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이 된 성폭력과 미투 사건들을 맡아 해결해 온 이은의 변호사의 기록,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형사재판, 피해자 증언이 시작되다
고등학교 1학년 시기에 유도부 코치로부터 지속적으로 겪은 성폭력을 세상에 알린 전 국가대표 유도선수 신유용의 ‘미투’ 형사재판이 시작되었다.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에 피해자가 증언을 하러 간 날, 방청석에는 피해자를 응원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재판부가 방청인들을 퇴정시키고 비공개 재판을 하자고 하여 마찰을 빚었다. 피고인을 퇴정시켜 달라고 하자, 피해자보고 안에 들어가 화상으로 증언하라고 했다. 우리는 피해자도, 방청인도 재판정에 있는 것을 택했다. 재판부에 피고인 앞에 가림막을 설치해달라고 했지만, 가림막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렇게, 피해자가 피고인을 1.5m 전방에 두고 면전에서 증언하게 되었다.
사건을 맡은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피해자가 법적으로 다투는 과정에서 받을 부담과 상처 등을 고려해, 물리력의 행사가 명징한 최초 성추행과 성폭행만을 고소 대상으로 정리한 것이었다. 유죄가 인정된다면, 법원이 죄질을 판단해 양형에 반영하면 될 일이었다. 검찰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 덕분에 이날 증인신문에서 다뤄질 쟁점이나 사안도 어느 정도는 좁혀져 있었다.
가해자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흘렀어도 피해자에게는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이었다. 피고인의 변호사가 무엇을 묻든, 피해자는 누가 들어도 납득이 될만한 답을 했다. 피고인의 변호사는 첫 성폭행을 당한 직후 피고인의 방에서 특정 과자를 먹기도 하지 않았냐고 추궁했다. 피해자가 그렇다, 아니다가 아니라 ‘제가요? 저 그 과자 안 좋아합니다’라고 답했다. 질문한 변호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방청석에서는 탄식과 웃음이 흘러나왔다.
불편한 기억을 꺼내는 일이 흔쾌할 리 없지만, 피해자는 눈물은 흘려도 증언을 멈추지 않았다. 증언을 모두 끝내고 나서야 자신의 변호사 품에 안겨 울었다. 어렵게 휴가를 내고, 그보다 더 어렵게 딸이 겪은 이야기를 들을 마음의 준비를 했던 피해자의 어머니는 재판 내내 우셨다.
변변찮은 가해자의 ‘연인’ 주장과 가해자 측 증언들
피해자 증인신문은 지난한 형사재판의 전반부의 끝에 불과했다. 그 다음 기일에는 피고인 측이 신청한 증인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있었다. 피해자는 증인신문을 보려고 서울에서부터 내려왔는데, 재판부는 증인들이 불편해한다며 피해자를 퇴정시켰다. 피해자 변호사인 나만 남겨졌다.
피고인이 신청한 증인들의 증언은 굉장했다. 한 증인은 성경험이 없는 상태였던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당한 성폭행을 두고 ‘아팠지만 좋았다고 말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검사가 피해자가 당시 가해자에게 수시로 구타당한 상황에 대해 묻자, 피해자가 주말에 집에 다녀오면 몇백그램이나 살이 쪄서 왔으니 맞을 짓을 한 것이고, 그래서 때려준 거니 고마워할 일이라고 답했다.
다른 증인은 ‘피해자가 2011년에 피고인의 팔짱을 낀 걸 본 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재판장이 그에게 2011년에 몇 학년이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피해자가 고1이었던 것은 확실한데 자기는 몇 살이었는지, 몇 학년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얼마나 많은 거짓말로 피해자를 흠집낼까 걱정이 많았는데, 피고인 측 증인들의 증언이 이런 수준이다 보니 걱정이 무색해졌다.
가해자는 마지막까지 자신은 결코 성폭력을 한 적이 없다며, 둘이 연인이었다고 주장했다
신유용은 자신이 다니던 중고등학교 유도부원 25명 중 유일하게 생계곤란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었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 내내 열심히 쓰고 교환하며 예쁘게 꾸며온 다이어리들에는 아기자기한 여학생의 일상이 가득했고, 당시 사귀던 또래의 남자친구에 대한 설렘 폭발 이야기들도 담겨 있었다. 그런데 피고인은 신유용과 연인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16세 제자와 성관계를 했었다는 것 이외에는 신유용에 대해 아는 것, 내놓은 추억어린 물품 하나, 기억 한마디가 없었다. 이 변변찮은 ‘연인’ 주장은 어린 피해자를 어떻게 취급하였는지 여실히 보여줄 뿐이었다.
피해자 변호사로서 마지막 기일 발언을 하며, 말미에 피해자 어머니가 쓴 탄원서의 내용을 인용하며 마무리했다. “딸을 강간해온 사람의 결혼삭인 줄 모르고 결혼식 축의금을 전하고 고맙다고 말할 때, 피고인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나….”
