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나이듦’을 이야기하다

네팔, 대만, 일본, 태국, 한국 ‘성소수자의 노후’에 관한 컨퍼런스

박주연 | 기사입력 2023/09/18 [10:05]

성소수자, ‘나이듦’을 이야기하다

네팔, 대만, 일본, 태국, 한국 ‘성소수자의 노후’에 관한 컨퍼런스

박주연 | 입력 : 2023/09/18 [10:05]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된다는 것, 노쇠하고 아픈 몸이 된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두려운 일로 여겨진다. 또한 ‘헬조선’이라 불리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소년과 청년들은 지금을 살아 내기도 벅차다 보니, 나이듦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는 결국 노인됨과 나이듦에 대한 상상을 제한한다.

 

거기다 ‘나 같은 사람’이 나이든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정상가족’에 편입될 가능성이 낮거나, 원가족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면?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과 다른 생애주기를 경험하고 있다면? 사회에서 요구하는 성별 이분법적인 수행을 하기 어려워 경제활동에도 제한이 있다면? 아파도 병원에 찾아가 의료인에게 내 몸에 대해 설명하는 게 힘들고 두렵다면? 세상의 차별과 혐오 때문에 나를 구성하는 정체성 중 하나를 계속해서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면 어떨까.

 

▲ 2023년 9월 9일 서울 글로벌센터에서 진행된 〈아시아 성소수자 컨퍼런스 - 네팔, 대만, 일본, 태국, 한국 성소수자의 노후 준비 어떻게 하고 있나?〉 현장. 왼쪽부터 치웨이 쳉 '대만 퉁즈 핫라인 협회' 사회복지국장, 후아 '정의를 위한 아스트레아 레즈비언 재단' 태국 파트너십 매니저, 나가야스 시분 일본 퍼플핸즈 상임이사, 캔디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와 홀릭 대표 ©일다


성소수자에게 나이듦은 미지의 영역인 부분도 많다. 2002년 설립 후, 전방위로 활동을 해 온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는 2021년부터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나이듦에 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21년과 2023년에 한국 최초로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노후 인식 조사를 2회 진행해 보고서를 발표했다. 나아가 성소수자들의 노년과 관련한 활동의 일환으로 〈아시아 성소수자 컨퍼런스 - 네팔, 대만, 일본, 태국, 한국 성소수자의 노후 준비 어떻게 하고 있나?〉를 열였다. 지난 9일, 서울 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컨퍼런스엔 네팔(온라인 참여), 대만, 일본, 태국, 한국 활동가가 각국의 상황을 알렸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보이지 않는, 나이든 성소수자들

 

나이 들면 힘들고 아프고, 특히 돈 없으면 서러운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닌가? 하겠지만, 성소수자들에겐 다른 맥락들이 있다. 일단, 성소수자로 나이 든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기 어렵다. 주변에서 성소수자 노인을 찾아보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가시화된 롤모델도 찾아보기 어렵다. 1990년대부터 활동해 온 1세대 성소수자 인권운동 활동가들이 이제 중장년이 된 정도다. 이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비슷하다.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이 법제화된 대만의 경우도, ‘대만 퉁즈 핫라인 협회’ 치웨이 쳉 사회복지국장에 따르면 “성소수자 노인를 찾아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1998년 설립된 ‘대만 퉁즈 핫라인 협회’(이하 퉁즈)는 2005년, 단체 내 ‘노인 LGBTI 그룹’을 만들어 성소수자 노인들의 구술사를 구축하고, 커뮤니티 내 노화 쟁점 교육도 하고 있다.

 

▲ ‘대만 퉁즈 핫라인 협회’는 2012년부터 나이든 레즈비언들의 이야기를 듣는 작업을 시작했고, 8년의 시간을 거쳐 2020년 책 『할머니의 여자친구』를 출간했다. https://taiwanlgbthotline.waca.shop/en/product/detail/635124


문제는 성소수자 노인을 만나는 것이었다. 지금 노인이 된 성소수자들의 대부분은 평생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채 ‘정상사회’에 편입된 삶을 살았기에, 성소수자 커뮤니티와의 연결 고리가 없었다. 수소문해 겨우 찾아낸 사람들 중엔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있어서 인터뷰를 거절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55세~83세 사이의 게이 12명의 이야기를 듣고, 책 『노인 레인보우 버스: 노인 LGBTQ+ 12명의 청춘의 기억』을 펴냈다. 이후엔 노년의 레즈비언 17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 『할머니의 여자친구』도 출간했다. 오랜 기간 자원과 인력을 투자한 결과로 얻어낸 것이었다. 단체의 노력이 없었다면 결코 드러나지 못했을 이야기이다.

