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친화적인 일터’를 꿈꾸는 노동자들

민주노총 성소수자 모임 멤버들과의 인터뷰

박주연 | 기사입력 2023/06/20 [13:29]

‘성소수자 친화적인 일터’를 꿈꾸는 노동자들

민주노총 성소수자 모임 멤버들과의 인터뷰

박주연 | 입력 : 2023/06/20 [13:29]

미국에서는 노동자 그룹 중 가장 ‘젊은’ 세대인 Z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 초반 출생)가 가장 친노조적인 세대로 부각되고 있다. 작년 10월 발표된 미국 CAP(Center for American Progress)의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노동조합 지지율은 64.3%로, 밀레니얼 세대 60.5%, X세대 57.8%, 베이비 붐 세대 57.2%보다 높다. Z세대를 U세대(Generation U, U는 Union 노동조합을 의미)라 부를 정도다. 그 어느 세대보다 ‘다양한’ 세대인 Z세대는, 그런 다양성이 반영될 수 있는 일터를 원하기 때문에 노조에 더 친화적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몇 년 간 스타벅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업에서 노조 결성을 추진한 이들은 여성, 퀴어, 비백인들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다. 스타벅스 노동자연합(Starbucks Workers United)은 조합원 중 다수가 여성과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퀴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그동안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일터를 바꾸는 주체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 글로벌 유니온이 만든 책자 「평등을 위한 투쟁 - 노동조합과 성소수자 인권」에 소개된 한국 민주노총 사례 중 일부. (출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금속노동조합에서 번역한 한국어판)


우리 사회는 어떨까? 크게 가시화되진 않았지만, 한국에도 ‘노조’와 ‘성소수자’를 연결하는 움직임이 있다. 2019년 11월에 첫 태동을 알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약칭 민주노총) 성소수자 모임은 아직은 규모가 작은 모임이지만, 성소수자 노동자를 가시화해서 노조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한국 직장 문화의 변화도 꿈꾸는 야심 찬 모임이기도 하다.

 

‘민주노총 성소수자 모임’에서 활동하는 네 사람을 줌(zomm)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노조에서 일하는 이경, 엔진 활동가. 그리고 각기 다른 현장에서 일하는 태영, 로기 조합원이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성소수자 노동자에게 노조란 어떤 의미인지, 성소수자 친화적인 최근의 변화들과 함께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네 분 모두 반갑습니다. 각자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태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약칭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활동하고요, 사서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서 교사는 아직 (전체 교원 중) 12%대밖에 안 되거든요. 그런 점에서 학교 내 소수자이기도 해요. 30대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고 시스젠더(지정성별과 성정체성이 일치) 그레이로맨틱(에이로맨틱 스펙트럼으로 로맨틱 끌림을 드물게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로기: 민주노총 경기중서부 건설지부 소속 형틀목수 조합원이고, 20대 후반입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조합원이 된지 이제 1년 좀 넘었네요. 그리고 논바이너리 (non-binary, 남녀로 이원화된 젠더 체계를 따르지 않는 성별정체성) 젠더퀴어입니다.

 

이경: 민주노총 총연맹 소속으로, 노동자들을 노조에 가입시키기 위한 미조직전략조직 부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40대이고, 노조 간부 혹은 활동가로 불려요. 민주노총 안에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인데요. 굳이 말하진 않는데, 숨기지도 않고 있습니다.

 

엔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서 일한지 5년차가 됐습니다. 여성은 아니지만, 작년부터 여성사업 부장을 맡았어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범성애자이고, 30대 중반입니다.

 

▲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활동하는 태영의 일터인 학교, 사서 교사인 그의 자리엔 무지개 플래그가 걸려있다. (제공: 민주노총 성소수자모임)


-처음 노동조합을 알게 되고, 가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엔진: 골프장 캐디로 일할 때 처음 노조를 알게 됐어요. 2000년대 중후반에 캐디를 시작했는데요, 2000년대 초반에 캐디들이 노조에 가입하는 붐이 있었고, 이후 회사가 노조를 탄압하는 움직임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당시 저는 노조가 아니라, 자치회를 통한 활동을 했어요. 그리고 다같이 파업을 했다가 해고를 당한 경험이 있어요. 그 때 ‘노동권’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됐죠. 이후엔 현장 노동자가 아니라 활동가로서, 노조 활동을 이어오고 있어요.

