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으로 만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어수선한’ 연결책 〈농담, 응시, 어수선한 연결〉의 김슬기, 김지수 上“아침엔 네 발, 점심엔 두 발, 저녁엔 세 발로 걷는 것은?” 이 수수께끼를 아는 사람이라면 답도 알 것이다. “사람.” 어렸을 땐 네 발로 기다가 자라서 두 발로 걷고 늙어선 지팡이를 짚어 세 발이 된다는 의미다. 답을 알고 나면, 의심 없이 수긍하게 된다. 책 〈농담, 응시, 어수선한 연결〉을 쓴 김슬기 작가도 그랬다. 하지만, 장애인 극단인 ‘극단 애인’ 김지수 대표를 만나 그 수수께끼에 대한 농담을 들었을 때, 김슬기 작가의 세계는 요동쳤다.
[문제의 대사는 “아침엔 네 발, 점심엔 두 발, 저녁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언인지”를 묻는 그 유명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나에게 그건 굳이 애써 외워야 할 문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곧바로 이어진 지수 씨의 농담. “아, 이 대사 이거 왜 이렇게 안 외워지지? 난 두 발로 걸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 순식간에 연습실은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농담이라고? 이런 농담에 웃는다고?”] -〈농담, 응시, 어수선한 연결〉 1막 ‘명백히 농담이 될 수 없는’의 ‘농담’ 중
이 글을 읽으며, 나의 트랜스젠더 친구가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농담을 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동공지진 일어났던 일이 떠올랐다. 지금은 그런 자조적인 농담에도 함께 웃고, 받아치기도 하지만 처음 친구의 농담을 접했을 땐 ‘이게 진짜 농담인 건지?’ ‘이런 농담에 웃는 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일이 아닌지?’ 혼란스러워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농담의 무게와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경험이었다.
〈농담, 응시, 어수선한 연결〉은 공연예술 연구자, 드라마투르그이며 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in》 편집장이기도 한 김슬기 씨가 연출가, 극작가, 배우이자 극단 애인의 대표인 김지수 씨를 만나 그의 생애사를 듣고 쓴 책이다. 상대의 농담부터 이해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 ‘어수선하게’ 연결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슬기 씨와 지수 씨는 비장애인과 장애인, 이야기를 묻고 답하는 관계에서 함께 ‘연극하는’ 동료가 되어간다. “누구도 일러준 적 없는 그 세계로”(〈농담, 응시, 어수선한 연결〉 6막 제목) 동행하는 사이로.
그런 두 사람을 만났다.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극단 애인 연습실에서 따뜻한 차와 귤, 딸기를 나눠 먹으며 소소한 것부터 연극계,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또한 ‘어수선한 연결’이었기를, 그 연결이 더 확장되길 바라며 두 사람의 메시지를 전한다.
-연극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슬기: 대학 때 연극 동아리를 하면서 ‘내가 사람들하고 뭔가를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하는구나’ 알게 됐어요. 근데 연출할 깜냥은 아닌 것 같고, 극작을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배우는 더더욱 아닌 것 같더라고요. ‘연극은 너무 좋은데… 내가 뭘 할 수 있지?’ 생각하다 기획, 제작 쪽으로 해 볼까 고민했죠. 그러다 어느 연극 축제 사무국에서 기획, 제작 파트 인턴으로 일했는데, 당시엔 지금처럼 기획, 제작 분야가 전문화되어 있지 않았어요. ‘이 일도 내 일이 아닌가 보다’ 싶었는데, 마침 연극 잡지인 《한국연극》 기자를 뽑는다 하더라고요? 그렇게 기자로 일하게 됐고, 이런 저런 일들을 경험하고 다시 현장에 나와서 드라마투르그 활동도 하게 됐죠.
지수: 난 정말 연극을 하게 될 줄 몰랐어요.(웃음) 한벗회(장애인 이동을 돕는 자원봉사단체)에서 간사로 일할 때, 자원봉사 하던 친구가 한국 최초의 장애인 극단 ‘휠’에서 연출을 했어요.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 하더라고요. 그래서 행정을 좀 하다가, 배우로도 출연하게 됐죠. 연극은 정말 가까이에서 관객이 배우를 만나고, 배우도 관객을 만나잖아요. 엄청 긴장되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매력적이더라고요.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연기를 끝내고 관객의 박수를 받을 때 그 어떤 순간보다 짜릿하고 행복할 것 같다. 그런 박수 받는 배우들이 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극단 애인을 만들게 됐죠.
-슬기 님이 지수 님을 만난 건 “2019년 3월, 극단 애인의 단원들이 배우로 출연하는 한 연극에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하면서였죠. 4년 전인데요. 서로의 첫 인상 기억하나요?
