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연출에 있는 것과 없는 것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사이렌: 불의 섬〉과 여성의 몸

조한진희 | 기사입력 2023/08/21 [20:00]

‘사이렌’ 연출에 있는 것과 없는 것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사이렌: 불의 섬〉과 여성의 몸

조한진희 | 입력 : 2023/08/21 [20:00]

무인도나 정글은 누구에게 어울리는 공간일까. 적어도 여성이 있을 공간이 아니고, 있다면 보호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여전하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한 근육, 공격성, 힘으로 장악하는 몸을 권장받지 못했던 몸들이 벌이는 육탄전은 어떤 모습일까. 무인도 정글에서 보호받고 지켜져야 하는 몸이 아니라, 온몸으로 싸우고 공격하고 승리를 욕망하는 여성만이 등장하는 서바이벌 예능 〈사이렌: 불의 섬〉.

 

▲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사이렌: 불의 섬〉은 고립된 섬에서 소방관, 군인, 경찰, 스턴트 배우, 경호관, 운동선수 총 6팀 여성 24인이 ‘직업의 명예를 걸고’ 생존을 위해 연대하고 경쟁하는 전투 서바이벌이다. ⓒ넷플릭스

 

남성에 의해 감상되고, 응시 대상이 되는 여성들의 몸

온몸으로 싸우고 공격하고, 승리를 욕망하는 여성들의 몸

 

여성의 몸은 여전히 남성의 응시 대상이다. 여자 배구 선수들의 유니폼은 경기하기 불편할 정도로 짧은 바지인데, 스포츠 마케팅 등을 이유로 오랜 지적에도 변하지 않고 있다. 한편, 이란을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 히잡을 불태우며 자유를 외치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지만, 히잡이나 부르카에 대한 가부장제적 주장은 여전히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이다. 남성을 유혹하는 머리카락이나 몸을 가림으로써 여성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논리가 강력히 존재한다. 한쪽에서는 노출을 강요하고 다른 쪽에서는 가리는 것을 강요하는 모습이다. 양상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남성이 응시하고 감상하고 즐기는 대상으로서의 여성 몸이다.

 

주지하다시피 여성은 곧 몸으로 환원됐고, 여성에게 ‘전형적인 아름다운 외모’는 사회적 성취를 위한 중요한 자본이었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몸은 미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를 재현하고 평가받는 장이었고, 미적으로 손상됐다고 여겨진 외모는 그 삶을 손상시키기도 했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쿠도히나(김민정)는 자신의 호텔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에게  징벌의 의미로 “네 인생을 망가뜨리”겠다며 칼로 얼굴을 살짝 벤다. 여성의 얼굴에 아주 작지만 명확한 흉터가 생기는 일은 ‘인생이 망가지는 일’이었던 100년 전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나아갔을까. 제법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뛰어놀다가 상처가 생기면 안 된다며 여자 어린이는 신체 놀이를 덜 권장 받는다. ‘얼굴의 흉터’ 자체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손상이 아니었음에도, 결국 사회적 눈빛에 건강 손상(대인기피증,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외모지상주의는 미디어의 영향 그리고 상업화된 의료의 발전과 함께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해지고 정교해졌다.

 

조신하게 몸을 관리해서 상처 없는 깨끗한 피부, 공간에서 적은 면적을 차지하는 날씬한 몸, 다리를 오므려 앉고 손을 단정히 놓는 자세가 여전히 여성스러운 몸으로 평가받는다. 아름다운 몸과 태도를 갖추는 것은 여성의 성역할로 존재하고, 가치를 결정한다.

 

10년 전, 영화 〈도둑들〉 시사회에서 기자가 전지현 배우와 김혜수 배우 사이의 외모를 비교하는 식의 질문을 했고, 전지현 배우는 ‘일단 가슴 사이즈부터 상대가 안 된다’며 웃어넘겼다. 반면, 2023년 여성들의 서바이벌 예능 〈사이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의 몸을 비교하면서 “소방팀이 덩치가 커서 못 당해 낼 것 같다”(운동팀 김희정)며 견제하고, “운동선수에게 잡히지 마세요. 잡히면 바로 내던진대요”(경호팀 이지현)라며 두려워한다.

