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남자, 동성애자-이성애자의 우정에 대한 편견을 부수다!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서아현 감독과 주인공 송강원

박주연 | 기사입력 2023/08/08 [19:13]

여자-남자, 동성애자-이성애자의 우정에 대한 편견을 부수다!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서아현 감독과 주인공 송강원

박주연 | 입력 : 2023/08/08 [19:13]

마치 세기의 질문처럼 떠도는 말 중 “남녀 간의 우정이란 가능한 것인가?”가 있다. 돌고 도는 회전문처럼 대토론을 벌인다. 지겹지도 않나 싶지만, 그만큼 여성과 남성, 그리고 이들의 관계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하다는 말일 테다. 무엇보다 그 질문엔 여성과 남성을 모두 유성애 이성애자로 본다는 강력한 전제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여성과 남성이 유성애자가 아니거나, 이성애자가 아닐 경우엔 어떻게 될까? 그럼 그들 사이의 우정은 ‘완전히’ 가능한 것인가? 이상한 질문 같지만, 어떤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환상이 만들어낸 것이 ‘이성애자 여성과 동성애자 남성의 베프 콤비’다. 종종 영화나 미드(미국드라마)에서 목격할 수 있는데, 이들은 서로에게 연애 감정을 느낄 일이 없어서(특히 남자 쪽에서 여자에게 연애 감정이나 성적 끌림을 느낄 일이 없어서) 무해한 관계로 여겨진다. 또한 이성애자 여성에게 남자에 대한 조언도 해 주고, 패션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는 동성애자 남성 친구는 ‘레어템’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 서아현 감독이 연출한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가 9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티저 포스터 (제공: 영화사 그램)


9일 개봉하는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는 이성애자 여성 서아현 감독과 그의 베프이자 동성애자 남성 강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거 또 혹시…?’라는 우려를 안고 보기 시작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선 정말 질투가 났다. 여자·남자 그리고 이성애자·동성애자를 다 떠나서 이런 우정이 가능하다고? 이들의 우정이 편견이나 환상 속의 ‘무해한’ 우정이 아니라, 찐득하고 끈질기며 슬프고 우울한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으로 가득한 우정이었기에 더 놀랐다. 두 사람이 기독교 대학 선후배로 만난 사이라는 점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되게 재미있는 사람들이네’라는 호기심을 안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흥미로운 이야기의 주인공, 아현 감독과 강원 씨를 서울 홍대 부근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의 시작인, 아현 감독님이 강원 님한테 “오빠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면 어떨 것 같아?”라고 말하는 장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요.

 

아현: 무려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강원이 저한테 커밍아웃을 두 번에 걸쳐서 했어요. 영화에 나왔던 페이스북에서의 커밍아웃이 있었고, 또 저한테 직접 커밍아웃을 했거든요. 보수적 기독교 집안에서 K-장녀로,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삶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강원의 커밍아웃은 내 세계관을 뒤흔드는, 큰 지진 같은 사건이었어요. 20대 초반까지 교회가 중심인 세계에 살고 있었으니까, 내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을 거라 생각해 본 적도 없었거든요. 그런 건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라 생각했으니까요.

 

근데 한편으론, 그 때가 나의 종교적 신념에 대해 좀 회의적으로 돌이켜 보는 시점이기도 했어요. 이론적으로, 추상적으로 여러 고민을 하던 시기였는데, 그 때 강원이라는 현실적인 존재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나한테 해줬다는 것에 큰 울림을 느꼈어요.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교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일들. 특히 여성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었지만 대응을 못하고 있었는데, 강원의 커밍아웃이 어떤 해방감을 준 기분이었어요. 내 세계를 뒤흔든거죠. 이런 기분이 드니까,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막연한 생각이었죠.(웃음) 강원의 삶이 영화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카메라만 들면 영화가 될 줄 알았어요.(웃음)

 

강원: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웃음)

 

아현: 영화에 나오는 그 장면이, 둘이서 함께 섬돌향린교회(성소수자 포용적 교회로 알려져 있다. sumdol.org)에 가보자고 했던 날이에요. 카메라도 들고 갔는데, 예배 끝나고 둘이서 얘기하다가 “오빠 이야길 찍어도 돼?” 이렇게 된 거죠.

 

강원: 사실 ‘영화를 찍는다, 다큐를 찍는다’ 이런 감각이 전혀 없었어요. 경험도 없었으니까요. 근데 원래 아현이랑 있으면 아현이 늘 질문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거든요. 아현이 질문하면 그거에 답하면서 이야기가 깊어지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건 자연스러웠죠. 또 대학 때 연극 동아리도 하고, 영화 만드는 프로젝트도 하고 그래서, 그런 작업들이 낯설진 않았어요. 아현이 카메라를 들고 나를 찍는 것 또한 우리 관계의 연장선이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나한테 이 작업의 기반은 확실히 ‘우리의 관계성’이었던 것 같아요. 카메라를 아현이 아닌 다른 사람이 찍고 있었다? 그러면 분명 카메라가 의식됐을 것 같거든요. 아현이었으니까, 부담이 없었어요.

