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기온이 왔다 갔다…사과나무가 죽는 거예요”

[기후위기와 여성농민] 강원도 홍천에서 농사짓는 손경희①

나랑 | 기사입력 2022/11/25 [15:55]

“겨울에 기온이 왔다 갔다…사과나무가 죽는 거예요”

[기후위기와 여성농민] 강원도 홍천에서 농사짓는 손경희①

나랑 | 입력 : 2022/11/25 [15:55]

※기후변화를 일터와 삶터에서 피부로 느끼고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전국의 여성농민들을 만납니다. 여성농민의 시선으로 기후위기 그리고 농업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대안의 씨앗을 뿌리는 새로운 움직임과 공동체적 시도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6년 공들인 1천5백 평 사과나무 밭을 갈아엎다

 

“겨울에 너무 따뜻하다가 확 춥거나 (기온이) 이렇게 왔다 갔다 하잖아요. 따뜻하면 사과나무가 봄인 줄 알고 활동을 시작해서 물을 확 올리는데 갑자기 추워지면 그게 얼어요. 얼어서 터져요. 그쪽으로 균이 들어가거나 병이 오면 나무가 죽는 거예요.”

 

강원도 홍천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손경희 씨(53세)는 작년에 3천 평 사과나무 밭 중 절반인 1천 5백 평을 갈아엎었다.

 

▲ 사과 따는 손경희 씨의 얼굴에 진중함이 가득하다.  ©나랑

 

사과 농사는 초기 시설비가 많이 든다. 군에서 사과 농사를 시작할 수 있게 일부 지원해주지만, 5년은 지나야 제대로 수확을 할 수 있다. “5년간 투입만 있고 수입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1천 5백 평 밭을 갈아엎은 작년은, 경희 씨가 사과 농사를 시작한 지 6년째 되는 해였다.

 

밑이 시커멓게 썩어들어간 나무를 뽑고 밭의 시설들까지 직접 철거해야 했던 마음이 오죽했을까. 죽은 나무 한 대당 10만 원씩 보험금을 지급받긴 했지만, 경희 씨는 “그게 금액으로 대치되기 힘들다”고 말한다. 6년간 투입한 노동을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농사라는 게 마음이,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게 생명이라 어느 날 확 죽는 게 아니라 시름 시름 죽어가요. 그걸 지켜보는 과정이 되게 힘들어요.”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이 있다. 농민은 땅과 햇볕, 비와 바람에 의지해 작물을 길러낸다. 그런 만큼 기상이변은 이들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 “올해 농사 망치면 내년 일 년을 굶어야 하”기에 농민들에게 기후위기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의 위기다.

 

농부가 농사만으로 먹고 살기 힘든 농촌

 

학창 시절 전설로만 전해 듣던 ‘농활 갔다가 농촌에 뼈를 묻은 언니’, 바로 손경희 씨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경희 씨는 대학 때 이곳 강원도 홍천군에서 농활(농촌활동. 1980~1990년대에 대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농촌에서 먹고 자고 일손을 보태며 농민의 삶을 체험한 활동)을 한 뒤, 농사의 매력에 빠져 터를 잡았다. 농민으로 사는 게 “정서에 맞았”단다.

 

1996년에 결혼을 하면서 농사를 시작했지만, 이미 농사의 고수였던 시부모 밑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 “농사라기보다는 시키는 것만 하는 ‘노동’에 가까웠다”. 자신이 직접 작부체계(경작지에 재배할 작물을 선택하고, 종류별로 재배방식과 재배순서, 공간배치 등을 정하는 일)를 세우고 주도권을 갖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는 이제 십 년 정도 되었다.

 

현재 남편과 함께 벼와 잡곡, 사과, 대추 농사를 짓고 있는데, 약은 가급적 치지 않으려고 한다. 수확한 작물은 대부분 농협을 통해서 판매하고, 일부는 직거래한다.

