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내모는 교육 시스템, 또 ‘땜빵’할 것인가?정부의 ‘교권’ 대책에 대한 우려와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 모아져서울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자, 정부와 여당은 학생인권이 강화된 탓이라며 학생인권조례 폐지 목소리를 높였다. 17일 교육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교권 확립의 제도적 틀을 정립”하겠다며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를 발표했다. 교사가 수업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물품을 압수할 수 있고, 소지품 검사, 교실 퇴실 조치, 위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면 물리적 제지도 가능케 하고, 생활지도에 불응하거나 의도적으로 교육을 방해하는 학생에 대해 학교장에게 징계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교권 학생인권조례 폐지와 아무 관련이 없다’, ‘새로 발표된 고시 또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또한 교사의 생활지도나 교육활동이 아동학대로 신고 당하지 않게 아동학대 관련법(아동복지법 제17조 5호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금지함')을 즉각 개정하거나, 교사에게 면책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실제로 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현실에 어떤 파장을 미칠 것인지 조금 더 세심히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제기되고 있다.
쟁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대체 지금 학교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다시는 이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의 논의는 충분한가? 정말 ‘교권’을 보호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한시적 ‘땜빵’이나 주먹구구식 행정이 아니라, 진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며, 현 정부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등.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토론하여 중지를 모아야 하는 시기에, 청소년-시민전국행동을 비롯한 교육시민단체들이 한데 모이는 자리가 마련됐다.
‘교사는 왜 보호받지 못하는가?’ 원인 진단부터 잘못됐다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라, 학교 시스템 속에서 교사의 위치를 보라
현직 교사인 전국학생인권교사연대(준) 조영선 활동가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아동학대 관련법 개정으로 표방되는 현재 대책이 제대로 된 원인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 의문을 표했다.
“현재 서울 지역 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23.8명인데, 왜 서이초 사건이 일어난 곳의 학급당 수는 30명 이상인가? 교실로 적당하지 않는 장소가 교실로 쓰일 정도로 학급 수를 증설한 경위는 무엇인가? 왜 그런 상황에 신규 교사나 저경력 교사를 배치하는가? 학생과 학부모의 갈등을 중재하는 교사의 부담에 대해 교장·교감 등 관리자는 어떤 역할을 했나? 등 먼저 확인되고 분석되어야 일은 조명되지 않고, 바로 ‘교권’ 이야기로 넘어가는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
조영선 활동가는 “이런 질문에 답을 찾으려면 교육 예산이 쓰이고 있는 방식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오늘도 학교에서 일하다 온 교육노동자”라고 소개한 ‘교육노동자현장실천’ 보란 활동가는 “우리나라 학급당 학생 수는 OECD 30개 국가 중 24번째(상위 국가일수록 학급당 학생수가 적음)로,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교원 정원 확보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부는 예산 감축, 경제적 효율·관리를 위한 연구를 통해 교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8월 9일 발표된 내년도 전국 공립학교 교사 선발 인원은 올해 최종 선발 인원과 비교하면 13~30% 가량 줄어들었다. 충북은 전국 최고 수준의 58.7% 감축이다.”
점점 입시경쟁이 심화되고 정부의 공교육 정책이 양육자들의 신뢰를 잃으면서, 이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학교, 특히 교사에게 돌아온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적됐다.
조영선 활동가는 “의사 외엔 괜찮은 일자리가 없다는 공포는 ‘초등 의대반’이라는 사교육 시스템으로 이어지고, 고1에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고교학점제 속에서 양육자와 청소년은 일찍부터 입시전쟁에 뛰어든다”며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학원을 가기 전 쉬어야 하는 곳이거나, 사교육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폭발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또한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뺑뺑이를 돌며 분노를 내면화하고, 사교육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은 따라갈 수 없는 학교 수업 때문에 소외, 배제”되고 있다고 말하며,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학생들의 정서적·사회적 격차로 인한 학생 간 갈등을 교사는 과연 중재할 수 있을까?”
