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생태 농사를 짓는 청년의 고민, ‘땅’

[기후위기와 여성농민] 제주 청년 농부 90년생 김지영

나랑 | 기사입력 2023/04/25 [16:19]

제주에서 생태 농사를 짓는 청년의 고민, ‘땅’

[기후위기와 여성농민] 제주 청년 농부 90년생 김지영

나랑 | 입력 : 2023/04/25 [16:19]

-기후변화를 일터와 삶터에서 피부로 느끼고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전국의 여성농민들을 만납니다. 여성농민의 시선으로 기후와 농업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대안의 씨앗을 뿌리는 새로운 움직임과 공동체적 시도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농활의 경험이 출발점이었다

 

“네? 대학 때 농활을 열다섯 번이나 갔다고요?”

 

놀랍고 신기해서 반문했다. 이 청년 여성의 스토리를 들어보지 않을 도리가 있나. 90년생 김지영 씨(34세)가 열다섯 번의 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을 거쳐 농부가 된 사연을 인터뷰어로서 어떻게 지나치겠느냔 말이다.

 

2018년에 제주로 이주한 지영 씨는 지금 모슬포에서 베테랑 여성 농민과 함께 농사지으며 생태농업을 실험하고 있다. 지영 씨는 세상을 머리로 판단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끝까지 밀고 나간 자리에서 조금씩 조금씩 방향을 틀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 제주에서 생태 농사를 짓는 90년생 김지영 씨 ©나랑

 

“09학번이고 학생회 거의 마지막 세대예요. 그래도 학교에서 천 명씩 농활에 갔어요.”

 

전라남도에서 대학을 다닌 지영 씨는 당시까지 사회운동 성향이 남아있는 학교에서 학생회 활동을 했다. 지영 씨가 간 농활은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농민운동에 대한 지지와 연대였다.

 

“(운동하느라) 대학을 8년 다녔어요. 1학년 때는 학과행사로 농활에 참여했고 2학년 때부터는 과 학생회, 단과대 학생회, 총여학생회, 총학생회, 동아리 활동하면서 농활을 꾸렸고, 다른 단과대 지도 간부로 참여하기도 했어요. (젊은) 제가 하기에도 벅찬 농사를 짓는 어른들을 보면서 ‘우리의 먹거리를 다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농민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농사가 적성에 맞아서라기보다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단다. 졸업하고 농민회에 들어가서 간사로 일할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토대를 쌓고 싶었다.” 스스로 농민이 되어서 농촌과 농민의 현실을 몸소 경험하고 싶었다.

 

졸업하고 제주에 ‘한 달 살이’를 하러 내려왔는데, 마침 제주 서쪽에 이주한 청년들이 꾸린 공동체에서 농사를 짓는 한 달 살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 달 내내 농활하는 느낌일 것 같아서” 신청을 했다. 우연한 기회로 시작된 한 달 살이는 정착으로 이어졌다.

 

무엇을 위한 유기농인가?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처음에는 관행농으로 농사를 짓다가 무농약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공동체 운영에도 참여하며 3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지영 씨는 공동체 구성원들과 조금씩 생각이 어긋났다.

 

“저는 친환경 농사를 지으면서 농사의 다원적 가치를 키우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장기적으로는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른 구성원들은 지금 돈을 벌어야 하는 게 중요하다 보니까, 제가 추구하는 방식이 느리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결국 공동체는 농사를 더 이상 짓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영 씨는 공동체를 나와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한 유기농 농업학교에 들어가게 됐다.

 

“수업 보조도 하고, 과수 농사도 하고, 밭작물도 하면서 유기농 농업 전반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작물 특성을 고려하는 거나, 절기의 중요성도 많이 배웠고요. 처음엔 관행농보다 훨씬 좋다고, 이렇게 친환경적으로 농사지으면 엄청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조금씩 의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농사를 지을 때 기계나 자재를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직접 해 보려고 하니까 초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은 거예요. 500평~1천평 면적에 비료가 100만 원 이상 들어가고 종잣값도 40~50만 원, 비닐이랑 여러 가지를 깔아야 되니까 농사를 짓기 전에 300만 원이 들어가더라고요. ‘초기 자본이 없으면 아예 시작을 못 하는 거구나’, ‘이걸 극복할 방법이 뭐가 없을까?’ 생각하게 됐죠.”

 

유기농이지만 이렇게 투입을 많이 하는 농사가 맞는 것인지 의문을 품고 두리번거리다 보니, ‘다르게’ 농사짓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태 농법을 하거나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계나 자재를 투입하는 게 농사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 지영 씨(왼쪽)는 함께 농사짓는 여성농민 김정임 씨(중간)가 진행하는 인근 고등학교 텃밭수업에 보조 강사로 참여한다. ©나랑

 

한편으로는 무엇을 위한 유기농인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유기농 농사였지만 밭에 작물 빼고는 아무것도 없어야 했어요. 잡초가 없어야 되니까 잡초 싹이 올라올 때 토치로 다 태웠거든요. 그게 어떤 식물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요. 화염방사를 하면 땅속에 살고 있던 곤충들이 너무 뜨거워서 갈라진 땅 사이로 뛰쳐나가는 게 눈에 보인단 말이에요.”

