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간 출판 시장에 어떤 책이 나오고 있는지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아마 눈치 챘을 것이다. 바로, 아픈 몸들이 속속 말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신체질환뿐만 아니라 우울증과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등 정신질환까지, 다양한 질병과 장애를 가진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독자들 또한 반응하기 시작했다. 마치 이런 이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픈 몸에 대한 이야기가 이전에 없었던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주로 해당 질병을 극복하고, 다시 건강해지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사뭇 다른 결의 이야기를 논쟁적으로 펼쳐 보인 건 조한진희(반다) 작가다. 2015년부터 일다에서 연재된 〈반다의 질병관통기〉 시리즈를 통해, 질병을 이겨내고 건강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질병권’, 아플 권리,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갈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한진희 작가는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비롯해 동료들과 함께 『질병과 함께 춤을』, 『아픈 몸, 무대에 서다』 등을 출간했다. 질병권 논의를 더 확장하고, 아픈 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비영리단체 ‘다른몸들’도 만들었다. 이런 활동이 지금의 ‘아픈 몸들의 말하기의 장’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픈 몸이 이렇게 많은데, 왜 병원 밖에선 보이지 않을까?
일곱 작가들은 각기 다른 질병을 가지고, 다른 경험을 했다. 하지만 아픈 몸이 되고 나서 어떤 의문을 갖게 됐고, 이후 글을 쓰게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의문이란, 이 사회가 ‘아픈 몸을 바라보는 시선, 차별하고 배제하는 방식’이다. 조한진희 작가는 “몸이 아프고 나서야, 페미니즘에서 계속 말해왔던 ‘정상성’에 대한 문제 의식을 재차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면 굉장히 비정상적인 몸이고, 이런 몸은 교정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며, 그러지 못했을 땐 이 사회에서 온전한 시민권을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유방암을 진단 받았을 때,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지?’라며 사실 굉장히 억울했다”고 얘기한 양선아 작가는 자신 또한 질병에 대한 편견과 오해, 잘못된 정보 등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이후 “유방암 투병기 등의 글이나 책도 읽으며 (암을) 잘 치료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사라지지 않는 억울함이 계속됐다.” 양 작가는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봄날의책)를 접하고 나서야, 질병을 이렇게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질병은 삶의 일부를 앗아가지만 기회 또한 준다고 하더라. 그 기회를 붙잡으려면 질병을 적극적으로 살아 내야 한다고. 아픈 몸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어떤 일을 겪고 있으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들여다 보고, 이런 경험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또한, 비로소 유방암이 내 삶의 일부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너무 속이 답답해서” 아픈 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 안희제 작가는 “나만 이런 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병원에 가면 내 앞뒤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거리에선 왜 그 어떤 아픔도 보이지 않는걸까? 너무 이상하다. 아픈 사람은 정말 병원에만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병원 밖에선 그 아픔이 보이지 않도록 감추고 있기 때문일까?” 작가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나부터 내 이야기를 해 보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픈 몸들의 글쓰기는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나
아픈 몸들의 글쓰기는 그냥 글쓰기와 다른가? 이 글쓰기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박목우 작가는 “질병을 가진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건강중심 사회와 남근중심주의적 사회가 부과한 거짓된 이미지(여성성)에서 탈피하여 스스로를 알기 위하여, 또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글쓰기는 “오랜 기간 선택된 사람들만의 것으로 인식되어 왔고, 작고 하찮은 사람들과 여자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역사가 있다. 그렇기에 박 작가는 “질병을 가진 여성들이 이러한 상황을 돌파해 나가는 것”의 의미를 말했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아픈 경험을 털어놓는 아픈 몸들의 글쓰기가, 단지 ‘당사자가 써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더 많은 이들과 ‘연결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양선아 작가는 “사실 내 경험이 전부가 아닌데, 이게 객관적인 정보는 아닌데… 라는 걱정” 속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도 듣기로 했다. “유방암 투병하며 알게 된 친구들 인터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쓴 책도 들여다 보는 과정을 가지”며 글쓰기를 완성했다.
