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홈리스는 왜 안 보일까요?

책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박주연 | 기사입력 2023/09/10 [16:21]

여성 홈리스는 왜 안 보일까요?

책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박주연 | 입력 : 2023/09/10 [16:21]

1928년,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선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약 100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하지만 그 방(집)을 마련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어쩌면 더 어려워졌는지도 모른다.

 

팍팍한 세상 속에서 적정한 방을 구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성 노숙인, 여성 홈리스. 여전히 생소한 이미지인 그들의 이야기는 최근이 되어서야 수면위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관련 기사: 여성 홈리스, 우리가 여기 있다! https://ildaro.com/9517) 책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도 그 연장선이다.

 

▲ 서울역은 많은 홈리스들이 머무는 공간이다 ©후마니타스


이 책은 재개발로 쫓겨나는 쪽방촌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홈리스행동·빈곤사회연대 활동가들과 홈리스야학 교사들이 함께 쓴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관련 기사: ‘가난을 낙인찍는 사회’ 쪽방촌 주민들의 목소리 https://ildaro.com/9224)에 이어, ‘가난한 이들의 삶’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회운동의 연장이기도 하다.

 

책엔 일곱 여성들의 홈리스로서의 경험이 담겨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쓴 김진희 씨를 뺀 6명의 이야기는,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의 6명이 나눠썼다. 이들의 경험도 각기 다르지만,  저자들이 이야기를 풀어낸 방식이 다양한 것도 흥미롭다. 재미는 그 뿐 아니다.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는 여성 홈리스, 노숙인, 가난한 사람, 피해자, 약자… 등의 단어들 외에 무슨 이야기가 있겠어? 라는 생각을 과감히 부순다.

 

여성 홈리스는 어디에 있었나?

 

여성 홈리스의 이야기는 왜 잘 드러나지 않았나? 이전엔 없었기 때문일까? 정답은 ‘아니오’다. 여성 홈리스는 계속 존재해 왔다. 그들이 보이지 않았던 건, ‘홈리스’로서 존재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이슬 맞고 잠을 자 노숙(露宿)이라 하지만, 여성 홈리스는 길에서 자는 경우가 드물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지인 집들을 전전하거나 찜질방·피시방·패스트푸드점 등 돈을 지불해야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간다.

 

이런 현실임에도, 보건복지부가 실시하는 「노숙인 등의 실태 조사」는 거리·시설·쪽방 중심으로 이뤄진다. 거리에 있지 못하고 다른 공간에 머무는 여성 홈리스들이 통계에 들어오지 못하는 거다. 그럼에도 이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홈리스 1만 4404명 가운데 여성은 3,344명으로, 5명 중 1명 꼴이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실제론 더 많을 것이다.

 

▲ 책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김진희, 박소영, 오규상, 이재임, 최현숙, 홍수경, 홍혜은 지음·후마니타스)


여성 홈리스가 보이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 때도 대대적으로 조명한 건 실직하고 집도 잃은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공원에서 텐트치고 거리 생활을 하던 이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1998년 2월, 스물셋 나이에 서울역에 가게 된 임미희 씨는 그 때 그 공원엔 “애들 있는 가족들도 있고, 내 또래도 열 명 넘게 있었다.”고 했다.

 

“남자들은 일용직, 식당처럼 숙식 되는 일 하다 잘려서 오는 경우가 많았고, 여자는 집에서 쫓겨나거나 가출해서 오는 경우가 많았죠. 결혼해서 살다가 아니다 싶어 나온 사람도 있고.”

 

그렇게 존재해 온 여성 홈리스들이지만, ‘여성’+‘홈리스’들은 여러 제도와 정책에서 미끄러진다. 거리에서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아줌마들은 밥 해먹을 줄 아니까 가래요.”라며 무료 급식소에서 거부 당하는 일도 있다. 거리가 위험해서 지인 집에 겨우 얹혀사는 것뿐인데도 ‘집이 있다’고 여겨지는 여자들은, 거리 노숙인들을 위한 지원에서도 탈락된다.

 

2018년 열린 홈리스 추모제에서 서가숙 씨는 “(밥 먹으려고) 맨날 가도 나 혼자뿐이다. 여자 홈리스들은 남자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를 자른다. 숨어 다녀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여성 홈리스들의 현실이다. 이들은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여성 홈리스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

 

드러나지 않는 건 그들의 존재뿐만이 아니다. 이들의 노동은 ‘여성’+’홈리스’이기에 또 지워진다. ‘홈리스가 뭔 노동이야? 그 사람들이 일을 하면 홈리스가 아니겠지’라는 편견과 달리 여성 홈리스도 노동을 한다. “화장실에 사는 여자” 이가혜 씨는 어느 공원 화장실에서 산다. 그리고 청소 노동을 한다.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은 화장실 닦아 주고, 공원 쓰레질 다 해요. 하루에 몇 번씩 걸레로 바닥을 닦아 줘야 돼요.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 양쪽 다요. 비 오는 날은 다른 날보다 걸레질을 더 많이 해요. 사람들이 발로 밟아 가지고 물이 막 흥건하게 고이더라고요. 또 바람 불면 낙엽이 이리 굴러다니고 저리 굴러다니고 몰아닥치고.” (책 p.14~15)

 

▲ 어느 화장실 구석에 가지런히 놓은 여성 홈리스의 가방 ©이재임


가혜 씨에게 노숙인은 “없어서 굶주리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남을 위해서 사는 사람, 도와주고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이다. 그가 머무는 화장실 또한 “어디나 드러누워도 될 만큼 깨끗”하다.