 

▲ 〈사이렌: 불의 섬〉 스틸 컷. 〈사이렌〉 제작 발표회에서, 연출을 맡은 이은경 피디는 출연진들이 여성 소방관, 여성 군인 등이 아니라 소방관, 군인으로 호명되길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넷플릭스


무인도에서 무한경쟁에 던져진 출연진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의 기지에 들어가 깃발을 빼앗아 승리해야 한다. 매일 상대 기지를 빼앗기 위한 기지전을 치러야 하는 이들은 늦은 밤 상대 기지 근처에 잠입해서 도청하고, 수시로 염탐하고, 서로의 동선을 견제하고,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깃발을 뺏기 위해 “전쟁에 비윤리가 어딨어, 그냥 쏘는 거지(군인팀 강은미)”라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은 승리를 위해 건물의 문 따위는 도끼로 부숴버리고(소방팀 정민선), 손으로 창문을 깨고 실내로 잠입하며(스턴트팀 이경애), 맨손으로 벽을 타고 옥상까지 기어올라서 적을 공격한다(운동팀 김은별). ‘몸 빵’으로 적을 무너트리고 동료를 보호하는 몸(소방팀 김현아), 힘과 격투 기술이 엄청나서 존재 자체로 위협이 되는 몸(운동팀 김성연)들이 지속적 협력과 연대, 생존과 전투로 화면을 꽉 채운다.

 

싸우고 연대하는 몸들의 ‘명예’

직업적 명예를 지키는 여자들-소방관, 군인, 경찰, 스턴트배우, 경호관, 운동선수

 

〈사이렌〉의 인물들은 치열하게 맞붙고, 승리한 이들에게도 패배한 이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다며 뜨겁게 박수를 친다. 경쟁 중에서도 상대가 숨을 몰아쉬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응원하고 소리치며 환호한다. 프로그램 컨셉이 경쟁과 연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 서로에 대한 일종의 동지애가 존재했을 것이다.

 

〈사이렌〉에서는 서바이벌 현장 이외에 기존의 삶, 이를테면 왜 그 직업을 택했냐거나 어떻게 단단한 체력을 관리하는지 등의 서사를 다루지 않는다. 직업 특성을 설명하는 정도가 다인데, “현장에 가면 아가씨라고 불러요, 그러면 아가씨 아니고 형사입니다”(경찰팀 이슬). “믿을 수 있는 소방관이라는 마음이 들도록 코피 터질 때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소방팀 김현아), 이어 김현아는 다른 인터뷰에서 “현장에 나가면 여자라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 온몸으로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출연진들은 각자 직업군에서 여성이라서 차별받아 온 무의식적 동질감이 있었을 것이다. 여자 소방관, 여자 군인, 여자 경찰, 여자 스턴트, 여자 경호관, 여자 운동선수 등 ‘여자’로 살아남아 온 서로에 대한 존중. 직군마다 조금씩 닮고 다른 다양한 차별에 놓이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며 각자의 레이스를 달리며 살아왔다는 동지애. 보이지 않는 동지애와 자부심이 프로그램 컨셉을 넘어 서로에게 진심으로 뜨겁게 박수치게 했을 것이다.

 

한편 〈사이렌〉은 통상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취하는 고액의 상금이나 특별한 꿈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로지 ‘직업의 명예’를 걸고 싸운다. 자신의 승리가 곧 자신 직업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라고 여기며, 모든 출연자가 ‘직업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나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명예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것이었다. ‘명예살인’(Honor Killing, 가장의 명예 혹은 가족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주로 여성 가족원을 살해하는 현상을 의미하며, 유엔인구기금 United Nations Population Fund은 세계적으로 매년 약 5천명이 명예살인으로 희생되는 것으로 추정함)이라는 문제적 단어처럼, 여성은 역사적으로 남성의 명예를 지키는 도구로서 존재해왔다. 그런 점에서 남성으로 상징되는 직군에 속해 있으면서, 자신 직업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여성들의 배치는 흥미롭다.

 

한편 자본주의 사회 특히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도대체 개인에게 직업이란 무엇인가 회의적인 심경이 든다. 하지만 “여자 소방관으로서 나는 계속 입증해야 하는 사람이구나”(소방팀 김현아)라는 말을 떠올리면 다시 몰입하게 된다.

