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의 ‘이야기’가 섭식장애 인식과 치료방식 바꿨다[섭식장애와 여성의 몸] 나카무라 히데요 교수 인터뷰나카무라 히데요 교수(니혼대학교)는 일본에서 섭식장애 당사자이자 섭식장애 내러티브 연구자로 알려져 있다. 사회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그는 섭식장애를 “(신체적) 마름에 가치를 두는 사회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병”이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괴로움과 어려움의 표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나카무라 교수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섭식장애 당사자이면서 섭식장애 내러티브 연구자인 이진솔 씨가 나카무라 교수를 인터뷰해서, 한국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섭식장애에 대한 일본의 인식과 사회적 상황을 짚어봤다. –편집자 주-
1960년대부터 섭식장애를 연구한 일본 사회
이진솔: 국내 첫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준비하면서, 일본의 섭식장애 연구와 책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저서에 대해 듣고 교수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먼저 현재 일본에서 섭식장애는 어떻게 여겨지고, 이야기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카무라 히데요: 한국에서는 아직 섭식장애에 관한 편견이 있고 ‘숨겨야 하는 병’으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메일에서 전해 주셨는데, 실제로 그런가요?
진솔: 섭식장애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섭식장애는 심각한 질병이다 등 증상이나 눈에 보이는 측면에 대해선 인식하고 있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성찰은 아직 부족합니다. 그저 ‘허영의 질병’에 걸린 젊은 여성을 한심하게 보거나, 윤리적으로 비난하는 데 그친 달까요. 연구 환경도 척박하고, 섭식장애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대학 연구소 역시 하나밖에 없고, 전문 클리닉이나 연구소도 서울에만 있습니다. 나카무라 교수님의 책도 벌써 10여 년 전에 출간되었는데, 일본의 섭식장애 연구는 훨씬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요?
나카무라: 일본에서 섭식장애가 연구 주제로 인정되기 시작한 건 1960년대부터였어요. 당시 의사들은 독일 학계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현대적 진단명을 쓰자면 ‘제한형 거식증’이 첫 연구 대상이었고, 주로 ‘성숙한 여성성의 부정(否定)’이라는 측면에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제 책의 주제는 ‘사람들이 섭식장애로부터 어떻게 회복되는가’인데요. 본래 박사 논문이었던 것을 후에 새로 편집해 출간한 것입니다.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말씀 드리면, 아무래도 치료자들은 ‘왜 섭식장애에 걸리는가’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why’가 핵심이었죠. 특히 일본에서는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에 대한 의견이 많았습니다. 말 그대로 ‘모의 양육방식’이 ‘자녀의 섭식장애’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인데요, 물론 저도 일정 부분은 동의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으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가 연구를 시작한 20 년 전의 일본 정신의학계의 분위기는 섭식장애를 다이어트 때문이다, 마르고 싶은 욕구의 문제다 라고 보지 않고 심리적인 문제로 여겼습니다. 심리적 고통이 섭식장애로 나타난다는 관점이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18명의 회복의 내러티브가 사회에 준 메시지
진솔: 당사자로서 어떤 이유로 환자의 내러티브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나카무라: 저는 14살에 시도한 다이어트를 계기로, 과식과 구토를 시작했습니다. 20살에는 과식도 구토도 멈췄고 다이어트도 그만두고, 보통의 사람들처럼 좋아하는 음식을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 후 사회학을 전공해 대학원 생활을 하던 중, 다른 사람들이 ‘섭식장애로부터, 어떻게 회복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는 인터넷의 홈페이지 상에서 회복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연락해 18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회복”이라고 해도,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경위는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무엇을 ‘회복’으로 정의할지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를 들면, 과식이나 구토 행위가 남아있어도 회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 반면, 과식이나 구토는 하지 않지만 살아가는데 어려움이나 힘듦이 계속되는 경우,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당사자의 내러티브를 통해 그들의 섭식장애와 회복에 관한 다양한 생각이나 관점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진솔: 연구를 진행하면서, 환자의 내러티브가 섭식장애에 대한 인식과 치료 전반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느끼셨나요?
나카무라: 저는 회복에 관한 다양한 내러티브를 모아 논문을 쓰고 책을 출간했습니다. 18명의 회복 이야기를 소개한 『섭식장애의 이야기-‘회복’의 임상 사회학』(2011, 신요샤)입니다. 연구를 시작한 이유는 당시 일본에서는 섭식장애는 회복이 어려운 병으로 여겨졌고, 회복에 대한 정보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사자들의 회복 내러티브를 소개한다면, 현재 괴로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섭식장애는 회복할 수 있는 병이다! 라는 희망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제 책을 읽고 회복했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와 달리 섭식장애에는 어려운 시기, 회복하기 어려운 시기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회복에 관한 내러티브는 회복에 대한 압박이 되고, 심리적으로 몰아세우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제 연구에서는 회복자의 내러티브에 주목했지만, 사회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내러티브나, 회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내러티브도 연구할 필요가 있고 당사자의 다양한 내러티브가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일본에서는 지난 20년 사이, 당사자들의 내러티브가 섭식장애에 대한 인식과 치료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실감하고 있습니다.
