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가진 여성이 겪는 ‘복합차별’을 말하다일본의 DPI여성장애인네트워크 대표 후지와라 쿠미코 씨작년 9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일본의 장애인권리조약 이행 평가를 한 후 일본 정부에 권고했다. 정신과 강제입원에 관한 법률을 폐지할 것과 장애아동-비장애아동 분리교육을 중단할 것. 그 외에도 ‘장애가 있는 여성’이 겪는 차별과 ‘복합차별’에 대한 내용이 다수 포함되었다.
장애인차별해소법에서 성별과 성정체성, 성적지향 등의 요인에 따른 ‘복합적, 교차적 차별’을 금지할 것. 남녀공동참획정책(성평등 정책)에서 장애가 있는 여성과 여성 청소년의 평등을 확보하고 복합차별을 방지할 것. 장애 여성과 여성 청소년의 ‘포괄적 성교육’에 대한 접근성 확보 등. 또한 강제 불임 및 강제 임신중단을 명확하게 금지할 것 등을 주문했다.
유엔 권고에 앞서, 8월에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심사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다. 이 때 DPI여성장애인네트워크 후지와라 쿠미코 대표는 ‘장애여성에 관한 조항을 법률에 넣을 것’과 ‘장애여성에 대한 포괄적 성교육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며, 위원회에 호소했다.
“제가 전하고 싶었던 의견이 위원들에게 가닿은 것 같았습니다. 위원들 중에는 장애여성이 많고, 그 중에도 아시아 출신 위원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어려움, 장애인들 내에서도 남성 우위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후지와라 씨가 유엔에서 장애여성의 인권에 대해 호소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장애여성에게 임신중단을 권고하는 사회
후지와라 쿠미코(藤原久美子) 씨는 십대 때 I형 당뇨병을 앓았다. 34살에 합병증이 발병하여 시력을 잃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만 생각했어요. 멋도 못 내고, 책도 못 읽고, 저것도 못 하고, 이것도 못 하고, 살아도 소용 없다 생각해 병원 침대에서 울기만 했어요.”
그 시기가 지나고 생활-취업 훈련 시설에 다니며 동료상담가(peer counselor)라는 직업을 만나게 된다. ※동료상담(Peer counseiling)이란, 장애를 가진 사람에 의한(by) 장애를 가진 사람의(to) 카운슬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성장시키는(for) 것이다. (참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홈페이지)
“이왕 장애인이 되었으니, ‘장애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워낙 낙천적이고, 어떤 상황이든 제가 해야 할 일을 잘 찾는 타입이에요.”라고 말하며 웃는 후지와라 씨. 동료상담가가 되기 위해, 현재 다니고 있는 자립생활센터를 소개받았다.
지금은 장애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후지와라 씨지만, 그때는 성차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장애인 차별은 알기 쉬웠어요. 본가에서 엄마가 저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옷 사러 가도 점원이 저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든가. (그게 차별이라는 것은 알았어요.) 어릴 때부터 여자는 얼른 결혼해 아이 낳는 게 행복이라고, 여성의 역할을 완전히 체화하며 자랐기 때문에 의외로 요리도 싫어하지 않고, 좋은 며느리가 될 거라는 칭찬을 들으면 기뻤어요.(웃음) 다만, 병에 대해서 숨기고 연인을 만나다가 나중에 힘들어지기도 하고…”
2009년에 친구의 소개로, 여성장애인네트워크 모임에 와서 이야기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후지와라 씨는 당시 결혼해 네 살 된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여성장애인이 생활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말해달라는 의뢰였다. ‘아이가 아플 때 아이의 혈색을 알 수 없는 건 힘들었는데…’ 그러면서 여러 가지를 떠올렸다.
“마흔에 제가 임신했을 때, 어머니와 의사가 함께 임신중단을 권했어요. 의사는 장애아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어머니는 제가 장애가 있는데 육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며…. 파트너는 저를 응원해줬고, 저도 여러 다른 장애인을 만나면서 장애가 있어도 조력을 받으며 당연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양육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요. 저도 장애인인데 ‘장애인이 태어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받아온 거죠.”
여성장애인네트워크 사람들은 공감해줬다. 후지와라 씨는 이야기를 하면서 놀랐다.
“나는 장애인이니 어쩔 수 없다, 부모도 의사도 나를 위해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차별이구나, 라고. 여러 일이 줄줄이 생각났어요. 어머니는 왜 비장애인인 남편이 집안일을 하면 극구 칭찬하고 미안하다고까지 말하는 걸까, 병원 의사는 왜 내가 아니라 남편을 보며 이야기하는 걸까…. 내 삶의 어려움은 ‘장애’ 차별과 ‘여성’ 차별의 복합성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사자 참여’가 중요
2012년에는 간사이여성네트워크를 설립하고, 여성장애인네트워크 일원으로 국내외 정책 제언 등의 활동을 하게 됐다. 그해 DPI여성장애인네트워크에서 실시한 ‘복합차별 실태조사’에 답변자로 참여했다.
후지와라 씨는 일본의 여성장애인 운동이 주요하게 다루는 우생보호법(우생학의 관점에서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막기 위한 취지로 1948년부터 1996년까지 일본에 존재한 법률)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효고현이 추진한 ‘불행한 어린이가 태어나지 않도록 하는 운동’이 펼쳐진 것이 1966년, 제 여동생이 태어나던 해였어요. 어머니도 분명 거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저와 엄청 관계가 있었던 일인 거죠.”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일본 정부에 권고한 내용에는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의 분리교육을 중단하고, 통합교육을 실시하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후지와라 씨는 딸의 학교생활 이야기를 들려준다.
“딸이 초등학생일 때, 도움반(장애아동 학급) 아이랑 같이 놀기를 싫어했어요. 외국 국적 아이는 같은 반이니 이런저런 궁리를 해 같이 놀 수 있지만, 장애아는 나뉘어 있으니 낯설어서 같이 놀지 못하는 거예요. 분리교육은 장애가 없는 어린이에게도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권고에서는 장애가 있는 여성을 포함한 ‘당사자 참여’라는 문언이 여기저기 들어있습니다. 국가나 지자체뿐 아니라 장애인단체들도 이 말과 제대로 마주하길 바랍니다. 장애가 있는 여성에게 특화된, 실효성 있는 법률을 만들고 싶어요.”
“가장 큰 꿈은… 전 세계에 장애여성 연대를 만드는 일입니다.” 끝까지 밝고 힘찬 후지와라 씨의 목소리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고주영 씨가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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