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생이 묻는다, 우리 사회 안전한가요?

연극 〈2014년 생〉 연출 송김경화, 배우 백송시원, 이나리 인터뷰

박주연 | 기사입력 2023/10/20 [18:59]

2014년생이 묻는다, 우리 사회 안전한가요?

연극 〈2014년 생〉 연출 송김경화, 배우 백송시원, 이나리 인터뷰

박주연 | 입력 : 2023/10/20 [18:59]

2014년? 2014년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2014라는 숫자를 들여다 보며 잠시 생각하다 ‘아, 2014년 4월 16일.’ 기억이 났다. 당시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며, ‘보통의’ 미래가 펼쳐지리라 순진하게 생각했던 나에게 그 날의 일은 충격적이었다. TV 뉴스의 장면들, 점심 시간에 도시락을 먹던 나, 사람들과 나눈 대화, 혼란 속에 요동치던 감정들… 여전히 또렷이 기억남에도 불구하고, 잠시 잊고 있었다. 2014년 4월 16일을. 다가오는 내년 4월이면, 세월호 참사 10주기라는 것도.

 

벌써 기억에서 멀어지다니, 지난 10년의 세월이 빨리 지나가 버린걸까? 십여 년 전에 나이 지긋한 분이 이런 얘길 한 걸 들은 적이 있다. 시간의 흐름은 나이만큼 빨라진다고, 5살일 땐 시속 5km로 가지만 50살이 되면 시속 50km로 지나간다고 말이다. 내 시간도 그렇게 점점 빠르게 지나가버린 걸까? 그렇다면 2014년에 태어나 지금 아홉 살인 사람에게 세월호 참사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참사 이후의 한국 사회를 어쩌면 나보다 천천히, 느리게 목격하고 있을 그에게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 연극 〈2014년 생〉 포스터가 전태일기념관 공연장에 붙어있다. ©일다

 

10월 6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전태일기념관 공연장에서 상연된 연극 〈2014년 생〉의 포스터를 보고 든 생각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태어난 2014년 생 백송시원 배우는 ‘어린이’라는 존재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며 마주한 여러 질문들을 던진다. 세월호를 탔던 많은 언니, 오빠들이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에서 출발해 왜 매년 어린이들이 스쿨존 안팎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지, 장애인도 시민인데 이동하기 위해 투쟁을 해야 하는지, 축제(퀴어퍼레이드)를 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북극곰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소위 ‘어린이’라서 모를 것이다, 혹은 몰라야 한다고 간주되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백송시원 배우는 궁금증을 품고 파고든다.

 

〈2014년 생〉은 ‘기특한’ 어린이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어린이를 내세워 ‘어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작품이 아니다. 어린이가 동료 시민임을 종종 망각하는 비아동·비청소년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이제 지난 일이라며 잊은 것들이 결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그것이 지금 모두에게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생한 목소리로 드러낸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탄생했을까? 작품의 비하인드가 너무 궁금해 백송시원 배우와 이나리 배우, 송김경화 연출을 만나러 갔다. 송김경화 연출은 2009년부터 활동 중인 극단 낭만유랑단을 운영하며 연출, 극작, 연기를 하고 있다. 이나리 배우는 1995년부터 아역배우로 연기를 시작해 지금도 배우로 활동하며 파주에서 북스테이도 운영 중이다. 백송시원 배우는 2021년 연극 〈시소와 그네와 긴 줄넘기〉로 데뷔했고, 2022년 연극 〈2014년 생〉 초연에 이어 올해 재연으로 관객을 만났다. 송김경화 연출과 백송시원 배우는 모녀 관계이기도 하지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선 연출과 배우이고 또 동료이기도 하다. 백송시원 배우와 이나리 배우 또한 아동과 비아동의 관계지만 친구이고, 동료다. 각기 다른 배경과 위치에 있는 세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에 이어 또 한번 내 세계가 확장됨을 느꼈다.

 

▲ 무대 위에 선 세 사람이 뿍극대원 포즈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나리 배우, 백송시원 배우, 송김경화 연출. ©일다


-
무엇보다 궁금한 건 〈2014년 생〉의 시작입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백송시원 배우(이하 시원): (단원고 생존자) 주희 언니와 도연 언니를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나서 엄마가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보자고 했어요.

