사도, 거드는 변호사도 숨이 가빴지만, 신유용은 꿋꿋했다. 그런 피해자가 눈물을 흘린 날이 있다. ‘왜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답할 때였다. 엉뚱하게도 엄마랑 동갑인 내 손이 곱고 말랑하다고 입을 떼더니, 손이 딱딱하도록 세차장에서 일하며 고생하는 엄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려하거나 논리적인 얘기가 전혀 아니었지만, 그런 엄마를 생각하며 매일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던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의 입장에 이입시켜 주었다. 조사하던 검사도, 변호사도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꿈을 잃고, 남겨진 스무 살

 

처음 군산지검을 오던 날, 신유용이 익산행 기차를 놓쳤다.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해서 익산역 밖으로 나갔는데, 주변이 휑하게 느껴졌다. 신유용은 고등학교 시절 성폭행 피해를 입고, 그 피해가 약 1년간 이어진 후 부상을 입었고, 계절이 여러 번 지나도록 입원해야 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후 운동을 그만뒀다. 부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폭력으로 인한 마음의 그늘이 컸다. 유도를 그만두고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이곳 익산에 남겨졌다. 친구들이 실업팀에 가거나 대학 진학을 했지만, 그는 갈 곳이 없었다.

 

엄마는 하얀 유도복도 좋지만 하얀 유니폼도 괜찮지 않겠냐며 간호조무사 학원에 다닐 것을 권했다고 한다. 스무 살의 신유용이 다른 꿈을 갖게 되기까지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 진학을 준비했고, 늦깍이 대학생이 되었다. 서울에서 들을 때는 무채색이었던 이야기가, 신유용을 기다리며 혼자 선 겨울의 익산역 앞에 서니 색이 더해졌다.

 

그렇게 시작됐던 검찰 조사의 마지막 4회차 때는 막차 시간이 간당거렸다. 우리는 귀경을 포기하고 역전 부근 모텔에 갔다. 사발면과 맥주를 마시며 한물 간 한국영화를 보며 각자 좋아하는 배우 이야기를 하며 히히덕거렸다. 드디어 조사가 끝났다!

 

▲ 전 국가대표 유도선수였던 신유용은 고등학생 1학년 시절 유도부 코치로부터 겪은 성폭력의 고통과 부상으로 인한 입원, 그리고 가난으로 인해 꿈을 잃고 방황했다. 그러나 재능이 많았던 그는 이내 새로운 꿈을 품고서 남들보다 조금 늦게 예술대학에 진학하였고, 가해자를 형사 고발한 소송이 마무리될 무렵 졸업했다. (사진: 신유용 제공)

 

가해자는 무고로 역고소했다

 

군산지검은 2019년 3월 4일 가해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군산지법에서는 다행히 아니 당연히 구속이 결정됐다.

 

가해자는 16살 제자와 연인관계였다고 주장했고,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했다. 게다가 그 무렵, 가해자의 아내였던 신유용의 옛 스승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상간녀 소송을 제기했다.

 

군산지법에서 열린 형사재판에 갈 때마다 여성단체를 비롯해서 지역 시민단체들과 활동가분들이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었다. 이른 아침부터 법원 앞에서 피켓팅도 벌였다. 당사자도, 변호사도 덩달아 마음이 벅차고 따뜻했다. 문제는 법원이었다. 재판부가 첫 재판일에 재판 ‘비공개’를 결정한 것이다. 방청연대를 와 준 많은 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퇴정당했다. 간곡히 이의를 제기해 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피해자 측이 비공개를 요청한 걸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지역 언론들에 ‘피해자가 공개재판을 원하고 있음’을 피력했다.

 

피고인이 된 가해자는 여전히 ‘연인설’을 고수했으므로,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은 필연이 되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다부진 청년임을 알게 되었지만, 이십 대 초반의 학생인 피해자가 겪을 증인신문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재판에 가기 며칠 전, 증인신문을 준비하고 격려하려고 신유용을 만났다. 그는 걱정 많은 자기 변호사를 되려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린 나이에 너무 일상적으로 당연한 일처럼 일어난 성폭력에 나는 이제 망가졌나보다, 행복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없나 보다, 자포자기 같은 마음으로 살았다’고. ‘그러다가 세상에 피해를 말하고, 뜻밖의 많은 응원을 받으며, 비로소 나 자신이 여전히 소중한 사람임을 알게 됐다. 일반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그리고는 가해자의 아내가 걸어온 상간녀 소송에 낼 서면의 종이값이라도 땀 흘려 벌겠다며, 아르바이트 현장으로 향했다. (하편에서 계속)

 

[필자 소개] 이은의. 2014년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후, 서울 서초동 법원검찰청 코앞에 ‘이은의 법률사무소’를 열고 지금까지 여러 성폭력, 성차별 사건들을 다뤄왔다. 특별한 정의와 굉장한 진보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게 처리되는 세상을, 합리적인 사고와 담론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어느새 9년째 말하고 글 쓰며 싸우는 최전방에서 세상을 계속 배워가는 중이다. 저서로 『삼성을 살다』, 『예민해도 괜찮아』, 『불편할 준비』, 『상냥한 폭력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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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마워요 2022/11/12 [20:36] 수정 | 삭제
  • 정말 어린 나이에 너무 힘든 일들을 겪고 헤쳐나온 그 용기와 그 시간과 앞으로의 삶에 박수를 보냅니다.
  • 변화 2022/11/11 [13:49] 수정 | 삭제
  • 신유용 선수 정말 멋진 사람이네요! 눈물이 막 났어요...
  • ㅇㅇ 2022/11/10 [20:54] 수정 | 삭제
  •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하는 가해자는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변호사님 글을 보면서 진짜 그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용기를 낸 미투 이후에도 반향이 없이 묻혀버리면 피해자들은 얼마나 막막할까요. 고립되지 않게 위드유를! 꼭 필요하다는 걸 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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