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여성 노동자가 겪는 구조적 차별을 드러내기 위해, 연속 세미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본 여성과 노동]을 기획했다. 첫 번째 키워드 ‘지역☓청년’에 관한 논의는 5월 4일 한국여성노동자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기록노동자 희정이 진행과 기록을 맡았다. [편집자 주]
월 평균 임금을 둘러싼 의혹
“월 평균 임금이 왜 이렇게 높나요?”
「90년대생 여성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를 본 90년대생 히니의 반응이다. 설문은 최근 3개월간의 월평균 수입을 물었다. 가장 많은 이들이 응답한 소득 금액은 200만 원에서 250만 원 사이. 3명 중 1명이 이 금액을 받는다고 응답했다(33.4%). 150만 원부터 200만 원 사이라 응답한 여성들은 18.7%. 그 이하를 받는다고 한 이도 30%가 넘는다.
조사 당시인 2021년 최저시급으로 따진 월급이 1,822,480원이다. 최저임금에 가깝거나 그 이하로 받는다고 답한 이가 절반을 넘어서는데, 이 금액이 많다고? 그런데 박선영이 말을 거든다. “서울 수치 때문에 그래요.” 서울 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 평균 소득을 상승시켰다는 이야기다. 다른 지역은 이보다 더 적다.
똑같은 시간 일해도 대구의 90년대생 여성들은 전국 평균보다 50만 원 정도 임금을 덜 받는다고 했다. 이때 전국 평균은 서울 지역 평균과 비슷하다. 당연하다. 서울 거주 응답자가 월등히 많으니까.
박선영: 설문조사만 보더라도 서울 통계랑 전국 통계랑 거의 비슷하거든요. 응답자의 1/3이 서울, 1/3이 인천과 경기도, 나머지가 다른 지역이죠. 4,632명 중에 1,400명가량이 서울이니까요.
그의 말에 히니와 나는 각기 다른 의문을 가졌다. ‘왜 이렇게 압도적으로 서울 응답자가 많은 가. 온라인 공간에도 지역 구분이 있는 건가.’ 나는 이것이 궁금했는데, 히니의 질문은 달랐다.
“이 응답들이 청년들이 받는 실제 임금을 반영하고 있을까요?”
여성 청년=가성비 좋은 노동자
히니(B급취향 책방지기): 대형 카페에서 일할 때, 처음에는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나중에는 직원으로 일했거든요. 정규직이었어요. 포괄임금제인데, 내가 아무리 초과노동을 해도 월급은 오르지 않아요. 평균으로 치면, 저도 200을 넘게 받았는데. 일하는 시간으로 치면 최저임금이 안 되는 거예요. 월급을 얼마나 받나. 이 응답에 숨겨진 정보들이 많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설문조사 결과가) 조금 아쉬웠죠.
50개의 문항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박선영: 소득에 있어서 임금, 노동시간 쪽을 다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평가가 내부에서도 있었어요. 대출 금액까지 포함해서. 설문에 대출이 있는지에 관한 문항을 넣긴 했는데(있다고 응답한 비율 40.5%). 저희가 생각한 것보다 응답 비율도 높고 중복 대출 응답도 많은 거예요. 여기에 제1금융권인지, 제2금융권인지를 나눠 묻고 대출의 규모도 조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희정: 또 다른 설문 결과로, 정규직이 10명 중 6명이 넘는다고 해서 생각보다 많구나 싶었지만, 설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5인 미만, 10인 이하 사업장 근무자가 많은 거예요. 그걸 보면서, 정규직이라지만 별 의미가 없겠구나 싶었어요.
카페 정규직이었던 히니는 지금 그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다. 그곳을 ‘자발적’으로 그만둔 이유는 직장 내 괴롭힘 때문이었다. 당시 관련 법이 존재하지 않았고, 사장과 매니저가 절대 권력을 지닌 작은 사업장에서 ‘버팀’은 ‘고용 기한의 정함이 없음’이라는 법적 명시와는 무관한 이야기였다.
이를 증명하듯, 설문 결과를 보면 이직률이 매우 높다. 근무 기간이 1년 미만인 이가 56%. 이직 경험이 3차례 이상이라 응답한 이가 3명 중 한 명이다.