 

-이 작품의 ‘협력’에 이름을 올린 김주희, 김도연 씨와의 인연이 중요한 것 같네요. 이분들과 어떻게 만나게 된 건가요?

 

송김경화 연출(이하 경화): 2015년에 처음 만났어요.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세월호 기획 공연할 때요.(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는 2015년부터 세월호 기획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시원이 태어난 지 8개월이었죠. 이후로도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고, 그들 또한 시원의 성장을 지켜봤어요. 시원의 입장에선 이 언니들이 누구인지, 엄마랑 어떻게 알게 된 건지 궁금해지며 단편적인 질문이 시작됐어요. 그럴 때마다 항상 답을 해줬는데, 2021년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공연 〈기억여행〉을 봤던 게 시원에게 많은 질문을 안겨 준 것 같아요. “세월호에서 생존한 언니들이 주희 언니랑 도연 언니야?”라며 놀라워했고, 세월호와 관련된 질문이 더 깊어졌어요.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도 점점 많아졌고요. 그래서 ‘직접 세월호의 장소들에 가자’ 한 거죠. 그 물음들에 대해 당사자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2014년 생〉에 등장하는 주희 씨와 시원 배우의 대화가 그렇게 시작된 거군요. 이 작품의 기획 단계부터 시원 배우를 무대에 등장시키는 걸 생각했었나요?

 

경화: 처음엔 이 작품이 어떻게 구성될지 예상도 못했어요. 일단 시원이가 언니들이 겪은 세월호 참사가 무엇인지 듣고, 그리고 시원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 의미가 뭘까? 다음 세대에게 세월호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 질문들로 시작해 보자’는 거였어요. 시원을 무대에 등장시키는 부분에 대해선 부담이 덜했어요. 이전 작인 〈시소와 그네와 긴 줄넘기〉에서 시원을 비롯한 어린이 배우들이, 비아동·비청소년들과 1시간 50분 동안 공연했거든요. 그 경험이 있으니까, 확신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작품에선 시원이 배우 역할만 충실히 수행했는데, 이번엔 시원의 목소리가 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어서 함께 공연을 만들었어요.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요.(웃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잖아요. 나야 어린이와 일상을 함께 나누고 있으니까 들을 수 있지만. 이 목소리가 확장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사자를 무대 위에 올린거죠. ‘세상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라!’

 

-비아동·비청소년인 이나리 배우가 합류하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경화: 작품에서 시원의 이야기를 듣고 소통할 사람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사실 시원의 이야기를 옆에서 늘 듣는 건 엄마지만, ‘엄마의 등장은 너무 쉬운 선택’이라는 생각이었거든요. 시원과 특별한 관계가 아닌, 동료 시민을 만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엄마가 나와서 아동의 권리를 외치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이잖아요? 시원과 다수의 비아동 관객 사이의 거리를 연결시켜 주는 사람, 나와 상관 없다고 생각되는 아동·청소년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의 역할이 필요했어요.

 

나리 배우와는 2020년부터 알게 됐어요. 같이 여러 작업을 한 건 아닌데, 탈가정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오늘도 잘곳 없음〉(2022) 준비를 조금 오래 했거든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과 함께 만든 연극 〈모두에게〉(2023)도 같이 했고요. 2020년부터 지속적으로 같이 작업해왔는데, 너무 좋은 배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부탁했죠.

 

▲ 연극 〈2014년 생〉 장면 중 무대 위 백송시원 배우와 이나리 배우가 나란히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송시원 배우는 책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김홍모 만화, 창비, 2021)를 들고 있다. (제공 낭만유랑단 ©이영대)


-공연 준비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떤 점이 힘들었나요?

 

시원: 엄마의 잔소리요. 자기 전에도 대본 보라고 하고.

 

경화: 합당한 요구였다고 생각합니다.(웃음) 배우라면 대본을 보고, 대사를 외워야죠.

 

시원: 공부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공부하는 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작품 속에서 시사인 특별기획 〈스쿨존 너머〉와 책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변진경 기록, 아를 2022) 그리고 4.16재단 보고서 등이 언급되는데요. 그걸 읽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거친 거죠?

