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을 ‘반찬’ 같은 노동으로 여기는 게 화나여성노동자들의 투쟁사가 담긴 ‘내 이름을 불러주오’를 공연장에서!벌써 작년의 초봄이다. 바람 부는 여의도 고층 빌딩 앞은 공연장이 됐다. 여느 공연장과 다른 것은 농성텐트가 즐비하고 붉은색 조끼를 입은 여성들이 앞에 앉은 것이었다. 뒤에 성별과 연령이 다양한 연대자들이 앉아 모두들 추위에 떨면서도 박수치고 웃으며 관람했다.
여러 민중가수들로 구성된 노래패 ‘일과 노래’에서 4개월째 투쟁을 벌이고 있던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투쟁하는 여성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내 이름을 불러주오’〉 거리공연을 한 것이다. 2021년 1월 1일부로 해고된 여의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집단해고에 항의하며 농성을 하고 있었다. 공연은 처음부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을 위해 일부러 만든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고령의 여성노동자인 투쟁 상황과 딱 들어맞았다. 성차별적인 한국 사회에서 여성노동자의 처지가 크게 변하지 않은 현실을 말해준다.
‘내 이름을 불러주오’는 노래와 극, 그리고 영상으로 구성된 종합공연이었다.
공연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노동하고 싸우는 여성노동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1970년대 똥물투척 사건으로 유명한 동일방직의 김용자 복직투쟁위원장과, 올해 명예복직된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 그리고 당시 싸우고 있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인터뷰는 과거와 현재의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동일방직 해고자 복직 투쟁을 하던 때를 김용자 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1분에 140보를 걸어야 할 정도로 노동 강도는 심했고, 그래서 만든 노조를 회사는 탄압했고, 독재정권은 이를 비호했다고. 여성노동자들이 똥물까지 뒤집어썼지만, 공권력은 이를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를 감시하고 탄압했다. 블랙리스트로 인해 다른 공장에 취업마저 어려웠던 이들의 현실은 개발독재국가의 성장 이면에 여성노동자의 노동력 착취가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개발군사독재 시절만이 아니다. 여성노동자들은 경제위기 때마다 항상 먼저 짓밟혔다. IMF 구제금융 시기에도 가장 먼저 쫓겨났고,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에서도 여성들이 먼저 일터에서 쫓겨나야 했음을 공연은 보여준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집에서도 이어졌다. 공연에서는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로 표현됐다. 여성노동자의 고단한 일생을 “노동 내에서 멸시, 가정 내에서 멸시, 자식들에게까지 무시당하는 엄마”로 살아야 했다고…. 가사노동을 죽어라 해도 무급노동이라 인정받지도 못하고, 일터에서 받는 임금도 남성의 64%이니 ‘반찬노동’으로 무시당하기 일쑤다. 공연하는 가수들의 노래와 편지 읽기로, 고단한 여성노동자의 현실이 표현됐다.
여성노동자들은 현실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인정을 하라며 싸웠다. 그 싸움의 역사는 ‘내 이름을 불러주오’에서 스틸컷 사진영상으로 나왔다. 1970년대 ‘시다’에서부터 산업역군으로 불리며 착취당하던 여성노동자들 이야기, 1985년 구로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속의 여성노동자, IMF정리해고 당시 쫓겨난 여성노동자들 이야기, 2000년대 시그네틱스.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해고자 복직 및 불법파견 투쟁, 2007년 이랜드 홈에버 캐셔 여성노동자들의 외주화 반대, 2015년 KTX승무원 직접고용 요구 투쟁, 2019년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사진이 이어지는 동안 나도 모르게 순간 눈물이 나왔다. 맞다, 저렇게 싸워서 여기까지 온 거지. 그렇게 그녀들은 자신의 존엄을 지켰지. 아니 우리들은 그녀들의 싸움으로 여기까지 왔지….
그때 들려오는 고령의 여성노동자 목소리.
“해고당했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나한테 쉬라고. 쉬면서 봉사활동하라고 해. 이 말을 들으면 화가 나. 우리 일은 반찬 값, 학원비로 취급하니까 나오는 말이잖아. 반찬은 안 먹어도 되는 것처럼 우리의 노동을 그렇게 여기는 거지. 여자 벌이는 없어져도 되는 노동인 거지, 해고돼서 억울한 일인데, 우리의 노동을 반찬 같은 일로 여기지 말고 함께 억울해 하면 좋겠어요.” -책 『회사가 사라졌다』(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 지음, 파시클, 2020) 중에서 인용
언제까지 여성노동자의 노동을 평가절하되어야 하는가. 여성의 노동은 ‘노동’으로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이 때 ‘일과 노래’의 노래가 이어진다. 마지막 영상-자신을 소개하는 짧은 영상에서 노동과 삶에 대한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노래가 이어지자 투쟁하던 청소노동자들도 함께 춤을 췄다. 그래, 억울함과 기쁨은 함께해야 맛이지 싶은 장면이었다.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그동안에도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과 존엄을 걸고 싸웠다. 이번에는 실내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오’ 공연이 열린다. 12월 23일 서울 홍대입구역 다리소극장에서 상연되는 이번 공연은 조금 달라졌다고 한다. 노조 탄압에 맞선 파리바게뜨 여성노동자들의 싸움도 담겼다고 하니 더욱 기대된다. 극장에서 진행되는 공연이라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4개의 영상과 17개의 노래로 엮인 공연 ‘내 이름을 불러주오’를 보며, 여성노동자가 동등한 노동자로 사는 평등한 세상을 함께 꿈꾸면 좋겠다.
-공연: 투쟁하는 여성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내 이름을 불러주오’ -일시: 2022년 12월 23일(금) 19시 30분~21시 -장소: 서울 홍대입구 다리소극장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2길 49) -예매 및 문의: worksong@hanmail.net (일과노래) -후원: 085-21-0762-494 KB국민은행 (김영희)
[필자 소개]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상임활동가로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등 우리 사회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있다.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인권선언’을 기초했으며, 공저로 『밀양을 살다』, 『금요일에 돌아오렴』, 『재난을 묻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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