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여, 어디까지 가봤나요?

[극장 앞에서 만나] 션 베이커 〈탠저린〉

신승은 | 기사입력 2023/05/05 [12:09]

산타여, 어디까지 가봤나요?

[극장 앞에서 만나] 션 베이커 〈탠저린〉

신승은 | 입력 : 2023/05/05 [12:09]

풍자가 나타났다.

 

▲ 유튜브 채널 ‘풍자테레비’ 중에서 캡쳐 https://youtube.com/@PUNGJAPUNGJA

 

한국 미디어에서 볼 수 있었던 트랜스젠더 방송인을 떠올려보면, 대부분이 ‘하리수’의 이름만 댈 것이다. 이 척박하던 곳에 최근 ‘풍자’가 새로이 등장했다. 풍자는 유튜브 방송을 하는 크리에이터로 출발해 현재는 가장 핫한 방송인이 되었다. 당시 미디어는 하리수를 신비롭게 비춘데 반해 풍자는 동네 언니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풍자는 별 얘기를 다 한다. 우선 욕을 한다. 공포를 조성하는 욕이 아니라 친근하고 편안해 보이는 욕이다. 가식과는 일절 거리가 멀어 보인다. 트랜스젠더 업소에서 일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병무청에 갔던 에피소드를 말한다. 시스젠더(Cisgender) 중심 사회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털털하게 들려준다. 알지 못했던, 알 수 없었던,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회에서 숨기던 풍경들을 걸쭉한 입담으로 그려낸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자기 같은 여자도 있다고. 이런 목소리의, 이런 체형의 여자도 있다고.

 

풍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가 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잘 알려진 션 베이커 감독의 〈탠저린〉이다. 음지화하려는 사회의 천막 같은 것 따위 다 불태워버린 채로 시작하는 영화다.

 

포장지를 뜯어버리는 극사실주의

 

영화의 배경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성매매 거리다. 도넛 타임이라는 도넛 가게에서 신디는 친구 알렉산드라와 대화를 나눈다. 대화 속에서 자신이 감옥에 가 있던 28일 동안 남자친구인 체스터가 알파벳 D로 이름이 시작하는 시스젠더 여성과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신디는 분노한다. 그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D 어쩌고’를 잡기 위해 추적을 시작한다.

 

▲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 〈탠저린〉 중 알렉산드라와 신디의 모습

 

주인공인 신디는 트랜스젠더 여성이고 흑인이며 성노동자이다.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이따금씩 내쳐지는 약자성들을 갖고 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미디어에서 다루지 않는 이야기를 감독은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화법으로 전달한다. 숨기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포장지를 찢어버린 신디의 입에서는 욕이 주렁주렁 나온다.

 

극사실주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감독이 택한 몇 가지 전략이 있다. 첫 번째로, 길거리 캐스팅이다. 많은 트랜스젠더 배역들이 시스젠더 배우들에 의해 연기되어왔다. 감독은 그런 관습을 타파하고 연기 경험이 없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캐스팅했다. 알렉산드라 역의 마이아 테일러와 신디 역의 키키 로드리게즈는 이들이 직접 경험한 에피소드들을 감독에게 공유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성노동자, 트랜스젠더 여성의 이야기는 대체로 암울하게 그려져 왔다. 철저하게 대상화되어 정작 그들의 이야기는 빠져 있고 그들을 내려다보는 시선만 담긴 경우가 허다했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사라진 채 그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진영 논리만 시끄러웠다. 김기덕을 비롯한 여러 감독들이 성노동자 여성을 ‘불행 포르노’로 소비했고, 어떤 영화들은 ‘행복한 창녀’ 논리에 빠져 그들이 겪는 불평등을 쏙 빼버렸다. 이 영화는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들이 겪는 불평등을 그리되, 그것만 표현해 이들을 불행의 아이콘으로 그리지 않는다. 곳곳에 인종차별, 트랜스젠더 혐오, 성노동자 현실을 담지만 서사의 큰 줄기는 거리 위 사랑과 우정이다.