 

경화: 같이 자료를 읽고 연습실에서 서로 어땠어? 물어보며 이야기를 나눴어요. 시원은 책 읽는 거 자체를 힘들어 하진 않았어요. 어려운 단어가 약간 문제였을 뿐이었죠. 책 읽다가 지루해 하면 옆에서 읽어 주기도 했고요. 가끔은 듣지도 않고 다른 거 하다가도, 계속 읽고 있으면 ‘방금 그건 무슨 얘기야?’ 이러면서 다시 집중하기도 하고요.

 

이나리 배우(이하 나리): 시원이 읽고 녹음한 걸 나한테 보내 주기도 했어요. 저는 그런 공부보다도 ‘이 작업 과정 속에서 내가 어떤 자격이나 어떤 위치로 있어야 하는지’가 계속 고민이었어요. 난 어린이도 아니고, 주변에 어린이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지한 부분도 많거든요. 시원과의 관계도 어려웠어요. 매일 함께 하는 사이가 아니라 잠깐 만나는 사이니까, 오히려 친절하게 대하긴 쉽거든요. 그게 편하고요. 그래서 무언가를 거절하는 게 어려웠어요. 미안하기도 하고,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고…

 

근데 확실히 작년에 초연할 때에 비해선 조금 더 편해졌어요. 또 시원이 1년 사이에 성장하면서 대화할 수 있는 범위가 조금 더 넓어지고 깊어져서, 예전엔 그냥 ‘미안해’ 하면서 넘어갔던 거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야기할 수 있게 됐거든요. 이런 변화 속에서 또 새로운 걸 배우고,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의 틀도 좀 깨고 그랬던 것 같아요.

 

-연습 과정 속에서 세 분의 관계가 어땠을 지 알고 싶더라고요. 여러 위치가 섞여 있는데, 평등한 관계 맺기가 잘 됐을까 하는…

 

시원: 평등한 관계 맺기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모두 웃음) 셋이 있을 땐, 그래도 엄마가 나리 이모도 있고 하니까 친절하게 하려고 하는데, 둘만 있을 땐 다르거든요.

 

경화: 나도 평등한 관계는 아니었다고 봐요. 난 시원 배우의 요구를 수용하는데, 시원 배우는 내 의견을 절대 수용하지 않았잖아요.

 

▲ 연극 〈2014년 생〉 장면 중 무대 위 백송시원 배우와 이나리 배우가 무대 아래 관객석 사이에서 커다란 화이트보드 피켓을 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공 낭만유랑단 ©이영대)


-아! 쉽지 않은 관계였네요. 나리 배우가 중간에 약간 낀 상황이었을 것 같은데요?

 

나리: 시원이 성장하는 과정에 있잖아요. 작년에 비해 자기주장도 강해졌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어요. 옆에서 그게 보이거든요. 작년엔 연출의 말에 조금 수긍하는 편이었다면 올해는 좀 달랐어요. 무언가 진행해야 했을 때 그냥 다독이거나 혼내는 게 아니라, 어떤 이유를 확실하게 알려줘야 했거든요. 시원 또한 그 과정이 힘들었을 거에요.

 

경화: 공연 3일차에 (시원을 아는)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보러 왔어요. 같이 저녁을 먹다가 한 친구가 시원한테 “솔직히, 공연 준비하면서 엄마랑 싸웠지?” 묻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우리가 싸우는 관계였다면 다행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잘 싸우면서 했구나 하고.

 

나리: 그 싸움을 지켜보는 것도 참 흥미로웠어요. 예전엔 둘이 싸우고 나면 시원이 울거나 토라졌는데, 이젠 시원이 참거든요. 그 순간 참고 ‘알았어. 그럼 이모, 이렇게 해 보자’고 해요. 시원에게 다양한 면이 있다는 걸 올해 더 많이 보게 된 것 같아요.

 

경화: 사람들이 하는 오해 중 하나가, 어린이랑 하는 공연은 아름다울 거라는 거에요. 정말 착각이거든요. 공연을 준비한다는 건, 어린이가 아닌 배우들이랑 해도 아름답지 않고, 어린이랑 해도 아름답지 않아요. 다만 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견디는 거죠. 내가 시원을 견디듯, 시원도 나를 견디고 있죠. 이 견디는 것이 중요한 부분인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걸 못해서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노키즈존 같은 것도 그런 거죠. 어린이를 견딜 수 없다는 거잖아요? 그걸 못하니까 함께 공존할 공간이 점점 사라지는 거죠.