 

▲ 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사이렌: 불의 섬〉은 7월 열린 제2회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예능·교양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넷플릭스


여성의 몸을 다루는 대중 매체들의 새로운 흐름: 

여성 몸에 대한 새로운 중력장

 

〈사이렌〉은 〈노는언니〉, 〈골 때리는 그녀들〉, 〈스트릿 우먼 파이터〉 등과 자주 함께 언급된다. 남성 눈에 아름다운 ‘응시의 대상이 되던 몸’에서 ‘말하는 몸’을 지나 ‘근육질의 탄탄한 몸에 자부심을 갖는 스포츠인’이나, ‘역동적으로 공을 차고 축구에 진심인 몸’을 지나서 ‘우정 속에서도 승리의 욕망에 눈 뒤집히며 경쟁하는 몸’, ‘전투적으로 포효하며 육탄전을 벌이고 승리하는 몸’으로 나아가고 있는 대중 매체의 흐름이 보인다.

 

그리고 〈사이렌〉은 〈노는언니〉, 〈골 때리는 그녀들〉, 〈스트릿 우먼 파이터〉와 달리 제목에서 유일하게 여성을 강조해서 드러내지 않는다. 〈사이렌〉 제작 발표회에서 이은경 피디는 가장 견제한 것이 ‘여자치고는 잘한다’라는 말이었다며 여성 소방관, 여성 군인 등이 아니라 소방관, 군인으로 호명되길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유난히 더, 남성을 기본값으로 두는 이 직업군들에서 소수자로 존재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유능하고 멋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직군들의 기본값을 남성으로 둔 것 자체를 바꿔 버리고 싶다는 태도로 읽었다.

 

남성은 보편이며 여성은 특수로 규정되어 온 역사 속에서, 여성 몸은 남성의 욕망이 투사되는 장으로 왜곡되어 왔으며, 한국은 지겹도록 세계 1위 성형 수술 대국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물론 여성의 몸은 사회적 통제에 대한 순응의 장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치열한 저항이 복잡다단하게 일어나는 장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사이렌〉은 기존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몸’의 규범과 다른 중력장을 형성한다. 쿠션어를 적게 쓰고, 승리에 대한 욕망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으며, 쎈놈이랑 붙는 게 멋있다며 시원하게 한판 붙자고 호기롭게 외친다. (여성)시청자들은 부수고 싸우고 연대하는 여성의 몸을 보며 환호했고, 업계에서 인정받기 어렵다는 ‘여성예능’임에도 청룡시리즈어워즈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이 새로운 몸들의 등장과 환호는 어떤 의미일까. 신자유주의 시대에 몸은 자기통제력과 자아실현 장소로서 존재한다. 건강은 스펙이 됐고, 질병은 자기관리의 실패이며, 나처럼 아픈 몸은 실패한 몸이 됐다. 적당한 근육으로 탄탄하고 건강한 몸은 생산성 높은 몸이고, 동시에 자기 통제력을 입증하는 상징이 되었다. 몇 년 째 지속되는 바디프로필 열풍은 이런 흐름 안에 존재한다. 미디어부터 미용 의료산업에 이르기까지, 몸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해서 자존감 높은 주체로 변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이렌은 이 신자유주의적 몸의 흐름과 함께 가고 있는 것일까?

 

‘몸’보다는 표정과 서사를 따라가는 카메라

 

사이렌은 출연진이 모두 여성이고 피지컬에 기반해 경쟁하는 프로그램임에도, 카메라는 그들의 ‘몸’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자기 통제의 산물로서의 신체적 능력을 강조하는 서사가 없다. 얼마나 열심히 근육과 힘을 키웠는지나, 인내로 완성되는 식단관리로 완벽해진 몸 따위의 이야기가 없다. 압도적 신체 능력을 강조하고 탄탄하고 아름다운 몸을 시종일관 훑어내리는 관음증적인 카메라 시선도 거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 곳곳 피트니스나 바디프로필 열풍과 약간 다른 결에서의 몸이다. 카메라는 출연진들의 ‘몸’보다는 그들이 전략을 짜고 협상하는 표정과 서사를 더 열심히 따라간다. 기본적으로 카메라는 인물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건조하게 움직이는 편이고, 전장에 나가는 긴장한 표정이나 치열하게 전투하는 장면을 스포츠 경기처럼 촬영한다.

