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바르게 하는 ‘요가’, 사회를 바르게 하는 ‘운동’

[인터뷰] 한국콘트롤데이타사 노동조합원 출신 이정화(하)

변정정희 | 기사입력 2023/04/05 [18:43]

몸을 바르게 하는 ‘요가’, 사회를 바르게 하는 ‘운동’

[인터뷰] 한국콘트롤데이타사 노동조합원 출신 이정화(하)

변정정희 | 입력 : 2023/04/05 [18:43]

반세기 전, 당시 “잘 나가는” 외국계 기업 한국콘트롤데이타사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의 비율은 95%에 달했다. 1970년대 컴퓨터부품 제조기업이었던 회사는 “예민한 손”을 가진 한국 여성노동자의 노동력으로 이윤을 창출하고 있었음에도, 극소수였던 남성노동자와의 임금격차는 심각했다. “같은 시기에 입사한 남성노동자는 동일 학력, 경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간부로 승진되고, 임금도 올랐고, 남성만 받는 수당도 따로 있었다.”

 

임금차별에 저항하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임금인상, 결혼퇴직 반대, 임신퇴직 반대” 투쟁을 했다. 또, 직업병을 조사해서 유해 작업장 근무환경을 바꾸는 등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후 사측의 해고와 폐업, 거기다 사측 사주를 받은 남성노동자들(구사대)에 의한 집단폭력 사태 등으로 노조는 와해됐다. 그런 여성노동자들의 살아있는 운동사를 우연히 접한 필자가 당시 노동조합에서 활약했던 활동가를 인터뷰했다. –편집자 주-

 

▲ 전사 자세를 취하며 요가 하는 이정화 선생님. (인터뷰이 제공)

 

▷ 전사 자세 - 해고와 파업, 폐업을 지나, 겁 없이 싸우는

 

“‘전사 자세’는 에너지를 북돋는 자세입니다. 서서 다리를 앞뒤로 넓게 벌리고 팔을 위로 뻗습니다. 이 자세는 근육을 늘리고 강화합니다. 마치 싸움에 나선 전사처럼.”

 

1980년대가 되었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신군부는 운동하는 이들을 본격적으로 탄압했다. 한국콘트롤데이타사 노동조합도 그 중 하나였다. 1982년 2월 노조는 단체교섭에 실패하자 3일간 태업했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이지만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 지도부 6명을 해고했다. 이틀 뒤 노조는 파업을 선언했다. 전두환 정권에서 첫 파업이었다.

 

“언니들이 해고당하고 저희가 마지막 총대를 멘 거죠. 처음에는 뭐야? 뭐야? 이랬지만 싸우면서 결속력이 생겼어요.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 그동안의 투쟁 경험이 딱 모인 거죠.”

 

파업은 8박 9일 동안 계속됐다. 회사는 자랑하던 최신 냉난방시설을 이용해 강제 추위를 만들었다. 임산부 조합원들이 하혈하며 병원으로 실려 갔다. 경찰은 공장을 둘러싸 조합원들을 고립시키고 가족과 이웃을 찾아가 협박했다. 정화의 동네 이장에게도 그녀 가족이 ‘빨갱이’라며 위협을 가했다. 칼바람 같은 파업이 끝났을 때 임금인상은 이뤘지만, 해고자 복직은 되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총회를 열어 복직 투쟁을 결의했다.

 

▲ 한국콘트롤데이타사 공장에서 함께 일하고 성장하고 운동했던 동료들. (콘트롤데이타 코리아 노동조합 운동사 편찬위원회 제공)

 

결국 미국 본사에서 부사장 2명이 한국을 찾아왔다. 노조 지도부는 부사장들과 협상 회의를 시작했다. 쉽게 끝이 나지 않자 조합원들은 퇴근과 동시에 회의실로 몰려갔다. 부사장들은 몰래 경찰을 불렀다. 조합원 49명은 새벽에 영문도 모른 채 연행되었고, 언론은 이를 ‘미국인 감금 사건’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는 뉴욕타임스지까지 실렸다.

