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건을 상담, 지원하는 현장 단체들은 꾸준하게 성폭력의 판단기준을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바꾸는 법 개정과 사회 인식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성폭력 운동을 하는 단체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토대로 현행법 상 드러나는 쟁점과 문제, 개정의 필요성을 담아 총 7회에 걸쳐 릴레이 칼럼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성매매 여성에게 ‘성폭력’은 무엇일까?
오랜 시간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 여성에게 성폭력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성폭력특별법(1994년 제정)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본격화되었을 무렵 논란이 된 몇몇 사건이 있었다.
1988년 12월, 대구에서 경찰관에 의한 다방 여성종업원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대구 북구 대현1동 파출소 경찰관 2명은 귀가하던 다방 종업원 강모 씨를 강제로 파출소로 끌고 가 성폭행했고 피해자는 바로 검찰에 신고했으나 오히려 피해자가 무고죄로 구속됐다. 가해자들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피해자는 다방 종업원이라는 이유로 성폭행 피해 사실을 의심받았고,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고죄'와 관련한 법정 싸움을 해야 했다. 이 싸움에서 피해자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성매매여성에게 성폭력은 불가능하다”는 프레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30년이 훌쩍 지난 현재도 여전히 강력하다.
성매매 여성은 성매매업소 내에서, 혹은 성매매 과정에서 무수한 피해를 경험하고 성매매 자체가 폭력으로 경험되기도 한다. 적지 않은 여성들이 성매매피해상담소에 ‘성폭력’ 피해를 호소한다. 성매매 여성이 성매매 과정에서 ‘동의’하는 것과 ‘동의’하지 않는 것이 있고, ‘성폭력’으로 인지하는 경험들이 존재한다. 그녀들이 성폭력으로 인지하는 경험은 1)폭행, 협박이 동반된 성행위 2)‘동의’하지 않은 성적 행위 3)약속된 ‘돈’을 지불받지 못한 성행위 등이다.
성매매 여성들은 성매수자, 소개업자, 업주, 사채업자 등 성산업과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는다. 성매수자들은 ①성매매 과정에서 성행위 후 돈을 주지 않고 도망가거나, ②피해자가 거부했지만 폭행, 협박 등 강제로 성행위를 한 후 돈을 주고 가거나, ③위장성매매업소에서 ‘꽁씹’, ‘뉴페이스 이벤트’ 등의 이름으로 관행적으로 피해자의 동의 없이 성행위를 한다. 여성들의 이러한 경우를 강간 피해라고 생각하지만, 수사기관을 포함하여 우리 사회에서 이런 행위들은 그저 ‘성매매’로만 이해된다.
사실 정말 많은 업주와 소개업자, 사채업자들이 성매매 여성을 강간한다. 여성들이 성매매에 처음 유입될 때 업주 및 업소 관계자들은 “일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성폭행을 하곤 했다. 지금도 십대 여성들, 외국인 여성들이 이런 형태의 성폭력에 자주 노출된다. 성폭력은 성매매 과정 속에서 여성들을 길들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업주 등 관계자와의 위계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기 어렵고, 입증하기는 더욱 어렵다.
최근에는 여성들이 성매매 후 ‘돈’을 받지 못한 것을 성폭력으로 인지하여 신고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성매매 여성들은 ‘성폭력’이라고 이해하는 반면 수사기관은 ‘성매매’라고 이해하여 오히려 피해자를 ‘성매매 행위자’이자 심지어 ‘무고죄’로 처벌한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성매매 행위자‘이자 ’무고죄‘로 처벌받을 위험 높아
성매매피해상담소에서 일하면서 성매매 여성의 ‘성폭력’ 사건을 지원할 때 느끼는 첫 번째 감정은 무력함이다. 성매매 여성이 성폭력 사건을 인정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또 정말 어렵게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는다고 하더라도, ‘성매매 행위자’로 처벌받게 될까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떻게 하면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전략을 고민하게 된다. 성매매와 관련된 내용을 최대한 감추고, 성폭력 피해 사실을 강조하기도 하고, 성폭력상담소로 연계하여 성폭력 피해와 관련해서만 인정받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수사기관은 성매매피해상담소에서 ‘성폭력’ 피해 사건을 지원하면, 이 사건 자체를 ‘성매매’ 사안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피해자가 본인이 ‘성매매 행위자’로 처벌되더라도 가해자를 ‘성폭력’으로 처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성폭력 피해가 인정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피해자가 ‘무고죄’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도 많다.
법적으로 강간죄의 판단 기준을 현행 ‘폭행 협박’ 여부가 아닌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것은 성매매 여성에게 너무나도 절실하다. 성폭력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성폭력에 가장 취약한 집단이 바로 성매매 여성들이지만, “성매매 여성에게 성폭력은 불가능하다”는 프레임은 여전히 강력하고, 성폭력 피해를 호소했을 때 비난을 받거나 ‘무고죄’로 처벌을 받을 가능성 역시 높기 때문이다.
성폭력 판단 기준, ‘동의’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성매매’를 둘러싼 현실를 중심으로 하여 강간죄 개정에 대해 생각하면,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강간죄의 판단 기준을 ‘동의 여부’로 바꾼다고 했을 때, 성매매 여성에게 과연 ‘동의’란 무엇이고 강간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성매매 여성은 성매매 과정에서 무엇에 동의하고, 무엇에 동의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성매매 구조 안에서 무엇에 동의‘할’ 수 있고, 무엇에 동의‘할’ 수 없는가?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의 ‘동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동의’를 강제하는 맥락과 조건을 보지 않고 “피해자가 동의했다”는 표명만으로 판단한다면, 성매매 여성의 경우 ‘돈’을 받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성폭력에 동의한 것처럼 인식될지도 모른다. 성매매에서 ‘돈’이 ‘동의’와 동의어가 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성매매 여성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돈/대가’의 거래 혹은 약속은 성매매 여성이 그 내용이 무엇이든 모든 것에 ‘동의’했다고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을 멈춰야 한다
‘돈/대가’의 거래와 ‘동의’를 분리한다고 해도, 어려움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성매매 여성이 무엇에 동의하고 동의하지 않았는지, 수사기관과 법원은 다시 피해자에게만 묻고 또 물을 것이고, 피해의 증명은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겪는 모욕과 낙인은 피해자가 감수해야 할 것이다. 결국 모든 책임을 피해자에게 지우는 방식이 되고 만다. 성매매 여성이 성폭력을 겪은 상황 속의 불평등한 개인과 불평등한 권력 관계는 사라져버리고, 불평등한 구조를 만든 사회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때문에 ‘동의 여부’로 강간죄를 개정하는 것이 성매매 여성에게도 필요한 일일까? 하는 여러 고민들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이러한 논의를 위한 출발선에도 서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동의’를 말할 수 있는 기반 자체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성매매 여성에게는 ‘동의’를 말할 기회조차 없었다. 성매매 여성은 여전히 성매매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될 수 있으며 불법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성매매 여성을 불법적 존재에서 해방시키는 것, 즉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을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동의’와 동의의 ‘조건’에 대해 논의를 시작할 수 있도록, 강간죄를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것이다.
[기록]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는 성매매 없는 성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여성인권운동단체입니다. 전국 13개 회원단체를 중심으로 성매매 여성의 인권 옹호 활동 및 성매매 여성이 처벌되지 않도록 법개정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 좋아요 8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