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평등으로 가는 길, 첫 단추가 꿰어졌다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 항소심 승리 축하파티

박주연 | 기사입력 2023/04/01 [16:05]

혼인평등으로 가는 길, 첫 단추가 꿰어졌다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 항소심 승리 축하파티

박주연 | 입력 : 2023/04/01 [16:05]

올해 결혼 5년 차에 접어든 소성욱, 김용민 부부는 2021년 2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냈다.(관련 기사: 차별에 맞선 어느 부부의 ‘특별한’ 용기 https://ldaro.com/9211) 작년 1월 1심에선 “혼인은 남녀 간의 결합”이라며 패소 판결이 나왔다. 시대 흐름과도 맞지 않는 결과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부부는 항소했다.

 

그리고 지난 2월 21일, 2심(서울고등법원 2022누32797)에선 원고 승소 판결이 났다. 판사는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한 보험료 부과처분을 취소한다. 소송 총 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는 세 줄의 주문과 함께 판결을 마무리했다. 한국 사회가 혼인평등으로 가는 길을 한껏 더 밝히는 중요한 판결이었다. 소성욱, 김용민 부부가 현실에 지지 않고 용기 있게 발을 내디딘 결과이기도 하다.

 

▲ 3월 24일 열린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 항소심 승리 축하파티에 참여한 이들이 함께 케이크를 놓고 즐거워하고 있다. 왼쪽부터 호림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류민희 변호사, 소성욱&김용민 씨, 길벗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이현정 수어통역사  ©일다

 

승리의 기쁨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축하파티가 24일(금) 저녁, 종로에 위치한 바 비바에서 열렸다. 소송 당사자인 소성욱, 김용민 부부와 변호인단, 인권활동가들 그리고 이 소송에 응원과 지지를 보탠 이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소송과 관련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모두의 혼인평등을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계획까지 엿볼 수 있었다.

 

“남아 있는 차별들도 언젠가는 폐지될 것이다”

 

이번 소송 변호인단 중 한 명인 류민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는 “그래서 이제 무엇이 바뀌는지 가장 궁금하실텐데, 아쉽게도 실질적으로 변화한 것은 아직 없다”고 했다. 원고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상고를 했기 때문에 이 판결이 확정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동성부부를 사실혼이라고 인정한 건 아니고, 동성배우자가 피부양자로 등록되지 않는 것이 차별이라고 판결한 것”이기에 대단히 급진적인 판결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동성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이라고 확실히 밝혔다”는 점이고, “지금 법률적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물꼬를 연 판결”이라는 사실이다.

 

판사는 원고인 건강보험공단이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결합 상대방이 본질적으로 동일하지 않다는 주장만 반복할 뿐, 이 사건 차별대우를 정당화하는 합리적 이유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주장-입증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이 사건 차별대우는 평등의 원칙에 위반하는 자의적 차별로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또한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각국에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성애와 같은 성적지향 소수자들에 대한 명시적, 묵시적 차별이 존재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설명하며, “성적지향으로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그에 따라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기존의 차별들은 국제사회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으며, 남아 있는 차별들도 언젠가는 폐지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 2023년 2월 21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열린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 2심 선고 기자회견’ 사진 (출처: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네트워크 페이스북)

 

“누구나 어떠한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류민희 변호사는 판결문의 의미를 짚으며, “‘남아 있는 차별도 폐지될 것, 법원의 가장 큰 책무가 소수자의 보호’라는 식의 말을 넣었다는 건, 이후 이 판결을 뒤집지 못하게 하기 위해 (판사가) 힘주어 쓴 것 같다”고 분석했다. 류 변호사 또한 “이 판결의 사회적 의미를 계속 곱씹게 됐다”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동창, 선생님, 부동산대표 등 축하가 끊이지 않아

 

2심 판결이 나오던 날 재판장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던 소성욱, 김용민 부부는 판사의 3줄 판결을 듣고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기뻐하는 변호인단과 활동가들 얼굴을 보고 나서야 승소를 실감하게 됐다. 기자회견장에서 김용민 씨는 1심 때와 다른 기쁨의 눈물을 흠뻑 흘렸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언론 취재와 인터뷰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해외 언론의 관심도 높았다.

 

또한 주변 지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졸업하고 오랜 기간 연락이 없었던 학교 동창, 친구 그리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동산 공인중개사 대표까지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소성욱 씨는 “특별히 커밍아웃을 하진 않았는데, (부동산 대표도) 알고 있었던 걸까요?”라며 웃었다. “진짜 동네방네가 다 축하해주더라고요. 좀 독특했던 건, 축하 인사를 전하면서 ‘고맙다’고 얘기한 사람이 많았다는 거에요. 그리고 ‘나 또한 행복하다’는 말도요. 그 때 실감했어요. 이 일이 우리 부부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의 일이라는 걸요.”