 

우리는 ‘인간 소비자’를 위한 유기농에 길들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입에 들어가는 유기농 작물을 위해서 풀과 곤충과 미생물은 죽어 마땅한 걸까. 땅의 생명력을 방해하는 과도한 비료 투입이나 비닐 같은 자재의 사용도, 결과가 유기농이기만 하면 상관없는 걸까. 유기농을 인간 중심적으로만 사고하면 ‘내 입에 들어가는 농작물에 농약이 없어야 한다’에 그치게 된다. 유기농 작물마저도 모양과 색깔이 고르고 예쁘길 원하게 된다.

 

기후위기와 생태농법

 

지영 씨는 고민 끝에 농업학교에서 나와 생태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같은 지역에 사는 베테랑 여성 농민의 밭으로 ‘현장실습’을 나가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교육’이지만, 그분의 든든한 지지 덕에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750평 정도의 밭에 감자, 단호박, 방풍나물, 쪽파 등을 심었고, 앞으로 잎채소와 참외, 수박, 옥수수도 심을 예정이다. 딸기를 심기 위해 높은 두둑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한다.(시중의 딸기는 대부분 하우스에서 양액재배되고 있다.)

 

“비료 투입을 안 하고 경운도 하지 않았어요.(생태농법에서는 땅을 갈지 않는 것이 땅 속 미생물을 보호하고 땅의 자생력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한다.) 두둑만 올려놓고 여러 유기질을 덮어주고 있는데 주로 풀로 멀칭(흙 표면을 덮어주는 것)을 하고 있고요. 콩 비지로 덮어준 곳도 있는데 그건 하면 안 됐던 것 같아요. 흙이랑 섞여서 발효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은데 그냥 바로 덮는 바람에 부패가 될 것 같아요.”

 

시행착오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게 지영 씨답다. 지영 씨가 참고하고 지향하는 ‘퍼머컬쳐’는 자연의 순환 생태계를 회복하는 것에 중점에 둔 철학으로, 잡초도 제거 대상이 아닌 생태 환경의 일부로 바라본다. 지영 씨에게 더 이상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 아니다.

 

“작물 옆에 풀이 올라오면 작물을 덮지 않을 정도로만 낫으로 베어주고 있어요. 밭이 비어 있으면 씨가 날아와서 퍼질 공간이 많아지는 거잖아요. 키 큰 풀, 키 작은 풀- 잡초라고 부르는 풀들이 여러 크기로 자라는데 그게 어느 정도 반복이 되면 그 생태계가 유지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일도 좀 줄어든다고 하는데 얼마나 걸릴 지는 지켜봐야죠.”

 

▲ 작년, 지영 씨는 기후위기에 농업이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청년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지속 가능한 농업 클래스’를 진행했다. (김지영 제공 사진)

 

나중에 자기 밭이 생긴다면 나무도 심어서 텃밭 정원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어려움에도 생태농법이 도움이 되냐고 묻자, 지영 씨는 그렇다고 답한다. 실제로 가뭄에 대응력이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작년에는 수도도 없는 밭에서 물통으로 하루에 대여섯 번씩 물을 줬는데, 작물 외에는 풀이 하나도 없으니까 물이 너무 빨리 마르더라고요. 지금은 (생태농법을 해서) 그때처럼 빨리 마르지는 않아요. 풀이 같이 있으니까 뿌리가 물을 잡아주는 힘도 있고, 풀잎들이 그늘을 형성해서 그런가 봐요. 신기했어요.”

 

땅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영 씨가 참가하는 ‘신규 농업인 현장실습 교육’ 제도는 농촌진흥청에서 실시하는 것으로, 멘토 농민과 연결되어 월 80만 원의 교육훈련비를 받으며 농사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5개월이면 끝이 난다. 몇 달 후면 당장 자기 밭이 없는 게 문제다. 청년 농부를 위한 국가 지원이 있지만 대부분 큰 빚을 지게 만든다는 한계가 있다.

 

“청년 창업농 지원 사업이 있어요. 5년 동안 3억 정도 대출받을 수 있는데(2023년부터 5억으로 늘어났음) 교육받을 때 시뮬레이션을 해요. 1년차 때 3억을 대출받아서 땅을 사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3년 후에 지원이 끊기고 난 후에는 계속 마이너스인 거예요. 그걸 버티다가 만약 작물 소득이 잘 나면 5년차 넘어가면서부터 소득이 플러스가 되거든요. 플러스가 될 때까지 뭘 하든 버텨야 하는데, 기반이 없이 (타 지역에서) 왔다 하면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문제에요.”