 

-대학 연극 동아리에서 만난 거잖아요. 왜 연극이었을까? 연극이 어떤 의미였을까 싶더라고요.

 

강원: 그냥 연극과 연기에 심취해 있었던 거 같아요. 근데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내가 표현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무대 위에서 내 에너지와 이야기를 드러내는 게 좋았구나 싶어요. 연극이라는 게 나의 들끓는 에너지를 받쳐 줄 예술의 형태였던 거 같아요.

 

아현: 꼭 연극이어서라기 보다 이야기 자체를 좋아한 것 같아요. 이 영화도 강원의 이야기를 찍는다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거구나’ 알게 됐죠. 영화를 만드는 동안 ‘너는 왜 이 영화를 만들고 있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거든요. 그 답을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요.

 

▲ 영화 속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강원, 아현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제공: 영화사 그램)


-그래서 이후 7년이라는 시간을…(웃음) 어쩌다 이렇게 오래 찍게 된 건가요?

 

아현: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만 했지 사실 다큐멘터리가 뭔지, 내가 어떤 욕망으로 강원의 삶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지도 몰랐어요. 그 방향을 찾느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죠.(웃음) 처음엔 당시 강원과 나의 기독교 대학 공동체의 반응을 담은 영화를 생각했어요. 근데 생각만큼 어떤 이야기로 담겨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강원의 커밍아웃과 지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야겠다 했는데, ‘그걸 네가 왜 영화로 만들어야 하는가?’ 답을 못 찾겠더라고요. 그렇게 헤매고 있을 때, 같이 작업하던 PD님이 강원의 커밍아웃 이후의 삶을 지켜보면서 같이 성장하는 나의 이야기도 담기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촬영 중반 즈음부터 나 자신도 찍기 시작했어요.

 

강원: 저는 이 작업이 우리 관계의 연장선이라 생각했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래서 ‘얘는 언제까지 이걸 찍는거야?’ 이런 개념도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게 정말 영화로 만들어 질 거라는 생각도 안 했어요.(웃음) 그냥 습작이 돼도 좋다, 연습만 돼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7년 만에 마무리가 된 것도 기적 같아요.(웃음) 7년이라고 해도 난 그냥 내 삶을 살고 있었던 것 뿐이었는데,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완전 다른 이야기잖아요. 요즘 이렇게 영화 개봉 준비하며 인터뷰도 하면서, 아현이 정말 고생했다는 걸 알아가고 있어요.

 

-꼭 당사자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아니지만, 비퀴어가 퀴어 이야기를 다룬다고 했을 때 좀 염려되는 부분이 있어요. 근데 영화에 아현 감독님 이야기도 나오고 하니까, 청춘 영화 같기도 하고 둘의 우정이 더 잘 보이더라고요. 감독 본인이 영화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현: 당사자가 아닌 나/우리가 당사자의 이야기를 담아낸다고 했을 때, 이 영화가 가질 수 있는 미덕은 무엇인가에 대해선 영화를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제작진 모두가 고민했어요. 내레이션을 할 때의 문장, 단어 하나하나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럼에도 이 영화를 만들면서 생각했던 건, 강원의 커밍아웃이 나한테 굉장히 소중했다는 거에요. 물론 강원 본인의 삶에선 더 큰 의미가 있겠지만, 나한테도 분명 의미가 있었고, 이 커밍아웃이 그냥 사라지는 외침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가시화하려고 목소리를 냈을 때, 누군가는 듣고 있다는 응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응답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차원에서 나를 드러낸 거예요. 근데 어렵긴 했어요. 나를 (영화 속) 어떤 캐릭터로 보는 게 정말 너무 어려웠거든요.

 

한편으로 당사자를 타자화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사람을 타자화했던 순간까지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하더라도 분명 어떤 간극이 있다는 걸 솔직하게 말하자고요. 사실 이런 일들이 퀴어와 비퀴어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타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죠. 영화를 만들면서 이런 것들을 배웠어요.

 

▲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에서의 아현을 소개하는 홍보물 (제공: 영화사 그램)


-
강원 님은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알게 된 아현 감독님의 이야기도 있을 것 같아요. 영화 보면서 어땠나요?