 

“미국 사람들이 왔을 때, 전 총무부 사무실에 있었어요. 그때 영어로 ‘폴리스’라고 말하는 걸 들은 거 같아요. 근데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영어라 긴가민가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분위기가 그렇잖아요. 그래서 언니들한테 말하지 못했어요.”

 

40년이 지나기까지 정화는 자신 때문에 모두 경찰에 끌려간 거 같아 혼자 끙끙 앓았다. 동지들을 잡아간 것은 본사에 몰래 영어로 전화한 미국 부사장들과 이를 통역해 경찰을 부른 한국 경영진인데, 함께 잡혀간 스물다섯 정화가 대신 가슴앓이를 했다. 그날 분명히 듣고 똑똑히 말했다고 한들 흐름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여린 정화는 점점 더 강해지는 상대와 싸우며 전사 자세를 취했다.

 

부사장들이 미국으로 돌아간 직후, 본사는 한국 공장 철수를 결정했다. 노조는 노동부를 찾아갔다.

 

“당시 원풍(1970년대 대표적으로 활동한 원풍모방 노동조합)이 강했거든요. 롤모델이죠. 원풍이 노동부를 한두 번인가 쳐들어갔대요. 그래서 우리도 ‘한 번 가자!’ 했죠.”

 

민원실에서 농성하던 조합원 중 한 명이 장관을 만나러 갔다. 간부도 아닌 평범한 조합원이었다. 맵시 있는 옷차림을 한 세련된 여성이 계단을 오르자 경비원들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파업하는 ‘공순이’는 어떤 이미지였을까? 경찰을 뚫고 어려움 없이 장관실까지 들어갔지만, 뒤늦게 끌려 나왔다. 농성하던 조합원들도 연행되었다. 그 중 3명은 징역을, 정화를 비롯한 12명은 구류(1일 이상 30일 미만 동안 교도소나 경찰서 유치장에 가두어 두는 형벌)를 살았다. 모두 겁이 없었다.

 

▲ 1982년도 콘트롤데이타사의 한국 공장 철수 반대 내용을 담은 노조 회보. (콘트롤데이타 코리아 노동조합 운동사 편찬위 제공)

 

“그때 남자들이 회사 사람들을 회유했어요. ‘노조 때문에 회사가 철수한다’고 하니까 노조 아닌 여자들이 ‘맞다! 조합이 너무 강해서 미국 사람들이 철수하는 거다’ 그렇게 판이 벌어졌어요. 나중에 남자들이 깽판 부리고 그랬죠.”

 

사내 남성 노동자는 약 70명이었다. 여성은 장기근속해도 생산직에 머물렀는데, 같은 시기 입사한 동일 학력 남성은 간부로 승진되고, 임금도 올랐다. 남성만 받는 수당도 있었다. 그런 남성들이 구사대(회사 측이 만든 노동조합 파괴자)가 되어 여성 조합원들에게 집단폭력을 행사했다. 그들의 폭행으로 5인의 조합원이 입원했고, 임산부 조합원은 유산했다. 이후에도 성기를 드러내며 오줌을 뿌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경찰은 현장에 있었지만 관여하지 않았다.

 

현장 투쟁이 어려워지자 조합원들은 한강성당과 명동성당에 모여 운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언론도 노조 편이 아니었다. KBS와 MBC는 50분짜리 특집방송 ‘도산이 침투하면 도산한다’를 3편이나 만들어 방영했다. TV 9시 뉴스는 ’우리 회사는 우리가 지킨다’ 현수막을 든 구사대의 행진 장면을 2주 동안이나 보도했다. 노동자가 투쟁하면 기업이 망한다는 여론을 만들어간 것이다. 결국 성당 농성이 마지막이 되었다.

