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아빠 죽으면 나는 걔랑 살고 싶어. 나는 걔가 그렇게 좋다! 남자한테도 이런 적 없어, 막 떨린 적도 있어. 어쩔 땐 엄마 같기도 하고. 결혼 안 하고 걔랑 살아도 좋았을 것 같아.” “음매, 좋겠네. 당신은 나 죽으면 같이 살 사람도 있고. 그래도 모르는 거야. 누가 먼저 갈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대화를 늙은 엄마 아빠가 나눈다.
엄마가 말하는 ‘걔’는 J아줌마다. 엄마의 오랜 친구. 고등학교 다닐 때 비가 오는 날이면 일부러 같이 뛰어다니며 속옷이 흠뻑 젖을 때까지 비를 맞았다는 친구. 그런 날이면 집에 오자마자 훌렁훌렁 옷을 벗고 수제비를 빚어 뜨겁게 끓여 먹으며 깔깔 웃었다는 친구. 엄마와 J아줌마는 서울에 가서 듀엣 가수가 되겠다고 가출을 결행한 적도 있다. 경운기 타고 달려온 넷째 외삼촌한테 잡혀서 터미널도 못 가보고 돌아왔다고 했지만.
두 사람은 이십 년 가까이 만나지 못한 시절도 있었다. 사는 지역이 달라지고, 자식 키우고 먹고 사느라 바빠서 서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자식들이 이십 대가 넘어서야 다시 만나기 시작했고 오십 년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엄마는 사십 년 가까이 살던 동네를 떠나서 J아줌마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했다. “걔도 지 남편 가면 나랑 살고 싶대. 다 늙어서라도 자식 잔소리 안 듣고 속 편하게 살면 좋은데….”
엄마가 J아줌마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에게도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아주 오래도록 가슴 떨리게 좋아했던 여자애. 내게 프레디 머큐리와 퀸, 여러 음악과 영화를 알려준 아이. 유튜브나 MP3 같은 것이 없던 시절, 여러 곡을 발췌해서 녹음해 주고 가사를 손으로 써서 자기만의 명곡 테이프를 만들어준 친구. 나를 극장에 처음 데려갔고, 집에 놀러 가면 옆자리에 앉히고 피아노를 쳐 주던 아이. 그때 그 소리는 무척 아름다웠고 그 아이와 나는 오래도록 단짝이었지만, 나는 다른 여자애들이 단짝 친구와 손을 잡고 걷는 것 같은 일을 그 아이와 해 본 적은 없다. 그 아이를 좋아하는 내 마음이 지나친 것일까 봐, 여자애가 여자애에게 강렬하게 좋아하는 마음을 품는 건 문제적인 걸까 봐 그 아이를 자세히 보지도 못했으니까.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 애는 내가 헤맬 때마다 응원군처럼 옆에 있어 줬지만, 정작 나는 그 아이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조차 다가가지 못했다. 내가 그 애에게 가진 커다란 호감을 감추는 데만 급급했고, 새로 만난 사회에서 겪은 불편이나 어두운 감정들만 뱉어내곤 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 우리는 어떤 오해를 풀지 못한 채로 쌓아갔고, 이제는 서로 연락하지 않는 상태로의 우정을 십 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다행인 것은 내 엄마와 그 애의 엄마가 같은 종교를 가지면서 종종 서로의 딸들 소식을 날라주고 있다는 걸까. 그래 봤자 이 집 딸이나 저 집 딸이나 시집 안 가서 걱정이라는 둥의 푸념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엄마를 통해 그 애의 소식이 들릴 때마다 귀를 세우게 되는 건 당연했다. 어느 날, 그애에게 힘든 일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책 한 권을 부쳤다. 그림책 『나를 봐』(최민지 글 그림, 창비, 2021)를 곧 다가올 그 애의 생일선물로 주고 싶었다.
멀리서는 몰랐지만 가까이 가니 보이는 것
『나를 봐』에는 두 아이가 나온다. 초록빛 옷을 입은 ‘나’와 붉은빛 옷을 입은 아이! 두 아이는 아마도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 사이로 보인다. 초록빛 나는 붉은빛 아이가 땅바닥에 엎어진 모습을 본다. 걱정스럽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붉은빛 아이는 일어나서 네잎 클로버를 들어 올리고 있다. 초록빛 나는 알아차린다. 붉은빛 아이는 넘어진 게 아니라 행운을 찾고 있었다는 걸.
초록빛 나는 계속해서 붉은빛 아이를 본다. 춤추는 듯한 모습도, 화난 듯한 모습도.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초록빛 나는 붉은 빛 아이를 볼수록 알게 된다. 붉은빛 아이가 한 무리에 섞여 타인들과 비슷하게 보일 때에도, 자세히 보면 붉은 사람만의 고유한 선택과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깨닫는다. “멀리서는 몰랐지만 가까이 가니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나, 이제 너를 아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새로운 점’을 또 발견하게 된다는 것도.
“너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아무도 너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할까.”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은 상태에 놓인 걸까.”
간결한 그림과 아기자기한 리듬감이 넘치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초록빛 아이의 눈동자에 붉은빛 아이가 가득 담겨 있는 페이지이다. 다음 장에서는 붉은 빛 아이의 눈동자에도 초록빛 아이가 가득 담겨 있다. 두 아이는 서로를 마주 보게 된다. 너를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는 순간이다. 두 아이는 서로의 결핍과 외로움을 날려버리는 마법같은 우정을 만들어내고 그 순간 서로에게 특별한 제안을 하는데….
친구가 된다는 것은
“느그 엄마가 얼매나 수제비를 좋아했는지 아느냐.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맨날 수제비만 빚어 줘야. 나는 느그 엄마 집에 쌀이 없어서 그런가 했당게. 근데 그냥 수제비를 징허게 좋아하는 거드라고.” 엄마와 J아줌마가 엄마집 부엌에 앉아 수제비를 빚는다. 엄마는 결혼한 뒤 남편 식성에 맞추느라 수제비 대신 국수만 먹었고 그러다 보니 이제 국수가 더 좋아졌다는데, 아줌마는 여전히 수제비를 좋아한다. “나는 밀가루 안 좋아혔는데, 니네 엄마 때문에 하도 먹다가 이젠 수제비만큰 좋은 게 없당게.” 엄마랑 아줌마는 손가락을 재게 움직이며 반죽을 뜯어 끓는 물에 넣다가, 아웅다웅하듯 웃는다. “아야, 튄다. 다칠라. 조심혀라.”
“받네? 엄마가 너 수술했다고 하더라고. 몸은 괜찮아?” “응, 큰 수술은 아니었어. 근데 싫긴 하더라. 마취 깨는 일을 또다시 겪고 싶진 않더만.” 하지만 수술을 해서 네가 전화를 했으니 영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문장들로 엮을 수 없는 수많은 기억과 감정 사이에 내가 있고 그 애가 있다. 나는 다만, 『나를 봐』의 주인공들처럼 용감하게, 마음껏 내 친구를 좋아하고 오래오래 자세히,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바라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서 그 애의 마음을 더 알아차리고 소통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돌아볼 뿐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는 ‘너를 잘 몰랐는데 친구가 되었지.’하는 문장이 나온다. 친구가 된다는 건 서로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잘 모르는 너를 알아가고 싶어서, 변해가는 너를 계속 보려고 노력하겠다는 선언인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그리고 당신은 곁에 있는 사람들을 잘 보고 있는 것일까?
[필자 소개] 안지혜. 날마다 그림책을 읽는 사람.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을 썼고 여러 권의 그림책을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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