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개] 여성들의 말과 글이 세상에 더 많이 퍼지고 새겨져야 한다고 믿으며, 서점에서 퍼뜨리고 싶은 여자들의 책을 고른다. ‘살롱드마고’의 신간 책장에서 마음에 새겨지는 책을 한 권씩 밑줄 그으며 꼭꼭 씹어 독자들과 맛있게 나누고자 한다.
쟤는 분명 지옥에 갈 거야. 우릴 슬프게 했으니까. -이소호 시집 『캣콜링』(민음사, 2018) 시인의 말
몇 년 전 이소호 시인의 시집을 처음 읽었을 때, 책을 펼치자마자 가슴에 비수가 날아들었다. 분명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지만 그것은 내 가족의 익숙한 목소리로 들렸다. 평생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죄책감이 발목의 모래주머니처럼 무겁게 따라다니게 하는 사람들. 언제부턴가 가족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우리는 가만히 누워 티브이 속 다른 가족의 웃음소리에 귀 기울였다 -‘플라스틱 하우스’에서 (이소호 시집 『홈 스위트 홈』)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가정환경 조사지’를 써오라고 한 적이 있다. 집에 가져와 문항에 답을 적어가던 중 “우리 집은 민주적이다 - 그렇다/아니다”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내가 답을 얼른 쓰지 못하고 망설이자 옆에서 보고 있던 아버지는 ‘그렇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에 표시하라고 했다. 내가 아버지를 쳐다보며 “우리 집이 민주적이야?” 묻자 그는 “당연하지” 했다. 나는 ‘민주적’이란 말의 뜻은 정확히 몰랐지만, 적어도 이 상황은 민주적이지 않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우리 집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애처가, ‘딸바보’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출장에 다녀올 때마다 선물을 가득 사 왔고, 점심시간이면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따뜻한 도시락을 갖다 줄만큼 다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소리 지르며 화를 낼 자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퇴근할 때 가족들이 현관문 앞에 주르륵 서서 당신을 맞이하지 않으면 괘씸히 여기고 서운해했다. 엄마의 투덜거림이나 잔소리는 아버지가 눈을 크게 뜨고 한 번 “쓰읍” 하면 TV 리모콘 음량 조절하듯 저절로 잦아들었다. 사랑도 분노도 우리 집에서 뜨거운 것이라면 모두 아버지의 소유였기에, 나는 저편에서 차갑게 식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빠는 잠자리가 예민한 사람이란다 단 한 마리도 거슬리게 해서는 안 돼 그걸 죽이기 전까지는 한숨도 주무시지 못하시거든 -‘아버지가방으로들어오신다’에서 (이소호 시집 『홈 스위트 홈』)
어떤 독자들은 이소호 시인에게 시의 내용이 진짜인지, 본인이 실제 겪은 일인지 묻는다는 이야기를 기사에서 보았다. 사람들은 가정폭력을 특별하거나 희귀한 일이라 여기는 걸까? 어떤 작가가 노동현장의 문제를 고발하거나 성폭력 문제에 대한 작품을 썼다고 해서, 모두 당사자가 직접 경험한 일이라고 바로 유추하지 않을 것이다. 이소호 시인의 작품색이나 목소리가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가족이라는 ‘성역’에 숨은 불편한 진실을 날것 그대로 ‘폭로’하기 때문이 아닐까. ‘스위트 홈’을 비틀고 현실세계를 그대로 비춰주는 그의 시들은 우리가 살아온 집이라는 장소와 가족이라는 관계를 다시 보게 만든다.
엄마는 도마 위에서 푸르게 멍든 생선의 눈알을 판다 까맣게 변해버린 생선의 대가리를 자르고 살만 발라 아버지 숟가락 위에 얹었다 -‘손 없는 날’에서 (이소호 시집 『홈 스위트 홈』)
집단상담이나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면, 가족 이슈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곧 ‘가족의 역사’나 다름없다.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원망하는 존재. 누구나 갖고 있으면서도 비밀에 부치는 문제. 삶에서 가장 오래, 깊이 쌓여 있는 것이 가족관계에서의 복잡한 감정들이다. 그럼에도 가족 때문에 상처 받았거나 힘들다 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도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면…”이라고 똑같이 말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내가 가족사를 공개했을 때 어떤 이는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잘 자랐다”고 평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그리는 ‘평범한 가족’ 그러니까 ‘정상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가난하지 않고, 폭력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서로를 늘 사랑하고, 모두가 불만이 없고, 모두의 삶에 아무런 걸림도 문제도 없는 가족?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이 보편적이고 정상이라는 편견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억압하는가. 정상가족을 맹신하는 사회에서 가정 내 폭력은 인권침해가 아니라 골칫거리이자 수치로 여겨지기 쉽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가해자의 폭력은 정당화되고, 피해자는 한층 더 억눌린다.
이소호 시인이 소환한 ‘딸’의 목소리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지배하는 가부장제를 예리하게 포착해 고발한다. 여성은 이 가부장적 정상가족의 구조 안에 배척된 존재로서 가장 큰 희생자가 되는 한편, 가족 내 다른 여성을 억압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엄마는 우리들의 주둥이에 올가미를 씌우고 공주처럼 말하는 법을 가르쳤어요 -‘성장통’에서 (이소호 시집 『홈 스위트 홈』)
‘효녀’와 거리가 멂에도 불구하고, ‘딸’의 옷을 벗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익숙한 자책이 고개를 들 때면 언젠가 들었던 말을 상기하곤 한다. ‘나에게는 나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우리 집이 다 빨갰으면 좋겠다
나는 빨간색 펜을 꺼내 내 이름을 죽 쓴다 이경진 이소리 이소호
누구부터 죽여야 행복할 수 있을까
펜은 나부터 죽였다 -‘택시 마니아’에서 (이소호 시집 『홈 스위트 홈』)
[필자 소개] 달리. 에세이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2021)의 작가이며 전북 남원에 있는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 ‘살롱드마고’에서 프로그램과 모임을 기획한다. 지역에서 여성들과 글을 읽고 쓰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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