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혼자도 아닌…생활동반자법 제정되면 뭐가 달라질까?「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 최초 발의, 국회 토론회 열려올해 4월 26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처음으로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다. (용혜인 의원 등 11인 발의) 9년 전인 2014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이 “누구나 삶을 함께 살아갈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는 생활동반자법 입법을 준비했지만, 보수단체 등의 반대로 발의에 실패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동성혼을 ‘대신하는’ 법안이라는 등의 오해와 선동이 있다. 그러나 2012년부터 2019년까지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의 입법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던 황두영 작가는 책 『외롭지 않을 권리』(시사IN북)에서, “생활동반자법 논의의 핵심은 ‘고독’”이라고 했다. 황 작가는 “생활동반자법은 고독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돌봄’에 대한 법”이라고 이야기하며, 현재 “국가가 국민이 외롭게 살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번에 발의된 생활동반자법은 현행 법이 규정하는 협소한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 혼인·혈연과 무관하게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고 있는 생활동반자 관계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제도적 안전망을 마련해 주고자 만들어졌다.
1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법안의 취지와 의미를 설명하고, 한계 지점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제언이 오간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새로운 가족의 탄생 -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누구든 함께 돌보고 생활하고 부양하고 있다면 ‘가족’
생활동반자법을 대표발의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이미 우리 현실이 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의 증가를 반영하고자 이 법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용 의원은 “법적이고 제도적인 가족의 의미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가 국민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임에도 “현재 한국의 법 제도에서 가족은 여전히 혼인과 혈연으로만 이루어진 단위라,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제 시민들은 더 이상 결혼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으며, 실제로 ‘남성생계부양자 정상가족 모델’은 현재 20%도 채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1인 가구는 40%를 돌파하는 상황이다.”
1인 가구가 증가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면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 자체가 줄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선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용혜인 의원은 “많은 이들이 법적인 결혼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양한 방식의 돌봄과 부양을 하며, 가족과 같은 생활을 이미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가족’ 기준으로 집계되는 여러 조사 등에서 누락되거나 드러나지 못하는 다양한 가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주거, 생활 비용을 분담하며 지내는 경우도 있고, 배우자와 이혼 혹은 사망 후 (혼인 없이) 여생을 함께 보내는 중장년 커플도 있고, 아예 혼인 제도에서 배제된 퀴어 커플도 있고, 시설이나 원가정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돌봄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고 있는 노인, 장애인들도 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삶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법과 제도가 과거에 머무른다는 건, 필연적으로 차별과 배제를 발생시킨다. 이런 상황을 메꾸고자 하는 것이 생활동반자법이다. 용 의원은 “이제는 특정 형태를 갖춰야 성립되는 ‘명사’로서의 가족이 아니라, 친밀함과 돌봄을 실천함으로써 이루는 ‘동사’로서의 가족을 국가가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구든 함께 돌보고 생활하고 부양하고 있다면 돌봄이나 노동, 복지, 장례 등 생애 전 과정에서 가족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할 수 있도록 법안을 구성했다.”
법안을 보면 “성년이 된 사람은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생활동반자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생활동반자관계를 맺은 이들은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며, “개인과 개인의 계약이기에 상대방의 가족과 인척 관계가 형성되진 않는다.” 그리고 생활동반자가 된 이들은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등의 사회보험, 공공부조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주거기본법 등에 의해 주거권도 보호받을 수 있으며, 위급한 상황에 의사 결정을 할 권리, 애도할 권리, 유족으로서의 권리 등”을 갖는다.
다양성 수용 커지고, 돌봄의 사각지대 보완할 것
토론회에 참여한 이들은 이번 법안 발의가 ‘현실의 변화에 비해 늦은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법안이 마련된다면 더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짚었다.
2017년 진행한 〈다양한 가족에 대한 사회와 개인 편견 정도 차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다양한 가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있다고 답한 경우는 90.5%(약간 있다 40.1%, 매우 있다 50.4%)인 것에 반해, 다양한 가족에 대한 ‘개인 편견’은 없다고 답한 경우가 55%(전혀 없다 24%, 별로 없는 편이다 31%)로, 큰 차이를 보였다. 변수정 연구위원은 “개인은 변화와 수용의 준비가 되어 있지만, 제도를 포함한 우리의 사회적 환경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제도가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변 연구위원은 “이제 제도의 리드가 필요하다”고 했다. 흔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새로운 법과 제도를 지연시키는 핑계로 사용되지만, 법과 제도가 진일보하면 더 큰 변화와 다양성에 대한 수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성소수자이자 비혼 동거가구 당사자로서 발언한 바이티 씨는 일각의 ‘동성애자를 늘리는(?) 법’이라는 오해와 달리, “생활동반자법만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모두를 해소할 순 없다”고 했다. “비성소수자만 혼인이 가능하고, 성소수자는 혼인에 준하는 관계의 생활동반자관계만 가능하다면, 그것은 성별과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법으로 “(성소수자 커플도) 실질적으로 법적 관계가 될 수 있고, 제도가 보장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성소수자 커플이 겪는 차별이 부분적으로 해소 가능할 것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했다.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또한 “생활동반자법 입법은 고령화와 가족변화를 동시에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돌봄과 부양의 사각지대를 보완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장애인, 미성년, 노인공동체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법안인 만큼 더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현 법안 7조에서 생활동반자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성년’이며, 피성년후견인은 성년후견인의 동의를 받아 생활동반자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고나영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청소년 혹은 장애인이 ‘피성년후견인’으로 분류되고, 이들이 의사결정 및 판단 능력이 없다고 규정되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의 경우 가정법원이 명시한 후견개시 원인이 소멸하기 어렵기 때문에, 후견개시 종료 또한 어렵다. 즉, 당사자가 원치 않더라도 성년후견인은 지속해서 당사자의 권리를 대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게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고나영 활동가는 “생활동반자관계의 결합과 해소에서 성별, 연령, 장애 등 포괄적으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제7조에 당사자의 결정 권한을 가지고 대리하는 방식이 아닌, 지원하거나 조력하는 시스템을 포함”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해당 조항인 ‘제7조 생활동반자관계 형성의 능력’을 ‘제7조 생활동반자 관계형성의 차별금지’로 변경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최근 생활과 돌봄을 함께하는 다양한 공동체 관계의 제도적 포용 논의에 있어, 그룹홈 등 청소년을 포함한 미성년자들이 포함된 공동체 관계에 관한 논의”가 주요한 이슈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향후 제도와 정책에서 이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포섭할 수 있을지 논의가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 연구위원은 또 “동거와 비동거를 넘나드는 다양하고 느슨한 돌봄·생활 공동체를 제도에서 어떻게 포용해 나갈 것인지”, “노인돌봄공동체, 장애돌봄공동체 등 다양한 당사자로 구성된 공동체의 가족실천을 어떻게 정책대상에 포섭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혜인 의원 또한 현재 법안의 한계와 더 논의가 필요한 지점에 대해 인지하고 있음을 밝혔다. 생활동반자법 제정은 그런 논의의 시작이다. 용 의원은 “생활동반자법이 재정되면 기존의 차별적인 가족법들도 바꿔야 한다”며 “민법 779조 폐지, 건강가정기본법 전면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수많은 시민들을 고립과 빈곤으로 몰아가는 가족 중심의 복지제도 역시 바꿔야 한다”며 “대표적으로 부양의무제 폐지”를 꼽았다. 나아가 “보편적 기본소득 역시, 가족이라는 전통적인 정책 전달의 수단을 넘어서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유대와 결합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든든한 안전망이 될 것이라는 지점에서, 그에 대한 논의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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