 

▲ 지난 9월,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 카페 ‘보틀팩토리’에서 열린 ‘채우장’에서 손경희 씨가 다양한 토종 작물들을 선보이고 있다. ⓒ한빛 제공

 

“농사 지어서 먹고 살 만 하느냐”는 질문에 경희 씨는 “농사만 가지고는 힘들다.”고 말한다. 경희 씨네는 트랙터, 콤바인 등 농기계를 갖고 있다. 기계로 이웃들 논밭 갈아주고 모 심어주고 벼 베어주면서 평당 얼마씩 받는 게 그래도 안정적인 수입이 된단다. 몇천만 원씩 하는 기계를 사느라 진 빚을 갚기 위해 “생활력 강한 남편”이 “돌담 쌓는 쌩노가다 같은” 일도 했단다.

 

온난화로 인한 극심한 가뭄, 화석연료 의존도 높아져

 

기후위기는 사과 농사뿐만 아니라 경희 씨가 짓는 다른 농사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작년 겨울부터 시작돼 올해 봄까지 이어진 극심한 가뭄으로, 하마터면 수수 파종을 못 할 뻔했다.

 

“땅이 젖어야 수수밭을 만들고 수수를 심는데, 비가 너무 안 와서 수수를 못 심을 지경까지 갔어요. 막판에 비가 와서 겨우겨우 수수를 심었거든요.”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1도 오르면 대기 중 수증기는 7% 증가한다. 공기가 습해지면 폭우가 잦아지는데, 단시간에 비가 퍼부으면 나머지 기간에는 가뭄이 든다. 가뭄이 극심해지면, 인공적으로 물을 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농사로 이어진다.

 

“예전에는 노지에 저렇게까지 물탱크 갖다 놓고 물 대는 일이 없었거든요. 지금은 물을 못 대면 농사를 못 지어요. 평창 쪽 가면 배추, 양배추 재배를 몇만 평씩 하는데 거기다가도 관정시설을 한대요. 안 하면 다 말라 죽는다고. 지하수를 뽑아 올리기 위해 양수기를 대고 전기를 끌고 물탱크를 갖다 놓고….”

 

지자체는 가뭄에 대한 대책으로 지하수를 뽑아 올리는 관정시설을 설치하는 데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했다. 물탱크는 플라스틱 자재로 만들어진다. 경희 씨는 “물탱크 같은 거 만드는 회사는 대박이 난 거”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무엇보다 경희 씨는 이렇게 퍼 올리다가 지하수가 고갈될까 걱정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내놓는 대책들이 근시안적이라 아쉽다고 했다. (인터뷰가 2편에서 이어집니다)

 

[필자 소개] 나랑(김지현) 독립 인터뷰어. 글쓰기 안내자. 목소리가 되지 못한 목소리를 기록한다. 그런 목소리들이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게 안내한다. 지금은 제주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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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걱정 2022/12/01 [13:19] 수정 | 삭제
  • 요즘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아보카도는 재배할 때 물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들어가서 아보카도 농장이 있는 지역은 지하수가 고갈되어 농민들 생활에 필요한 물도 없다고 해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이젠 남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독자 2022/11/30 [18:16] 수정 | 삭제
  • 이번 이상기후로 또다른 피해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네요.. 저는 도시텃밭만 하는데도 봄에 하도 가물어서 제대로 키울 수가 없었는데, 농사를 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어떨까 싶더라고요. 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에도 공감이 갑니다.
  • ㅇㅇ 2022/11/27 [11:59] 수정 | 삭제
  • 와, 온도차 정말 크게 느껴지네요. 농촌과 도시에서 사는 사람 간에... 여성농민분들 목소리 소중하게 들을게요. 지금이라도 ㅠㅠ
  • 2022/11/26 [22:49] 수정 | 삭제
  • 저도.. 지구온난화가 가뭄으로 이어지는 이유를 이거 읽고 처음 알았네요. 사과농사 짓는데 나무가 죽어가는 걸 본다는 게 애가탈 것 같아요. ㅠㅠ
  • 사과 2022/11/26 [01:44] 수정 | 삭제
  • 왜 폭우랑 가뭄이 잦아지는지 이 글을 읽고 처음 알았어요. 사과 좋아하는데 사과 이야기도 놀랍네요... 이런 이야기를 학교에서, 방송에서 더 많이 들을 수 있어야 할텐데...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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