 

시원도 이 공연을 하기 위해선 무수한 연습과 공부와 대사 외우기 등을 견디는 거에요. 그냥 바로 관객을 만나고 싶고 공연을 하고 싶지만, 공연을 하려면 이 과정을 뛰어넘을 수 없기에 싫은 것들도 견디는 거죠. 그 모든 것을 견딘 시원의 몫이 무대에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냥 아름다운 것은 없다’에요.

 

-아쉽게도 초연을 못 봤는데, 이번 공연 홍보 글들을 보니까 거의 다른 공연이라고 해도 될만큼 많은 게 바뀌었다고 되어있더라고요. 어떤 부분이, 왜 달라진 건가요?

 

시원: 지난 공연과는 98% 바뀌었어요. 지난 공연 때는 세월호를 주요하게 다뤘는데, 이번 공연에선 어린이들이 겪는 횡단보도, 거리에서의 어려움과 불편함에 대해서도 말하게 됐어요.

 

▲ 무대 위, 의자 세 개가 놓여있고 가장 끝 의자 위엔 백팩이 있다. 의자 뒤 벽엔 공연을 준비하며 쓴 메모들이 잔뜩 붙어있다. ©일다


-초연엔 스쿨존 이야기가 없었나요?

 

경화: 아주 짧게 정보만 언급되는 정도였죠. 근데 이번엔 그 이야기가 주요하게 들어갔어요. 이 또한 시원의 경험에서 비롯된 거에요. 일상에서 계속 차로 인한 위험을 겪게 되면서 ‘왜 저렇게 하는 거야?’라는 질문을 했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했을 때, 인터넷을 통한 민원 넣기부터 생각했는데, 시원은 인터넷도 전화도 아닌 “그냥 바로 가서 물어보면 안돼?”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 우리가 어떤 것에 접근하는 방식이 너무 다르다는 걸 알았고, 그 정보의 접근성이라는 게 어떤 방식으로 열려있는지, 어린이도 접근할 수 있는지 등이 궁금해지더라고요.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작품에 들어가게 됐죠.

 

스쿨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던 시원이 “세월호랑 스쿨존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어요. 그 연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안전한 사회라는 게 정말 미시적인 거구나. 재난이나 참사가 멀리 있는 어떤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가까운 곳에 있는 거구나’ 깨달음을 얻었죠. 거기서 이 작품의 방향성을 찾은 거에요.

 

-이렇게 내용이 달라져서 좋았거나 힘든 점도 있었나요?

 

시원: 많은 사람들에 대해 알고, 공부할 수 있었던 게 좋았어요. 힘들었던 건, 잠을 많이 못 잔 거.

 

경화: 학교 마치고 오면 오후 2시인데, 연습이 없어도 자료 읽고 공부해야 되고 학교 공부도 해야 하다 보니까 따로 사교육을 안 하는데도 금방 밤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학교에 안 가고 현장 체험 학습으로 대체했어요.

 

시원: 학교 안 가서, 늦잠 자서 좋았어요.

 

나리: 이 공연은 대본이 나와서 그걸로 연습을 하는 게 아니라 일단 공부부터 해야 했고, 시원과 함께 질문들을 나누고 하다 보니 고민이 점점 많아졌던 점이 힘들었어요. 근데 그래서 이야기가 훨씬 풍성해진 것 같고요.

 

경화: 시원이 자신의 생각을 계속해서 덧댈 수 있게 되고 자기주장을 하게 되고, 자신 앞의 정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알게 되면서 이 작품도 변할 수밖에 없었어요. 시원의 변화가 초연과 재연의 차이를 만든 결정적인 부분이에요. 그걸 따라가는 게 제 역할이었고요.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해볼게요. 단원고 생존자인 김주희 씨와 시원 배우가 동행하면서 단원고 4.16 기억교실, 진도 팽목항 등에 가서 나눈 이야기가 이 작품의 기반인데요. 당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요.

 

시원: 난 언니, 오빠들을 기억할 거니까 언니, 오빠들이 속상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또 내가 여기 왔으니까, 좀 감동 받으라고. (모두 웃음)

 

-근데 또 슬프진 않았어요?

 

시원: 슬프죠. 내가 아는 언니가 세월호 참사 때문에 죽었다고 하니까요. 내 친구들이 바다에 빠졌는데,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다는 느낌이거든요.

 

-거긴 어떤 모습이었어요?

