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과 질이라고 하면, 흔히 ‘여성’이 가진 신체기관으로 생각되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 않다. 어떤 이유로든 자궁과 질이 없는 ‘여성’도 있고, 자궁과 질이 있는 ‘남성’도 있다. 여성과 남성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몸에 존재하고, 또 존재하지 않는 자궁과 질이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제한적이다.
‘여성’의 어떤 표식처럼 얘기되지만, 때때로 ‘여성’들에게도 낯설게 느껴지는 자궁과 질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는 장이 열렸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의 한 행사장에서 진행된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와 성·재생산건강 전문의원 색다른의원이 공동주최한 〈색다른토크하셰어〉 첫 번째 자리 “다양한 몸들이 모여서 함께 나누는 질과 자궁이야기”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그렇지만 혼자 있게 두지 않는 자궁과 살아가고 있고, 만지고 싶지만 결코 만질 수 없는 질과 살아가고 있는” 서지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불화 끝에 상처투성이로 자궁과 난소를 떠나보내고 이별 후유증을 겪고 있는” 40대 노동자 A씨, “부치 규범에 부합하는 몸을 갖고 싶은” 허주영 시인/문학연구자, “멀리 태국의 오랜 전통방식으로 만든 질에 적응하는 중인 10년차 트랜스젠더 여성” 에디 씨가 패널로 참석했다.
색다른의원 최예훈 원장이 사회자로 함께했으며, 수어통역은 한국농인LGBT(준)의 보석, 수진 활동가가 담당했다. 본격적인 토크쇼 시작 전에, 주요하게 등장하게 될 질, 자궁, 월경, 산부인과 의자, 호르몬, 장애, 루프(자궁 내 피임장치), 피임, 부치(butch), 펨(femme), 다이레이터(트랜스 여성이 질 성형수술을 한 후, 질이 좁아지지 않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의 수어 표현을 함께 공유했다.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듯
뇌병변 장애와 언어 장애가 있는 중증장애 여성인 서지원 활동가는 여성이 아닌 무성적 존재로 대우받는 일이 많았다. 어렸을 때 목욕을 앞두고 옷을 다 벗었을 때 교회 오빠가 방문했지만 엄마가 몸을 전혀 가려주지 않았던 일, 출산을 앞두고 제왕절개 수술 준비로 옷을 다 벗고 천을 덮고 있었을 때 그게 벗겨졌지만 의사가 다시 덮어주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일 등.
월경이 시작됐을 때도 내심 ‘내가 여성이 되고 있구나 싶어 축하 받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이걸 어떻게 관리해 줘야 하는지 고민하며 갈등할 뿐이었다. 40대가 된 지금도, 자신의 월경은 남편에게 ‘짐이 되는 존재’다. 서지원 활동가는 “나와 자궁과 질의 관계를 생각하면, 나 자신과 관계 맺기라기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지할 수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부치(butch)는 “인정과 탈락 사이를 오가는 정체성”이라 이야기한 허주영 시인은 ‘남성성’과 관련되어 있는 정체성인 부치가 자궁, 질과 불화할 것이라는 ‘편견’은 일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고 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부치들도 산부인과 검진을 문제 없이 받고, 특별한 불안을 안고 있지는 않다. 다만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이를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불화를 겪는 것도 사실이다. “자궁과 질에 관심 없는 척,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척 하려고 하지만”,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정체성 수행이 문화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고, 특히 외부적 요인(신체나 외모)이 중요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부치에게 “내 신체를 긍정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치라서 불행한 건 아니다. 다만 중요한 건 “(자신의 신체와 정체성이 불화하기 때문에) 불행할 것이라는 편견이 당사자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의 몸 대체 뭐길래…
작년 1월, 태국에서 장의 일부를 이용해 질을 만드는 수술을 받은 에디 씨는 1년여간 회복 기간을 가졌다. 성확정수술(성별재지정 수술)을 결정했을 때 원했던 건 “내가 원하는 성별로 봐 주길 바라는 정도의 몸”이었다. 현실은 조금더 복잡했다. 의사는 외부성기 수술만 하면 되는지, 질이 있길 원하는지, 어느 정도의 깊이를 원하는지 물어봤다. “한번도 그 생각을 해 본 적 없더라고요.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하는 정도로 해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의사가 웃으며 ‘그럼 6인치(15.24cm) 정도면 된다’ 그래서 그렇게 해 달라고 했는데 그게 엄청난 고통을 동반할지 몰랐던 거죠.”
의사가 에디 씨에게 6인치의 질을 제안한 건, 그것이 남성과의 삽입 섹스 시 용이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질을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서 다이레이션(질 길이에 맞는 봉을 삽입해 질 안이 수축되지 않도록 하는 과정, 수술 후 하루에 2번 30분~1시간 가량 진행해야 함)이 필요하고, 그것이 어떤 통증을 유발할 수도 있으니 그걸 고려해서 결정하라기보다 ‘삽입 성행위’를 중심에 둔 것이다. 에디 씨는 스스로 다시 질문하게 됐다.
