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혈연, 탈젠더, 탈시장적 ‘돌봄 공동체’는 실험중

집담회 〈이상하고 난잡한 돌봄의 상상과 실천〉에서 나눈 이야기

박주연 | 기사입력 2023/01/03 [11:37]

탈혈연, 탈젠더, 탈시장적 ‘돌봄 공동체’는 실험중

집담회 〈이상하고 난잡한 돌봄의 상상과 실천〉에서 나눈 이야기

박주연 | 입력 : 2023/01/03 [11:37]

“우리는 평등한 돌봄을 원한다.

①모든 몸은 평등하다. 성, 계급, 국적, 연령, 장애 등의 차이로 인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②의료는 공공의 영역이며 무상의료는 국가와 사회의 책무이다. 모든 사람은 사회, 경제, 문화에 따른 차별 없이 공정한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③모든 사람은 아플 때 필요한 물적 토대, 문화, 정서적지지 그리고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다.”

- “질병과 함께 춤을”의 〈아픈몸 선언문〉 중

 

돌봄이 ‘핫한’ 키워드가 된 요즘, 돌봄에 대한 언급이 많아졌고 관련 제도와 정책 요구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의 돌봄 시스템은 ‘평등한 돌봄’과는 거리가 있다. 돌봄의 가치가 자본화되고, 성, 계급, 국적, 연령, 장애 등의 차이로 인한 차별이 일어나고, 시스템에서 배제되는 몸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사회 시스템에서 배제된 몸들이 혼자 살아가기란 무척 어렵다. 살아남기 위해, 소속감을 느낄 수 있고 돌봄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찾는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공동체’가 언제나 구성원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을까? 상상 속에선 유토피아처럼 그려지지만, 현실 속 돌봄 공동체가 그에 부합할 수 있을까?

 

▲ 2022년 12월 27일 온라인에서 열린 집담회 〈이상하고 난잡한 돌봄의 상상과 실천〉 홍보물. (다른몸들 주최, 여성환경연대 후원)

 

‘질병권’(잘 아플 권리)과 n개의 다른몸들이 존중받는 세상을 주장하는 ‘다른몸들’에서 그런 질문들을 함께 고민하며 다른 상상을 모색해 보는 장을 열었다. 지난 12월 27일 저녁 온라인으로 열린 〈이상하고 난잡한 돌봄의 상상과 실천〉이라는 이름의 집담회엔 비혼들의비행, 공덕동하우스, 달걀부리마을, ‘질병과 함께 춤을’ 4개 공동체가 참여해 이야기를 나눴다.

 

비혼들의비행, 달걀부리마을, 공덕동하우스, 질병과함께춤을

 

‘비혼들의비행’(줄여서 ‘비비’)의 김란이 씨는 비비가 “밀레니엄 시대(2000년)에 30대를 맞이한 비혼여성들의 새로운 상상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2003년 6월 첫모임을 가진 당시 6명의 비비는 “결혼계획이 없고, 직장이 있으면서, 자기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나 공부하는 소모임”으로 출발, 구성원들이 40대로 접어든 뒤로 본격적으로 “비혼여성공동체로 살아가는 기반을 만드는 실험”을 감행했다.

 

무작정 상근자가 셋이나 되는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공간비비를 운영하며 사람들을 만났고, 현재 전주 소재 한 아파트에 1인가구 네트워크(총 23가구)가 느슨한 공동체로 서로를 돌보고 있다. (관련 기사: 세상 가벼운 “땡큐”를 주고받는 비혼공동체 https://ildaro.com/9427)

 

‘달걀부리 마을’은 애인, 자매, 친구, 친구의 친구 등이 “모두의 친구”가 되어 가까운 곳에 모여 살며 만들어졌다. 책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저자 홍승은 씨는 “달걀부리 마을이 ‘폴리아모리 공동체’로 불리기도 했”지만, “다양한 관계가 연결되면서 (폴리아모리 관계인 세 사람 사이에서) ‘폴리아모리’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유, 함께 사는 법을 고민했던 이유가 ‘서로의 약한 면을 감싸며 어떻게 공생할까, 서로에게 짐이면서 힘이 되는 관계는 어떻게 가능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거였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홍혜은 씨는 “결혼 생각 있는 사람 있음, 집 없음, 이제는 공덕동에도 없음”이라고 공덕동하우스를 소개했다. “2015년의 어느 날”,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의 장이었던 메갈리아 등이 아닌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공덕동하우스의 시작이었다. 현재는 9명의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 중엔 주거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도 있고, (그곳과) 가까이 사는 이도 있고, 멀리 떨어져 사는 이도 있다. (관련 기사: 기숙사에서 원룸으로, 거실이 있는 투룸에서 공동체로 https://ildaro.com/8808)