슬기: 지금 이 연습실에서 처음 만났어요. 〈인정투쟁; 예술가편〉(이연주 연출, 2019) 공연을 준비하는 모임이었죠. 굉장히 긴장했어요. 가까운 친구 중에 장애를 가진 이도 있지만 장애인들과 어울려 살아본 경험이 거의 없으니까. 갑자기 이렇게 많은 장애 당사자들과 한 자리에 있는 일이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 같아요. ‘무례를 범하면 안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낯설고 이상한 경험이었어요. 다같이 둘러 앉아 소개하고, 연극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왜 연극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 나눴던 게 기억나요. 지수 님에 대한 인상은 ‘되게 단단한 사람이 저기 있다’는 거였고, 그건 지금도 그래요. 다만 그 땐 고요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달라요. 이렇게 유쾌한 분인지 몰랐으니까요.(웃음)
지수: 슬기 님 첫인상을 기억 못하고 있었는데요.(웃음) 그것보다 연습실에 처음 오기 전에, 당시 이연주 연출과 극단 애인 단원이자 조연출이었던 강예슬 단원 그리고 슬기 님, 세 분이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어요. 그 때 강예슬 단원이 “슬기 님이 엄청 재미있고 똑똑해 보이더라”는 얘길 했었거든요.(웃음) 그게 기억이 나네요. 사실 어떤 작품을 하기 위한 첫 모임엔 모두가 긴장해요. 특히 극단 외부에서 온 분들은 긴장을 풀려고 해도 잘 안돼요. 서로에게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기다리는 거죠. 그래서 슬기 님의 첫 인상도 잘 기억 못하는 것 같아요. 그 때도 (상대에게 부담될까봐) 일부러 유심히 관찰하려 하지 않았을 거에요.
슬기: 첫 모임 오기 전에, 연출과 조연출 만났을 때 멍청한 질문 많이 했었는데 말이죠.(웃음) “혹시 제가 조심해야 될 게 있나요?”라고 물었거든요. 밑도 끝도 없이요. 장애연극인들과 작업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실수할까 봐 무서워서 겁 먹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 해도 너무 이상한 질문이었죠.(웃음) 또 다른 질문은 “왜 비장애연극인들과 함께 하지 않느냐?”였어요. 그 땐 장애연극과 비장애연극을 구별하는 것 자체가 차별적이라고 느꼈던 거죠. 그런 구분 없이 같이 해야 하지 않나 싶었던 거에요. 이연주 연출님이 정성 들여 설명하셨던 게 기억나는데, 내용은 다 기억하지 못해요. 제가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는 거죠. 이젠 그 때 연출이 했던 이야기가 뭐였고,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됐지만요.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구술생애 연구로 이어지고, 책까지 나오게 됐는데요. 연구를 시작할 때 어떤 목표나 기대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슬기: 연극계 환경이 장애 연극인들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었어요. 당시 장애연극에 대한 (연극계의) 관심이 시작되던 시점이었는데, 극단 애인이 꽤 오래 전부터 작업을 해 온 곳이니까, 이런 변화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극단 애인과 연습을 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배우들에게 “오디션이라고 생각하고 자유 연기를 한번 해 봅시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를요.”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모든 배우가 자신의 생애 한 순간을 이야기로 만들어 보여주더라고요. 굉장히 신선했어요. 왜냐면 보통 배우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연기력을 뽐내기 위해 유명한 희곡의 독백 대사 같은 걸 하거든요. 근데 극단 애인에선 자신의 생애를 이야기했다는 거죠. ‘여기엔 무언가 분명히 이유가 있다. 생애 경험과 연극 활동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럼 지수 님의 생애사를 먼저 들어야겠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구술생애사 인터뷰를 부탁하게 된 거죠.
-지수님은 이런 제안을 받고 어땠나요?
지수: 20대 때도 한번 구술생애 인터뷰를 한 적 있어요. 장애 여성에 대한 논문을 위한 거였을 거에요. 그 때도 쉽진 않았어요.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그렇고 그게 남겨진다는 것도요. 나라는 사람이 많이 드러나는 일이더라고요. 이번에 제안 받았을 때도 고민은 있었지만, 극단 애인에 관한 이야기가 쓰여진다는 부분 때문에 하게 됐어요. 김지수 개인이 아니라 극단 애인의 대표로 활동한 것에 대한 기록이 있었으면 했거든요. 장애연극인의 고민과 생각, 활동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인터뷰를 하다 보니까 나도 몰랐던 나 자신을 알게 되더라고요. 단지 연극이 너무 좋아서 한 거고, 극단 애인의 활동이 좋아서 10년도 넘게 활동했던 건데, 인터뷰를 한 후 슬기 님이 정리한 논문을 보니까 ‘내 삶과 연극이 이렇게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고 있었구나’ 깨닫게 된 거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이제 3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요. 지난 시간 동안 두 분의 관계 그리고 두 분의 삶도 변화했을까요?
