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이 된 성폭력과 미투 사건들을 맡아 해결해 온 이은의 변호사의 기록,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2019년 가을이었다. 여성 문인 몇 분이 찾아왔다. 그 중에는 유진목 작가도 있었다. 이들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온 이유는 자신들의 일 때문이 아니었다. 이날 익숙했던 이름, ‘98년생 김현진’을 다시 듣게 되었다.
17살 현진과 아버지뻘 선생 박진성, 성폭력으로 얼룩진 시강습
현진은 2015년, 17살 고등학생이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사는 현진은 시인이 되기 위해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시 창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기댈 수 있는 것은 인터넷뿐이었다. 거기서 박진성 시인의 블로그를 알게 됐고, 한 달 온라인 시강습 비용은 12만 원이었다. 현진은 식당 일해서 혼자 자녀들을 키우는 엄마에게 걱정 끼치지 않고 대학에 가고 싶었다. 12만 원은 당시 현진이 1년 넘게 모아둔 전 재산이었다. 그 12만 원 강습료를 내고, 시인 박진성으로부터 한 달간 온라인 시강습을 받기로 했다.
좋은 기회가 온 줄 알고 한없이 설레었지만, 시강습은 시작부터 난감했다. 박진성 시인은 온라인 시강습 기간 동안 카카오 톡과 전화로 심각한 수준의 성폭력 언동을 이어갔다.
제자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시인은 거의 매일같이 카카오톡을 통해 ‘거리를 걸으며 손 잡자’, ‘애인해야지 / 내맘대로’ ‘애인합시다’ ‘여자랑 스킨쉽 해봤어요? 손잡고 키스, 포옹 심하면 섹스’ ‘선생 노노 / 선생이면서 남자’ ‘애인 안받아주면 자살할거’ ‘마음으로 섹스할 수 있는 거고 / 몸이 섹스를 해도 마음은 백지일 수 있고’ ‘시한편 참/썼는데/보여줬나?/디게 야한 시 / 섹스 이야기 / 볼래?’ ‘나는/빵현진이 먹고싶다’ 등의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서는 ‘여자는 남자 맛을 알아야 해’ 등의 말을 했다. 교복 입은 사진을 보내달라고도 했다.
가진 돈을 다 털어 넣어 시작한 온라인 시강습을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런 말을 그대로 들어주고 호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현진은 난색을 표현하며 ‘그런 말을 하지 말아달라’거나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신고하겠다’는 등의 말도 해보았지만, 별반 소용이 없었다. 성폭력 언동을 거듭하던 중년의 시인은 현진이 다니는 고등학교를 자신이 알고 있음을 표현하며, 책을 주러 학교 앞으로 찾아가겠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17살에 불과했던 현진에게 존경하는 시인이자 선생님이었던 사람의 이런 말들은 실망 정도가 아니라, 이루 말할 수 없이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웠다.
현진은 절친에게 매일같이 고민을 얘기하고 짜증을 토로했다. 자신과 오빠의 양육을 홀로 짊어지고 힘들게 일하는 엄마에게는 털어놓기 어려운 고충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이, 꿈에 다가가기 위해 내디딘 첫발자국이, 감당하기 어려운 성폭력으로 얼룩졌다. 결국 현진은 온라인상에서 행해지는 지속적 성폭력을 견딜 수 없어, 포기하기 힘들었던 시강습을 끝내 중단했다.
‘꽃뱀 무고녀’로 몰린 현진, 시인의 꿈을 접다
몇 달쯤 지나서 박진성 시인이 시강습을 해주겠다고 말을 걸어오기도 했지만, 현진은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 입학시험을 코앞에 둔 즈음, 습작한 시를 점검하고 조언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현진이 먼저 연락을 했다. 매일 같이 고등학생 현진에게 애인이 되어달라 반복하던 시인은 이번엔 답이 없었다. 그러나 현진으로선 원망스럽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한 해 전에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다가 겪었던 성폭력과 그때 받은 성적 불쾌감을 떠올렸고, 문예창작과를 가는 것이나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해 깊이 회의했다. 현진은 시를 쓰는 것 자체를 놓아버렸다.
엄마와 담임은 다른 전공학과를 권했고, 현진은 그리로 진학을 결심했다. 그 즈음, 사회적으로 미투 운동이 한창이었다. 젊은 현진도 진심을 담아 동참했다.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며. 2016년 10월, 트위터에 가해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저 자신이 입은 피해들에 대하여 폭로했다.