 

아픈 여성들의 모임 ‘질병과 함께 춤을’(줄여서, 질병춤) 박은영 씨의 설명에 따르면, ‘질병과 함께 춤을’은 2015년 <일다>의 시민강좌 “하늘을 나는 교실”에서 진행된 동명의 수업에서 시작됐다. 뇌성마비 장애여성으로서 아픈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박은영 씨를 비롯한 아픈몸을 가진 여성들이 “아픈 몸을 수용하고 존중할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며 모임을 만들게 됐다.

 

아픈몸들이 모인 모임의 규칙은 두 가지였다. “첫째, 모임 중에는 각자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한다. 둘째, 격주에 한번 있는 모임과 서로의 약속을 가벼이 여기지 않되, 병원 가는 날이 겹치거나 컨디션이 저조해 움직이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주저하지 말고 빠지겠다고 말한다.” 매번 모두가 모이는 모임을 하긴 어려웠지만 이들의 ‘불안정한’ 모임은 계속됐다. 이들의 이야기는 책 〈질병과 함께 춤을〉으로, 시민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로도 이어졌다.

 

▲ 2015년 ‘질병과 함께 춤을’ 참가자 모집 웹자보와 2020년 낭독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참가자 모집 웹자보

 

실패하고 부딪히고 망하고

 

네 공동체 모두 짧지 않은 시간을 구성원들과 함께하며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런 저런 결실과 성과를 냈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면, 돌봄 공동체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이 마구 샘솟는다. 하지만, 이들은 공동체를 흔드는 각기 다른, 또 비슷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각 공동체가 탈혈연, 탈젠더, 탈시장적인 돌봄 공동체-됨에 실패한 이야기들을 털어놨다.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거나 앞집, 옆집, 한 아파트 등 가까운 거리에 모여 지내는 ‘주거 공동체’의 경우,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가 공동체 유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비비의 경우 “전주시민이면서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공임대아파트”의 존재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1인가구에게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17평, 22평 크기의 공공임대 아파트는, ‘안정적 주거 공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문제는 그런 주거 공간이 극히 드물다는 거다. 달걀부리마을 구성원 중 한 가구는 얼마 전 집주인으로부터 갑작스럽게 퇴거 명령을 받았다. 현재와 비슷한 월세의 투룸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먼 동네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가까운 거리여서 가능했던 다양한 돌봄이 물리적으로 어려워지게 된” 달걀부리 마을의 미래는 지금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한 공간에서 거주하는 구성원과 그렇지 않은 구성원 간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 중인 공덕동하우스의 고민도 계속되고 있다. 총회나 모임을 아예 외부에서 진행해 보기도 하고, 온라인을 이용하기도 한다. 서울, 경기 등에 흩어진 구성원들의 지리적인 중간 지점을 찾아보려고도 했지만, 모두에게 부담되는 교통비 등도 쉽지 않은 문제다. 지금도 “주거 멤버와 비주거 멤버 사이에 연결 고리를 찾아보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중이다.

 

주거 불안정을 해소해 보기 위해 ‘돈 모으기’ 공부도 한다. 하지만 홍혜은 씨는 “집에 돈을 엮으면 최소 1억인데, 이게 전재산일텐데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느슨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책임을 안 지는 공동체가 가능한가?에 대한 고민도 든다”고 했다.

 

▲ ‘다른몸들’이 주최한 집담회 〈이상하고 난잡한 돌봄의 상상과 실천〉에 참여한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비혼들의비행” 김란이, 사회자 조한진희, “달걀부리마을” 홍승은, “질병과 함께 춤을” 박은영, “공덕동하우스” 홍혜은 (출처: 다른몸들 페이스북)

 

아픈몸들 또한 한 자리에 다같이 모인다는 일이 쉽지 않다. 몸의 상황은 예측을 빗나가기도 하고, 코로나19 팬데믹은 또 하나의 장벽이었다. 박은영 씨는 “사실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긴 시간 모임을 유지하기 어려울 거라는 회의적인 시각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 염려가 있었던 탓에 “최대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느슨함을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거기에도 함정이 있었다. ’느슨하고 편안하게 하다 보니 서로에게 문제를 꼼꼼하게 터놓지 못하는 일이 많았고, 한 명이 (모임을 이끄는) 독박돌봄을 하는 상황도 벌어진 것”이다.