 

강원: 정말 그랬어요. 영화를 찍을 당시 나의 힘듦과 내가 해결해야 하는 숙제들 때문에 내가 보살피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달까? 그 때의 아현을 좀 더 생각해 보게 됐죠. 힘들었던 시간이 좀 지나고 주위를 둘러보니까, 친구로서 아현이 항상 내 옆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또 영화를 보면서, 여성으로서의 아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고,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지하고 배워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는데, 사실 소수자성이라는 게 정말 숫자가 적어서라기 보다 권력이 어딘가에 몰려있기 때문에 생기는 거잖아요. 소수자인 여성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거죠. 그러면서 ‘오, 소수자 선배가 여기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전과 다르게 여성을 보게 됐달까?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통해, 나도 성장한 것 같아요.

 

아현: 나도 강원이 커밍아웃을 해줬기 때문에 내 주변에 소수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 이후 사회적 이슈에 민감해지게 됐거든요. 교회 설교를 들으면서도 (혐오 발언에) 불편해지고 예민해져서 열을 내기도 하고요. 그 땐 강원이 오히려 나한테 진정하라고 했었는데, 요즘은 강원이 페미니즘 공부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나한테 추천 해줘요. 이런 과정들이 좀 재미있는 것 같아요.

 

-영화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지만, 특히 군대와 관련된 부분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한국에서 군대 신검 중 “동성에게 끌린 적 있냐?”는 질문에 “네”라고 했다가 문제가 된 일이 있었고, 결국 한국에서 군대 가는 걸 포기하고 미군에 입대를 하잖아요. 그 과정을 조금 더 듣고 싶어요.

 

강원: 사실 선택지가 없었어요.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서라도 미군에 가는 게,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새로운 사회에 편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거든요. 당시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학생 비자였고, 한국에서 군대를 가지 않으면 더 이상 미국에 머물 수 없어서, 미군에 가는 게 미국에서 계속 지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고요. 영화로 보면 이 부분이 드라마틱하게 보이고, 뭔가 사회적인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나한텐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었어요. 그 때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한참 뜨거울 때였고, 어떤 선택을 해야 했거든요. 내가 살아남기 위한 거였고 내가 나다울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한 거였어요. 그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공간이 아니었다는 점이 참… 그렇지만은요.

 

미군에 있으면서, 소속감을 찾기도 했어요. 미군은 LGBTQ+에 대한 인지가 있고 가시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정말 모순적이게도,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가시화됐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미군에서의 생활이 쉽진 않았어요. 언어 장벽도 없진 않았고, 힘든 부분도 있었죠. 그렇지만 이 생활을 잘 버티자는 비장한 마음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 군대에 대한 두려움, 불안이 컸던 터라 ‘거기보단 여기가 덜 힘들 거야. 적어도 여긴 내가 게이라고 말해도 괜찮잖아.’라는 자기최면을 계속 걸었던 거 같아요.

 

-그렇지만 군대는 남성중심적이고, 흔히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의 표상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강원: 그런 부분들이 분명 없진 않죠. 남성 중심, 백인 중심으로 역사가 쌓인 곳이니까요. 그래도 ‘이런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요. 소수자 차별 방지를 위한 교육, 성평등 교육 등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혀 있고, 여성 군인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있고요. 다양성을 위해 노력하려고 해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사고들이 일어나긴 하지만, 적어도 조직적으로 노력하려는 부분들이 있어요.

 

-영화 속에 감독님 방이 나오는데, 책상 위에 무슨 페미니즘 책이 놓여져 있는 게 눈에 띄더라고요.(웃음) 감독님 본인에게,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 속에 페미니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다면요?

 

아현: 대학 때만 해도 교수들이 “이제 페미니즘은 철 지난 이론이다. 그거 공부해서 뭐 먹고 사냐”라는 얘길 했어요. 그렇구나 싶었는데, 졸업하고 영화를 찍기 시작할 즈음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됐거든요. 그런 영향과 더불어, 영화를 찍어야 하는데 ‘나한테 어떤 관점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회학과로 대학원을 갔어요. 1970년대 여성 노동 운동에 대한 논문을 쓰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페미니즘과 젠더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됐죠.

 

한창 페미니스트와 퀴어, 특히 남성 퀴어가 연대할 수 있냐는 논쟁이 온라인에서 뜨거울 때가 있었어요. 그런 논의를 보면서 ‘나와 강원은 연대할 수 없나?’ 이런 고민도 했고, 왜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는지 찾아보면서 어떤 부분들은 이해가 되기도 했고요. 다만 ‘내가 여성이고 네가 퀴어니까, 그래서 뭐 할 수 있어 혹은 할 수 없어’가 아니라, 친구라는 관계를 좀 더 생각하게 됐어요. 강원과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친구이고, 서로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자, 서로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고 해서인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고, 타인이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 주길 바랄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모여 연대할 의지가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라는 걸 배우게 된 것 같아요.

