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여성 노동자가 겪는 구조적 차별을 드러내기 위해, 연속 세미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본 여성과 노동]을 기획했다. 두 번째 키워드 ‘복합차별’에 관한 논의는 6월 19일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의실에서 열렸다. 기록노동자 희정이 진행과 기록을 맡았다. [편집자 주]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펴낸 〈여성노동자들의 일터와 삶을 가로지르는 복합차별〉 인터뷰집을 읽은 소감을 ‘느린’이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잠시 생각했다. ‘혹시 느린, 나 모르게 부자인가?’ 나와 느린은 고만고만한 기록자이자 (지역) 활동가이다. 그런 ‘우리’ 입에서 ‘특권’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살짝 놀랐다. “보편의 또 다른 이름이 특권”이라는 말을 책(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에도 썼으면서 말이다.
‘당연하기에’ 굳이 말하거나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는 정체성. 이성애자, 비성소수자, 비장애인, 비질환자와 같은 보편, 아니 특권적 정체성이 있다. 우리의 차별은 연결되어 있으나, 그 차별에도 위계가 있다. 더 잘 보이는 차별이 있고,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으며, 굳이 말하지 않아도 차별이라 설명되는 성격의 일도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제작한 〈여성노동자들의 일터와 삶을 가로지르는 복합차별〉(2022) 책자는 PDF 파일로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다. http://women21.or.kr/society/20819
혹시 빠트린 사람 없나?
“어떤 이야기에 조금 더 이끌렸어요?”
다른: “저는 10대 이슈에 관심이 많거든요. 특성화고를 졸업한 지성 님 이야기가 많이 기억에 남았어요. 10대들이 경험하는 차별이나 배제, 이런 것들이 제가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어떤 규범들로 남아 있는 것이 있어서.”
느린: “저도 지역에서 고졸 노동자들이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해서 유리, 경희, 지성 님의 이야기를 좀 더 눈을 밝혀서 읽었던 것 같아요.”
지성은 특성화고 졸업 후 현장실습으로 취업을 한 이다. 유리는 어머니의 건강 문제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물류창고, 마트 계산원 등의 알바로 생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경희는 1980년대에 고등학교 졸업 후 은행에 취업한 인물이다.
느린: “경희 님의 시절에는 고졸이 소수가 아니었잖아요. 그렇지만 이후 학력이 이 분 인생에서 분명 어떤 역할을 했을 것 같고. 유리 님의 경우 경제 상황, 학력과 나이, 성별이라는 키워드랑 겹쳐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싶고. 저는 학력의 경우 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 차별의 조건으로 용인이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고졸이랑 대졸은 차이가 있어야지’ 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아요.”
느린: “이력서 학력 칸을 빈 곳으로 남겨두어야 하니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계속 느끼게 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데. 누군가는 이력서를 100장 쓰고 또 쓰는 일로 괴롭지만, 누군가는 그냥 이력서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자기의 부족함을 계속해서 확인하는 과정이겠구나. 지성 님의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읽었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직무와 관련된 전공이 아닌 사람도 있을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따지면 (고졸자 승진 제한은) 그냥 필요한 건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지성)
각 업무마다 전공과 직무가 다른데도 고졸/대졸 간의 승진 제한을 둘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이 말에 인터뷰어(다른)가 물었다. 자신의 생각을 회사에 말한 적 있는지.
“아니요. 분위기가 좀 안 좋아질 것 같고. 더 열심히 한다는 걸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요.”(지성)
차별받는 이조차 ‘차별’이라고 정의 내리기 어려운 차별들이 있다.
“어린이집 일자리가 있다는 센터 문자를 받아서 ‘혹시 이력서를 어떻게 넣느냐’고 전화로 부탁드렸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선생님, 외국인은 어린이집에 안 맞아요.’ 이렇게 말했어요”(동주)
동주는 베트남에서 온 이주민 여성이다. “왜 안 맞는지?” 묻지 못 하게 하는 차별이 있다. 그렇다고 지금, 차별의 심각성을 두고 순위 경쟁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정체성마다 작동하는 지배체계는 서로 연동한다. 그 연동이 유지되는 방식 중 하나에 ‘위계’가 있다. 그것이 차별의 모습으로 드러나 우리를 나누고 가른다. 갈라진 곳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복합차별’에 대한 인식에 다가가는 길이다.
차별이 만나는 지점에서 연결되는 우리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빠트린다.
