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기억은 슬픔에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이소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

박주연 | 기사입력 2023/04/22 [19:49]

세월호의 기억은 슬픔에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이소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

박주연 | 입력 : 2023/04/22 [19:49]

세월호 참사 이후 벌써 9년이 흘렀다. 매년 4월, 특히 4월 16일이 다가오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너무나도 슬픈 일이라는 생각에 제대로 들여다 보길 회피했던 적도 꽤 있었다. 세월호 이야기는 힘드니까… 하면서, 세월호 참사와 나 사이에 거리두기를 한 것이다.

 

▲ 이소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 포스터 (제공: 영화사 진진)

 

5일 개봉한 이소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 소식을 들었을 때도 처음엔 그 거리감만큼 반응했다. ‘보긴 해야 할 것 같은데, 감정 소모가 큰 영화면 어쩌지?’ 고민하며 정보를 찾아 보니, 연극을 하게 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생존자 엄마들 이야기라는 부분에 관심이 갔다. 누가 만들었나 싶어 감독에 대한 정보도 알아봤다. 마침 감독이 전작 〈할머니의 먼 집〉 제작과 관련해 일다에 기고한 글이 있었다.(“할머니 죽으면 안돼, 나랑 같이 살아야 돼” https://ildaro.com/7574) 죽음을 생각하는 할머니를 지켜보는 마음을 꾹꾹 담은 글에서 따뜻함과 어떤 의지가 느껴졌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세월호 이야기를 담아냈을지 궁금했다.

 

그렇게 보게 된 〈장기자랑〉은 울게 되는 장면도 있지만 웃게 되는 장면이 더 많은,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동안 세월호 참사와 나 사이에 자리했던 묘한 거리감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그것에 침몰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아픔을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으로 기억하게끔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

 

4월이 지나가기 전, 더 많은 사람이 극장으로 달려가길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쓴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 글은 영화의 매력을 다 담지 못했으니 부디 직접 보시길.

 

연극 그게 뭐길래

 

영화 〈장기자랑〉은 극단 ‘노란리본’에 대한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 다음 해인 2015년, 현재 극단을 이끌고 있는 김태현 연출이 세월호 희생자와 생존자 엄마들의 심리치료를 위해 희곡 읽기를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극단이다. 처음엔 무슨 연극이냐며 쭈뼛쭈뼛 하던 엄마들이 연극의 매력에 빠져 들면서, 노란리본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나 둘 공연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영화와 동명 연극인 〈장기자랑〉은 노란리본의 세 번째 작품이다. 연극은 고등학생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 전 친구들과 함께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이야기이고, 영화는 그 연극이 만들어지고 단원고에서 공연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있다.

 

▲ 영화 〈장기자랑〉 중 극본 리딩 연습을 하고 있는 ‘노란리본’ 단원들 모습 (제공: 영화사 진진)

 

이런 줄거리를 듣게 되면, 세월호 희생자와 생존자들이 다녔던 학교인 단원고에서의 공연이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 생각할 테다. 물론 그것도 영화의 중요한 축이긴 하지만, 예상과 달리 영화 중반까지 긴장감을 조성하는 건 극단 내부에 쌓인 오해와 갈등이다. 연극 〈장기자랑〉에서 하게 될 배역이 발표된 이후, 그 갈등은 수면 위로 드러난다.

 

연극은 만화 캐릭터 루피를 좋아하던 동수, 모델이 되고 싶었던 순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던 예진, 랩을 잘했던 영만… 아이들의 모습이 조금씩 담긴 작품인 만큼 배우들의 의욕도 만만치 않았다. 그랬던 탓일까? 극 중 대사와 비중이 높은 ‘조가연’ 역에 예진 엄마/박유신 씨가 캐스팅 되자, 영만 엄마/이미경 씨는 크게 서운함을 느낀다. 두 사람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단원들도 점점 지쳐간다. 순범 엄마/최지영 씨처럼 “대사도 없고 분량도 없는 나 같은 사람도 해”라고 다독여 보기도 하고, 동수 엄마/김도현 씨처럼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에 화가 나 그냥 나가버리는 일도 생긴다. 극단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수인 엄마/김명임 씨는 머리가 아프고, 배역을 결정한 김태현 연출은 좌불안석이다.

 

어느새 연극에 진심이 된 단원들은 배역에 욕심을 내고, 원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크게 실망한다. 이들의 진실된 감정들이 마구 표출될 때, 관객들은 왜인지 웃게 된다. 카메라가 이 모습을 자극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진심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진심을 접했을 때 느끼는 편안함, 정말 ‘찐’인 사람들의 눈빛과 말, 표정에서 감지할 수 있는 사랑스러움은 사람을 웃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으니까.