보란 활동가는 학교가 “취약한 이들에게 저임금·고강도 노동을 떠넘기는 상황도 문제”라고 진단했다.. “저경력 교사, 기간제 교사, 여성 교사, 교육공무직, 비정규직 교육 돌봄 노동자에게 당연하게 노동과 그 책무가 떠맡겨지고 있다.”는 것. 보란 활동가는 “학교 노동에서의 뿌리 깊은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성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은 “일부 학부모의 악성민원과 일부 학생들의 교권 도전 등 현상적 문제 행위만 부각하고, 학원과 달라야 할 공교육은 무엇이고 학교는 어떤 시스템이어야 하는지 논의하지 않고, 학교가 겪는 고통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 사회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그리고 “악성민원이 넘쳐나도록 교육열이 뜨겁지만, 교육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성찰해야만 한다고 호소했다.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는 교사를 보호할 수 있나? 교사 vs. 학생-양육자 갈등을 더 부추길 우려도
정부와 교육부가 다가오는 2학기부터 적용 예정인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을 내놓은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조영선 활동가는 또 다시 미봉책이 될 가능성이 높은, 책임 없는 대책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2012년 경기에 이어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자,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었던 이주호 현 교육부장관이 학생인권조례로 인한 교권 침해를 보호한다며 현재 교권보호위원회의 법적 근거가 된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 8일 교육부가 주관한 교권 대책 포럼에서 교사들은 ‘교권보호위원회 등이 전혀 도움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대책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10년 전 자신들이 만든 교권 보호 정책의 한계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또다시 같은 방식으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조 활동가는 “어떤 학생을 분리하는데 집중할 게 아니라, 왜 그 학생이 그렇게 위협적이 되었는지 알아 볼 수 있는 소통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위협을 미리 감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모든 학교에 정신건강 지원과 연계된 서비스가 가능해야 하고, 가능하다면 담당 의사 또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흉기 등 위험한 소지품에 대해 검사하거나 압수할 수 있게 하는 부분도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의 흉기 난동 사건 이후 경찰의 불심검문이 부활될 조짐인데, 이것이 정말 범죄를 예방할 수 있나? 흉기 소지 의심자를 어떻게 특정할 것인가? 학습에 사용하는 연필, 콤파스, 칼, 가위 등은 흉기인가, 아닌가? 학생과 교사 모두 안전해지기 위해선, 소지품을 검사하고 압수하는 걸로 되지 않는다.” 조영선 활동가는 압수, 배제, 소외, 낙인 등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학생이 안전하고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 한 교사 또한 안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란 활동가는 “고시(안)에 제시된 학생 행동 통제 기준인 ‘정당한 교육활동’은 임의적이면서도 자의적인 해석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우려했다. “인권침해 문제를 개인 간 소송으로 해결하도록 부추길” 가능성도 높다며, “교사와 학생·양육자 대결 구도를 조장하여 소모적인 갈등을 부추기고, 결국 큰 비용이 드는 소송에서도 경제력과 권력을 소유한 이가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란 활동가는 “무한경쟁 입시체제 안에서는 학생은 작은 실수로도 낙오될 수 있으므로 학생과 양육자 모두가 예민해지기 쉬운 현재 교육 현장에서, 홀로 교육과 돌봄을 온전히 감당해야만 하는 교사를 문제 제공자로만 몰아가는 방법이 아닌, 상황과 맥락을 복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해결 지원 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생인권 탓하는 건 “괴담정치”
토론회에서는 ‘안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선 학교와 연결된 모든 이들이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거듭 강조됐다. 특히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외치며 학생의 권리와 교사의 권리를 대결하게 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됐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수영 활동가는 “학생인권이 ‘과도하게’ 보장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낭설”이라며 “조례시행 지역인 서울시 교육청이 지난 2020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중학생 중 무려 20% 이상이 신체에 대한 폭력과 간접체벌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수영 활동가는 “최근의 상황들이 마치 학생인권 탓인 양 프레임을 씌우고 공격하는 세력은 이론도, 실제 통계도 부정한 가히 괴담정치”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과 양육자가 ‘민원인’으로 전락한 공교육에 변화를! 교사의 ‘노동권’과 학생 인권 보장돼야
이윤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은 “현재 발표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서부터 (학교와 관련된) 구성원 간의 권리와 책무가 평등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제3조 학교구성원의 책무에서 학교의 장과 교원은 '노력하여야 한다', 학생은 '존중하며 따라야 한다', 보호자는 '존중하여야 하며, 협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제9조 상담에서 학교의 장과 교원은 학생 또는 보호자의 폭언, 협박, 폭행 등의 사유로 상담을 지속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상담을 즉시 중단할 수 있지만, 보호자에게는 상담을 거부하거나 중단할 권한이 어디에도 없다.”