진솔: 요즘은 남성들도 섭식장애를 많이 겪지만, 역시나 여성의 문제라는 인식이 많습니다. 심리적인 부분이 영향을 주겠지만 결국 마르고 싶다, 다이어트 강박 때문이지 않냐 라는 의견이 대부분입니다. 치료 방법 역시 그런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에 집중되어 있고요. 일본의 치료환경이나 방법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나카무라: 먼저 제가 치료를 받았던 때의 이야기부터 하자면, 저는 30년 전인 열일곱 살에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상담을 받기도 했고 여러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녔습니디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절한 치료는 받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의료 전문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섭식장애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이론적인 지식만 있을 뿐 실제로 어떻게 환자를 대해야 하고 도와야 하는 지 등의 ‘스킬’은 부족했습니다. 결국 저는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회복했습니다.
구체적인 치료 환경에 대해서는 말씀 드리기 어렵지만, 현재 일본에는 다양한 섭식장애 클리닉이 있습니다. 인지행동치료 전문 클리닉도 있고 전문 상담소도 있죠. 그럼 그 곳에 가면 정말 나을 수 있는가, 치료에 도움이 되는가 라고 묻는다면 쉽게 ‘yes’라고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환자에게 어떤 치료법이 잘 맞다거나, 치료자와의 관계가 좋으면 나을 수 있겠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문제이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치료의 어려움을 고려해 18명의 당사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회복 이야기를 연구하였습니다. 연구를 통해 만난 분들 중에는 ‘전문적인 치료’ 없이 회복한 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20년간, 당사자 내러티브가 섭식장애 인식과 치료방식 바꿔
진솔: 그런 이야기를 담은 책과 연구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18명의 당사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갈등이나 어려움은 없었나요? 또 인터뷰를 하면서 교수님의 생각이나 예측과 다른 이야기가 나오거나 하는 경험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나카무라: 인터뷰 과정에서 갈등은 없었습니다. 제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당시 인터넷에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한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다들 ‘섭식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첫 인터뷰에서부터 저의 예측이 전-부 빗나갔습니다.(웃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 저는 섭식장애에 관한 다양한 정보나 의견들을 접한 상태였습니다. 책이나 의사나 전문가의 의견 등과 같은 외부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죠. ‘섭식장애는 이런 병이다. 이렇다’ 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연구 참여자 중에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예요. 다 너무 다른 거죠. 책에 18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제 이야기는 없는 거죠. 저와 비슷한 이야기도 없구요. 그래서 연구를 진행하면서 외부의 영향, 나의 예측 그리고 그것이 맞다/틀리다를 확인하고 증명하기보다 그저 솔직하게 참여자 분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야겠구나 라고 다짐했습니다. 이걸 첫 인터뷰에서 알아버린 거죠.(웃음)
진솔: 저도 내러티브 연구를 통해 석사 논문을 썼습니다. 당사자 5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처음 연구를 준비할 때 ‘당사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자, 기준을 한번 만들어보자’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준 따위 전혀 없었고 (웃음) 모두가 다 달랐습니다.
나카무라: 그렇죠, 여기서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저는 이런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봤습니다. ‘이렇게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구나!’라구요. 저는 사회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의 회복’이랄까요? 다시 말하지만, 회복은 정말 다양합니다! 회복이라는 정의 자체도 제각각이죠. “그걸 회복이라고 할 수 있어?” 싶은 사람도 있고 “그 정도까지 왔는데 회복이 아니라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다양한 정의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썼기 때문에 풍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독자 분들은 자신과 비슷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겠죠. 아닌 경우도 있을 거구요.(웃음)
진솔: 한국에서 섭식장애의 경우, 당사자가 내러티브 연구를 한 건 제가 거의 처음입니다. (관련 기사: 먹고 토하는 이야기로 누가 논문을 써?! https://ildaro.com/9550) 이건 질문이기도 한데요. 제가 연구를 하면서 ‘당사자가 섭식장애를 앓았던 경험이나 이유, 치료 경험, 삶 속에서 마주한 여러 어려움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그저 자신들의 불행이나 힘든 경험을 늘어 놓는 것에 불과하지 않냐’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나카무라: 그건… 너무 낡은 생각 아닐까요?