지수: 슬기 님이랑 만났을 때 말을 정말 많이 했는데(웃음) 그걸 다 들어주었고, 극단 애인과 함께 작업도 하고 있으니까 관계가 가까워졌죠. 근데 사실 전 누군갈 너무 좋아하면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헤어질 때가 다가오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해요.
그럼에도, 우리가 정말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한 것 같아요. 연극계의 많은 변화, 그 안에서 극단 애인과 단원들이 ‘어떻게 연극을 해야 하나’ 깊게 고민하던 시절에 만났으니까요.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도 있었고, 우리 단원들이 외부 프로덕션에 참여하는 일도 많았고, 극단 애인 대표를 오래 했으니까 이제 그만둘 때가 아닐까 고민하던 시점이기도 했고요. 그런 변화의 순간, 많은 생각이 얽혀 있던 시기에 슬기 님과 함께 지냈죠. 같이 이야기 나눴고 고민도 들어줬고요. 3년이지만, 더 오래된 사이 같아요.
슬기: 지수 님을 만나고 삶이 많이 바뀌었어요. 내가 너무 모르고 있던 것들을 배우게 됐죠. 내가 가치 있다고 믿었던 것, 삶의 동력으로 가지고 있던 것에 대해서 다시 질문하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이를 테면, 난 독립적인 것이 지상 최고의 선(善)이라고 믿었던 사람인데,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거든요. 서로가 서로한테 배운다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어떻게 말을 걸 수 있는지 등. 사소한 것부터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까지, 지수 님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또 장애연극인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나름 연극계에 오래 몸 담고 있던 사람으로서 연극계에 대한 생각 또한 다시 하게 됐죠.
연말에 카드를 보내려고 ‘지수 쌤’ 이렇게 세 글자를 적었는데 혼자 배실배실 웃고 있더라고요. 이제 그런 존재가 된 거 같아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웃는구나. 나한테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요. 앞으로도 더 같이 하고 싶어요. 극단 애인이랑 함께 한 지 거의 4년이거든요? 연극 하면서 한 팀이랑 이렇게 오래 작업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도 같이 할 일을 또 생각한다는 거죠. 저도 살가운 사람은 아니라 너무 가까워지면 무서워서(웃음) 앞으로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면서 작업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어요.
-두 분의 관계를 ‘어수선한 연결’이라고 표현한 건 어떤 의미일까요? 사전적 의미로 살펴보면 긍정적인 의미라고 보긴 어렵잖아요. 그럼에도 ‘어수선한’이라는 말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어요.
슬기: 그 말은 지수 님이 해준 이야기에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제일 좋았던 부분이, 장애를 가진 사람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기 위해선 너저분하고 엉성한 질서가 있을 수밖에 없고,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는 거였어요. 그 말이 정말 맞더라고요. 지수 님을 비롯해 극단 애인 단원들과 함께 지내면서 느꼈던 걸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었어요. 어수선하다, 너저분하다, 엉성하다…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라고들 생각하잖아요? 저도 그랬고요. 근데 한편으론 ‘무엇이 긍정적인 것인가?’ 싶은 거죠. ‘우린 왜 가지런하고 질서 있는 걸 좋은 거, 이상적인 거라고 생각하나?’ 생각도 들고요.
사실 전 매끄럽고 가지런한 관계에서 배우는 게 없는 것 같거든요. 깔끔하지 않고 말끔하지 않은 것들을 자꾸 정리하려고 하고,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들을 없는 셈 치고, 그러다 보면 삭제되는 것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런 걸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가기 위해선 당연히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는 걸 배우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어수선하다는 말을 좋아하기도 해요. 마음이 어수선하다고 할 때도, 그 안에서만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 때만 경험할 수 있는 것, 그걸 좀 즐기는 것 같아요. 이상한가요?(웃음) 원래 제목에 ‘어수선한’이 아니라 ‘너저분한’이라고 쓰고 싶었는데 편집자가 ‘그건 안 된다’ 그래가지고.(웃음) 너저분한이 훨씬 더 근본 없는 느낌이라 좋았는데 말이죠.(웃음)
(인터뷰 하 편에선 책에 담긴 장애연극, 장애예술에 대한 생각, 장애인으로서의 삶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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