그뿐 아니라 이번 고시(안)이 “마치 교사에게 많은 권한을 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떠넘긴 것”이라고 진단했다. “교사 대신 책임을 지겠다는 관리자도, 시스템도, 교육 당국도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모호한 기준에 따라 생활지도 조치가 이뤄지면, 이의를 제기하고 불복하는 학부모의 민원도 빗발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경 회장은 또 “교사의 판단에 의해 학생이 분리되었을 때, 해당 학생의 학습에 대한 후속 대책이 있는지도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엄벌주의의 선례인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법)처럼 “교권 침해 사안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게 된다면, 학교는 법적 소송으로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며 후폭풍을 염려했다.
결론적으로 이 회장은 교권 강화나 처벌 등을 강화할 게 아니라, “민원인”으로 전락한 양육자, 교육가족을 “참여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무엇이 학교폭력인지, 학교폭력 신고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아동학대가 교사에게 사과 받고 다른 교사로 바꿔주는 제도가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유현경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운영위원은 “공교육 시스템이 교육 구성원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간 지 오래되었다.”라고 말했다. “각종 학습노동과 스트레스로 2018년~2022년까지 최근 5년간 자살한 초·중·고교생은 822명, 연 평균 164명이다. 2~3일에 한 명 꼴로 학생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도록 내몰리고 있다.”
유현경 운영위원은 정부 교권대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육을 시장화하고 경쟁교육을 부추기는 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문제적 행위자 중심의 국지적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라 지적하며, “잘못된 공교육 시스템의 전반적 전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교사의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을 위한 목소리에도 함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백종성 사회주의를향한전진 공동집행위원장은 "'교권'이라는 단어는 현 상황을 교사와 학생의 권리 분쟁으로 바라보게 한다"면서, "'교사의 노동권'이라는 단어로 사태를 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 학대 행위가 발생할 경우는 어떻게 될 지 고려해야
이제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 변호사는 ‘교권’ 침해에 대한 대응이라는 명목 하에 쏟아지고 있는 법률개정안, 그 중에서도 아동학대 배제 조항 및 책임감면 조항에 대해 의견을 냈다. “현행법상으로도 정당한 범위에서의 교육활동·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처벌되지 않기 때문에 아동학대 배제조항이 법체계상 실익이 없을 수 있다. 즉, 법률이 개정되더라도 단순히 확인적 규정으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즉, 여전히 문제가 된 교사의 활동에 대해서 신고나 고소가 이루어질 수 있고, 이에 대해 기존처럼 교원의 행동이 아동 학대에 해당하지 않는 ‘정당한’ 행위였는지를 다투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반면, “아동학대 배제 조항이 생겼을 때 미칠 영향 중에는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학대 행위가 발생했을 경우, “그것이 교육활동 중에 이루어졌다는 사유만으로 신고를 할 수 없게 만들거나, 아동으로 하여금 수사 단계부터 정당한 교육활동이 아님을 더욱 더 높은 정도로 입증하여야 하는 어려움을 가중하기 때문”이다.
이제호 변호사는 교권에 대한 논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교원활동·생활지도에 대한 전담기구나 별도의 절차 마련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해당 교원의 행위가 아동학대에 해당하는지, 학생과 학부모가 무고성 고소를 한 것인지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다”며, 그보다 집중해야 하는 논의는 “각 당사자들에 대한 지원, 처분, 조치를 얼마나 다양하고 촘촘하게 설계할 것인지, 또한 그 과정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관련 책임자들의 의무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교사들이 겪는 문제가 비단 ‘아동학대 신고’뿐 아니라, “감정노동, 폭언에 대한 노출, 휴식권 침해, 교실 내 위기 상황에 대한 부족한 지원, 학교-관리자-담당부처(교육청 등)의 적절한 지원 부족 등 교사, 교원들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상황은 다채롭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우리가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은 “교원에게 양날의 칼을 쥐어주고 다시 형사소송이나 법적 책임을 다투도록 하는 법 개정이 아니라, 노동권을 보호하고 공동체 회복하는 관점의 개정안”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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