현진의 글에는 가해자의 실명이 없었지만, 가해자만큼은 그 일이 사실이고 그 행위자가 자신임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인지 글을 게시하자 박진성 시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모두가 보는 곳에 자신이 겪은 일을 적은 것은 힘이 셌다. 중년 남성의 사귀어달라는 집요한 매달림에, 여고생이 ‘아청법 위반이다’, ‘남자가 아니라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와 같은 극단적인 말들로 거절을 표현해도 막을 수 없고 사과받지 못했는데, 글이 게시되자 가해자가 잘못을 반성한다며 사과해왔다. 하지만 가해자의 사과 말에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시인 박진성은 자신의 이름만큼은 밝히지 말아달라 했다. 무릎 꿇고 사과하겠다, 시강습을 해주겠다, 치료비를 내겠다, 말했다.
현진이 재차 거절했지만, 사과의 말을 떠안기다시피 늘어놓으며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구하는 말이 끝없이 이어졌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던 현진은 가해자가 자신의 연락처를 아는 것도 무서웠고, 이런 말이 무한반복되는 대화도 싫었다. 애초에 현진이 글을 게시했던 이유는 자신이 입은 피해를 공유하고 피해자들과 연대하겠다는 지지를 표현했던 것이지, 대가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계속 뭘 해주겠다며 반복하는 가해자의 말을 거절하고 대화를 그만하겠다는 뜻으로 ‘차라리 주시려면 돈이 좋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돈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가해자는 이미 무료 시강습이니, 치료비니 하는 것들로 경제적 혜택을 주겠다고 했지만, 현진은 이를 모두 거절했고 실제 아무것도 요구한 바 없었다.
가해자가 요구한 침묵을 거절한 대가는 혹독했다. 가해자의 성폭력 언어들, 그리고 피해자에게 침묵을 요구한 언어들이 길에 싸놓은 똥처럼 버젓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진성 시인은 온라인상에 ‘98년생 김현진’이 거짓말로 무고를 저지른 범죄자라면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 그리곤 카카오톡 대화를 짜깁기해서, 현진이 금전을 요구했다면서 되려 오명을 뒤집어씌웠다. 때론 직접, 때론 변호사라는 지인을 동원해 현진에게 거짓 자백과 사과를 종용했다. 심지어 현진의 이름과 나이, 고향, 사진까지 무단으로 공개했다. 그 기간이 수년이었다.
피해자는 자신과 관련한 소송이 진행되는지조차 몰라 언론사 상대 승전보 올린 가해자, 끝내 현진에게도 소송 제기
스무 살 대학생 피해자를 졸지에 ‘꽃뱀 무고녀’로 둔갑시킨 박진성 시인은, 한국일보에 과거 자신에 대한 미투 관련 보도가 허위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정작 현진은 1심 재판 당시 소송이 진행되는지조차 몰랐다. 당연히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피력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피해자가 빠진 가해자와 언론사 간의 민사소송 1심에서는 ‘언론사의 보도가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 판단했다. 법원의 판결은 무성의했다. 17살의 일면식도 없는 고등학생에게 오물처럼 투척된 성폭력 언어들이 증거로 제출됐음에도, 그 법원은 현진의 폭로가 허위라 했다. 그런 사건이 항소심에서 조정으로 종결됐다. 여전히 그 과정에 현진의 존재는 빠져있었다.
잘못된 판결의 후유증은 처참했다. 반여성주의를 표방하는 남초집단 진영에서 박진성 시인은 ‘가짜 미투의 희생양’이라는 상징성이 주어졌다. 종래에 박진성 시인은 현진의 미투가 거짓으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불법행위니 3천만 원을 배상하라면서, 먼저 소송을 제기했다.
여성 문인들, 피해자 위해 십시일반 소송비 모금하며 결집
2019년 10월 17일, 제기된 소장을 받았을 당시 현진은 21살의 대학 3학년 학생이었고, 가난했다. 힘든 엄마 어깨에 무거운 짐을 더 얹을까 봐 아무 내색 없이 억울하고 긴 피해의 터널을 지나왔는데, 이번엔 가해자로부터 수천만 원의 배상을 요구받은 것이다. 피해자는 좌절했다. 너무 막막한 마음에, 이런 사정을 트위터에 알렸다. 그때 현진의 손을 잡아준 첫 번째 사람이 바로 유진목 작가다.