 

로기: 경기도 지역에 살던 퀴어 지인의 집에서 하숙생으로 지낸 때가 있는데, 앞으로 뭐 하면서 살까 좀 갈팡질팡 하던 때였거든요. 그러다가 서울로 목공 보조 알바를 다니게 됐고, 목공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마침 같이 살던 분이 민주노총 경기중서부건설지부에서 운영하는 안산 건설기능학교를 소개해줬어요. 목수 일도 가르쳐 준다고요. 가구 만드는 소목수 일을 생각했는데, 가 보니까 골조 공사를 하는 대목수 일이더라고요, 형틀목수. 처음 생각과 다르긴 했지만 쉽게 배울 수 없는 전문 기술이니까 한번 해보자 싶어서 시작했어요. 노조에서 만든 학교다 보니까 노조 가입을 권유했고, 조합원이 되는 거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주저 없이 가입했어요.

 

태영: 사범대학 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전교조에서 말하는 ‘학생 인권’이나 진보적인 교육에 대한 정보들을 접하는데요. 전교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죠. 학교 현장에서 교사로 일하게 되면서 전교조 소속인 선생님들도 알게 됐어요. 그들이 교육을 실천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배워볼만 하다, 같이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조에 가입했어요.

 

▲ ‘성소수자 권리 보장에 함께합시다!’ 2023년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이경 활동가의 모습.(가장 오른쪽) (출처: 노동과세계)


-여러 기대와 목표를 가지고 노조에 가입했을 것 같은데요, 들어가 보니 어떻던가요?

 

태영: 학교 내에서는 비교수 교과(교과목을 가르치지 않는 보건, 상담, 영양, 사서 교사 등)와 교수 교과 선생님들 간 차별이 좀 있는 편인데, 노조에선 그런 게 없어서 일단 좋았고요. 근데 지난 보수정권에서 전교조가 ‘노조 아님 통보’를 받아서(이후 2020년 대법원이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함) 활동을 제대로 못한 탓인지, 청년 조합원이 전혀 없더라고요. 20년씩 오래 활동한 분은 있는데 청년이 없다는 점이, 기대와 좀 달랐던 부분이었어요.

 

로기: 노조 들어갔을 때, (소속된) 경기중서부건설지부는 민주노총 지부들 중에 진보적인 사람이 많다는 얘길 듣긴 했어요. 실제로 이 지부가 걸어온 연혁, 조직화 전략, 여성위원회 활동, 조합팀 운영세칙, 조합원 교육 등을 보니까,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특히 놀랐던 건 신규 조합원 교육이나 간부 양성교육 등에서 “남성,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 있다”,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등의 성적지향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걸 알아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도 여기 희망이 있구나’ 싶었어요.

 

지금 노조 안에서 페미니즘 북클럽 모임장을 하고 있는데요. ‘내 정체성을 안심하고 드러낼 수 있고, 조합원들과 페미니즘 관점을 이해하고 생산적인 담론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물론 이런 부분이 노조의 주요 사업은 아니지만, 적어도 ‘성별이나 성정체성으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세칙에 의거해 눈치 보는 남성 조합원들이 있고, 성소수자에 대해 이해하려는 간부가 있다는 거죠.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경: 총연맹에서 일하기 몇 달 전, 민주노총 중앙 사무총국에서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한 적이 있는데요, 저도 민주노총에 대한 편견이 있었어요. 노조하면 ‘뭔가 경직되어 있고, 감수성 없을 거’라는 생각 들잖아요. 근데 제가 교육을 하고 느낀 건 ‘평균치로 봤을 때, 나쁘지 않다. 괜찮다’ 였어요. 노조가 노력해 왔구나, 특히 여성 조합원들이 정말 많은 노력을 했구나 싶더라고요. 반면에 아직 안 갖춰진 것들도 있다는 생각도 했죠. ‘생각보다 괜찮다’와 ‘아직 멀었다’가 동시에 느껴졌던 것 같아요.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웃음)

 

엔진: 다들 비슷하게 느낀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노조 분위기가 괜찮았던 건, 확실히 앞선 여성 활동가들, 이경 같은 분들 덕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의 활약이 전설처럼 내려오거든요.(웃음) “총연맹에 이경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했대”라는. 외부에서 봤을 땐 노조가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겠지만, 성평등한 노조를 만들기 위해 굉장히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들어왔을 때 이미 노조 내엔 사실혼이나 동성혼과 관련된 복리후생 규정이 다 갖춰져 있었다는 거죠.