진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저는 치료에 성공했다, 실패했다 보다는 경험 그 자체를 연구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여전히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옹호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거든요. 교수님도 연구하시면서 저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카무라: 진솔 씨의 경험에 너무나 공감합니다. 특히 진솔 씨는 심리학 쪽이잖아요? 심리학은 객관성이 굉장히 중요한데, 저는 사회학이기 때문에 훨씬 자유로운 편이죠. 실제로 학위논문 심사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분께 “엄청 부러워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상담, 심리학과 같은 관점에서 보면 상담소나 병원에 온 사람들은 ‘치료 대상’입니다만, 사회학은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어 제 책에는 본인이 가는 병원의 치료자가 너무 싫어서 병원에 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치료했다는 케이스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사회학이기 때문에 할 수 있고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분은 게임을 하다 보니 거기 푹 빠져서 섭식장애가 나았다고 이야기합니다.(웃음) “정말 그럴 수가 있어?” 싶지만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사실 다 그렇잖아요? 생각지 못한 일을 계기로 병을 앓기도 하고 또 낫기도 한다는 거죠. 그런 인간의 삶 자체를 바라보는 학문이 바로 사회학이고, 저는 사회학을 전공하였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사자의 앎/지식, 그리고 이야기 치료(Narrative Therapy)
진솔: 정말 부럽네요.(웃음) 그러면 제가 들었던 말 ‘불행을 늘어놓는다’ 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나카무라: 불행을 늘어놓는다기보다, 제 책의 6장 제목이 ‘분석되는 사람(분석대상)에서 해결하는 사람으로’인데요. 지금까지 환자는 분석 당하는 위치였다는 거죠. 하지만 환자 중에도 굉장히 우수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잖아요? 스스로 섭식장애를 해석하고 새롭게 이해하면서 해결하는 사람도 있다는 뜻입니다. 일본에서는 당사자의 ‘앎/지식’은 섭식장애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학문에서 존중하고 있습니다. 당사자의 이야기나 의견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제 입장에서는 다소 오래된 관점이지 않나 싶어요.(웃음)
진솔: 동감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방금 말씀하신 ‘환자의 앎/지식’을 한국에서는 여전히 부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의견 자체를 무시하거나 묵살하는 경우도 있고요. 예를 들면, 저는 먹지 않는 게 아니라 먹지 못하는 거라고 말하는데 치료자는 그것을 저의 의견이나 생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건 거식증의 목소리야” 라고 말하는 거죠.
나카무라: 그것도 옛날 방식인 것 같네요. 너무… 오래된 치료 방법이지 않나요? 조금 당황스럽네요. 일본에서는 그런 류의 치료 방식은 이제는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아, 그와 관련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책이 있는데요. ‘이야기 치료’(Narrative Therapy)와 관련한 책인데요. 이야기 치료에서는 전문가/치료자가 자신이 환자나 당사자보다 훨씬 잘 안다, 내가 다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걸 지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1980년대부터 마이클 화이트라는 사람을 시작으로 이야기 치료에 대한 책이 정말 많이 나왔는데요. ‘Not Knowing 나는 모른다’ 라는 자세로, 전문가는 당사자가 말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 그들로부터 배운다 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치료 방법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이죠.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이런 치료, 태도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금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달까요…(웃음)
일본에선 특히 ‘중독 치료’에 있어서 당사자의 의견이 정말 정말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만약 당사자가 어떤 치료자를 “이 사람 안되겠네?’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치료자로서 아웃(out)이라고 볼 정도로요.
진솔: 교수님은 섭식장애가 어떤 병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인 의견을 들려주세요.
나카무라: 마름에 가치를 두는 사회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회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크고요. 하지만 같은 사회 속에서 섭식장애가 되는 사람이 있고 되지 않는 사람이 있으므로, 거기에는 심리적인 문제, 그리고 우연 등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도 우연히 다이어트에 빠져 섭식장애가 되기도 하고, 가정환경 등이 원인으로 자신감을 잃은 사람이, 마름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다가 섭식장애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강박성 장애처럼 먹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먹을 수 없게 되는 경우, 그리고 도박 중독과 같이 다이어트(체중계의 숫자)에 집착해 다이어트를 그만둘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외, 최근 일본의 극소수 임상가들의 의견입니디만, ‘피학’이라는 관점도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지적장애나 발달장애가 있어, 폭력이나 폭언 등의 학대는 아니더라도 보이지 않는 형태로 아이가 심리적으로 방치되어(부모가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는 힘이 약해, 아이가 심리적으로 고립되는 등) 그것이 사춘기에 섭식장애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는 의견입니다.
저는 대학 교수이므로 일상적으로 만나는 섭식장애 당사자는 대학생들입니다. 그들은 발달상 혹은 사회 적응상의 큰 문제는 없지만, 마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 다이어트와 과식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자 대학생에게도 섭식장애는 나타납니다.
이런 식으로 마름에 가치를 두는 사회 환경을 전제로 하면서도, 개개인이 섭식장애를 앓거나 그 상태가 유지되는 배경은 다양합니다. 따라서 어느 것이 옳다기보다 다양한 관점을 통해 개개인의 상황을 세심하게 봐야 합니다. 거식, 과식, 구토는 하나의 표현이며 신호입니다. 그 표현이나 시그널의 뒤에 무엇이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사람의 괴로움, 삶의 어려움 등이 보이고, 그런 것들이 해소되면 자연스럽게 섭식장애 행위와 멀어지게 되고, 행여 다이어트를 그만둘 수 없거나 가끔 과식하더라도 그럭저럭 잘 생활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문장으로 말씀 드리면, 섭식장애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괴로움과 어려움의 표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는 올해 한국에서 처음 열린 섭식장애 인식주간(2월 24일~3월 2일) 행사를 준비하면서, 박지니(『삼키기 연습』의 저자) 씨가 함께 기획, 참여하였습니다.
이 기사 좋아요 9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
많이 본 기사
일다의 방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