“주변에선 이제 수술해서 행복하지? 라고 하는데,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이런 고통을 견뎌야 하는 건가 싶은 거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어떤 분들은 질을 안 만들기도 하고, 아님 길이를 작게 하기도 한다더라고요. 전 그걸 몰랐던 거에요.”
노동자 A씨는 장시간 노동과 많은 스트레스, 압박으로 인해 나빠진 건강으로 자궁과 난소까지 적출하게 되었다. 2016년 건강검진으로 자궁근종이 여러 개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근종 제거 수술을 했지만, 새로운 직장에서는 더 큰 스트레스 상황을 겪었다. 그 다음 건강검진에서 자궁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지만,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 시간조차 나지 않았다. “병원 예약을 3번이나 했다가 취소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기가 막힌 일인데, 그 때 그렇게 하느라 건강검진 하고 1년 동안 병원을 못 갔어요. 결국 회사를 때려치우고 병원을 갔더니, 의사의 첫 마디가 이랬어요. ‘이거 완전히 덮었네. 이 정도면 적출해야 합니다.’”
한동안 치료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 때 의사가 물은 건 다름 아닌 ‘실손보험 있어요?’였다. 수술 과정에선 장유착이 생겨 복막염이 진행됐고 긴급 수술까지 하게 됐다. 수술 후 며칠 뒤, 담당의사가 아닌 의사가 와서 난소도 하나 적출했다는 얘길 전했다. 너무 황당했지만 담당의는 대수롭지 않게 ‘하나 있으나 없으나 별반 차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낭종이 생겨 남아있던 난소까지 적출하게 됐다. A 씨는 “솔직히 자궁 적출할 땐, 이제 월경도 안 하니까 괜찮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자궁과 난소를 다 떠나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이젠 이른 갱년기를 경험하며 호르몬 약을 챙겨먹는 상황이다.
의료인들 ‘소수자 여성’에 대한 인식 여전히 낮아
‘여성’들에게 병원, 특히 산부인과는 많은 경우 불편한 경험이 동반되는 장소로 여겨진다. 장애여성, 트랜스여성, 성소수자여성 등 소수자 정체성이 더해졌을 때, 몇 배 더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 된다.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 병원에서도 작동되기 때문이다.
서지원 활동가는 임신하고 병원을 방문했을 때 “‘지울 거죠?’라는 말을 제일 처음 들었다”고 했다. 장애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편견이 드러난 장면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장애여성은 마치 없는 사람인양 “남편 등 보호자로 여겨지는 사람에게 의료진의 시선이 향한다는 점도 큰 불만”이라고 지적했다.
허주영 시인은 “성소수자에게도 성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병원과 의료진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이성애 섹스를 기반으로 한 피임 중심의 성교육이 아니라, 임신 가능성이 없는 이들에게 안전한 섹스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거다. 어쩌면 “이성애 커플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부분도 있고, 또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라고 짚었다.
다양한 몸과 섹슈얼리티를 위한 성교육 관련하여, 병원이나 의료진이 어떤 가이드를 제공할 수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이 있다. 에디 씨는 질 재건 수술 이후 관리를 하는 게 정말 너무 힘들었는데, 왜 이게 필요한지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했다고 했다. “사실 다이레이션을 하는 건, (월경을 안 하니까) 질 안의 노폐물이 빠져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함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내 몸을 위한 관리이기도 한 거에요. 근데 의사가 ‘이래야 원활한 삽입 섹스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만 하니까, 내가 왜 남을 위해서 이런 걸 해야 하나 싶어서 다이레이션 하는 게 너무 고통스럽고 짜증났었어요.”
어떤 시술이나 수술 이후 어떤 몸이 된다, 몸의 신체기관이 어떻게 되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정보는 중요하다. 하지만 ‘생식기’는 때때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A씨는 자신의 동의 없이 난소가 적출된 상황도 화가 났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은 것에도 분노했다. “복막염으로 난소에도 염증이 생겨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난소는 생명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기관도 아니고 하니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적어도 여러 선택지에 대한 정보를 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적출 이후엔 어떻게 되는지도요.”
더 다양한 몸들이 이야기를 할 수 있길
패널 토크가 끝난 후엔 참여자들이 감상을 나누고 질문하는 시간도 진행됐다. 트랜스여성으로서 에디 씨의 이야기를 듣고 성확정수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피드백도 있었고, 청각장애를 가진 이로서 겪는 병원 접근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이에 대해 셰어의 타리 활동가는 셰어 연계 클리닉인 색다른의원에도 지금 당장 수어통역사가 상주하고 있진 않고, 그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셰어나 한국농인LGBT(준) 등 단체에 연락을 준다면 방법을 함께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며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5월에도 셰어와 색다른의원은 ‘색다른토크하셰어’ 두 번째 행사를 열 예정이다. 그동안 많이 논의되지 않았던, 성과 재생산을 둘러싼 기존의 경계를 뛰어넘는 더 많은 몸과 이야기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 기사 좋아요 20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일다의 방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