 

▲ 〈사이렌: 불의 섬〉 스틸 컷. 치열하게 전투가 진행 중인 기지에 군인팀이 달려오자, 호전적인 군인들이 가세하면 더 큰 육탄전이 시작될 수 있는 순간에 운동팀 김성연이 두 손을 천천히 아래로 내리며 군인들을 진정시키면서 묻는 장면. “(저와) 붙을 거예요? 할 거예요?” ⓒ넷플릭스

 

또 한편 〈사이렌〉에는 출연진을 여성으로 반복적으로 호출하거나 환원하는 서사가 없다.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이 출연진인 <사이렌>이 공중파나 케이블에 편성됐다면, 이런 연출이 불가능했을 것 같다. 공중파나 케이블은 ‘여성’으로서 왜 군인, 경찰, 소방관, 스턴트, 경호원, 운동선수가 되고 싶어 했는지에 대한 지루한 질문을 어떤 식으로든 밀어 넣으려 했을 것이고. 거친 직업에 대해 가족이나 남편의 반대는 없었는지 물으며, 사회에서 찬양하는 ‘여성적 몸’과 다소 거리가 있는 탄탄한 큰 몸에 대한 이런저런 서사를 놓치기 싫어했을 것이다. 적어도 짠내 서사라도 넣어서 몰입도를 높이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사이렌〉은 카메라 시선이나 연출 방식이 예능보다 다큐에 가까워 보인다. 게다가 간접적으로라도 진행자를 두거나 일반적 한국의 티비 다큐처럼 별도의 나레이션이라는 쉬운 방식을 쓰지 않고, 오로지 출연자들의 목소리로만 내용을 진전시킨다. 거슬릴 수 있는 나레이션 내용을 듣지 않아도 되는 안전함이 있고, 덕지덕지 붙인 자막으로 강요하는 감정이 없다. 군더더기 해석을 제거하며 고퀄리티 배경음악으로 다큐멘터리적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고 〈사이렌〉이 세상 무해한 예능이라거나, 무엇보다 〈사이렌〉을 편성하고 송출한 넷플릭스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공중파나 케이블들이 여성 몸과 서사를 소비하고 연출하는 방식 재고하길 바란다는 의미다. 또한 넷플릭스 같은 오티티(OTT,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들은 빠르게 대중의 욕망을 읽어 내고 세련되게 구현한다는 점도 떠올려 보자. 경쟁이 심해지고 있는 유료 오티티 시장에서 경쟁력 확보의 중요한 요소는 차별화 전략이다.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는 시청률, 창작자의 욕구, 자본의 욕망이 회의 테이블 위에서 결전을 벌이다가 우연과 필연의 법칙이 엉겨서 어떤 지점이 결정된다. 여성이 강조되지 않은 타이틀 〈사이렌: 불의섬〉은 가치와 의미보다는 차별화 전략에서 채택되지 않았을까.

 

넷플릭스에는 페미니즘적인 것과 반페미니즘적 콘텐츠가 공존하고, 퀴어 친화적인 것과 퀴어 혐오적 콘텐츠도 공존한다. 넷플릭스는 바디포지티브 등의 ‘아름다운 말’을 잔뜩 가진 가이드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궁극의 목적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자본이 늘 탐내는 다양성, 차별화를 위한 전략적 도구에 가까울 것이다.

 

〈사이렌〉 제작사인 스튜디오 모닥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은경 피디가 〈사이렌〉을 만들 동안 같은 제작사 남성 피디들은 〈성+인물〉이라는 이상한 컨텐츠를 만들어서 넷플릭스로 송출했다.(‘성+인물’ 일본편은 최근 성착취 실태가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는 AV산업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사이렌〉과 〈성+인물〉의 책임 프로듀서는 동일 인물이다. 컨텐츠를 만드는 자본이란 기본적으로 이렇다.

 

최근 넷플릭스 다큐 〈나는 신이다〉처럼 포르노적 재현에 대한 문제의식도 깊어지고 있다. 오티티에게 저널리즘이나 공익성을 요구할 수 있는가 라고들 묻지만, 물을 수 있고, 물어야 한다. 자본은 대중의 욕망을 읽는 것에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법이나 제도적 규제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비판과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도록 일정한 두려움을 품게 만드는 게 필요하다.