 

“저랑 몇 명은 부당한 폐업에 반대하려고 퇴직금 안 타고 집회할 때마다 가서 ‘콘트롤데이타 다국적 기업 철수 반대한다’, ‘노동자들을 짓밟고 있다’ 홍보하면서 적극적으로 다녔어요.”

 

이후 노동조합은 1년 넘게 운동을 계속했다. 정화가 반장으로 활동한 탈춤반은 대학교 순회공연을 하며 가장 오랫동안 전사 자세를 유지했다.

 

▷ 삼각 자세 - 운동하며 운동하는 여자, 삶의 균형을 바르게 잡는

 

“서서 팔다리를 쭉 뻗어 몸을 삼각형 형태로 만듭니다.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게 고루 힘을 내는 ‘삼각 자세’는 어렵지만, 균형감각을 길러주는데 좋은 자세입니다.”

 

▲ 삼각 자세를 취하며 요가 하는 이정화 선생님. (인터뷰이 제공)

 

“콘트롤은 마무리된 상태고 각자 삶을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있었죠. 벌써 스물여섯 살이었어요. 결혼 나이인 거예요. 제가 전환할 방법이 결혼밖에 없었거든요. 근데 남자가 없잖아요. 어느 날 직장도 없이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왔다 갔다가 하니까 엄마가 막 욕을 하는 거죠. ‘니 나이가 지금 몇 인데 시집갈 생각도 안 하고 날마다 사내놈인 것처럼 껄렁껄렁하고 다니냐?’”

 

회사가 끝났다고 삶도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삶을 전환하는 방법이 결혼만 있는 것도 아니다. 조합원들은 각자 삶을 개척했다. 조직을 만들고, 대학에 진학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노동운동을 계속하고 싶었던 정화는 봉제를 배워 청계피복노동조합에 들어갔다. 다른 현장과 연대하며 소그룹 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소개받았다. 운동하는 여자가 운동하는 동지를 만나 운동하는 삶을 꾸린 것이다. 시부모를 모시고 3남매를 키우는 동안, 남편은 2번 구속되었고, 정화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한국의 양심수들을 석방하기 위한 인권단체)에서 활동했다. 공동육아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새싹방 탁아소를 운영했고 생활협동조합을 꾸렸다. 자녀들이 성장하자 방송통신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는 동시에 요가를 배워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운동하느라 둘째를 제대로 못 돌봐서 그런지 중학생 때 사회성이 떨어지더라고요. 올케가 요가선생님을 소개해줬어요. 오빠 부부처럼 농민운동 하는 분이었어요. 둘째는 요가가 잘 안 맞아서 그만뒀는데, 저는 잘 맞더라고요. 더 공부해보라고 권유해서 지도자과정을 등록했어요. 첫 봉사활동이 노인복지센터였는데, 선호도가 제일 높았대요. 열심히 하니까 다른 일자리가 계속 열리더라고요.”

 

운동하던 정화는 이제 요가를 통해 다시 운동한다. 힘없는 노인들을 만나고, 소외된 장애인들을 만난다. 정화에게 요가는 몸과 삶과 사회를 바르게 하는 운동이다.

 

“운동을 안 했고, 노조를 안 했으면 평범한 주부가 됐겠죠? 그때 활동을 했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 요가 강사로 일하는 거 같아요. 제 한계가 어딘지 모르지만, 하는 데까지 하고 싶어요. 요가는 자기를 바라보고 삶을 바로 세워가는 건데 안내하는 역할이 있으면 좋잖아요.”

 

물론 조합원 출신 중에는 평범한 주부도 있다. 평범한 요가 강사가 있는 것처럼. 시의원이 되어 정치적 목소리를 내거나, 시민단체장이 되어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각자 자리에서 평범하게 사는 조합원 출신이 더 많다. 정화는 자신이 좀 더 활달하고 영리했다면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앞에 나서는 사람만큼 중간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가 공부를 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게 되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주민들이랑 같이하는 게 좋아요. 진짜예요. 전 진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최근 정화는 다른 체육센터에서 부당해고를 당했다. 소식을 들은 회원들이 복직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할 때 정화는 자꾸 회원을 조합원으로 바꿔 불렀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연대하는 마음이 똑같기 때문일 것이다.