박선영: 이직을 거듭하니까, 경력이 안 되는 거예요. 근무 확인서는 받을 수 있으려나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로 근무 경력이 짧고. 제가 만난 면접자는, 첫 직장이 정규직이었는데 1년이 안 되어서 이직을 하거든요. 5인 미만 사업장에, 가족 경영으로 운영되는 곳. 대표가 이사하면 짐도 날라줘야 하고. 진급도, 시스템도 없어요. 진급이 별로 의미도 없어요. 기본급 자체가 낮기 때문에. 내가 정규직이면 뭐해. 여기선 전망이 없다. 그래서 환승 이직을 했어요. 그리고 좀 규모가 있는 곳 계약직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선 아직 2년이 안 지나서. 계약 기간 2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죠.
퇴사의 이유로 가장 많이 뽑은 것은 ‘근무 여건의 불만족’(29%), 그다음으로는 ‘전망 없음’(13.6%)이 차지했다. 심층 면접 인터뷰 내용을 일부 가져와 본다.
“원장님이 여자분이셨는데, 본인 백화점 쇼핑이라든지, 개인 용무를 따라가 줘야 됐고, 본인 집 이사하는 데 다 동원되어서. 저희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고 어리다고 무시를 하고, 인격적으로 참기 힘들어가지고. 1년을 채우자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냥 퇴사하게 됐어요.”
“육체적으로 힘들고 이런 느낌보다도 ‘내가 너무 작은 곳에만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게 스스로에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내가 학교 다녔을 때 했던 일을 그대로, 과제를 연속해서 하는 느낌.”
박미영(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부대표): 이야기 나온 대로 고용 형태로 구분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정규직의 의미가 없을 때가 많죠. 노동의 내용이 얼마나 나에게 적합한가. 이 조직이 앞으로 내가 몸담을 만한 비전이 있는지. 이런 게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건 너무 힘들고. 사실 조건이 좋은 곳은 남성을 주로 고용하죠. 한 분은, 지금 직장에서 7년 차인데 딱 한 번 승진했대요. 그 사람은 이게 끝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나는 가성비 좋은 노동자잖아. 그래서 걔들이 안 자르는 거야.
희정: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의 노동이 안정되었다는 걸 고용 형태로 증명할 수 있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한 사람이 누리는 일터의 권리와 처우를 무엇으로 파악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네요.
박미영: 심층 면접 같은 구술 작업이 더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 청년의 노동은 그간 노출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노출의 빈도가 높아져야 되고, 그 내용도 상당히 구체적이어야 하죠. 노출의 빈도와 구체성이 같이 가야 현실을 드러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박선영: 맞아요. 설문에 담지 못한 내용이 지금 우리가 얘기한 것들에서도 막 드러나잖아요. 여기에 모인 사람들의 나이 평균을 내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나이 숫자가 나오죠. 우리의 이야기가 평균 나이의 사람을 대변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인데. 구체적으로 드러내야죠.
그 구체를 드러내는 활동 중 하나로 ‘페미워커’(청년 여성노동자 모임)가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페미워커 소모임을 3년째 운영 중이다.
지역 평균=서울 평균
이번 「90년대생 여성 노동자 실태조사」의 의미 중 하나는 한국여성노동자회의 11개 지역 지부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차원에서 조사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조사 결과의 평균을 내면, 다시 서울 평균으로 돌아가는 아이러니가 일어난다.
박선영: 서울 하나가 수도권 빼고 타 지역 전부를 합친 응답 인원과 같으니까요. 심지어 나머지 지역은 그 1/3를 여러 시도 단위로 나눠야 해요
희정: 왜 이렇게 서울에서 참여한 수가 많았을까요? 온라인을 통해 설문 받았는데.
박선영: 우선은 서울 청년 인구가 가장 많고….
서울의 청년 수가 압도적이긴 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20대가 140만여 명인데 비해, 대구는 28만 명, 포항은 5만여 명이다. 포항과 비교한다면, 거의 30배 차이다. 읍·면 단위로 가면 청년은 더 희귀하다.