 

5년차 이후에 플러스가 된다는 것도, 사실 시뮬레이션 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지영 씨는 “제주도에서는 농사지을 땅만 겨우겨우 구해도 3억이 넘는다”고 전한다.

 

“제주도 토박이인 한 친구는 농사지으려고 1천 평 부지를 사는데 3억 대출을 다 받고도 부족해 다른 금융권 대출까지 받았어요. 그런데 결국 수익이 안 나서 다 처분했어요. 여성 농민 언니들은 ‘이 나라 지원이 돈을 빌려서라도 땅을 산 농민들에게 유리하다’라고 하면서 대출받아서 땅을 사라고 하는데, 솔직히 겁나요.”

 

“마을에서 관계를 잘 쌓으면 밭을 무상으로나 싸게 빌려주신다는 분들을 만날 수 있”지만, 친환경이나 생태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애초에 빌려주는 경우가 드물다. 관행농에 익숙한 어른들은 풀이 많으면 밭을 망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사짓지 않는 땅을 국가가 관리하며 임대해주는 ‘농지은행’ 제도가 있어 싸게 빌린다고 쳐도, 나무를 같이 심어 생태계를 조성하는 생태농법을 실현하기는 어렵다. 지영 씨는 땅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음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농지로 쓸 땅을 국유화해서 농민에게 나누어 주거나, 농지를 농사짓는 목적으로만 쓰게 묶어 땅값에 상한을 두는 것이 대안이 될 것 같아요. 개인이나 법인에서 소유한 땅을 농사지을 수 있게 내주는 것도 좋은 사례이고요.”

 

▲ ‘소길별하’에서 함께 농사지을 청년 농부들과 즐거운 한때. 강아지를 안고 있는 이가 김지영 씨다. (김지영 제공 사진)

 

지영 씨는 최근 애월읍 소길리에 있는 ‘소길별하’(가수 이효리・이상순 부부가 〈효리네 민박〉을 찍을 때 살던 곳으로 현재 ‘일로와제주’에서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내의 빈 밭에서 청년들과 함께 농사를 짓게 됐다. “밭에 제주의 특색도 담고 제주 청년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소길별하 측의 뜻으로 천 평 정도의 밭을 경작할 수 있게 됐다. 땅값 부담이 큰 청년 농부들에게는 좋은 기회다. 지영 씨는 “임대차계약서를 쓰고 경영체등록을 해서 농민 지원 혜택을 볼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고 덧붙인다.

 

제주의 생태와 환경 문제로 관심사 넓어져

 

“제주에서는 비슷한 꿈을 갖는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그래서 같이 무언가를 할 사람들을 금방 찾을 수 있는 거 같아요.”

 

지영 씨에게 제주는 다른 비서울 지역에 비해 ‘인프라가 잘 돼 있는 시골’이라서 뜻이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기 쉬운데, 그게 제주에서 계속 농사짓고 살게 하는 동력이 된다. 청년 농부들을 비롯해 동네 책방에서 열리는 페미니즘 책 모임 구성원들, 여성 농민회 언니들이 있다.

 

지영 씨의 관심사는 요즘 농사에서 환경과 생태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그전에는 환경문제에 크게 관심 갖고 행동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제주에 와서 농사지으면서 느낀 문제들이나 송악산 개발, 제주 제2공항, 개간되어 없어지는 곶자왈 등 주위에 벌어지는 문제들 속에서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겹치고 많아졌어요. 이제 ‘지구의 문제’로 관심이 넓어진 것 같아요.”

 

“주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사회운동을 이어갔는데, 지금은 그 주위 사람과 세상의 범위가 커진 것 같다”고 말하는 지영 씨. 지영 씨 같은 청년 농부들이 땅 걱정 없이 농사지으며 다양한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필자 소개] 나랑(김지현) 독립 인터뷰어. 글쓰기 안내자. 목소리가 되지 못한 목소리를 기록한다. 그런 목소리들이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게 안내한다. 지금은 제주에 살고 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멋짐 2023/05/08 [12:17] 수정 | 삭제
  • 정말 멋진 청년이에요. 생태농업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된 것도 있구요. 기자님 감사합니다
  • 록록 2023/05/01 [22:15] 수정 | 삭제
  • 생태농업에 대해 관심이 생겨 이거저것 찾아보는데 귀한 기사입니다!!! 감사합니다~~!!
  • 바람 2023/04/28 [15:50] 수정 | 삭제
  • 최소한 나라에서 농지는 지켜야지. 투기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걸 청년들의 사례를 통해서 여실히 알 수 있네요.
  • ㅇㅊ 2023/04/28 [06:53] 수정 | 삭제
  • 농사짓고 싶은 청년이 땅이 없어서 농사를 못 짓는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이런 훌륭한 청년들은 나라에서 팍팍 지원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