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현장에서 NO라고 말하기 어렵잖아요

일본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인 니시야마 모모코 인터뷰(상)

박주연 | 기사입력 2023/06/05 [17:23]

촬영 현장에서 NO라고 말하기 어렵잖아요

일본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인 니시야마 모모코 인터뷰(상)

박주연 | 입력 : 2023/06/05 [17:23]

미국 헐리우드와 캐나다, 영국 등에선 연극, 영화, TV 드라마의 ‘성적인 장면’을 담아낼 때 이를 조율하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Intimacy Coordinator, 이하 IC)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탄생은, 세계적으로 일어난 미투 운동(#Metoo) 이후 성차별과 성폭력이 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관련 기사: ‘성폭력 없는 촬영현장 만들기’ 변화가 시작됐다 https://ildaro.com/8348)

 

새로운 역할이지만, 필요한 일로 각광받고 있는 IC라는 직업에 주목하고 있던 차에, 지난 5월 11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역할’을 알리는 교육의 자리를 마련했다. 강의를 진행한 건 일본에서 IC로 활동 중인 니시야마 모모코 씨로, 현재 일본에서도 2명밖에 없는 IC 중 한 명이다. 그는 2020년 인티머시 프로페셔널 연합(Intimacy Professional Assoiation, IPA)의 교육을 통해 자격을 취득했으며, 현재 IPA 소속이다. 강의에서 IC가 되기 위해 받는 교육, IC가 하는 일, 현장에서의 경험 등을 공유한 니시야마 씨는 한국에서 IC 양성과 활동에 대해서도 의욕을 드러냈다.

 

니시야마 씨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어 인터뷰를 청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IC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사회의 성평등한 성교육 부재, 여전히 낮은 인권의식 등에 동병상련을 느끼며 동지애를 나눴다. 한편으로는,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격려하며 의지도 다졌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로 힘찬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는 니시야마 모모코 씨와 나눈 이야기를 상/하 편으로 나눠 전한다.

 

▲ 프랑스 통신사 AFP 뉴스에서 다룬 니시야마 모모코 씨의 이야기 “'Not the enemy': intimacy coordinator makes inroads in Japan” 중, 촬영현장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모습. (출처: https://youtu.be/_fEiDHldRhU)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미투운동 이후, 2018년부터 부각되었고 현재 영미권 국가에선 IC와 작업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니시야마 씨는 IC를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원래 프리랜서 아프리카 현지 촬영 코디네이터로 방송국 등에서 일했어요.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고, 해외로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일을 못하고 있었죠. 어느 날 영국에 사는 친구한테 전화가 와서 “혹시 IC라는 직업을 알고 있냐?” 하더라고요. 일본에선 전혀 언급된 적도 없으니까 “모르겠다”고 했더니, “이번에 일본에서 IC 양성 교육을 할 예정이니 한번 해 보라”고.

 

처음엔 특별한 생각이 있진 않았어요. 스스로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방송·영화업계에서 오래 일했다 보니, 지금의 제작 환경에 좀 둔감해진 부분도 있었거든요. 그런 와중에 IC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뭐하는 일인가 찾아봤더니 꽤 흥미롭더라고요.

 

사실 항상 답답한 부분이 있었어요. 아프리카 현지 촬영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반복적으로 본 장면이, 일본 제작진들이 아프리카 대륙이나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을 담아내는 제한적인 방식이거든요. 사실 아프리카에서의 삶은 굉장히 다양하고 행복한 일도 많은데, 어둡고 불행한 측면만 부각하더라고요.

 

또 일본은 여전히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직급이 높은 사람 대다수가 남성이에요. 회의하러 가면 나빼고 다 남성들이죠. 그들이 모여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건 이런 거잖아” 이런 얘길해요. “여자들은 슈퍼마켓 특집 이런 거 보여주면 좋아하잖아”라고. 그럼 내가 “아니에요. 여자라고 그런 거 다 좋아하진 않아요.”라고 얘길 덧붙이곤 했죠. 그런 일들을 반복하다 보니까, 답답함이 계속 쌓이더라고요. 그런 때 IC를 알게 된 거에요. 이 교육을 듣고, 공부하면 내 안의 답답함이 조금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해 보자’ 결심하게 됐죠.

 

-한국도 성별화된 구조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바꿔나가야 하는데요. 일본도 아직 방송이나 영화 쪽에 남성 비율이 훨씬 높은가요?

 

여전히 남성이 대다수에요. 어떤 때는 “니시야마 씨가 여성이 없다고 그래서, 여성 스텝들을 추가했어”라고 해서 살펴보면, 여성이 늘어나긴 했는데 직급이 다 어시스턴트(보조)인 거죠. 어떤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거에요. 여전히 그 남성들은 여성에 대해 ‘(남성을) 지원하는 사람’, ‘자신들 위치에 위협이 되지 않는 사람’이길 바라는 거죠.

 

IC가 되고 나서 참여한 작품이 서른 작품 즈음 되는데, 여성 연출이었던 일본 작품은 단 하나였어요. 아직 그 정도라고 보면 돼요. 여성 제작진이 조금씩 늘고 있긴 하지만,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남성이죠.

 

남성들만 있다 보면 아무래도 ‘무의식의 편견, 차별’(Unconscious Bias)이 작동하기 쉬워요. 무의식 중에 여성을 계속 가사노동 하는 사람, 요리하는 사람으로 묘사해 버리는 거죠. 남성 시선에서만 바라보니까요. ‘성적인 장면’도 마찬가지에요. 남성 시선으로만 그려지다 보면 여성은 항상 남성을 즐겁게 해 주는 역할에 머무르죠.