박선영: 지방에 있는 여성들이 뭔가를 터 넣고 이야기하는 자리나 기회가 별로 없었을 것이라 예상되기도 해요. 그러면서 온라인 공간일지라도, 내가 누구랑 함께 내 노동이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야겠다는 욕구가 생성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이 아닐까.
히니: 지역에선 청년이건, 중장년 여성이건 이런 소통을 하는 자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책방에서 글쓰기 모임을 운영할 때도 보면, 거기 오는 분들이 글쓰기 모임을 너무 하고 싶은데 찾다 찾다가 포항에서 여기밖에 없어서 왔다. 심지어 경주에서 오는 분들도 있어요.
직장생활을 시작하는데 사회관계망은 더 좁아진다. 마음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은 다 서울이나 도시로 갔다. 같이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
박선영: 이번 실태조사의 후속 작업으로 ‘90년대생 여성노동자 우울’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깨달은 게, 인적 자본의 유무가 개인에게 굉장히 크게 작용하는구나. 학력이나 경제적 자본도 중요하지만, 특히 인적 자본. 그중에서도 사회적 지지 그룹이 있는지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희정: 지방에 사는 여성들이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자기를 지지해 줄 만한 사람들이 떠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지방에 있을 때를 떠올리면, 주변에 마음이 맞고 무얼 적극적으로 도모해볼 사람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때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어요. ‘적극적인 애들은 다 서울로 갔지, 여기 남아 있겠니.’ 저는 그 말이 100% 진실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지역에서 많은 동료들을 찾았고. 조건의 문제인 거죠.
박미영: 인적 관계망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너무 기반이 허약해서, 모든 걸 못 견뎌 하는 것 같아요. 지방의 청년 이야기가 나오면, 늘 떠나고 싶은 사람들만 말하잖아요. 그런데 다 떠나고 싶어하는 건 아니거든요. 내가 태어난 이곳에서 뭘 해보고 싶은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떠날 수밖에 없는 거지. 지역 사회가 어떻게 하느냐가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지역이 청년 여성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어떻게 어울릴 것인가.
또래 여성들이 모일 공간이 없어요, 지방에는
쉬는 시간에 잠시 박미영과 이야기를 나눴다. ‘90년대생은 언제 열리는 행사에 참여할 수 있을까.’ 퇴근 후 저녁 행사? ‘9 to 6’ 근무 형태는 점점 줄어간다. 많은 이들이 플랫폼을 통해 일하고, 프리랜서로 일한다. 정규 직장이래도 저녁 6시에 퇴근할 수 있는 신입사원은 많지 않다. 그랬다면 이직률이 이렇게 높을 리 없지. 퇴근하고도 바쁘다. 운동을 하거나 학원을 간다. 그렇다면 주말에? 오전에? 음... 이때 쯤이면 모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비단 90년대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형화된 정규 노동에 속하지 않는 이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 박미영은 말했다. “그냥 열어두어야죠. 언제든 올 수 있도록.”
히니: 대형 카페에 들어가 일을 했는데, 아주 처참했죠. 노조 이런 것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고, 거기 사람들이랑 페미니즘 독서 모임을 만들었어요. 포항 청년 여성들 다 모여라. 왜냐하면 제가 노조 활동하면서 느꼈던 답답함을 우리 지역에 있는 또래 여성들도 느꼈을 거라 생각해서. 모임이 잘 운영이 됐죠. 그걸 보면서, 공간까지 있으면 어떨까. 책방을 열었고, 지금은 3년 차.
그 공간에서 독서 모임도, 글쓰기 모임도 열린다.
히니: 그런데 제가 책방을 계속하며 느꼈던 것은 어쨌든 만들어 놓으면 오는 사람이 있다. 그런 장을 계속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관공서에서 하는 그런 행사들이 아니라. 그런데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다. 금전 문제가 있으니까요.
박미영: 진짜 공간이 없어요. 만나면 무슨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심지어 오늘 먹은 반찬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대. 지역에서도 청년 공간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죠. 재정이 끊겨서.
이 또한 자원의 문제이다. 지역 격차와 형평성의 문제이기도 하며, 청년·노동 지원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필자 소개] 희정. 기록노동자.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 최근작으로 『일할 자격』,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등이 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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