 

최근 혼인평등(Marriage for All) 운동이 열심히 진행되고 있고, 몇몇 지자체에선 동성 커플에게 ‘파트너십 제도’(지자체 별로 내용은 조금씩 상이하지만, 파트너로 인정 받으면 공영주택 입주 신청을 할 수 있고, 공립병원 면회, 수술 동의도 할 수 있음)가 도입된 일본도 마찬가지다. ‘퍼플핸즈’ 나가야스 시분 상임이사는 “1980년대 이후 독신 인구가 증가하고 이성애 결혼에 대한 압력이 줄어들어, 이전에 비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겼지만, 여전히 성소수자 노인을 위한 좋은 역할 모델은 부재한 상태”라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데 있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처럼 살아가기 힘들다.”

 

성소수자 단체들은 성소수자들이 노년을 상상하고,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 퍼플핸즈는 중년 및 노년 성소수자를 위한 다양한 모임을 주최하고, 나이듦과 관련된 강의와 상담도 한다. 또 간병인 대상으로 성소수자 인권 강의도 하고, 간호 잡지 등에 성소수자 정보를 담은 글도 기고한다.

 

대만의 퉁즈에서는 2017년에 〈웰빙과 웰다잉, 평화로운 죽음의 어려움 - 의사 조력사 합법화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가 하면, 2019년엔 〈LGBT+와 노화에 관한 설문조사 보고서〉를, 2023년엔 〈LGBT+와 가족 돌봄에 관한 설문조사 보고서〉를 발표하며 성소수자의 노년, 돌봄, 죽음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고 있다.

 

‘주거’, ‘사는 지역’, ‘커뮤니티 환경’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어

 

성소수자의 노년엔 무엇이 필요할까?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후 자금이 마련되면 좋겠지만, 모두에게 가능한 건 아니다. 성별 임금 격차가 큰 현 상황에선 여성이 남성보다 더 힘들고, 취업활동에 장벽이 많은 트랜스젠더가 시스젠더보다 더 어려움을 겪는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다. 성확정수술로 유명한 태국은 그만큼 트랜스젠더가 가시화된 편이지만, 이들의 현실은 팍팍하다. 후아 ‘정의를 위한 아스트레아 레즈비언 재단’의 태국 파트너십 매니저는 “해외에서 성확정수술을 받으러 올 만큼 성확정수술이 발전된 곳이지만, 정작 태국의 트랜스젠더들은 그 수술이 너무 비싸서 엄두도 못 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 정보 접근성의 부족, 적절한 의료서비스 부재 등 나이가 들 때까지 트랜지션을 하지 못하는 트랜스젠더도 많다. 노화된 몸으로 트랜지션을 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도시가 아닌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트랜지션은 더 어려운 일”이 된다.

 

▲ 후아 ‘정의를 위한 아스트레아 레즈비언 재단’ 태국 파트너십 매니저가 태국 트랜스젠더의 노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다


또한 나이든 성소수자가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져 지방 소도시나 시골로 이주하는 경우, 도시에 있는 젠더 클리닉 등 성소수자 친화적인 의료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트랜스젠더의 경우, 의료인으로부터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말이나 대우를 경험하고 나면 아파도 병원에 가길 꺼리는 상태가 된다. 의료인들이 트랜스젠더의 건강, 트랜지션과 질병 치료와의 관계에 대해 무지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우도 상당하다. 후아 매니저는 “이런 식의 트랜스젠더 차별과 혐오가 트랜스젠더들의 건강을 더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며 “이 건강은, 신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남아시아 국가 중 성소수자 권리 보장이 진전됐다는 평가를 받는 네팔은 어떨까. 헌법에서는 젠더에 기반한 ‘차별 금지’를 보장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제 체제와 성 고정관념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차별을 낳고 있다. ‘Mitini 네팔’의 사리타 사무국장은 “성소수자 노인들은 외모, 성 표현, 건강, 경제적 기여를 둘러싼 사회적 인식 등 다양한 생활 측면에서 평생 차별 받아 왔다. 이러한 성소수자 노인들 다수가 공교육을 받지 못하고, 고용 차별을 경험하며, 비공식 부문의 저임금 일자리로 밀려남에 따라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도 (고령자가) 도외시되는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성소수자와 노인이라는 정체성이 중첩되면서 설 자리를 더 잃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자료로,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이하 센터)는 ‘안정된 주거에 대한 욕구’가 매우 높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센터에서 진행한 노후 인식 조사와 2020년 한국사회보건연구원이 발표한 〈제2차 노후준비지원에 관한 5개년 기본계획수립을 위한 연구〉 내 ‘대국민 전화설문조사’를 비교 분석한 것이다. 성소수자들은 ‘노후 준비 지원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정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의 1위로 주거를 꼽았다. 캔디 활동가는 “센터의 1차 조사에서 성소수자는 82.3%가 주거를, 71.5%가 소득, 57.1%가 돌봄을 포함한 건강이 중요하다고 답했고, 2차 조사에서도 74.4%가 주거를 선택할 만큼 주거가 가장 중요했지만, 대국민 전화설문조사 결과에선 1위가 돌봄을 포함한 건강 69.7%, 주거는 46.9%로 4위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성소수자들이 부모에게 쫓겨나거나 혹은 관계가 단절되면서 생기는 주거불안정, 주택임대차계약을 맺을 때 건물주가 계약을 거부할 가능성, 이웃에게 성소수자임이 드러날 것에 대한 걱정, 이성애자와 달리 결혼을 통한 국가의 주택정책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문제 등으로 ‘나만의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으로서의 집”을 갈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 필요하다

