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여성 노동자가 겪는 구조적 차별을 드러내기 위해, 연속 세미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본 여성과 노동]을 기획했다. 다섯 번째 키워드 ‘소수자성’에 관한 논의가 10월 30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기록노동자 희정이 진행과 기록을 맡았다. [편집자 주]
젠더와 노동에 관해 지금까지 4차례의 간담회를 진행했다. 여성 노동 실태를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는데, 그 때마다 나오는 것은 ‘다른 몸’을 가졌다고 이야기되는 사회적 소수자성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빠지지 않는 것은 성소수자 직장인들의 이야기였다.
‘복합차별’을 다뤘을 때는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을 가진 여성들의 노동 생애사 사이에서 레즈비언 직장인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일터 화장실’ 문제를 다뤘을 때도, 화장실을 갈 때마다 여러 감정을 느껴야 하는 퀴어 노동자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담회를 하는 중에 나오는 사례도, 실은 그 자신이 소수자성을 지닌 인물이기에 차별적이고 복합적인 문제였음에도, 우리의 대화는 딱 거기까지. 여성으로서 겪는 문제로만 구획을 짓곤 했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애자인 척, 남자인 척, 여자인 척, 비질환자인 척, 비장애인 척. 그렇게 ‘정상인’들의 일터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저기는 소수자의 문제이고, 여기는 여성의 문제라고 나눠 이야기할 순 없다. 실제로 현장에서 분리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간담회에서 만난 이들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 노동권팀이다.
나, 성소수자 노동자
사루: 노동당 충남도당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무처장으로만 활동하고 있는 건 아니고 굉장히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을 맡고 있고, 노동당 기후정의위원회 운영위원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성인 노동권팀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지역 사회와 성소수자 정체성, 그리고 반차별 운동을 어떻게 연결하고 어떤 의제들을 엮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활동을 하면 힘들지 않나? ‘그러다가 산재 노동자라는 정체성도 따라붙겠다’는 나의 걱정 섞인 말에, 활동가의 일은 ‘노동’인가 하는 이야기를 잠시 나눴다. 모드의 소개가 이어진다.
모드: 7년차 활동가로 살아오고 있어요. 대학 때는 음식점에서도 일하고, 학생들도 가르쳤고. 졸업 후에는 계속 사회운동 쪽에서 일하고 있어요. 학생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졸업할 때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이 터진 거죠. 촛불집회 자원 활동을 시작했어요. 매주 광화문에 있으면서, 건설회사로 가려고 했던 진로를 머릿속에서 싹 지웠죠.
그가 처음 들어간 단체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다.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조직으로,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소통과 연대를 지원하는 곳이다. 소위 ‘운동 경력’이 없는 그를 뽑아주는 곳이 거기뿐이었다고 했다. 현재는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에서 여성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노동조합으로 간 까닭은?
모드: 김용균 산재 사망 때였어요.
그 사건을 겪으며 ‘노동’에 관한 문제가 깊숙이 들어왔고, ‘노동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음은 호림. 내가 호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모 대학원 연구팀에서였는데, 지금은 행성인 상임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호림: 대학원을 다니며 저의 주된 정체성은 공부하는 사람. 그러면서 성소수자 운동에 함께하는 사람이고. 돈을 안 벌 수는 없잖아요. 남들 다 하는 알바도 하고. 특히 녹취 알바를 진짜 많이 했는데, 하다 보면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잖아요. 너무 하기 싫은 일 중 하나가 되기도 했어요.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2021년부터 행성인 상근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호림: 그전부터 계속 행성인 활동을 해왔지만, 상임 활동을 한 이후로 재정을 관리하는 일부터 그 사무실을 꾸려나가는 일까지. 다양한 종류의 일이 정말 많구나. 이런 게 단체를 운영하는 일이구나 체감하고 있어요.
단체 살림을 하나둘 익히며 활동하고 있다. 내가 행성인 노동권팀을 만나고자 한 이유가 있었다. 2010년대 초반, 세상이 지금보다 더 ‘퀴어’에 관해 무지하고, 다른 의미로 ‘노동’에 관한 관심이 없을 때, 행성인은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기록집을 냈다. 『나, 성소수자 노동자』라는 제목을 단 기록집 이후로도 꾸준히 성소수자 노동권에 관한 자료들을 생산하고 있다.
동료들과의 관계가 어그러질까 봐…
이날 우리가 바탕에 두고 이야기한 것은 〈일터의 성소수자들 노동권을 말하다〉라는 연속 토론회의 결과물이었다. 2021년에 발간됐다.
호림: 행성인이라는 단체는 만들어졌을 때부터 노동권이나 노동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노동 관련 의제에 많은 연대 활동을 하던 단체였어요.
노동 사안의 집회에 무지개 깃발을 들고 나왔다. 이때부터 ‘노동’ 영역에서 활동하던 이들뿐 아니라, 조합원들, 그러니까 각지에서 온 노동자들도 성소수자들이 생각보다 자신들과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그게 무려 20년 전 일.
토론회는 총 4차례 이뤄졌는데 “왜 노동권인가”라는 문제로 시작해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전반의 삶을 거쳐 노동권과 HIV감연인의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다뤘다. 동시에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연속 기고가 이어졌다.
호림: 토론회를 거치면서 성소수자 노동 경험과 관련해 가장 큰 어려움은, 결국은 자기를 드러내고 일터에서 살아가기 되게 어렵다는 것. 그러면 왜 드러내지 못하냐 할 때, 해고될 거다, 같은 위험 때문이 아니라 동료들과의 관계가 어그러질까 봐 막 이런 종류의 두려움이 되게 많은 거예요.