은박: “제가 만난 이주여성 분 중에 지금 한창 혼돈의 시간을 보내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은 여성이 출산 후에도 일을 하고 남편과 공동 육아를 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인 사회에서 왔는데, 한국에 오니 이 사회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열성적인 엄마’라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복합차별 자료집에도 실린 유진 님의 이야기이다. 유진은 한동안 열심히 ‘한국 엄마’의 모습을 따라 하다가, 지금은 성적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자신이 멋있게 사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생각이 바뀐 참이라 했다. 그때 은박을 만났다.
은박: “이 작업을 하면서 제가 깨지는 경험도 많았던 것 같아요. 이분은 삶의 역동도 굉장히 크고, 환경이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온 거잖아요. 바뀐 환경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감동이었어요. 그 분의 말 중에 ‘이주 결혼을 한 여성들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언어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곳에 와서 살아보겠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는 거기서 참 많은 생각을 했어요.”
느린: “저는 인터뷰 기록을 할 때, 그 여성과 나의 생애가 겹치는 부분이 있거든요. 굉장히 다른 조건에 살았지만 어느 순간에 딱 겹칠 때가 있어요. 그때 그분을 통해 위로를 받아요.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진짜 많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만나지는 어떤 지점이 있네.”
아마 우리는 이런 지점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은박의 말을 빌린다.
은박: “경희 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연세가 있는 분인데. 그동안 세상이 변했다는 거예요. 자긴 은행원이었는데 ‘그때는 여자는 창구 자리밖에 못 갔어.’ 세상이 변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런데 하나 안 변한 게 있어. 우리 때도, 지금도 육아 돌봄을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성만 남아. 나는 없어서 못 남았잖아.’ 그 이야기 속에 여성의 노동사가 있는 거예요.”
만나게 되는 지점의 많은 수가 ‘돌봄’이라는 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듣는 행위는 얼마나 정치적인가
다른: “저는 듣는 행위가 얼마나 정치적인가에 대해 생각해요. 보통 주장을 해야 하고 행동이 커야 하고, 그것만이 운동이고 저항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내 옆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연대가 시작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는 여러 가지 정체성과 역할이 교차하는 속에 있고, 그래서 듣는 행위가 더 중요하죠. 그때부터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손잡을 수 있고. 내가 이런 경험이 있어, 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돌봄이 시작되거든요. 배달 라이더 일을 하는 성은 님 같은 경우에,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생기니까 연대가 시작되고, 그게 꼭 집단이 아니라도 지지자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런 걸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런 일이 어디에나 있을 테니 우리 용기 내서 잘 살자. 그러니까 힘내자.”
“활동을 하다 보면 어떤 대안이나 제도 변화라는 답이 딱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내 안에서 나오려는 것을 자제하면서, (인터뷰이와) 마주치려고 했어요.”
정치적 입장을 내고,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법과 행정의 차원에서 시행 가능성을 살피고, 이런 활동이 주되었던 정책 담당 활동가 은박은 이 인터뷰 프로젝트를 거치며 ‘마을 운동’에 대해 전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한다고 했다.
“이 분들이 이런 자리까지 나오지 않아도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 우리의 운동에서 그 일상의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정확히 말하자면,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었다. 현재 지역(동대문구)에서 활동을 하는 느린도 이 인터뷰집에서 답을 얻었다고 했다.
“지역 기반의 운동이라는 게, 매일 사부작 사부작 소소해요. 그래서 가끔 고민하게 될 때가 있어요. 거창하고 크지 않으니까요. 변화도 없는 거 같고, 그런데 이 자료집을 읽으면서 많은 답을 얻었던 것 같아요. 어찌 되었건 사람들은 모이고 이야기 나누고 위로하고 응원해야 하는구나.”
모여 말하고 듣고 위로하고 응원하고, 우리가 만나야 하는 연결점을 찾는 일. 우리의 경험은 좁지 않으며, 우리는 연결되고 연루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알아채는 일이 필요하다. 다른의 말을 가져와 글을 마친다.
“우리를 향한 차별과 권력이 고정되어 있다고 전제할수록, 역설적으로 여성들의 경험도 좁게 이야기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면 우리가 이 구조의 균열을 내기 위해서 누구와 연대를 해야 하는지, 그 연대의 정치적 연결을 만드는 일도 좁아질 거라 생각해요.”
우리의 경험은 좁지 않다.
[필자 소개] 희정. 기록노동자.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 최근작으로 『일할 자격』,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등이 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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