 

달걀부리마을 홍승은 씨도 돌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트라우마와 조현병 음성 판정을 받은 구성원을 돌보는 과정에서 문득 “억울한 마음이 올라온” 자신을 마주한 것이다. “나도 아픈데, 난 아무리 아파도 가사나 돌봄을 게을리 하지 않는데, (저 사람은) 왜 그러는 거야. 내가 엄마도 아닌데! 같은 생각”이 듦과 동시에, “원가족에게 몰빵된 돌봄과 통제가 싫어서, 더 나은 방식을 찾자고 해놓고, 이렇게 지치니까 ‘엄마’라는 존재로 연결하는 나를 발견”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구성원의 상황이 달라지면서 이전과 다른 ‘차이’를 겪기도 한다. 비비의 김란이 씨는 비비 구성원 중 한 명이 암에 걸렸을 때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를 나눴다. “수술 이후 (암에 걸린) 친구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을 가지게 됐고, 그에 대한 어려움과 불안이 있었는데, 다른 구성원들이 그 경험에 대해 무지했기에 ‘정상인’으로서의 귀환을 응원함으로써 발생한 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고 난잡한’ 돌봄 공동체를!

 

돌봄 공동체를 유지해 나간다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하고 마주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 공동체들이 도전을 이어나가는 건 왜일까?

 

비비 구성원들은 아픈몸이 된 친구와 계속 삶을 공유하기 위해 “젊은 나이에 질병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 대한 글, 논문 등을 읽고 아픈 친구의 어려움을 이해하려고 했다. 이후에도 친구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50대로 접어든 구성원이 생긴 비비는 ‘나이듦’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다. “결국 비혼여성의 결말은 고독사 아니냐는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안전하게 독립된 삶과 의존하는 삶”을 고민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함께’이기 때문이다.

 

▲ 집담회 〈이상하고 난잡한 돌봄의 상상과 실천〉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달걀부리 마을”의 홍승은 씨

 

“치열하게 조율하지만 여전히 가사와 돌봄노동 앞에서 뾰족한 마음이 솟아오르기도 한다”는 홍승은 씨는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오히려 “다양한 논의의 가능성을 갖게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제는 갈등과 불화가 아니라, 그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강제하는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아닐까요? 갈등을 단지 개인의 문제로만 제한하려는 암묵적인 규칙이 문제가 아닐까요?”

 

홍승은 씨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왜 서로를 필요로 할까? 어디까지가 우리일까? 그 관계의 빈틈을 계속 떠들고 싶어요. 주거권과 생존권, 노동권, 성적권리, 질병권, 가족구성권 등등 공적 체계를 통해서 지속가능한 대안공동체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제도나 구조 차원의 논의 역시 계속해서 떠들고 싶어요.”

 

“멋없게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표현한 공덕동하우스 홍혜은 씨는 “답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다.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답이 있지만, 그걸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게 어려울 뿐이다. 하지만 그걸 여러 사람과 맞추다 보면 퍼즐이 맞춰진다”고 했다.

 

박은영 씨는 질병춤을 하면서 많이 징징거렸지만 그 징징거림이 버팀목이 됐다고 했다. “저희가 맨날 징징거리면서 2시간씩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이 저희의 역량을 5년 동안 강화해준 것 같아요. 그냥 나 혼자 아팠다면 또는 이 아픔을 그냥 숨기고 나 혼자 감당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우리가 함께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싶거든요.” 질병춤은 지난 기간 독박돌봄을 해 온 멤버가 안식년을 가지기로 하고, 나머지 멤버들이 돌아가며 모임돌봄을 하기로 했다. 이들의 새로운 시도는 또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미지수의 길이지만, 이들은 기꺼이 그 미지수가 되기로 했다.

 

네 공동체 모두 탈혈연, 탈젠더, 탈시장적인 돌봄 공동체가 됐다고 선언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패한 건 아니다. 진행 중일 뿐이다. 또한 이들의 모험과 도전은 사회의 제도, 규범 등과 완전히 동떨어질 수 없다. 〈아픈몸 선언문〉에서 이야기하는 ‘평등한 돌봄’을 사회에 함께 요구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많아질 때, 정말 다채로운 돌봄 공동체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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