 

류민희 변호사도 판결 이후 주변인들로부터 많은 축하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사회가 절망적이라 절대 바뀔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판결을 보고 희망이 생겼다, 이렇게 기분 좋은 판결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얘기 등”으로 가득했다.

 

물론 인터넷 상에는 악플도 있었다. 우연히 ‘저 부부를 죽이고 싶다’는 댓글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소성욱 씨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끔찍한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무서워서 한 달 정도 좀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익명의 인터넷 댓글에서만” 존재했다. 부부가 살아가는 현장에선 “응원하고 지지하고, 함께 싸우겠다고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일처럼 행복해 하는 모습도 봤다.

 

▲ 축하파티 행사장에 걸려 있던 “사랑은 이긴다! 혼인평등으로 가자!” 현수막  ©일다

 

이 모든 과정이 소중하고, 특별했다. 소성욱, 김용민 부부에게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그러했다는 걸, 축하파티의 자리에서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혼인평등을 위해 한발 더!

 

이번 승리로 마무리됐으면 좋았겠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바로 상고를 결정했다. 공단 측은 변호인단도 더 늘렸다. 류민희 변호사는 이에 대해 분통을 터트렸다. “1심에선 소송 수행자 2명만 있었다가, 2심에선 정부 법무공단에 의뢰해서 변호인을 더 늘렸는데, 이젠 대형 로펌의 변호사 5명을 선임”했다는 것. 심지어 이 로펌은 “2020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기독교 방송이 차별금지법과 동성애에 대해 왜곡된 발언을 하였다’는 이유로 주의조치를 준 것에 대해, 기독교 방송을 대리하여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인 곳”이기도 하다. 또 “지난 2022년 5월 서울 학생인권조례를 비판하며 ‘성소수자 차별금지 교육은 동성애를 포함한 조기 성교육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발언”을 한 전 헌법재판관 이정미 변호사가 소속된 곳이다. 이정미 변호사는 이번에 선임된 변호사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류민희 변호사는 “공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우리의 세금을 가지고, 성소수자 차별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로펌에 변호를 의뢰해 이런 차별적인 소송을 한다는 게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류 변호사는 ‘걱정 없다’고 했다. 항소심 판결문에서 “(원고 측이) 이 사건 차별대우를 정당화하는 합리적 이유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주장·입증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듯이, “사실 차별은 방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류 변호사는 “대한민국 헌법과 기본권이 우리 편이기 때문에, (판결이) 뒤집힐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당당히 밝혔다. 다만 “조속히 이 재판을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덧붙였다.

 

▲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 항소심 승리 축하파티에서 앞으로의 혼인평등운동 계획을 발표 중인 호림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박미애 수어통역사  ©일다

 

소성욱, 김용민 부부의 친구이자 동료이며 이번 소송의 연대자로 활동했던 호림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다음 단계’ 계획도 발표했다. 바로 ‘혼인평등운동을 통한 혼인평등권 법제화’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성별 그리고 배우자의 성별과 상관없이 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활동하는 것, 그 법제화의 날을 앞당긴다는 목표”를 가지고 대중캠페인 등의 활동을 이어나간다는 거다.

 

호림 활동가는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성소수자 당사자일 경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커밍아웃을 하거나, 자신의 일상을 주변인에게 전하는 것,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지지와 연대를 표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동성혼 법제화 법안도 발의하고 관련 소송도 제기할 예정이지만, 그런 일이 가능하기 위해선 시민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나부터 조금씩 나아가야만 세상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 호림 활동가는 지역구 정치인들과의 면담 추진 등 다양한 방식의 활동을 예정 중이라며 많은 참여를 당부했다.

 

세상이 너무 더디게 변하는 것 같아 절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때때로 미래는 성큼 다가와 있기도 하다. 호림 활동가는 이번 소송을 함께하며 기억나는 장면으로, 자신의 레즈비언 커플 친구가 항소심 판결을 보러 온 날을 꼽았다. 그 커플은 아이를 출산해 키우기로 결심하고 임신에 성공했다. 항소심 판결 날은 출산이 3주 남은 상황이었다. “출산을 앞둔 여자가 태교하듯이 배를 만지며 승소 기자회견을 보는 모습을 보는데, 이게 정말 현실인가? 싶더라고요. 그 순간 너무 행복했어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행복을 찾아나가는 게 결국 우리 모두가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길과 연결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어서 정말 의미 깊었어요.”

 

3심 일정은 아직 미정이고 판결까진 또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시 한번 미래로 향하는 역사가 쓰여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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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하합니다 2023/04/03 [17:40] 수정 | 삭제
  • 항소심 승소를 축하 드립니다. 공공기관이 국민 세금 들여서 차별하면 쓰나
  • 메주 2023/04/02 [12:24] 수정 | 삭제
  • 와 이거 진짜 중요한 소송인데... 대법원이 잘 판단해서 이정표를 세워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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