 

▲ “일용직 퀴어 여깄다!” 피켓을든 로기 민주노총 경기중서부 건설지부 소속 형틀목수 조합원 (제공: 민주노총 성소수자모임)


-성소수자 노동자로서 일터에서의 경험은 어떤가요? 정체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일이 있는지, 그럴 때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엔진: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제가 핸드폰 배경화면을 제 이상형인 ‘예쁜’ 사람으로 설정해 둔 적이 있었는데요. 상사가 그걸 보더니 “너 다이어트 하려고 하냐? 그렇게 되고 싶냐”고 하더라고요. 화면 속 사람을 내가 로맨틱하게 좋아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한 거 같았어요. 그냥 넘기긴 했는데, 그런 소소한 것들이 계속 쌓이면 부글부글 하는 거죠.

 

노조에서 일하면서부턴 이전 환경보단 낫죠. 다만 여전히 쉽게 성별 이분법적이거나 시스젠더 중심의 표현을 쓰는 일들이 있어요. “여긴 여자들밖에 없네. 우리끼리 오붓하게 나가서 먹을까?” 그런 말을 하는 거죠. 그럼 “전 어떻게 할까요?”라고 반응해요. “차 탈 때 남자는 앞에 타고 여자는 뒤에 타.” 그럼 “전 트렁크에 타면 되나요?” 이런 식으로 대응을 하죠. 상대가 정말 잘 모르고 그런 말을 했을 수 있으니까, (상대가) 너무 당황하지 않게 대응하는 정도? 일반 회사였음 이렇게 대응 못 했을 거에요. 노조가 안전한 공간으로 생각되니까, 얘기할 수 있는 거 같아요.

 

태영: 교사 집단은 성평등이나 인권감수성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성소수자에 대해) 무지한 면이 종종 있죠.(웃음) 또 정상가족 압박이 심하고요. 교사라는 직업이 안정적인 편이라 대부분 결혼, 출산 등의 ‘정상가족 생애주기’ 궤도에 속해 있거든요. 사생활 공유도 많다 보니, “여친/남친이랑 어디서 데이트를 했다” 그런 얘기가 나오면 저도 “애인이랑 영화 봤다” 이러거든요. 그럼 “여친은 뭐하는 사람이냐?” 물어보는데, 그 때 “전 그런 표현 안 씁니다. 애인이라고 합니다.”라고 하죠.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제 말을 잘 이해 못하는데, 젊은 분들은 눈치도 있고 감수성도 있어서 “요즘은 저런 말 쓴다. 여친/남친 그렇게 말하는 거 옛날 방식이다”라고 도와줘요. 또 조합원 선생님들도 이런 부분에 공감해주시고, 성평등 책 같이 읽자 그러면 함께 해주고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로기: 아직 일터에서 (성정체성으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진 못한 것 같아요. 일하는 현장의 특성상 정말 아저씨들 천지거든요. 전 남성으로 ‘패싱’(자신의 정체성과 다른 집단으로 간주되는 것)되니까, 자기들끼리 별 얘기를 다해요. 성매매 얘기라던가, 성희롱적 발언 등 별 꼴을 다 봤죠. 그나마 최근에 여성 노동자가 오셔서 그 뒤론 좀 눈치를 보는 거 같더라고요. 이런 상황이라, 저는 노조 안에서도 페미니즘 북클럽 안에서만 정체성을 오픈한 상태에요. 앞으로도 고민이에요. 노조에서 조합원 대상 성평등 교육,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더 많이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성정체성으로 인해 어떤 어려움, 차별 등을 겪고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노조에 문의하는 경우가 있나요?

 

엔진: 작년에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성소수자 노동자가 차별을 겪었다고 제보한 적이 있어요. 직장 내 괴롭힘이랑 성희롱에 해당되는 것 같았는데 너무 안타깝게도 산업재해로 인정을 못 받았어요. 답답했던 게 현재 법·제도에선 성소수자 노동자가 겪는 차별과 관련된 규정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어디에 뭘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 때 이것저것 정보를 알게 보게 됐고, 성소수자 친화적인 노무사들도 도와줬어요. 본격적으로 성소수자가 겪는 문제나 차별을 노동 관련 규정이나 법령에 어떻게 적용시킬지 공부하고 고민하는 계기가 됐죠.