이 날 재판이 끝나고, 그간 체육계 미투에 힘 실으며 지속적으로 법원으로 와 준 지역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마련해준 응원의 자리에 참석했다. 만 16살의 신유용에게는 기댈 어른들이 없었지만, 만 23살의 신유용에게는 곁을 지켜주는 많은 어른들이 생겼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보태온 체온 하나하나로, 군산에서 우리가 보낸 시간은 마음 뜨거웠다.
항소심에서 자백반성으로 태도 바꾼 가해자
한창 추울 때 시작한 형사재판은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어 여름이 왔을 때 1심 결과가 나왔다. 가해자에게 6년이 선고됐다. 피고인은 형이 무겁다고, 검찰은 형이 가볍다고, 각기 즉각 항소했다. 그렇게 한 과정이 끝나고 다음 과정이 바로 시작되었다.
1심에서 6년이란 중형이 선고되자, 가해자는 항소심에서 돌연 자백반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 사이 가해자 측 변호인이 용서를 구하고 싶다며 내 사무실로 찾아오기도 했다. 가해자의 아내가 집을 나가고 어린 세 손주들을 떠안게 된 가해자의 노모가 집을 처분해서라도 돈을 마련해보겠다 한다며 적잖은 합의금을 제시했다. 사실 피해자는 민사시효 문제로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구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합의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가해자의 노모만 생각하면 딱한 일이지만, 가해자가 저지른 잘못은 무엇으로도 변상할 길이 없는 신유용의 ‘소녀시절’이었다.
그런 중에 피고인이 신유용을 무고로 역고소한 것에 대해, 검찰이 그를 무고로 추가 기소했다. 그 사건이 성폭행 사건에 병합되어서 함께 판결이 나야 하다 보니, 항소심 마지막 기일이 해를 넘기게 되었다.
2심에서 피고인에 대한 형량이 6년 5개월로 종결되었다. 감개무량했다.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딱 1년 전, 군산지검에서 ‘피해자조사’를 받으며 ‘파란만장 익산역’을 시작했고 수사부터 1심과 2심 재판까지 함께 달려왔다. 신유용과는 첫 만남부터 사연이 주렁주렁했고 추억이 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신유용은 큰 눈망울만큼이나 눈물도 많았지만, 울기보다는 웃기를 훨씬 잘했다. 자기 엄마와 동갑내기인 나의 썰렁한 농담도 재밌어 하고, 별거 아닌 일상 이야기에도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2019년 ‘미투’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맡으며 전쟁터 복판에 서듯 살아내던 시절이었는데, 익산을 같이 오가면서 나는 신유용에게 슬며시 기대고 있었다. 처음엔 근심걱정으로 시작된 사람과 사건이었지만, 어느새 희노애락 속에 감동을 주는 사람과 사건이 되어있었다.
그에게 과거 상처였던 고창이, 수사와 재판으로 고됐던 군산과 전주가, 이제는 추억의 장소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겨났다. 그래서 2020년 1월 11일 항소심 마지막 기일을 마치고, 둘이 전주에 뒤풀이를 가기로 했다.
재판이 끝나고 전주 한옥마을로 가는데, 신유용이 마지막 변호인의 발언을 듣다가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부운 채로 무척 들떠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운동하고 고된 한 주가 지나면 전주 한옥마을에 자주 놀러왔다고 했다. 이날 한복도 빌려 입고 치장을 하고 길바닥을 돌아다니며 요것조것 사 먹으며, 술도 마시고 스티커 사진도 찍었다. 재판이 끝나고 기차를 탈 때까지 10시간을 떠들었는데도 할 말이 많았다. 별 특별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서로 울컥하기도 했다. 하지만, 울기보다는 웃기를 훨씬 더 많이 했다.
우연히 맺어진 인연이었지만, 신유용에게도 우리 사회에도 꼭 필요한 도착점에 함께 이르렀다. 그렇게 사건이 끝났지만, 우리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신유용은 현재 뮤지컬 학업을 계속 하면서, 삼보(무술)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 중이다. 이제는 그가 뮤지컬배우 신유용, 삼보선수 신유용으로서 활약하며, 과거의 피해도 미투도 재판도 그저 옛이야기 자락이 될 날을 기대해본다.
[필자 소개] 이은의. 2014년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후, 서울 서초동 법원검찰청 코앞에 ‘이은의 법률사무소’를 열고 지금까지 여러 성폭력, 성차별 사건들을 다뤄왔다. 특별한 정의와 굉장한 진보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게 처리되는 세상을, 합리적인 사고와 담론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어느새 9년째 말하고 글 쓰며 싸우는 최전방에서 세상을 계속 배워가는 중이다. 저서로 『삼성을 살다』, 『예민해도 괜찮아』, 『불편할 준비』, 『상냥한 폭력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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