 

“노조 활동과 연속에 있는 것 같아요. 나라의 비리가 있을 때 이건 아니지, 뉴스를 봐도 저건 아니지, 생각하죠. 촛불시위도 하고, 집회도 참여하는데, 나이가 있으니 옛날처럼 못하지만, 노조의 연장이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 정화는 이태원에 다녀왔다. 천주교 신자인 그녀는 추모 미사를 드리고 참사 공간을 여러 번 돌았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걸음이었을 것이다. 66세 정화는 지금도 삶 속에서 운동(EXERCISE:신체 단련)하며 운동(MOVEMENT:사회 활동)하고 있다.

 

▷ 송장 자세 - 청춘에서 노년으로, 가만히 깨어있는

 

“요가의 마무리는 ‘송장 자세’입니다. 말 그대로 죽은 시체와 같이 누워 있습니다. 쉬워 보이지만, 잠들지 않고 깨어서 의식을 계속 유지해야 하므로 가장 어려운 자세입니다.”

 

▲ 요가의 마무리, 송장 자세.

 

“큰딸이 출판기념회 때 ‘엄마가 항상 큰 가족을 이끌면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책임감 있게 계속 공부하고 이런 모습이 너무 좋고, 과연 내가 엄마 나이가 될 때 어떤 모습일지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정화는 2021년 『어둠의 시대 불꽃이 되어』에 이어 2022년 『금수강산 빌려주고 머슴살이 웬 말이냐?』라는 노동조합 관련 책을 공동 저자로 냈다. 책을 쓸 정도로 열심히 운동했지만, 무슨 책인지 물었을 때 한동안 답을 피했다. 나중에 다시 물으니 ‘요가 선생님이 공순이’라고 알려지는 게 창피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보다 사회가 그렇게 보기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노조 할 때 일제강점기 여성노동운동 책을 진짜 감명 깊게 읽었어요. 그게 일제와의 싸움이면서 자기 주권을 찾는 이야기잖아요. 이 책도 그렇게 읽히면 좋겠어요. 언니들이 이렇게 살았다. 우리 죽지 않았다.”

 

정화는 이제 20대가 아니다. 전사 자세를 취하지도 않고, 싸우던 대상도 사라졌다. 70대를 바라보는 요즘은 가만히 멈춰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송장 자세처럼 잠들지 않고 깨어 의식을 유지하고 있다. 아니, 유지하려고 오늘도 운동한다.

 

참, 제가 선생님께 배우는 요가가 ‘아헹가 요가’(Iyengar Yoga)라고 말씀 드렸나요? 속도를 내 빨리 하는 것보다 천천히 하더라도 바르게 하는 게 중요한 요가인데요. 이처럼 주어진 길을 곧고 바르게 가기 위해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는 이정화 선생님과 평범한 우리들의 삶을 응원합니다. 나마스떼!

 

[필자 소개] 변정정희. 익천문화재단 르포문학교실 수료. 주로 TV 다큐멘터리, 라디오를 비롯한 방송에서 글을 썼으며, 요즘 새로운 글쓰기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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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공룡 2023/04/18 [10:59] 수정 | 삭제
  • 멋진 인터뷰 기사에 반했어요. 요가 자세로 전개되는 요가 선생님의 일대기라니요!! 요가 수업 수강생이 인터뷰한 것까지 완벽하네요.
  • 2023/04/06 [19:44] 수정 | 삭제
  • 우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전사 자세 이야기에 전사 자세를 취하고 읽는 느낌이 들었어요.
  • 열차 2023/04/06 [08:26] 수정 | 삭제
  • “우리 죽지 않았다”는 말이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그 시절의 언니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들이 있는 거겠죠? 정화 선생님과 작가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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