 

‘OO 엄마’라는 그 이름

 

연극에 정말 ‘찐’이 된 영만 엄마/이미경 씨는 자신의 이런 모습이 종종 사람들에게 잘못 비춰 질 수 있다는 걸 안다. “엄마가 애 보내고 나서 뭐가 그렇게 좋아가지고 저렇게 하면서 살 수 있지?”라는 시선, 하지만 이미경 씨는 “그냥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도 있”을 뿐이다.

 

사실 그 동안 어떤 위치에서 항상 ‘OO 엄마’로 소환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볼 때 불편한 감정이 들곤 했다. 희생하는 엄마, 헌신하는 엄마, 모성애 강한 엄마 등의 정해진 이미지가 강요되기도 하고, 그것이 여성의 이름을 지우는 방식으로 가부장제 틀 안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더 그렇다. 하지만 “그냥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도 있는” 사람이라는 영만 엄마/이미경 씨의 말을 들었을 때 깨달았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지운 일이 결코 없다는 걸, 그저 이미경이라는 이름에 영만 엄마라는 이름이 더해진 삶을 살고 있는 거다. 무언가 지워지거나 사라진 게 아니라.

 

▲ 영화 〈장기자랑〉 중 무대 위 일곱 배우들의 뒷모습 (제공: 영화사 진진)

 

〈장기자랑〉 속 노란리본의 단원들, 수인 엄마/김명임, 동수 엄마/김도현, 애진 엄마/김순덕, 예진 엄마/박유신, 영만 엄마/이미경, 순범 엄마/최지영, 윤민 엄마/박혜영 씨에게 있어서 누군가의 엄마라는 사실은, 자신의 삶을 꿋꿋이 살아가는 한 개인이라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영화는 영리하게도 그 맥락을 분명하게 짚어준다. 한 사람에게 하나의 정체성이 아닌 여러 정체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그것이 상극이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떤 이름이 사회적으로 갖는 전형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이름이 어떻게 호명되는지에 따라 그 전형성을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다. 수인 엄마, 동수 엄마, 애진 엄마, 예진 엄마, 영만 엄마, 순범 엄마, 윤민 엄마가 무대에 오르는 순간, 전국 각지에서 여러 관객들을 만나는 순간이 그렇다. 우리는 김명임, 김도현, 김순덕, 박유신, 이미경, 최지영, 박혜영 씨를 통해 어쩌면 잊혀져 가고 있는 세월호 참사 이야기와 다시 연결된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

 

많은 사람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가끔은 그 기억이 소환될까 두려워 마주하는 것 자체를 피하기도 한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린 이 기억을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장기자랑〉 중 단원고 4.16 기억교실 모습 (제공: 영화사 진진)

 

답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았던 그 질문이 〈장기자랑〉을 보며 풀렸다고 하면 너무 영화같은 이야기일까? 하지만, 정말 그랬다. 아픈 기억이라고 해서 아프게만 기억할 필요는 없다는 걸, 〈장기자랑〉 인물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대를 만들고, 무대에 올라가는 극단 사람들뿐 아니라, 단원고를 비롯해 전국 방방곳곳에서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모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싶은 방식을 드러내고 있었다. 울고 또 웃으며 우리가 함께 기억을 이어나가면 된다는 걸.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이미경 씨가 영만의 이름을 딴 ‘이영만연극상’을 만들고 지난 2월 이미 1회 시상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회 이영만연극상 배우상을 수상한 박은호 배우와의 인터뷰에서 이미경 씨는 이영만연극상의 의미를 이렇게 얘기했다. “누군가 이 상을 받음으로써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거, 그게 제일 중요했다.”(관련 기사: ‘연극을 통해 이해하기, 용서하기,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기’, 「연극in」, 2023.03.23)

 

이영만연극상이 영만이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슬픔이 아니라 희망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는 것, 그리고 〈장기자랑〉이 무대를 빛내는 7명의 엄마를 담아냈다는 것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이 충분히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제시한다. 그러니 묘한 거리감에 주저할 것 없이,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된다.

 

이 글을 정리하며 ‘N차 관람’을 위한 영화 상영 일정을 검색했다. 마음 속에서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 이야기를 띄울 수 있게 용기를 준 〈장기자랑〉이 더 오래 극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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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3/05/01 [11:30] 수정 | 삭제
  • 이영만연극상! 멋지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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