 

이경: 콜센터에서 해고당한 노동자라며 연락 온 적이 있었어요. 이야기 듣다 보니 왠지 성소수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먼저 “나는 성소수자이고, 여기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혹시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편하게 하셔라.” 했어요. 그랬더니 얘길 시작하더라고요. “이렇게 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준 사람은 처음”이라며. 그 때 생각했어요. ‘성소수자 노동자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담창구가 필요하구나.’ 최근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퀴어동네’라는 단체가 활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기대를 갖고 있어요.

 

2020년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공격 받았을 때, 민주노총 법률원이 다른 단체들과 함께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를 꾸려 상담을 받았는데요. 앞으로도 이런 역할을 민주노총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조 내에 성소수자 앨라이(지지자)가 많아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으로, 행사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 중인 엔진 (제공: 민주노총 성소수자모임)


-성소수자 노동자에게 노조가 왜 필요한가?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어요?

 

엔진: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마찬가지일텐데요. “혼자 싸우기 힘들잖아요, 노조로 오세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 자기 권리를 드러내거나, 권리를 찾으려고 하면 ‘민폐다, 혹은 무례한 행동이다’라는 분위기가 생긴 것 같아요. 혼자선 권리 찾기를 못하겠다 싶으면 노조만한 든든한 울타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조그마한 물고기들이 떼 지어 가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점점 각박해지는 노동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인 것 같아요.

 

로기: 그와 동시에, 노조는 자신에게 안전한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소수자로서 어떤 공간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곳이니까, 함께 해주시면 좋겠어요.

 

태영: 적어도 제가 경험한 바로는, ‘전교조는 앨라이(지지자)가 될 수 있다’에요. (성소수자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지,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삶과 퀴어로서의 삶, 이걸 분리해서 산다는 건 너무 힘들잖아요? 그 모든 게 나의 삶인데. 내가 ‘나’이기 위해서,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경: 노조가 바뀌면 일터가 바뀌고, 일터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건설노조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건설현장에 화장실과 휴게실을 만들어 냈던 것처럼, 편견에 맞서고 사람들의 인식을 넓히는 것. 그게 노조의 순기능인 것 같아요.

 

-민주노총이 얼마나 성소수자 친화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요.

 

로기: 지금 당장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 성소수자 친화적인 환경이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잠재력은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안산 건설기능학교의 경우도 남자들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 여성이 와서 ‘배울 수 있냐’고 문의했을 때 안 된다고 하지 않았거든요. 물론 처음에 당황하긴 했대요. 그래도 일단 해보자, 한 거죠. 여성친화적이지 않았던 공간이었지만, 노력하며 변화를 만들었잖아요? 성소수자 친화적인 공간도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경: 단순하게 보면, 민주노총은 ‘평범한’ 노동자 120만명이 모여있는 곳이잖아요? 사회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차별금지법이나 동성혼 법제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꽤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노조 내에서도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도 확실히 예전에 비하면 변화가 있죠. 예전엔 정말 (성소수자는) 무존재였는데, 시민사회 운동이 변화했고,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많은 단위들이 함께하면서 영향 받은 것도 있어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경우, 이제 우리의 중요한 의제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됐어요. 지역 지부에서도, 법 제정을 위한 도보 행진이 있다 그러면 함께하고요.

 

또 지난 몇 년 간 지역 퀴어문화축제가 많이 생겼는데, 그런 부분도 상황을 많이 바꿔놨어요. 지역 지부에서도 성소수자 운동과의 접점이 늘어나게 됐으니까요. 민주노총이 성소수자 친화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면, 그건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노력한 결과인 것 같아요. 이 운동에 연대할 조합원 또한 생각보다 많았고요. 앞으로도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노조 안에서 안전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지자들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엔진: 작년에 우리 산하 조직에서 신당역 여성살해 사건을 겪고 추모집회를 열었어요. 처음엔 해당 사업장에서 이걸 일터의 문제로 생각하지는 못했어요. 토론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결국 이해하더라고요. 노조의 특성상 ‘몰라도 닥치고 (함께)한다’는 분위기도 있을 수 있는데, 어떻게든 한번 각인되면 추진력이 좋다는 거죠. 성평등, 성소수자, 돌봄, 기후위기 등의 의제도 어떻게, 왜 노동의 관점과 연결되는지 언어화하는 작업이 조금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배우고 알고 나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활동을) 할 정도로.(웃음)