2022년 행성인은 〈일터 내 괴롭힘과 성소수자 노동권〉 토론회를 진행했다. ‘직장갑질119’,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일터 괴롭힘 문제를 다뤄온 단체들과 함께했다.
드러낼 수 없는 정체성, 드러나지 않는 차별
호림: 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파악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각 단체들이 성소수자 관련 상담이나 사례를 만난 경험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내용이 제보되었는지였어요. 그런 사례를 살펴 구제나 문제 해결에 더 가까이 갈 방법은 없을까. 그런 고민을 하며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려 보았어요.
결과는?
호림: 거의 없었어요. 직장갑질119 같은 경우는, 익명 채팅방에 수천 건의 상담 내용이 올라오는 곳인데, 성소수자 문제로 제보가 들어온 건 총 4건 정도?
너무 적다. 차별이 없어서 제보 사례가 적은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안다. 익명의 방에서조차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지 못한다.
호림: 상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일조차 버거운 거고.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안 하고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것에 관해 상담할 만한 사건이나 사례가 되지 않는 것도 있고. 그런데 성소수자 인터뷰 작업을 하면,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당하며 산단 말이에요. ‘퀴어동네’라고 노무사 모임이 생겼거든요. 거기도 노동 상담 창구를 열었는데, 상담 요청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데요.
모드: 드러나지 않는 게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래요. 저만 해도 어렸을 때 모든 걸 다 혼자 다 찾아보고, 그러면서 숨기면서 산 삶들에 너무 익숙해진 존재들이라, 굳이….
여성 노동에 관심을 두는 내가 퀴어의 노동을 기록(『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한 이유도 그것이다. 성소수자 노동자가 공고화된 성별 분업에 균열을 내는 존재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에 물음표를 붙이는 일을 ‘우리’가 함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존재를 드러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함께함을 시작조차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소수자 노동 문제를 다루는 어떤 자리에서건 주요하게 나오는 이야기는 ‘드러냄’. 그러니까 주체가 만들어지는 문제이다.
어떻게 자신을 자신으로 드러낼 것인가. 모드는 상담 제보가 드물다는 이야기를 할 때, 이런 말을 했다.
모드: 다른 맥락과 루트가 필요해요. 그러니까 더더욱 그런 걸 노동조합이 해야 하는 거지. 노조에서 (성소수자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이 말에 옆에서 다른 동료들이 웃었는데, 모드의 이야기는 종종 ‘기승전노조’가 된다고 했다. 웃었지만, 모드의 말에 동의했다.
사루: 저는 아까 소개한 토론회 연속 기고글 중에 “노동자에서 성소수자 노동자 되기”라는 문구가 끌렸어요.
슈미라는 여성 노동자가 쓴 글이다. 그는 이리 썼다. “일터에서 노동자를 넘어 성소수자 노동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 역시 노동조합을 만나고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보인다.”
노동조합이 뭐 대단한 것을 해줘서가 아니다. 슈미의 직장은 여전히 그가 성소수자인 것을 모른다.
“‘노동자에서 성소수자 노동자 되기’라는 표현을 보고, 누군가는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슈미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나, 성소수자 노동자① 저는 공공기관에서 노동하는 레즈비언 노동자입니다」, 행성인 노동권팀, 행성인 웹진, 2021년 12월 22일) 그가 노동조합을 통해 발견한 것은 자신을 드러내고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었고, 자기 자리에서 조금씩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었고, 그로부터 이 일터를 조금은 더 오래 다녀볼 수 있겠다는 생각의 변화였다. “조금씩 나를 드러낼 수 있겠다”는 믿음이 그를 머물게 했다.
모드: 그러니까 더더욱 노조가 해야 되는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직장 내에서 노동자들에게 우군 역할을 맡는 노조가 먼저 그걸 해야 해요. 지금은 노조가 주로 안정된 직장에 많이 존재하잖아요. 거기서 먼저 적극적으로 퀴어 노동자의 문제를 안고 퍼트려 나가는 방식으로 돼야 하는데. ‘이건 회사가 해야 하는 거다’(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해결 주체는 회사라는 의미)라고 하는 것도 안일한 생각이라고 여겨요.
성소수자의 동료되기, 노동조합이 먼저
호림: 저도 ‘기승전차별금지법’처럼, 이 사업(일터 내 괴롭힘과 성소수자 노동권)을 마무리하면서 차별금지법이 너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현재 직장내괴롭힘 방지법은 성소수자뿐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활용하기에 제약이 큰 구제 절차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한 사람이 순수한 ‘노동자’로 겪는 차별과 괴롭힘이란 없기에, 노동자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특정 성별, 신체적 손상, 성적 지향, 계급과 학력 등-가 직조되는 과정에서 겪는 일터의 괴로움을 드러내고 설명할 언어가 필요하다. 호림은 그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동료’가 아닐까 생각했다.
모드와 사루가 이야기한 ‘노동조합이 먼저’라는 것도, 노동조합이 ‘동료되기’에 앞장서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올해 행성인의 노동권 사업은 『성소수자의 동료가 될 당신에게』, 성소수자 직장 동료 가이드북 발간이었다. (下편에서 계속)
[필자 소개] 희정. 기록노동자.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일할 자격』, 『베테랑의 몸』 등을 썼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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