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닌가요?

책 『우리 안의 인종주의』가 드러낸 한국 사회의 민낯

박주연 | 기사입력 2023/10/08 [18:39]

당신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닌가요?

책 『우리 안의 인종주의』가 드러낸 한국 사회의 민낯

박주연 | 입력 : 2023/10/08 [18:39]

최근 태국 배우를 좋아하게 되면서 이런저런 덕질을 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이상한 점이랄까, 불편한 것들을 발견했다. 그 중 하나가 한국인 팬들이 태국인 배우에게 “한국인 같다”는 말을 칭찬으로 한다는 거였다. 질문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한국인 같다는 건 대체 뭘까? 이걸 좋은 말, 칭찬으로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그렇다면 한국에서 살아가지만, 외형적인 부분 혹은 언어적인 부분 등에서 ‘한국인 같지 않을’ 땐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우린 그런 일들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 책 『우리 안의 인종주의』(부제: 이주 인권 현장에서 본 한국 사회, 정혜실 지음, 메멘토) 표지

 

최근 출간된 『우리 안의 인종주의』는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책이다. 또 인종주의가 양산하는 차별, 배제와 혐오를 정확하게 지적한다. 저자 정혜실 씨는 안산공동체미디어 단원FM 본부장이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1994년 파키스탄 남성과 결혼해 두 명의 자녀를 낳고 기르며, 2000년부터 자원봉사로 이주 인권 활동을 시작했다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여성학과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우리 안의 인종주의』에는 파키스탄 남성과 결혼한 후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를 몸소 체험하게 된 저자가 약 20년의 시간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것들이 꾹꾹 눌러담겨 있다. 자신은 인종주의자가 아니고, 인종차별도 하지 않는 ‘평범한’ 한국인이라 생각하는 모든 이들이 필수로 읽어야 할 책이다.

 

외국 남성과 결혼했더니 인종차별, 성차별이….

 

저자의 이야기는 국제결혼 시점부터 시작된다. 어쩌다 보니 ‘서남아시아의 저개발국가인 파키스탄 출신’ 남성과 결혼했더니, 생각지도 못한 차별이 줄줄이 딸려나왔다. 파키스탄에서 결혼 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파키스탄인을 대하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무례하고 차별적인 대우도 그랬지만, 혼인신고를 하고 나니 한국 사회의 성차별까지 마주하게 됐다. 혼인신고를 했는데도 주민등록등본에 남편의 이름이 올라가지 않았다.

 

“1994년에는 한국 여성과 결혼한 외국 남성에겐 한국에서 정착해 살 수 있는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부계주의 원칙을 따른 ‘국적법’ 때문이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 여성은 혼인신고로 호적에 이름이 올라가며 주민등록증이 발급된 것과 대비된다.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관습상 여성은 출가외인이니 외국인 남편을 따라 떠라면 되고,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 여성은 며느리로서 남편의 가족에 편인된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성차별은 특히 이주노동자 남성과 한국 여성의 국제결혼으로 만들어진 가족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8~9p)

 

한국의 성차별 때문에 정혜실 씨의 자녀들은 ‘외국인’으로 등록되어 사회복지제도인 건강보험의 지원과 공교육 대상에서 배제됐고, 가족이 있음에도 정 씨는 서류상 ‘혼자 사는 여자’로 살아야 했다. 상황이 바뀔 수 있었던 건 이주 관련 시민사회단체와 여성운동의 외침 덕분이었다. 1997년 국적법이 개정된 것이다. 이후 2005년엔 호주제도 폐지되어 “제도상 출가외인이라는 개념이 사라졌고,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방문 동거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됐다.

 

▲ 안산공동체미디어 단원FM에서 정혜실 본부장이 진행하는 ‘이주의 안산’ 유튜브 채널.


2008년엔 다문화가족지원법도 생겼다. 국제결혼을 한 부부를 다문화 가정이라 부르고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만들어진 거다. 하지만 관련 정책들은 “여전히 가부장적으로 운영”되었다. 한국 사회는 ‘한국 며느리’가 될 결혼이주 여성과 그 아이들에게만 관심가질 뿐이다.

 

‘우리는 살해당하러 오지 않았다’ 결혼이주 여성들의 외침

 

그렇다면 결혼이주 여성은 한국 사회에서 문제 없이 사는가? 그것도 아니다.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역할로 한국에 온 결혼이주 여성이 겪는 가정폭력, 성폭력 범죄는 좀처럼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결혼이주 여성들이 가진 취약성 탓이다. 범죄를 신고하거나 지원 상담을 받으러 해도 한국어에 서툴러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결혼’을 위해 이주했기 때문에 그 결혼제도를 벗어났을 때 선택지가 극히 제한적이다.

 

결혼이주 여성을 향한 여러 편견들 또한 이들의 삶을 제한적으로 만든다. 저자는 2014년 이주여성들과 함께 목소리 냈던 일을 기록하고 있다.