유진목 작가는 박진성 시인과 같은 대학교 문학동아리 선후배 관계였는데, 스무 살 시절 일방적 구애와 괴롭힘에 시달렸고, 이후로도 두 사람이 사귀었다는 거짓말에 시달렸다. 박진성 시인은 유진목 시인이 쓴 문단내 성폭력을 고발한 소설 ⌜혐오사전」을 보고, 그 글에 나오는 가해자가 한 짓을 자기가 하지 않았으나 그 가해자는 자기가 틀림없다며 유진목 시인을 괴롭혔다. 그는 SNS에 유진목 작가와 연인관계였다면서 유 작가가 거짓말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줄기차게 글을 올렸다. 그런 일이 수년간 이어지며 유 작가의 고통은 극에 달해있었다. 유진목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 자신에게 일방적 구애를 하며 못살게 굴던 가해자가 20년이 지난 후까지 계속 연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자신이 쓴 소설조차 간섭하는 형국이었다.
처음 피해를 입을 당시엔 19살 대학교 새내기였지만, 이제는 어엿한 40대 문인이었다. 유진목 작가는 박진성 시인을 고소했다. 그런데 대전지검은 연인설을 주장하는 가해자에게 연인임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대신, 피해자에게 연인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유진목 작가가 바라는 것은 더이상 훼손당하지 않는 것, 사과받는 것이 전부였다. 대전지검에서 형사조정이 있던 날, 박진성 시인은 사과는커녕 정문 앞에서 남편과 변호사와 함께 귀가하는 유 작가를 향해 고함을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 상황을 상상조차 못한 데다가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나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 줄 알고 지나쳐 갈뻔하다가 유진목 작가 말을 듣고서야 그가 누군인지 알았다.
유진목 작가의 남편이 박진성 시인에게 항의하자, 박진성 시인은 그에게 욕설을 했다. 나는 유 작가에게 시비장면을 촬영하도록 하고 112에 신고했다. 박진성 시인으로부터 여러 피해를 입었지만, 유진목 작가가 처음으로 그가 형사처벌 받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에 대한 욕설이었다.(이후 유진목 작가는 박진성 시인을 대상으로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해 싸웠다. 나는 그 수년의 힘겨운 과정을 함께 걸었다.)
그런 유진목 작가는 현진이 입은 피해가 무엇인지, 어떤 고통을 겪어왔을지, 얼마나 막막하고 힘들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유진목 작가는 현진이 처한 상황을 여성 문인들에게 알리는 데 앞장섰다. 법원이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인터넷 상에서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보는 사람들이 ‘가짜 미투’ 운운해도, 여성 문인들은 체감하고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이들은 십시일반 모금에 나섰다.
그렇게 유진목 씨와 여성 문인들이 현진을 위해 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왔을 때, 또 다른 ‘함께’가 시작되었다. 출발은 충북 영동지원이었다. 피해자에게 제기된 소송에 대응하고, 반소를 제기했다. 모금에 동참해 소송비를 댄 여성 문인들이 조용히 먼 길을 함께 했다. 소송이 시작된 후 해를 두 번이나 넘기도록 영동지원에선 혼자인 법이 없었다. 그런 가슴 뜨거운 소송 말미엔 재판부에서 현진과 박진성 시인 모두에 대한 당사자신문을 허락했다.
21살 대학생 현진과 동행한 여성 문인들 수년에 걸친 억울했던 시간의 ‘반전’ 맞아
4월, 꽃이 만발한 영동에서 법정이 후끈했다. 이날 박진성 시인은 신문하는 원고의 변호사가 서 있는 폼이 마음에 안 든다며 시비를 걸어대더니, 재판이 끝나고는 담뱃불을 손에 들고 “X발, 니가 변호사야?”라며 달려들었다. 다행히 군인 출신 무술유단자인 비서가 재빨리 가로막고 제지했다. 참관왔던 여성 문인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위태로운 상황은 그쯤에서 정리됐다.
기존에 잘못 내려진 판결이 있고, 그에 근거해 줄줄이 이어진 판결들이 있었지만, 종래에 세상은 사실에 근거해 간절하게 싸우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다. 영동지원에서는 현진의 손을 들어주었다. 억울한 날들은 2021년 봄에 영동지원의 고심 어린 판결을 시작으로 반전되기 시작했다.
