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동반자법에도 담기지 못한 가족이 있습니다생활동반자법과 그 너머의 가족구성권을 실천하고 상상하는 사람들의 공론장2023년도 이제 몇 달 남지 않았다. 올해를 돌이켜보았을 때 기억에 남을 일은 뭐가 있을까? 우울하고 슬픈 사건·사고들 말고 희망적인 걸 떠올린다면, ‘생활동반자법’(4월 26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대표 발의)과 ‘가족구성권 3법’(5월 31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 대표 발의)이 발의된 것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2014년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생활동반자법 발의를 추진하다 반대 여론을 의식해 포기했던 일 이후 약 10년만이며, 헌정사상 처음이다. (관련 기사: 결혼도 혼자도 아닌…생활동반자법 제정되면 뭐가 달라질까? https://ildaro.com/9631)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 신화는 깨진 지 오래고, 1인가구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가시화되고 있지만, 법과 제도는 아직도 ‘정상’, ‘전통’, ‘건강’ 가족 형태에 매달려 있다. 이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생활동반자법 발의는 의의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발의된 생활동반자법조차 놓치고 배제된 존재들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족 구성과 해체의 권리, 어린이와 청소년은 고려 대상이 아닌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빈둥 활동가는 발의된 생활동반자법이 다양해진 가족을 인정하고, 협소한 가족의 정의를 넓히는 측면, 그에 따라 시민의 권리가 확대되는 것은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안이 규정한 “생활동반자관계는 허락 가능한, 한정된 이들의 관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어린이·청소년을 포함해 이주민, 장애인 등은 해당 영역 안에 배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발의된 두 개의 법안에서 생활동반자법의 정의, 생활동반자관계 형성의 능력, 생활동반자관계의 무효 조항 모두 주체가 성인/성년으로 규정한 탓에, 어린이·청소년은 “관계 구성의 해체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존재”가 됐다. 빈둥 활동가는 “다양성을 내세우며 혈연과 혼인 외의 이유로 관계를 맺는 이들을 법률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법안 제안 취지에 어린이·청소년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어린이·청소년을 주체로서 삶을 살아가는 시민으로 보지 않는 건 현행 법 대부분, 현 사회의 체제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부장제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담론들이 이어져왔지만, 어린이·청소년은 주되게 양육자들의 ‘자식 양육’ 안에서만 다뤄졌다. 양육자에게 의존되고 딸린 존재로 이해됐기 때문에, 어린이·청소년의 독자적인 행동과 삶에 대해선 잘 이야기되지 않았다.” 빈둥 활동가는 “어린이·청소년의 존재는 가정과 학교와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며, 독자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질문되지 않고, 친권자 및 보호자의 보호 속에서 사회가 옳다고 간주하는 규범에 포섭”되었다고 설명했다.
과연 어린이·청소년은 정말 돌봄과 보호의 대상이기만 한가? 빈둥 활동가는 “최근 연구들을 살펴보면, 가족 내에서 자녀들 또한 적지 않게 가사노동을 수행한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린이·청소년은 가족 담론에서 보호의 대상으로만 호명된다. 이들이 집/가족을 탈출해 안전을 찾고자 할 때도 사회는 다시 집/가족으로 돌려보내 ‘보호’하고자 한다. “이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왜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질문하지 않으며, 어린이·청소년은 가족에 귀속되는 존재로만 볼 뿐 자립을 돕기 위한 체계적 지원이나 그들이 겪는 인권침해, 지위종속, 불평등과 불인정, 억압 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가족결합권’ 빼앗긴 채 살아가는 이주노동자, 난민들
생활동반자법이 담지 못한 또 다른 존재는 이주민, 난민이다. 두 개의 발의안 모두 제2조 정의에서 ‘생활동반자관계’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이들의 관계로 정하고 있다. 안산공동체미디어 정혜실 대표는 ‘가족결합권’(가족이 함께 살면서 사회의 기본단위로서 존경과 보호, 지원과 지지를 받을 권리로, 이는 국적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국제법으로 보호받는다)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공유했다.
정 대표는 “사실 이주노동자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족을 데리고 와서 같이 산다’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부터 짚었다. 한국 사회가 ‘받아들이고’ 있는 이민자는 “며느리가 될 결혼이주여성, ‘우수인재’라 불리는 전문직 사람들에게 한정”되어 있다.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 중 상당수는 이주노동자임에도, 이들은 노동력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정혜실 대표는 “이주민이 우리 사회에 온다는 건 그 사람의 삶, 인생이 이곳으로 온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선 그저 노동 시간을 채우는 하나의 부품, 기계 같은 존재로 인식한다”고 꼬집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외로워할 수 있고,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거다. 이들이 가족을 구성할 수 있다는 상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미 가족이 있는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어떨까? “단순 노무에 종사하는 저숙련 노동자라 불리는 이주노동자의 경우엔 국내에서 태어난 자녀가 아니고선 가족을 동반할 체류 자격을 허용하지 않는 상황”이다. 미등록 이주민일 경우 “아이가 한국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등록을 할 수 없어서 아이만 본국으로 보내거나, 아이가 미등록 상태에서 계속 거주”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 아동은 보건, 보육, 교육, 노동, 복지 등 아무런 권리를 가지지 못해 사각지대에 놓여 유령처럼 살아야 한다. UN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아동은 인종이나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등에 따른 어떤 종류의 차별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비(非)차별'과 '아동 최선의 이익'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내세운다. 한국은 1991년 UN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지만, 미등록 이주민 아동에게 마땅한 권리를 제공하는데 여전히 소극적이다.