 

▲ ‘인티머시 코디네이터’(Intimacy Coordinator)로 활동하고 있는 니시야마 모모코 씨. 최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에서 진행한 “노출 및 성적 장면을 안전하게 촬영하는 방법: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역할” 교육에 강사로 참여했다. (사진 제공: 니시야마 모모코)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IC교육에 참여하신거군요. 어떤 걸 배웠는지 궁금합니다.

 

미국 협회에서 연 교육이니까, 아무래도 미국은 전반적인 인식이 일본보다 앞서 있잖아요. 성교육도 그렇고, 괴롭힘 방지에 대한 것도 그렇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배웠고, 물론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배웠죠.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 촬영에 대한 것, 정신건강의 문제나 트라우마를 알아차리는 방법 등을 비롯해 LGBTQIA에 대한 교육도 받았어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배우니까 좋더라고요. ‘이런 교육을 해야 하는구나’ 다시금 깨닫기도 했고요. 이걸 계기로 LGBTQIA에 대한 영화도 만들었어요. 방송·영화업계 사람들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음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보러 오는 사람은 역시 원래 관심 있는 사람들이더라고요.(웃음) 정말 봐야 하는 사람들은 안 오고 말이죠.

 

교육을 받고 나서 나의 세계가 넓어진 건 확실해요. 대략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게 됐고, 더 나은 소통이나 대화의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으니까요. 나를 위해서도 필요했던 교육이었어요. 일본엔 아직 없는 교육이기도 하고요.

 

-교육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요?

 

코로나 팬데믹 기간이었기 때문에 미국에 직접 가서 트레이닝을 한 건 아니고 온라인으로 교육을 받았어요. 원래 미국에선 일주일에 한 번, 6개월 동안 진행하는데 이번엔 매일 3주 동안 했어요. 정말 힘들더라고요. 당연히 영어로 하는데다, 교과서가 있는 것도 아니라 페이퍼 몇 장 주고 계속 말로 설명하더라고요. 그걸 다 이해해야 했고, 매일 숙제도 있었고, 매일 테스트도 있었어요. ‘미국에선 대학 입학하는 것보다 졸업하는 게 더 힘들다’는 말이 있잖아요?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졸업하기 너무 힘든(웃음) 정말 제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공부한 기간이었을 거에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IC 양성 교육을 받으며 특히 인상적이었다거나,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요?

 

미국이라고 해서 제작현장이 다 좋고, 안전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어요. 거기도 아직 문제들이 있지만, 그래도 어떤 ‘가이드라인’이 있다는 건 확실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미국은 ‘아니요, 싫어요.’(No)를 말할 수 있는 허들이 좀 낮다는 거에요. 자기 표현이 정확한 편이라는 거죠. 미국에서 배우한테 촬영 중에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나요? 하기 싫은 부분이 있나요? 보여주고 싶지 않는 부분이 있나요?”라고 물으면 대답을 하거든요. 반면 일본에서 어렸을 때부터 ‘참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문화에요. IC교육을 받으면서, 이런 부분을 바꿔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 5월 11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에서 ‘영화·영상산업 내 성폭력 예방교육’의 일환으로 “노출 및 성적 장면을 안전하게 촬영하는 방법: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역할” 교육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해당 홍보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에서 강의한 내용을 들었는데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알아두면 좋은 지식으로 ‘괴롭힘’(Harassment), ‘무의식적 편견’(Unconscious Bias), ‘미세차별’(Micro aggression), ‘외모지상주의’(Lookism)’를 언급했던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IC는 ‘성적인 장면’을 위해 투입되는 사람 아니냐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이런 지식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IC가 성적인 장면에서만 역할을 하면 되는가?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특히 일본 제작 현장에서 말이죠. 거기엔 권력 피라미드가 존재해요. 감독이 있고, 프로듀서가 있고, 조감독이 있고, 헤드 스텝이 있고, 어시스턴트들이 있고…. 이런 상황에서 피라미드 아래에 있고,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하기가 되게 힘들어요. ‘뭔가 좀 이상한데?’ 싶어도 얘길 못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IC라고 하는, 약간 알 수 없는 존재(웃음)이자 새로운 역할을 가진 사람이 등장해요. 이 사람은 새로운 사람이니까 상대적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죠. “이대로 괜찮을까요? 이 표현 조금 이상하진 않나요?”라고. IC는 성적인 장면의 묘사를 위해서 존재하기도 하지만,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일원이잖아요. 그리고 사실 제가 언급한 내용들은 IC라서 알아야 하는 지식이 아니라, 모두가 알아야 하는 지식이지 않나요?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IC가 존재하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지식은 알아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내가 투입되는 장면이 아니라 하더라도 ‘무의식적 편견’, ‘미세차별’, ‘외모지상주의’에 기반한 대사나 장면이 있다면, 그에 대해 말하기도 해요. 제작자 중엔 정말 ‘몰라서, 의식하지 못해서’ 편견적이고 차별적인 장면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거든요. 누군가 그걸 알아채고 알리는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또, 아시아 국가들이 외모지상주의도 굉장히 심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문제를 인지하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런 지식은 함께 공유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이어지는 (하)편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로서의 현장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토비 2023/06/07 [13:45] 수정 | 삭제
  •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뭘하는 역할인지 잘은 몰랐는데 좀더 알 것 같아요. 국내에서도 교육이 진행될 거라니 기대기대.
  • 기린그림 2023/06/05 [21:45] 수정 | 삭제
  • 나도 방송국에서 일하는 그남에게 비슷한 말 들은 적 있어서 넘 공감.. 여자들은 이래, 여자들은 이런 거 좋아해.. 이런 얘기. 아뉘 나보다 여자들의 호불호를 더 잘 아냐고요..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