현진이 겪은 ‘가짜 미투’의 오명, 도리어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주던 ‘가짜 미투의 희생양’ 프레임이 깨지면서, 현진과 함께 움츠러들었던 이들이 힘을 냈다. 민사 2심 진행과 가해자 형사 고소를 위한 모금에 더욱 힘이 실렸다. 우리는 그렇게 민사법정을 거쳐 수사기관으로 갔다. 안타깝게도 공소시효가 도과한 보다 죄질이 나쁜 행위들이 있었지만, 고소할 수 있는 시효가 남은 행위들도 있었다. 그런 속에서도 박진성 시인은 피해자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온라인상에 짜깁기한 카카오톡을 올려 현진과 연인이었다 주장하며, 현진을 비난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박진성 시인이 현진에게 적반하장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패소한 직후, 유진목 작가에게 입힌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등이 인정됐다. 또한 1년 가까이 시간이 걸렸지만, 현진의 미투가 허위라며 현진을 ‘무고 범죄자’라고 줄창 게시한 행위가 되려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인정되어 대전지법에서 실형이 선고되었다. 다만 집행이 유예되었고, 300시간이 넘는 사회봉사 명령이 부가되었다. 아름다운 시를 쓰는 사람이라 강조하며 반성을 이야기하던 시인은 민사사건도, 형사사건도 항소했다. 그 사이 박진성 시인이 유진목 작가에게 저지른 명예훼손은 항소심에서도 잘못이 인정되었다.
‘가짜 미투’라는 허상이 필요해 공조한 박진성의 사람들 그 벽을 허문 ‘98년생 김현진’의 사람들
유진목 작가가 피해자임을 인정받고 더이상 훼손받지 않을 수 있기까지 5년이 걸렸고, 현진은 4년째 아직 그 날들을 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긴 과정을 견디게 해준 내성은, 그보다 더 오래 더 깊이 받은 시달림이 낳았다.
박진성 시인으로부터 입은 피해도 있었지만, 반성하지 않고 궤변을 늘어놓는 가해자에 이입해서 피해자들을 의심하는 세간의 눈, 혀, 손가락은 피해자들에게 가해자의 가해 이상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박진성 시인에 대한 ‘가짜 미투의 희생양’이라는 상징과, ‘가짜 미투’라는 허상은 박 시인 혼자 만든 게 아니다. 그동안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무례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지위에 있던 사람들 상당수는, 이제껏 해오던 것을 바꾸어 앞으로 평등과 존중을 위해 고려 해야 하는 것들을 불편해하고 반동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미투는 거추장스럽고 위험한 것이었다. 이들은 피해자들의 이야기 중 상당수가 거짓이거나 과장됐다고 믿고 싶어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박진성 시인의 허위 미투 주장은 솔깃했을 것이다. 거기에 피해자들의 미투가 허위라는 법원의 판결문은 마술피리가 되었다. 사람들에게 그 재판에 정작 피해자가 빠져있다는 사실이나, 그 판결문과 상치되는 카카오톡 대화 전문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박진성 시인에 대한 ‘가짜 미투의 희생양’ 프레임은 가짜 미투 희생양의 현신이 필요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벽은 피해자들이 용기 내고, 누군가를 위해 모금에 나서 소송비용을 마련하고, 그러고도 수년간의 싸움을 하고 나서야 허물어졌다. 그 벽이 무너지자, 그 벽을 만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허상 만들기를 탓하는 대신, 슬쩍 자신들의 어리석고 거짓된 우상화를 박진성 시인 개인만의 일인 양 탓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 공고하고 민망한 프레임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공조한 결과물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박진성 시인의 미성년자 피해자이자 최초의 미투 폭로자였던 현진이 억울한 피해자로, 그의 싸움이 피해자의 고군분투였음이 인정되고 세상을 향해 알려졌다. 하지만 피폭당하듯, 성폭력 피해자인데도 무고 가해자 취급을 당하며 기울어졌던 현진의 삶은 이제야 비로소 제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세상은 금방 또 피해자의 아픔을 잊을 것이고 가해자의 악행도 잊을 것이다. 쉽게 망각한 세상 속에서 현진은 오랜 시간 상처를 딛고 회복하느라 느리게 걸어갈 것이다.
현진이 겪은 고통, 시간이 걸렸지만 함께 힘을 모아 다시 일어섰던 과정, 그리고 느리더라도 바로 걸어가는 피해자의 삶은 조용히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에게 상처를 준 세상을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걷게 할 것이다. 그 곁에서 영향받으며 함께 걸어 좋았다. 세상의 수많은 현진들을 응원하며, 이제 가해자가 오명으로 덧씌웠던 98년생 김현진 대신 용감한 그 피해자의 이름 ‘현진’을 다시 불러본다.
[필자 소개] 이은의. 2014년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후, 서울 서초동 법원검찰청 코앞에 ‘이은의 법률사무소’를 열고 지금까지 여러 성폭력, 성차별 사건들을 다뤄왔다. 특별한 정의와 굉장한 진보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게 처리되는 세상을, 합리적인 사고와 담론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어느새 9년째 말하고 글 쓰며 싸우는 최전방에서 세상을 계속 배워가는 중이다. 저서로 『삼성을 살다』, 『예민해도 괜찮아』, 『불편할 준비』, 『상냥한 폭력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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