자신의 우울증 경험을 담은 책 출간 이후, 올해 『나의 조현병 삼촌』(아몬드)을 출간한 이하늬 작가는 당사자 가족/주변인으로서 글을 쓴 경험도 털어놨다. “삼촌과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이 굉장히 많아졌다”는 이 작가는 “정신장애 영역은 아직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의 경험을 대신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부터 지적했다. 비당사자가 이야기를 대신하는 것도 문제지만, 작가는 당사자의 ‘언어화’ 또한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삼촌에 대한 글을 쓰는데, 사실 삼촌이 겪은 일과 그 일에 대한 삼촌의 해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건 나도 모르고, 삼촌도 모르는 부분이었다. 삼촌은 한 번도 자신의 경험을 입 밖으로 이야기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본인이 겪은 일임에도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니까 글을 써야 하는 내 입장에서도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이하늬 작가는 조한진희 작가가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썼던 “언어가 부족하면 타인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언어가 없을 때 인간은 스스로의 경험에서도 소외된다.”는 말에 너무 공감하게 된 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작가는 그렇기에 자신의 책 또한 어떤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정신장애를 갖고, 교육도 받지 못해 자신의 언어가 없고, 주변의 지지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나올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과제를 이야기했다.
질병서사, 단지 아픈 이야기가 아니다
답답함 때문에 글쓰기 시작했다고 말한 안희제 작가는 “사실 그 답답함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질병에 대해 말하면 그것이 오직 질병에 대한 이야기로만 활용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었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안 작가는 “그래서 책을 쓰면서 장애학과 페미니즘의 언어를 빌려온 것도 있다”며 “질병에 대한 이야기가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되고 이해될 수 있기를 바랬다”고 했다. 그럼에도, 책 출간 이후 “(자신의 이야기가) 자꾸 질병, 아픈 것으로만 환원되는 것”은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에서) 우리는 힘든 것들을 극복하길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기다리고 지켜봐 주며 함께 눈을 맞춰 줄 뿐이다. 그렇게 나는 아주 오래전 질병이 시작되던 시점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나는 아주 오래 화해하지 못한 나와 화해했다. 그리고 질병은 마침내 내게 삶이 되었다.” 질병서사가 아픈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이야기인 이유다.
나아가 박목우 작가는 질병서사를 “해방”이라 표현했다. “서로의 경험을 경청하면서 그리고 그 안에서 담론을 만들어 가며, 자신과 타자의 경험이 서로 교차하고 겹쳐지는 지점들을 접하면서 글을 쓰는 경험은 억압적인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해방하는 경험이었다. 나를 옥죄고 있던 질병이라는 억압이 말해질 수 있고, 공감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변하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나의 말의 파장을 느꼈다. 그것은 그동안 갇혀 있던 세계의 열림과도 같았다.”
질병서사의 이런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에서 질병, 아픈 몸이 이야기되는 방식은 협소하다. 리단 작가는 ‘질병을 극복하고 정상적인 몸이 되라’는 메시지가 사실 불가능하다는 점도 짚었다. “세상엔 나처럼 절대 낫지 않는 병을 가진 이들도 있는데, 자꾸 질병을 극복하라고 하는 건 굉장히 모순적인 일”이라는 것. 또한 “정상성이라는 게 굉장히 견고해 보이지만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다들 알지 않냐”고 반문한 작가는 “나 또한 ‘정상성’에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는 농담으로 ‘정상성’을 비꼬았다. 사실 문제는 정상성의 범주가 아니라, “정상/비정상, 건강/불건강, 장애/비장애 등의 이분법 만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곱 작가 모두 책 출간 이후 ‘이런 이야기를 기다렸다’며 찾아오는 독자들과의 만남, 여러 후기와 감상들을 접했다고 했다. 단지 아픈 이야기만이 아닌 질병서사는 이제 물꼬를 트기 시작됐다. 이 이야기를 기다렸던 사람들도 준비됐다. 세상도 바뀔 수밖에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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