 

성소수자들이 노년을 상상하고 준비하기 위해서, 지금의 성소수자 노인들 또한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보내기 위해서는 성소수자 단체, 커뮤니티 그리고 개인들의 노력만으론 부족하다. 당연히 국가 차원의 정책과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 치웨이 쳉 ‘대만 퉁즈 핫라인 협회’ 사회복지국장이 자신들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다


대만 퉁즈의 치웨이 쳉 사회복지국장은 중앙정부기관, 지방정부와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타이베이와 가오슝 시 정부와 함께 LGBTQ의제와 관한 협력 회의를 매년 2~3회 주최하고, 타이베이시 정부는 타이베이 시 12개 지구의 노인지원센터들이 성소수자 친화적일 수 있도록 퉁즈와 노인지원센터 사이의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그 협력으로 퉁즈는 노인지원센터 직원 및 자원활동가 대상 감수성 훈련을 제공하고, 센터 내 우호 공간을 조성, 노인들의 LGBTQ+ 이해도와 수용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의료인, 사회복지사, 장기 요양 서비스 종사자들을 위한 성평등 교육에 대한 요구도 늘어나고 있어, 퉁즈에서 그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만드는 행정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며, 소소한 팁도 공유했다. “노인지원센터 직원과 활동가들이 ‘어떻게 하면 (방문자들에게) 성소수자 친화적인 걸 보여줄 수 있냐’는 물음에, 센터 내에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를 더 늘리고, 직원들이 목에 메고 있는 명찰줄을 무지개색으로 바꿈으로써 앨라이(ally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라는 걸 드러내는 것도 방법이라고 답했다.” 치웨이 쳉 사회복지국장은 “퉁즈의 청년 활동가들이 양로원 등을 방문해 노인들과 만나, 성소수자가 낯설 수 있는 그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일도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사회적으로 우울과 자살이 증가하고 있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후생노동성에서 ‘자살종합대책’을 시행 중인데, 여기에 ‘성적소수자에 대한 지원’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섹슈얼리티가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정부 지원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 복잡한 행정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해 정부 지원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나가야스 시분 퍼플핸즈 상임이사는 “이런 사회적 제도에 대한 리터러시 교육도 필요하다”고 과제를 말했다.

 

‘Mitini 네팔’ 사리타 사무국장 또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중앙정부는 노인 LGBTI 문제 해결 전략에 성인지적 접근법을 포함시켜야 하고, LGBTI 친화적 인프라와 공간, 경제적 기회도 포함시켜야 한다. 지방정부는 노인 LGBTI의 가장 시급한 요구를 우선시하고, 존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며, 그것의 설계 과정에 당사자를 포함시키고 자문을 구해야 한다.”

 

▲ 〈아시아 성소수자 컨퍼런스 - 네팔, 대만, 일본, 태국, 한국 성소수자의 노후 준비 어떻게 하고 있나?〉 자료집과 무지개를 든 노인들의 모습이 담긴 스티커 ©일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성소수자 인권이 존중받고 제도 및 정책이 마련되어 있다고 이야기되는 대만조차도 사실 갈 길이 멀다. 치웨이 쳉 사회복지국장은 “대만의 젊은 성소수자들도 잘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노인들을 위한 요양시설 상당수가 퀴어혐오적 성향을 가진 종교단체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고민이라고 했다. 한국의 캔디 활동가도 “서구권 사례를 살펴보면, 성소수자 노인들이 병원 및 요양시설 등에 들어갈 때 다시금 ‘커밍아웃’과 관련된 문제를 겪는 일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이제 성소수자들의 나이듦, 노년, 돌봄,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국내에서도 본격화됐고,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관심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는 성소수자의 나이듦에 집중하는 전문단체인 ‘큐라이프센터’(qlifecenter.kr)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야기가 더욱 활발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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