 

▲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에서의 강원을 소개하는 홍보물 (제공: 영화사 그램)


-그렇게 ‘연대가 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오는 건, 우리 사회에서 이성애자 여성과 동성애자 남성의 우정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던 탓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정말 두 분의 관계는, 나한텐 한번도 없었던 관계여서 신기했어요. 이 우정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요?

 

강원: 아현은 나에게, 사회에서 말하는 ‘여자 사람 친구’라는 인식이 없었어요. 이 말 자체도 되게 이상하지 않아요? 여자 친구 사이에 사람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게? 하여튼 서로에게 그런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우리 관계를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현을 특별히 ‘여자 친구’나 ‘여자 사람 친구’로 느끼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면, 아현에게서 어떤 여성됨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남자들 사이에 있으면 여자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걸 자기 자신으로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남자’로서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여자와 남자라는 역할극’을 굉장히 진하게 하는 시기에 특히 그렇죠. 그런 부분이 불편했는데, 나랑 아현은 그런 역할극에 대해 민감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현 앞에선 그런 역할극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느꼈던 거죠.

 

아현: 강원이랑은 대학 때부터 정말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연애 얘기는 별로 안 했던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 중엔 강원이 커밍아웃 했을 때 ‘그럴 줄 알았다’고 얘기한 사람도 있었는데, 난 전혀 몰랐거든요. 그 때 문득, 우리가 정말 연애에 대한 얘길 안 했었다 싶더라고요. 또 한창 남자 선배들이랑 부딪힐 때가 있었는데, 강원에겐 한번도 그렇게 내 발톱이 나온 적 없더라고요.

 

강원: 아현이 나의 커밍아웃을, 자신의 세계가 흔들리는 지진 같은 일이라 표현했잖아요. 보통 사람은 그런 지진이 나면 대피하러 가거든요.(웃음) 근데 얘는 그 지진의 진원지를 찾아 나서는 거에요. 안전할 공간으로 갈 생각을 해야 되는데 ‘왜 지진이 났지?’ 이러면서 가방 싸서 오히려 거길 찾아 들어가는(웃음) 이상한 애들끼리 만나서 우정이 계속된 것 같아요.(웃음)

 

▲ 영화 속에서 강원과 아현이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공: 영화사 그램)

 

-영화의 엔딩도 참 좋았는데요. 어떻게 마무리할 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아현: 영화를 시작할 때만 해도, 강원은 이제 커밍아웃도 했고, 부모님이 받아주려고 노력도 하고, 친구들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미국에서 살 수 있게 됐으니까 장밋빛 미래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커밍아웃 이후 행복하게 사는 강원을 보여줘야겠다는 어떤 판타지에 사로잡혀 있었죠. 근데 영화를 만들면서 커밍아웃 한다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그 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걸 배우게 됐어요. 초반엔 강원의 앨라이(Ally·연대자, 지지자)가 됨으로써 내가 좀 더 정의롭고 피씨한(정치적으로 올바른) 친구가 됐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낯선 세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게 정말 큰 배움이었죠. 지금의 엔딩을 만들 수 있었던 건, 같이 작업한 제작진들 덕분이에요.

 

-어떤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나요?

 

강원: 영화 볼 때, 내 문제와 아픔에 갇혀 있는 나를 보게 돼요. ‘그 땐 그랬지’라고 생각하기 보다, 그 모습이 생생하게 보이니까, 지금도 어딘가에서 힘들어하거나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봤으면 좋겠다 싶은데… 이 영화를 보는데도 용기가 필요할 수 있잖아요? 영화 제목에 ‘퀴어’가 들어가 있으니까… 그냥 그들이 좀 덜 외로웠으면 좋겠어요.

 

아현: 이 영화는 강원의 친구로서 내가 앨라이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요, 사실 갑작스럽게 완벽한 앨라이가 된다는 건 불가능인 것 같아요. 당사자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간이 걸리듯이, 앨라이도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는 데 시간이 필요해요. 그 시간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담은 영화이고,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의 뒤늦은 방황을 담은 영화이기도 해요. 혹시 요즘 ‘나 빼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잘 사는 것 같고, 잘난 것 같다. 나만 초라하고 못난 거 같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다면, 이 영화를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있고, 못난 애들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초라한 시간을 버텨내는구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낮잠 2023/08/19 [18:40] 수정 | 삭제
  • 인터뷰만 읽었을 뿐인데 이미 이 영화와 사랑에 빠져버린 기분이에요. 꼭 보러 갈게요!
  • ㅇㅇ 2023/08/09 [15:55] 수정 | 삭제
  • 난 우여곡절 많은 찔긴 친구들이 좋더라 ㅎㅎ 영화도 꼭 보러갈게요
관련기사목록
문화 많이 본 기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