 

영화의 제목은 감귤류의 껍질을 벗기기 쉬운 과일을 뜻한다. 영화의 전반적인 색조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를 추측할 수 있다. 사회는 성노동자에게, 유색인에게, 트랜스젠더에게, 여성에게 껍질을 씌운다. 그 껍질은 사실 쉽게 벗길 수 있는 허상의 이미지이다. 그런데 사회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껍질로만 바라보는 나이브한 태도를 취하며 껍질을 더 공고히 한다. 이를 꼬집듯 영화는 어떠한 껍질도 없이 이들을 담기 위해 노력한다.

 

극사실주의를 위한 감독의 두 번째 전략은 촬영 장비다. 〈탠저린〉은 전부 아이폰으로 촬영했다. 큰 카메라가 낯설지도 모를, 이제 데뷔하는 배우들을 위함이기도 했고,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서도 최선의 선택이었다. 영화 곳곳에 날렵한 스마트폰만의 무빙이 담겨있다. 일반 카메라였다면 불가능했을 과감한 움직임을 아이폰이 해낸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노이즈가 껴있는 컷들도 있다.

 

그런데 이 노이즈가 묘한 미학을 만들어낸다. 노이즈가 생길 경우 관객은 촬영 기기의 존재와 촬영자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탠저린〉은 노이즈뿐만 아니라 택시 안에서 운전석과 뒷좌석을 오가는 카메라의 무빙을 통해 촬영자가 조수석 혹은 뒷좌석에 탑승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모든 영화들이 카메라의 존재를 관객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 반해, 이 영화는 대놓고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는 정도다. 헌데 이 카메라의 존재감이 영화의 환상성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직접 그 카메라의 위치에서 고개를 돌리는 듯한 효과를 준다. 이 설정은 관객을 LA의 성매매 거리로 소환한다. 관객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만든다. 마치 이 거리에 와보지 않은 자 함부로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관객을 그 자리에 세운다.

 

▲ 영화 〈탠저린〉 중 다이나를 끌고 다니는 신디의 모습

 

아이폰의 무빙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효과를 주기도 한다.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거친 카메라의 무빙과 흡사하게 움직인다.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이들이 배우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들로 인식하게 하고, 극이 아니라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이게 한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정확히 일치하는 형식이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우정

 

미디어 속 우정과 의리는 오래도록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남자들의 관계는 다양하게 조명되는 데에 비해 여자들의 관계는 ‘여자의 적은 여자다’, 줄여서 ‘여적여’ 프레임으로 단순하게 다뤄졌다. 여자들은 서로를 질투하고 배척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최근 들어 이를 거부하는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반가웠다. 우정, 연대, 사랑 등 다양한 형태로 여성 간의 관계를 담아냈다. 〈탠저린〉도 그 일례다.

 

신디는 자신의 애인인 체스터가 바람을 피운 백인 시스젠더 성노동자 다이나를 찾아내고 만다. 그리고 체스터가 있는 곳에 가 삼자대면을 하기 위해 그를 끌고 다닌다. 해가 지고 신디가 다이나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끌고 간 곳은 체스터 앞이 아니라 친구 알렉산드라의 공연장이다. 알렉산드라의 홍보에 비해 관객은 턱없이 적다. 심지어 알렉산드라는 돈을 받고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고 공연을 한다. 그래도 신디는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응원해준다.

 

▲ 영화 〈탠저린〉 중 ‘도넛 타임’ 앞에 모인 다이나, 체스터, 알렉산드라의 모습

 

영화가 시작했던 로케이션으로 다시 되돌아온 신디와 알렉산드라, 그리고 다이나는 드디어 체스터와 만난다. 택시기사이자 성구매자인 아르메니아인 라즈믹과 그의 장모, 부인까지 합류해 자리는 엉망이 된다. 라즈믹 일행이 떠나면서 상황이 일단락되고, 도넛 타임 앞에서 체스터는 알렉산드라가 자신이 바람을 피운 사실을 신디에게 말했음을 알게 된다.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체스터가 말한다. 알렉산드라도 자기와 몸을 섞었다고. 신디는 충격받은 표정이다. 영화 내내 신디는 디아나를 끌고 다녔다. 알렉산드라도 그렇게 끌고 다닐 것인가.