 

2018년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처음 열렸을 때, 지역 본부장들이 몇 명 (연대하러) 현장에 있었는데요. 그때 혐오세력에 의한 폭력 사건이 있었잖아요. 경찰은 그걸 묵인하고…. 우린 그런 거 못 보잖아요. ‘우리를 공격하면 우리도 문다’는 정서가 있는데(웃음) 현장에 있던 분들이 결의하셨대요. ‘앞으로 여긴 우리가 매번 와야 하는 자리다’ 라고.

 

▲ 민주노총 성소수자 조합원 모임이 올해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대회 회의장에서 대의원들에게 나눠준 홍보물. (제공: 민주노총 성소수자모임)


-민주노총 성소수자 모임에서 이런 변화를 더 앞당기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이경: 성소수자 조합원들이 다른 데선 말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서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모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조합원이 천 명 넘게 모이는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대회 회의장에 가서 홍보물을 배포했어요. 민주노총 유튜브에 ‘성소수자와 직장 동료들’, ‘성소수자 조합원의 편지’라는 영상도 만들어서 올렸어요.

 

-노동조합이 성소수자 노동자들, 조합원들을 위해서 어떤 걸 해 나가면 좋을까요?

 

태영: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공식적으로 담을 수 있는 조직체계가 필요해요. 전교조엔 성평등특별위원회가 있는데, 그런 조직이 있어야 활동할 수 있는 범위도 다양해 질 것 같아요.

 

로기: 여성이 일하기 좋은 공간은 결국 퀴어도 일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가부장제 문화에 저항하는 활동을 해 주면 좋겠어요.

 

엔진: 노조에서 어떤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선 ‘주체’가 있어야 해요. 물론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당사자로서 같이 참여해 주어야 더 많은 변화를 끌어낼 수 있어요. 사업을 진행하는 입장에서도 그런 움직임, 어떤 변화가 보여야 더 힘을 내서 활동할 수 있고, 조직 또한 이게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당사자들이 조금 더 힘을 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좀 당당하게 권리를 요구하자고요!

 

이경: 성소수자 이슈과 관련된 담당자, 자원과 인력이 배치되어야 한다고 봐요. 이주민, 장애인 노동자도 마찬가지에요. 사실 해외 사례를 보면 노조에선 그런 거 다 하고 있거든요. 또 엔진 님 말처럼 당사자들이 조금 더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기 위해선 노조가 그런 환경을 잘 만들어야겠죠.

 

-성소수자 친화적인 노조와 일터를 만들기 위해 각자가 하고 있는 실천도 들려주세요

 

이경: 성소수자 조합원 모임을 잘 유지해 가려고 합니다!(웃음)

 

엔진: 그냥 숨쉬듯이 커밍아웃 하기? 때론 귀찮고, 솔직히 지치기도 하고 적당히 살고 싶기도 한데 약간의 사명감?! 그냥 존재감으로 파급력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이 인터뷰에 응한 것도 퇴근하면 피곤하고, 쉬고 싶고, 게임하고 싶었지만(웃음) 이렇게 이야기가 매체에 나가면 누군가 안도감을 가지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예요.

 

태영: 내가 일하는 도서관에 성평등 도서, 인권 도서 많이 사다 놓기!(웃음) 학교에서 교육할 때 학생들한테 그러거든요. 여기서 잘 배워서, 사회 나가면 세상을 좀 바꿔달라고요. 히어로들을 양성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이 나의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어요.

 

로기: 은은하게 존재감 드러내기? 조끼에 무지개 뱃지 달고요. 건설 현장에도 퀴어가 있다는 걸 알리는 거죠.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얼룩말 2023/06/22 [15:14] 수정 | 삭제
  • 정말 많은 분들 각자의 이야기가 모여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되는 것 같아요. 지지합니다. 화이팅!
  • FullMoon 2023/06/21 [22:20] 수정 | 삭제
  • 이 기사 재밌네~
  • 새벽 2023/06/21 [11:23] 수정 | 삭제
  • 반가운 기사에요. 균열을 내야 숨통이 트이는 삶에는 언제나 함께 걷는 사람들의 존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인터뷰 참여하신 분들 모두 즐거운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