 

시원: 진짜 완전 쓸쓸해 보였어요. 노란 리본도 거의 다 떨어져 있고…. 아직 5명이 돌아오지 못했잖아요. 그걸 생각하면 기분이 좀 그래요.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하려면 비극, 슬픔, 상처, 고통, 죽음 등의 언급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아동, 청소년에게 적절하지 않다'고도 얘기하는데요. 걱정되는 부분은 없었나요?

 

경화: 사실 주희 씨가 더 걱정이었어요. 시원이 끊임없이 주희한테 질문할테고, 주희가 그거에 대해 답해야 할텐데, 심지어 현장에서 말해야 하는데, 그게 주희에게 어떤 일일지 예상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얘기했어요. 힘들면 언제든지 중단해도 된다고요. 근데 주희는 엄청난 사람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시원의 질문에 대답하더라고요.

 

그리고 어린이는 사실 ‘죽음’이라는 단어와 가까이 있어요. 어린이 눈에는 현미경이 있어서 꽃이나 곤충, 벌레 같은 작은 것들의 죽음을 늘 목격하거든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리 배우도 함께 갔던 걸로 아는데, 그 경험이 어땠나요?

 

나리: 사실 이전엔 세월호 참사를 깊게 들여다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가기 전에 좀 두려웠던 것 같아요. 죄책감도 있었고요. 한번 무언갈 알아버리면, 모르는 일이 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어떤 일들엔 적당히 거리 두기를 하기도 하죠. 알고 나면 책임감도 필요하고, 깊이 관여한다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이니까. 근데 이제 나도 김주희, 김도연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거에요. 시원이 질문한 덕분에, 세월호 참사가 나기 전에 어떤 과자를 먹고 있었고, 누구와 있었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알아버린 거죠. 이젠 ‘그럼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고민의 과정 속에 있는 것 같고, 이 공연을 본 관객들 또한 그 고민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 무대 위 벽면에 붙어있는 많은 메모 중 하나엔 ‘노란리본 캠페인’ 아이디어가 글과 그림으로 적혀있다. ©일다


-공연을 보고 저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함께 뿍극대원이 되자”는 메시지에도 공감했고요. 어린이와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뿍극대원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시원: 첫 번째는 북극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우리 공연도 잘 볼 수 있거든요. 두 번째는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거에요. 세 번째는 소수자를 위한 법을 만들 때 참여하는 거에요.

 

경화: 뿍극(북극) 대원이 되면 좋겠다는 것도 시원의 생각이거든요. 이런 아이디어를 매번 이야기해 주는 게 아니라서 너무 아쉽긴 한데, 그런 생각들이 나오지 않을 뿐 머리 속에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너무 재미있는 존재인 것 같아요. 어린이라는 존재요. 종종 시원이 다른 어린이들에 비해서 어떻다는 얘길 듣는데, 사실 내가 보기엔 똑같거든요. 같은 무리 중 한 명일 뿐이에요. 어떤 어린이가 조금 특별한 생각을 말한다면, 그건 그런 생각을 하고 또 말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어린이가 그런 환경에 놓여진다면- 다양한 현장에 갈 수 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에게 질문할 수 있다면- 비슷한 이야길 할 거에요. 그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시원과 이 작품을 만드는 건, 시원이라는 어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어린이’라는 존재를 관객들이 만났으면 하기 때문이에요.

 

“시원 배우가 이 작품을 계속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마지막 질문이었는데, 백송시원 배우에게 대답을 듣기까지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인터뷰를 끝내기 싫었던 그가 “이 작품을 계속 하는 건, 엄마를 유명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며 농담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아동·비청소년인 세 사람의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밀당을 이어가던 시원 배우의 본심은 사실 간단명료했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했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이야기를 잘 알리기 위해서 (공연) 하는 겁니다. 끝입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2023/10/21 [11:25] 수정 | 삭제
  • 2014년은 그 해가 캄캄했다는 생각밖에 많은 기억이 나지도 않습니다. 2014년에 태어난 아이가 세월호에 대해 묻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할까 싶기도 하고요. 연출가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문득.. 2014년에 아이를 낳았던 분들의 심정도 생각해보게 되네요.
  • 포티 2023/10/21 [11:09] 수정 | 삭제
  • 뿍극대원이 되려면 먼저 북극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군요. 잘 알려주어서 고마워요. 백송시원 배우님.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