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우리의 문제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섭식장애와 여성의 몸] 섭식장애를 경험한 심리상담사 김윤아

박지니 | 기사입력 2023/02/23 [10:54]

‘섭식장애’ 우리의 문제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섭식장애와 여성의 몸] 섭식장애를 경험한 심리상담사 김윤아

박지니 | 입력 : 2023/02/23 [10:54]

-섭식장애를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 바라보고, 젠더 관점을 담아 다각도로 접근하는 기획 ‘섭식장애와 여성의 몸’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 책 『또, 먹어버렸습니다』를 집필한 김윤아 씨. 그는 ‘섭식장애를 겪었던, 섭식장애 전문 심리상담사’이다.

 

“이런 날이 오기도 하네요! 섭식장애 인식주간이 열린다는 것만으로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에요.”

 

김윤아 씨는 ‘섭식장애를 겪었던, 섭식장애 전문 심리상담사’이다. 2021년 1월 출간된 책 『또, 먹어버렸습니다』를 통해 그를 처음 알게 되었다. 김윤아 씨는 이 책에서 폭식과 거식 행동의 증상 이면을 친절히 짚고, ‘강박적으로 먹거나 먹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감정과 식사의 연결고리를 느슨하게 만들도록’ 돕기 위한 조언과 정보를 제공했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섭식장애 인식주간’(2월 24일~3월 2일) 행사를 앞두고, 김윤아 씨의 아담한 사무실을 찾았다.

 

또, 먹어버렸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김윤아는 또래들의 다이어트 문화와 ‘팻 토크(fat talk)’ 속에서 자연스런 수순으로 절식을 시작하게 되었고, 대학을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뒤 폭식증에 시달렸다. 그때의 일을 들려주며 그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자신은 잘 표현할 수 없었던, 무대 위 배우들의 격렬한 감정 표현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연출과 극작 공부를 하며 시나리오를 써 가야 했을 때, 어떤 것도 언어화시키지 못한 채 괴로움에 시달리며 녹초가 돼 버렸다고 했다.

 

김윤아는 치료를 받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다른 섭식장애 환자들처럼 혼자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 했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순간 섭식장애 전문 클리닉을 파악했다. 상담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서 백만 원 가량을 모았다. 그처럼 행동으로 직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문적 도움에 접근하지 못하거나, 일종의 회피 기제로 문제를 방치하거나, 자신을 점점 더 불리한 상황에 빠뜨리며 한참 에두른 길을 가게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용감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한 김윤아는 의사보다 심리학자와 더 길게 이야기하고 신뢰를 쌓았다고 한다. 그리고, 스스로 상담심리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저는 제가 겪고 있는 병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걸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저 스스로 전문서적과 논문을 뒤져 가며 알아내야 했어요. 왜 환자 개개인이 각자도생으로 해법을 찾아야 할까? 왜 섭식장애에 대한 도움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을까? 내가 이걸 경험하고 공부했으니, 더 공부해서 치료법을 알아내야 되겠다 생각했지요."

 

▲ 심리상담사 김윤아 씨의 사무실에 비치된 책과 자료들

 

나 역시 섭식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 시절 각종 서적과 의학논문을 찾아 모으고 읽었지만, 내가 스스로 전문가 자격을 취득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마도 나는 ‘환자’인 내가 치료자, 혹은 전문가로서의 '자격'을 가질 수는 없을 거라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 혹은 해야 하는 일을 위해 '자격'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획득할 절차를 밟으면 된다는 것이 김윤아의 방식이었다. 그는 상담심리를 전공할 학교를 물색했고, 병원 치료를 시작한 지 꼭 2년 뒤인 2015년에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왜 임상심리 대신 상담심리를 선택했나요?” 임상심리는 의학에 좀더 가깝다고 여겨지는 반면, 상담심리는 감정과 돌봄의 영역, 여초화(feminization)된 분야라는 인식이 내게는 있었다. 김윤아는 그런 편견이 애초 없었던 사람으로서, 담담하게 답했다. 임상심리는 병원에서의 ‘검사’에 더 기울어 있어서, 자신은 내담자와의 관계를 더 본격적으로 다루는 상담심리를 공부해야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고.

 

그는 면접 자리에서도 ‘섭식장애를 겪는 내담자를 돕는 상담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톨릭대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자신의 병력과 공부의 목적을 밝히고서 첫 학기를 시작했다. 다행히 대상관계 연구자였던 지도교수를 비롯해 교수들은 그에게 지지를 보냈고, 연구에 대한 자율성을 허용했다고 했다.