 

“너희 둘이 잘 어울려.” 신디가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며 말을 한다. 디아나를 거칠게 잡아끌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알렉산드라의 친구인 신디만 남아있다. 친구와 바람을 피웠다면 더 분노할 줄 알았는데 신디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자리를 벗어나 계속 걷는다. 당황한 알렉산드라는 신디를 부르며 쫓아간다. 한참을 걷고 있을 때, 한 차가 멈춰서더니 신디에게 욕을 하며 소변을 뿌리고 간다. 트랜스포비아에게 테러를 당한 것이다. 알렉산드라는 당황한 신디를 데리고 무인세탁소로 간다.

 

신디가 소변으로 더러워진 가발을 벗는다. 망이 씌워진 신디의 검은 머리가 드러난다. 러닝타임 내내 다이나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찾은 뒤에는 끌고 다니고, 거칠고 화려하게 거리를 종횡무진하던 신디의 패기가 우정 앞에서 한 번, 그리고 혐오 앞에서 한 번 멈칫한다. 그런데 당연히 혐오보다 우정이 강하다. 그러니 우정은 혐오 앞에 신디가 기죽는 꼴을 두고 보지 않는다. 알렉산드라가 자신의 가발을 벗어 신디에게 씌워준다. 우정은 가발을 씌워주는 일이다. 스스로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라면 그걸 가려주는 일, 내가 원하는 나로 존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다. 트랜스젠더들은 사회 속에서 원치 않는 질문을 듣고, 부정당하기 일쑤다. 수많은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의 성별에 대해, 성기에 대해, 그들이 생각하는 ‘본래’ 모습에 대해 답변을 요구한다. 영화는 그 몰이해에서 비롯된 시선들 위에 가발을 덮어버린다.

 

▲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 〈탠저린〉(2015) 포스터

 

껍데기를 뚫고 나온 탠저린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 이브다. 백인 시스젠더 성인 남성인 산타가 온 마을에 선물을 주러 오는 날이다. 그런데 과연 산타가 유색인 트랜스젠더 성노동자 여성들의 거리인 이곳에도 올까. 백인들의 크리스마스만 봐와서 믿음이 가지 않는다. 다른 이들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찾기 어려웠다. 이들에게도 분명히 12월 24일, 25일이 존재하는데 말이다.

 

〈탠저린〉은 미화하지 않는다. 포장하지 않는다. 비난하지도 않으며,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그냥 보여준다. 이 ‘그냥’을 이룩하기 위해 영화는 부단히 고민했다. 시선에서 출발한 예술이, 시선이 느껴지지 않도록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과감한 선택을 통해 다가갔다. 소수자에게 대답을 맡겨놓은 것마냥 질문하는 사회에서 〈탠저린〉은 그 질문의 대상을 새로이 설정한다. 소수자 대신에 기득권인 산타에게 묻는다. 루돌프를 타고 정말 전 세계를 돌았는지, 어디까지 가봤는지, 여기에는 와봤는지, 올 것인지 말이다. 대답은 관객의 몫이다. 우리 모두 때로는 산타이자 때로는 선물을 기다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신승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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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 2023/05/11 [12:35] 수정 | 삭제
  • 좋은 영화 소개 감사해요. 6월 프라이드 먼스에 보겠습니다.
  • 동생e 2023/05/05 [21:47] 수정 | 삭제
  • 풍자테레비 너무 재밌어욤
  • 버그 2023/05/05 [18:50] 수정 | 삭제
  • 탠저린 감독이 플로리다 프로젝트 만든 감독이었구나.. 영화 꼭 봐야겠다. 글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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