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역이 깃든 댐 “탈출한 조선인 온 산을 뒤져 찾아내”

일본 사가미호·댐 강제노동 역사를 기록하는 하시모토 토시코

무로타 모토미 | 기사입력 2023/07/26 [20:32]

강제노역이 깃든 댐 “탈출한 조선인 온 산을 뒤져 찾아내”

일본 사가미호·댐 강제노동 역사를 기록하는 하시모토 토시코

무로타 모토미 | 입력 : 2023/07/26 [20:32]

일본 간토(關東) 지역의 ‘레저 스팟’으로 잘 알려진 가나가와현 사가미(相模)호. 그 생성의 근원인 사가미댐에서는 전쟁 중에 조선인, 중국인의 강제노역이 이루어졌다.

 

“전쟁 중에 일본 각지에서 이루어지던 일이 여기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길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사가미호 인근에서 나고 자란 하시모토 토시코(橋本登志子) 씨다.

 

▲ 하시모토 토시코(橋本登志子) 1950년 가나가와현 출생. 토건업 종사자. ‘사가미호·댐의 역사를 기록하는 모임’ 대표를 맡아 조선인과 중국인 강제연행에 대한 조사, 추모회 개최 등 역사를 계승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오치아이 유리코)


사가미댐 건설 중 알려진 것만 중국인 28명, 조선인 17명, 일본인 38명, 총 83명이 사망했다. 하시모토 씨는 1976년, 여덟 명의 동료들과 함께 ‘사가미호·댐의 역사를 기록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강제연행에 대한 조사와 역사를 규명하는 활동을 해왔다.

 

희생자 추모비를 세우고, 매년 여름 많은 시민을 모아 추모회를 연다. 1979년부터 시작된 추모회에서는 지역의 중학생들이 합창을 하거나, 조선학교 학생들이 춤 공연을 하기도 한다.

 

특이한 것은 현과 시의 대표, 지역 의원들, 한국민단, 조총련, 중국대사 등 보수 진영도, 진보 진영도 한데 모여 꽃을 바치고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다. 다른 데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정치적 입장을 뛰어넘어 역사와 마주하는 모습이다. 하시모토 씨는 어떻게 이 운동을 만들어왔을까.

 

댐 건설 관계자 인터뷰…“묻어벼렸다‘는 증언도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해 조사하게 된 계기가 된 일은 1975년에 일본 정부의 교류사업 ‘청년의 배’로 중국에 간 것이었다. 이때 일본 청년들을 맞이해준 중국인들이 한결같이 “일본인도 전쟁의 피해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시모토 씨는 의아했다. 그러나 이듬해, 다른 그룹과 함께 중국을 방문했더니, 한쪽 눈이 먼 노인 한 분이 일본인 일행을 보자마자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질렀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분노는 전해졌어요. 사가미댐에서도 중국인들이 노역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이 사실을 분명히 밝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지역의 댐 건설 관계자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들이 과거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려준 것은, 하시모토 씨가 아버지가 경영하던 토건업을 이어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잘 아는 사이였어요. ‘아저씨,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라고 물으면 중국인,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때만 해도 직접 겪은 일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살아계셨던 거죠.”

 

탈출한 조선인을 온 산을 뒤져 찾아내 혹한 징계를 줬던 일, 당시 하청업체 우두머리의 아내에게서 들은 “묻어버렸다”는 이야기…. 겉으로 드러난 희생 이외에도 규명되지 않은 사실, 아마도 어둠에 묻혀버린 일들도 있을 것이다.

 

지역의 역사를 밝히는 것도 지역개발이라고 생각해

 

‘사가미호·댐의 역사를 기록하는 모임’이 댐 관리 책임이 있는 가나가와현에 압력을 넣어, 1993년에 현재의 호명비(湖銘碑)가 세워졌다. 이전에도 추모비는 있었지만,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았다. 하시모토 씨 등은 현에 다시 추모비를 만들 것을 요구했고, 새로운 비에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함께 일본어-조선어-중국어로 비문이 새겨졌다.

 

비문에 “강제연행, 강제노역”이라고 명확하게 새기고 싶었지만, 현은 “국책에 따라 이곳으로 끌려온”이라는 표현을 제시했다. 협력이 결렬될 뻔했지만, 하시모토 씨 등은 깊은 고민 끝에 타협했다. 현을 대표하는 현지사의 이름으로 비를 세우고, 공공이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거나 때로는 밀당을 하면서 갈지자로 나아가는 것이 나한텐 맞아요. 옳은 방향으로 가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하시모토 씨는 ‘사가미호·댐의 역사를 기록하는 모임’ 활동 이외에서도 지역 활동에 폭넓게 관여해왔다.

 

“아버지는 토건업을 하시기 전에 ‘소부야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스모 선수셨어요. 저도 어릴 때부터 키도 컸고, 괴롭힘을 당하는 여자애들 감싸며 남자아이들과 싸우던 아이였죠. 정의감이라기보다… 그런 게 싫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사명감이 있었던 하시모토 씨는 경정 장외 매표소 건설 반대 운동을 조직했고, 동료 중에 지역 의원을 배출했으며, 기초자치단체 통폐합 때도 이의를 제기하는 운동을 일으켰다.

 

“여기저기 동료가 늘어나니 그 사람들이 추모회를 도와줘요. 저는 사람이 좋아요. 흥미로운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이 지역이 좋아요. 사가미호의 역사를 계승하는 것도, 중요한 지역개발 중 하나가 아닐까요?”

 

일단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

 

시민운동의 견인해온 하시모토 씨지만 예순에 암이 발병, 현재 투병 중이다. ‘사가미호·댐의 역사를 기록하는 모임’은 남성 회원들의 서포트가 큰 역할을 한다. 일본은 시민운동에서도 남성이 앞장서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좀 특이하지 않은가. “맞아요. 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다들 탄탄하게 토대를 만들어줘요. 반세기 가까이 이렇게 해 온 것 같아요.”

 

최근에는 젊은 세대가 사가미호의 역사와 관련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거나, 학생이 사가미댐의 강제노역을 졸업논문의 주제로 다루는 일도 있었다.

 

“(저처럼) 일생에 거쳐서 계속 이 사안에 관여되지는 않아도 돼요. 각자 다른 삶의 방식 속에서 사가미호의 역사가 계승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드러움 속의 강인함이 느껴진다. 하시모토 씨는 아오야마가쿠인대학, 메이지가쿠인대학에서 매년 사가미호의 역사에 대한 강연을 하기도 한다. 필드워크나 대학 강의에서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일단 안 다음에”라고 말을 꺼낸 뒤 이렇게 덧붙인다. “자기 머리로 잘 생각하고 행동하세요.” 라고.

 

올해 제45주기 추모회는 7월 30일 오후 1시 반부터 가나가와현립사가미호교류센터에서 열린다.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제공 기사입니다. 고주영 씨가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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