한편, 정혜실 대표는 정부가 ‘한국의 가족’을 유지시키기 위해 이주가사노동자까지 투입하려 하는 것에 대해,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최저임금도 안 주고 돌봄노동을 외국인 여성에게 전가하겠다는 것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관련 기사: 가사노동 ‘싸게’ 외국인에게 맡기고 아이 낳으라고요? https://ildaro.com/9660)
또한 이주여성의 재생산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도 고발했다. “한국 사회에서 업주들에게 필요한 건 노동력이기에, (이주노동자가) 애를 키우면서 노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하던 이주여성이 임신하면 임신중단을 하라고 하거나, 본국에 가서 애만 낳고 오라고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임신한 이주여성이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하면서 미등록이 되고, 미등록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미등록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
함께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세대를 구성할 권리’ 주어져야
생활동반자법은 생활동반자관계에 있는 이들이 의료에 있어서의 결정권, 애도할 권리, 재산분할과 관련된 권리, 기타 사회제도(연금, 보험 등) 연계 등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함께 논의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 이번 토론회에서 이야기되었다.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는 “지금 발의된 법이 ‘애도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생활동반자관계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 생활동반자관계가 해소된다. 만약 상대방이 장례식을 하기 전에 사망신고를 한다면, 생활동반자관계는 해소되고, 이후 장례절차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박 이사는 “이와 관련된 의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혈연과 제도를 넘어 ‘애도할 권리’와 ‘애도 받을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선 ‘가족 대신 장례’와 ‘내 뜻대로 장례’가 보장될 수 있도록 법률 제정 및 개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혈연과 법률혼 중심의 가족에게만 장례 등의 사후사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야 하고, 민법 유언 관련 사항에 당사자가 사전에 장례 등의 사후사무를 명시적으로 위임할 수 있는 내용이 법률에 반영되어야 한다. 사망진단서 발급 관련한 의료법, 사후사무의 최종단계로 사망신고까지 할 수 있도록 ‘가족관계등록에 관한 법률’ 개정도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한편 ‘민달팽이 유니온’의 김경서 활동가는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에서 「‘성소수자 주거실태 및 주거불안에 관한 연구」 발표를 한 이후, ‘성소수자에겐 아파트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제목의 언론 보도를 봤을 때의 당황스러움을 털어놓았다. “당시 이야기하고자 했던 건 계급과 ‘정상성’의 상관관계이지, 아파트가 가지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왜 ‘결혼을 해야만’ 그런 것들(집 장만 등)이 가능하냐는 것이 논점이라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성소수자가 집 소유 비율 낮고 ‘주거불안’ 더 겪는다 https://ildaro.com/9087)
김 활동가는 “한국의 주거 지원 정책은 기본적으로 가족정책을 기반으로 하며, 가족이 되지 않으면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문제점을 짚었다. 이런 정책은 “고소득자를 위한 ‘소유권’ 중심”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이 아니라 공공분양주택 50만호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그나마 공공임대주택은 ‘1인용 원룸’인 경우가 많다. “1인가구를 임시적 존재”로 여기는 주거정책임을 알 수 있다. 김경서 활동가는 “현재의 정책 기조는 ‘혼인하지 않으면 시민의 권리와 복지를 보장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 혹은 협박이나 다름없다”며 “정상가족 체제에서 탈락한 이들은 복지 시스템에서도 탈락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동반자법은 혼인제도와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 혼인제도에 편입되어야만 생존이 보장되는 사회에선 누구도 자유롭게 안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발의된 두 개의 생활동반자법안은 이성애 결혼을 통한 ‘정상가족’ 만들기라는 협소한 틀을 벗어나 가족의 범주를 넓히는 시도임은 분명하지만, 돌봄을 주고 받는 더 다양한 관계들을 위해서, 또한 돌봄과 의존, 보호, 자립 등의 의미를 다시 짚고 ‘가족구성권’ 담론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번 토론회를 통해 제기되었다.
가족구성권연구소 김순남 대표는 “법적으로 관계를 등록하지 않고도 자신이 의지하는 동반자 관계를 ‘연대인’으로 인정하면서 의료결정권, 연명치료 결정권, 가족돌봄 휴가, 강제입원이나 강제수용 등의 상황에서 법원에 구제 신청할 수 있는 권리,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장례 등에서 삶의 결정권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주거에서도 실질적으로 함께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세대를 구성할 권리’가 주어지고, 공공주택 정책에 지원할 수 있도록 임대차보호법에서도 시민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의제화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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