 

서울 양동 쪽방촌에 사는 길순자 씨는 끊임없이 돌봄노동을 한다. 아픈 어머니를 돌봤고, ‘남편’, ‘신랑’, ‘아저씨’를 돌봤다. 어머니를 돌볼 땐 “엄마를 눕혀 놓구 교회에 가서 일하고, 낮에 와서 밥 디리고, 기저귀 갈어 주구, 저녁에 또 나가는” 일을 반복했다. 두 번째 남편이 사망했을 때 영안실 사람은 순자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 아저씨는 너무나 깨끗해요. 나 영안실에서 몇십 년을 있었는디, 이런 거 처음 봤어요.” 순자 씨의 꿈은 “양로원 이릏게 도와주는 거, 노인네 도와주는 거”였다. 실제로 그는 동네의 어느 노인네가 똥을 눠서 난장판이 된 것도 목욕시켜줬다. “세 번 목욕을 시키고 119에 신고”도 했다. 치매끼가 있는 사람이 동네로 이사 왔을 때 “한 달 넘게 빨래해주구 밥해 주구 다 했”던 일도 있었다.

 

길순자 씨에게 돌봄노동은 ‘딸이어서, 부인이어서’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 일이 좋았기 때문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 노동에 대해 사회는 아무런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다. 여자니까, 가족이니까, 정(情)이 있었겠지 등의 이유만 갖다 붙였을 뿐.

 

그럼에도 여성 홈리스들은 노동한다. 홈리스 당사자이자, 홈리스를 돕는 활동가가 된 서가숙 씨는 홈리스행동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다가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물론 “(홈리스행동) 거기 가면 있잖아. 언니, 돈도 꿔 줘”라는 말에 혹한 것도 있었지만, 홈리스 추모제를 보고 감동 받은 서가숙 씨는 다른 홈리스들에게 밥은 먹었냐, 아픈 데는 없냐고 말을 걸고, 그들을 챙기는 사람이 됐다.

 

▲ 홈리스행동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서가숙 씨가 그린 그림 ©서가숙


좌충우돌하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여성 홈리스가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건, 이들이 겪고 있는 정신질환과도 연결된다. 여성 홈리스의 정신질환 유병율은 42.1%로 남성(15.8%)보다 훨씬 높다. 또한 노숙인 요양시설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여성의 비율은 53.4%로, 남성(22.9%)보다 높다. 홈리스행동 이재임 활동가는 “정신질환은 이들이 집을 나오게 만든 노숙의 원인이기도 하고, 고단한 노숙의 결과이기도 하다”고 분석한다.

 

정신질환 등의 이유로 시설에 ‘보호’되는 이들은 “외출과 외박이 제한되고, 한 달에 한 번 있는 미용 봉사로 머리 모양이 모두 같으며, 전화를 걸 곳이 없어져 휴대폰이 쓸모없을 만큼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생활을 한다. 이들에겐 자유로울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정의롭고, 타당한 것인가?

 

여러 질병뿐 아니라 분노조절 장애와 지적장애 중증을 판정 받은 영주 씨의 이야기를 듣고 쓴 최현숙 작가는 영주 씨와의 관계에서 종종 골머리를 앓으며, 그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지속적으로 고민한다. 영주 씨는 ‘담뱃값’ 받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하는 ‘쿨한’ 여자이고, 작가가 부러워 할만큼 “자유로움과 생존력”이 있는 사람이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빵살이”도 했다. “약한 사람들- 발달장애인, 나이 어린 사람, 처음 온 사람, 잘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억압하거나 밀어내기도” 해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 작가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일도 있다. 이들의 관계는 끊어질 듯 하면서 이어지고, 잘 유지되다가도 끊어진다.

 

최현숙 작가는 글의 마지막 “2023년 7월 말 현재, 영주와 나의 관계는 계속 미궁을 헤매며 좌충우돌하고 있다”고 썼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란 당연히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 그런데 왜 어떤 좌충우돌은 괜찮고, 어떤 좌충우돌은 괜찮지 않아서 따로 분리/배제하려고만 할까?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 홈리스의 삶과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있다. 우리는 결국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 자명한 사실을 또 한번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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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11 [17:12] 수정 | 삭제
  • 나도 화장실에서 지내고 계시는 여성 분을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몰라서.. 무턱대고 말을 걸기도 어려워서 그냥 지나쳤던 생각이 나네요. 만약에 또 홈리스 분을 보게 된다면 어떤 도움이 가능할지 알고 싶기도 해요. 홈리스행동에 문의를 드리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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