 

여성격투와 평화 사이? 다층적 사유가 필요해

 

누군가는 <사이렌>에 대해 여성들마저 저런 격투의 장으로 나가 무한경쟁 생존 쇼에 참여하는 게 옳은 것인가 묻는다. 그러나 나는 총구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만 평화라고 보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전쟁/점령 지역에서 평화 연대 활동을 하며 깊게 깨달은 게 있다. 평화란 고요하고 수동적이라기보다는 저항하고 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구촌 다양한 문화권에서 ‘일상적 전쟁터’인 사회관계를 보면서도 수없이 배웠다. 평화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일정한 규칙 안에서 안전하게 싸울 수 있는 상태에 가까워 보였다. 갈등이나 경쟁, 싸움이 없는 사회가 무조건 좋은 사회일까. 교주 중심의 종교 집단이나 전체주의 사회에는 오히려 갈등이나 전투가 존재하기 어렵다.

 

▲ 팔레스타인에서 히잡 거부 운동을 하며 학교에서 유일하게 히잡을 쓰지 않은 학생이 된 나지마(왼쪽)와 함께 한 필자의 모습. 2009년. (조한진희 제공)


또 한편 나는 오랫동안 아픈몸과 ‘질병권’(잘 아플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건강중심 사회를 비판했고, 무한히 노동 가능한 건강한 몸을 강조하는 사회에 균열을 내고자 노력해 왔다. 동시에 피트니스와 바디프로필에 환호하게 되는 신자유주의적 몸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비판해 왔다. 그러나 피지컬의 강조가 일관되게 비판의 대상으로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건강한 남자’가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만큼, 인형처럼 하얗고 말랐지만 약간의 복근은 있는 몸을 요구받는 여자 아이돌, 그리고 건강미 넘친다는 말로 표현되는 글래머러스한 여성 배우의 몸을 시종일관 훑어내리는 카메라 시선이 가득한 미디어를 여전히 보고 있다. 그런데최근 외모, 몸무게, 바디라인과 무관한 세계에서 피지컬 중심으로 경쟁하고 공격하고 연대하는 몸들이 등장하고 있다. 여성 몸의 중력장을 새롭게 형성해 가고 있는 이 현상을 좀 더 정밀하게 봐야 한다. 그리고 그 몸들이 미디어와 여성 대중에게 미치는 영항에 대해 좀 더 사유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을 모아 놓는다고 사회운동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페미니스트로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자기만족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다른 세계를 욕망하며 성차별 사회와 기지전을 펼치기 위해서는 좀 더 다층적 전략이 필요하다.

 

[글쓴이] 조한진희(반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삶을 바꾼 페미니즘 강의실』(공저), 『비거닝: 채식에 기웃거리는 당신에게』 등을 썼고, 〈RTV 시사다큐: 나는 장애인이다!〉를 비롯한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질병권이 보장되고 n개의 몸이 존중받는 사회를 향한 ‘다른몸들’에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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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6 [09:48] 수정 | 삭제
  • 싸이렌 2 주세요
  • 사이헨쳐돌이 2023/08/25 [23:44] 수정 | 삭제
  • 사이렌 보는 동안 정말 행복했음 시즌2를 미치게 기다림
  • 라라라 2023/08/25 [21:01] 수정 | 삭제
  • 불의섬보다 으리으리한 물의섬 바람의섬... 기대합니다. 나는 콩가루의섬
  • 프리 2023/08/25 [20:56] 수정 | 삭제
  • 와 재밌게 읽었어요!
  • 2023/08/22 [11:46] 수정 | 삭제
  • 사이렌 보고 감동을 받았던 게 새록새록 살아나네요. 서바이벌 예능이 재미를 넘어 이렇게까지 감동적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는데, 그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남초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프로그램이라서 그렇게 감동적이었던 것 같아요. 여섯 팀의 출연진뿐 아니라 이은경 피디, 현장에 계셨던 의사, 무기상점에 계셨던 분, 스텝 분들 모두가 다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이 되었기에 사이렌의 세계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쑥쓰럽네용. ^^
  • ㅇㅇ 2023/08/22 [03:11] 수정 | 삭제
  • 여성의 몸을 둘러싼 다른 중력장이라는 말에 공감!
  • Soda Pop 2023/08/21 [23:34] 수정 | 삭제
  • 아.. 사이렌 정주행 또 가나요~ ㅎㅎ 사이렌 은근 폄하하는 반응도 좀 있고 했는데 상받아서 너무 좋았다는... 만드는 사람의 시각이 다르면 이렇게나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걸 진짜루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프로그램! 글로 이유가 설명된 걸 보니까 흐뭇하네요
  • 사이렌 시즌2 주세요 2023/08/21 [21:11] 수정 | 삭제
  • 썸네일보고 입틀막 사이렌 해석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1인 발도장 찍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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