 

▲ 하이머스타드 유튜브 채널과의 인터뷰 장면. (김윤아 제공 사진)

 

'참을성 없는 환자 당사자로서의 연구자’

 

십대 때 파킨슨병이 시작돼 지금껏 평생 그 병을 연구하고 증상을 관리하며 살아 온 스웨덴의 당사자-연구자(patient-researcher) 새러 리가르(Sara Riggare)는 스스로를 '참을성 없는 환자-연구자 (Im)patient-researcher'라고 칭한다. 환자 당사자로서의 연구자는 스스로의 삶을 구하기 위한 절박감에서 그 모든 탐구를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참을성이 없다. 또한 무엇이 작동할 리 없는지, 무엇이 허울뿐인 해법인지, 어떤 희망과 단서가 있고 또 거기엔 어떤 한계가 있는지 잘 안다.

 

섭식장애 전문 상담자로서 김윤아가 다양한 메신저 플랫폼을 빌려 내담자들의 일대일 식사 코칭을 시도하고, 원격회의 방식으로 폭식증 그룹상담을 진행하는 것 역시, 내담자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차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심리상담은 어떻게 진행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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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와 음식에 대한 고민이 많은 분들을 주로 만나죠. 이렇게 얘기하면, 누구나 다이어트와 음식에 대한 고민이 있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더 심각한 수준인 거 같아요. 한 마디로 말해, 음식과 다이어트로 인해 삶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있는 분들이죠.

 

섭식장애도 일반 심리상담과 마찬가지로, 구조화된 틀은 없답니다. 상담자와 내담자가 함께 상담 목표를 세우고, 내담자의 현재 상태와 전반적인 생활을 감안해가면서 변화를 위해 노력하죠. 물론, 섭식장애의 경우 제 1원칙이 있긴 해요. 불규칙한 식사로 인해 망가져버린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규칙적이고 기계적인 식사가 바로 그거죠. 식사가 자리 잡히지 않으면, 내 마음이나 생각을 찬찬히 돌아볼 여유가 전혀 생기지 않거든요.”

 

▲ 김윤아 심리상담사에게 종종 대학생들이 인터뷰를 요청한다. (김윤아 제공 사진)

 

김윤아 상담사의 블로그(blog.naver.com/chali91)에는 상담사례들도 소개가 되어 있는데, 특히 섭식을 돕는(meal support) 프로그램들이 인상적이다.

 

“섭식장애의 경우 1주일에 한번 50분에서 1시간의 상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식사는 매일 하는 일이고, 매 순간이 고비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대면 상담도 중요하지만, 매일의 식사를 기록하고 피드백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만든 게 식사일기를 매일 기록하고, 내담자끼리 서로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온라인 장을 만들었어요. 그걸 2020년 5월부터 시작해서 2022년 9월까지 지속했죠.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식사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적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먹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내 기록을 함께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더라고요. 그래서 2022년 9월부터 지금까지 톡으로 식사일기를 매일 작성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제가 피드백을 주는 형식으로 식사피드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답니다.”

 

섭식장애 자조모임을 매주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다. 식사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고민을 나누는 장이다.

 

“다이어트와 음식에 대한 고민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또 이런 고민으로 위축되지 않고 서로 자유롭게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어요. 저도 섭식장애를 겪었지만, 섭식장애를 더 강화시키는 건 '내가 이런 병을 겪고 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를 자꾸 고립시키는 것이더라고요.”

 

▲ 김윤아 씨는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며, 이번 ‘섭식장애 인식주간’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김윤아 제공 사진)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말길…

 

김윤아 씨는 <섭식장애 인식주간> 첫날인 2월 24일 “섭식장애 당사자-내러티브 탐구자” 세션에 참석해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당사자들, 혹은 섭식장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먼저 자신의 얘기를 당당하게 하면, 다음에 또 그 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게 되고, 더 얘기하기 쉬워지지 않을까요? 그런 사명감(?)이 있는 거 같아요.”

 

섭식장애 당사자-연구자로서, 김윤아 씨가 우리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이다.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섭식장애 상담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자신과는 먼 얘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개인마다 다양한 심리적인 이유로 섭식장애를 겪게 되지만, 외모 평가로부터 평생 자유로울 수 없는 이 환경에서는 누구나 섭식장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자신이, 가족이, 친구가 겪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사람들이 조금 더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섭식장애 인식주간 인스타그램 @rabbitsubmarinecol

 

[필자 소개] 박지니. 1980년생. 생업을 하며 틈틈이 읽고 쓰고 번역한다. 거식증 회고록 『삼키기 연습』을 출간했다. 뜻하지 않게 ‘잠수함토끼콜렉티브’라는 소모임을 결성하고, 국내 첫 회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기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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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임 2023/02/24 [22:15] 수정 | 삭제
  •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말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5jang 2023/02/23 [23:09] 수정 | 삭제
  • 당사자로서 논문쓰신 분 이야기도 감동적으로 봤는데, 심리상담자로서 다른 당사자들을 이해하고 돕는 분이 계시다는 게 든든합니다. 남의 문제로만 보지 말라는 이야기가 와닿았어요. 제 지인 중에도 섭식 문제로 많이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동안 너무 가볍게 생각했구나 싶었어요. 이 연재 읽으면서 져역시 약 함부로 먹으면 안 되겠구나 다짐하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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