 

“2014년 12월 30일 한겨울 추위 속 덕수궁 대한문 앞에 얼굴 없는 영정을 든 이주 여성들이 섰다. 현수막에는 검은색으로 ‘우리는 살해당하러 오지 않았다’고 쓰여 있었다. 사실 이 해에 이주 여성 일곱 명이 남편이나 아는 남자에게 살해당했다. 이주 관련 단체와 이주 여성들은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사회에 묻기 위해 추모제를 열었다.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인 이주 여성들이 존중받지 못한 세상에서 시신이 된 뒤에야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셈이다.” (p101)

 

출생 등록만큼은 ‘모든 아동의 권리’로 보장해야

 

이주노동자나 난민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겪는 차별과 배제 또한 한국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문제 중 하나다. 특히 미등록 이주민 부모를 둔 아이의 경우, 한국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출생 등록을 못 한다. 미등록 아동은 “사실상 무국적 상태라 어느 국가의 보호도 못 받는 처지”로, 기본적인 예방접종이나 교육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겨우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등록을 할 수 있고,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강제 퇴거가 유예”되지만,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보험 가입이 안 되니 병원비 부담이 클수 밖에 없고, 그래서 아프면 참는다. 각종 대회 출전과 자격증 시험 도전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현장학습 신청도 못한다. 신분증이 필요한 통장 개설, 휴대전화 개통, 혼인신고와 사망신고도 할 수 없다. 커 갈수록 추방의 압력이 거세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살이 되면 부모의 나라라는 해도 전혀 모르는 곳으로 가야 한다.”(p95)

 

▲ 보편적 출생신고는 모든 아동의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 (출처: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 페이스북)


한국 정부는 1991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하고 비준했다. 그 협약엔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외국인 아동 출생 등록법’을 법제화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2011년부터 여덟 차례나 외국인 아동 출생 등록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했지만, 한국은 묵묵부답이다. 저자는 적어도 출생 등록 문제만큼은, “국민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모든 아동의 권리로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우열 매기는’ 인종주의에서 당신은 자유로운가?

 

외국인이라고 다 똑같은 외국인으로 여겨지는 건 아니다. 어떤 피부색을 가졌고, 어떤 언어를 쓰느냐, 어떤 나라에서 왔느냐, 어떤 체류 자격을 가졌느냐 등을 이유로 한국 사회가 외국인을 대하는 방식은 달라지곤 한다. 나의 외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한국으로 와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피부색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곤 한다. 한국인들이 백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피부가 ‘밝을수록’ 선택지가 늘어난다. 심지어 능력과 상관없이 말이다. 이주노동 현장에서 피부색에 의한 차별은 유별난 일이 아니다.

 

“안산의 한 단체가 운영하는 쉼터에 머문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작업장에 피부가 검은 사람이 없어서 같이 일하기 곤란하다는 관리자의 말을 듣고 발길을 돌린 적이 있다고 한다. 고용센터에서 구인 광고를 분명히 보고 전화도 하고 갔는데, 갑자기 자리가 찼다며 헛걸음을 시키기도 한다. 어떤 공장에서는 베트남 사람이 많기 때문에 스리랑카 사람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한다.” (p.67)

 

이런 차별과 배제, 혐오는 외국인의 위치에서 벗어나 ‘한국인’이 되더라도 이어진다. 귀화로 한국 국적을 가지게 된 사람, 주민등록증이 발급된 이들조차 ‘외국인의 얼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젠 한국인인 파키스탄 출신 남성은 “여전히 체류 단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신분증 없이 잠시 외출했다 단속에 걸리면 여지 없이 출입국관리사무소 임시보호소 창살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 과연 무엇이 한국인을 만드는 걸까? 한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한국에서 나고 자라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출생하고 자란 미등록 아동·청소년들은 왜 쫓겨나는 걸까?

 

▲ 『우리 안의 인종주의』 저자 정혜실 씨는 “나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민 연대의 힘을 믿는다”고 말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자고 제안한다. (이미지 pixabay)

 

결국은 너와 나/우리를 가르는, 그 차이를 “눈에 보이는 ‘외모’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혈통’과 ‘지성’을 상상하고 우열을 매기는 데서 출발”하는 인종주의가 문제다. 저자는 “인종주의 핵심은 ‘우열 매기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외국 남성과 함께 있다는 이유로 ‘양공주’로 불린 사건의 분노를 되새기며 “성적으로나 신분상 우월하다는 확신이 타인을 혐오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태도”가 인종주의에 의한 차별이자 혐오라 지적한다.

 

이것은 여전히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이주노동자, 난민을 향한 태도와 맞닿아 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보다 낮은, 아래의 사람으로 보는 것. 더 단호하게 말하자면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거다. 이 인종주의 때문에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비닐하우스에서 재워도 되는 값싼 노동력으로, 혹은 한국 며느리가 돼서 일하고 애 낳아줄 존재로 보는 게 가능해 진다.

 

『우리 안의 인종주의』에 담겨 있는 다양한 사연과 사건, 이야기들을 접하며 부끄러워지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인종주의로 점철된 한국 사회의 민낯을 지켜봐 온 저자는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민 연대의 힘을 믿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위한 활동이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하리라고 믿는다. 목소리를 함께 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의 인종주의를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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