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과 필멸, 그리고 불멸

[극장 앞에서 만나] 신수원 〈오마주〉

신승은 | 기사입력 2023/12/03 [19:32]

소멸과 필멸, 그리고 불멸

[극장 앞에서 만나] 신수원 〈오마주〉

신승은 | 입력 : 2023/12/03 [19:32]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와 영화진흥위원회 예산 삭감

 

지난 10월 28일 원주시가 원주 아카데미극장을 강제 철거했다. 1963년부터 원주를 지켜온 이 극장은 멀티플렉스에 밀려 2006년 폐업했지만, 시민들의 참여로 다양한 용도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지난해 새로운 시장이 취임하면서, 원주시는 결국 철거를 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시민사회와 문화예술인이 힘을 모아 반대를 했으나 불통이었다. 민주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철거는 진행되었고, 역사와 추억이 무너졌다.

 

무엇이든 쉽게 지워버리는, 치워버리는 시대임을 증명하는 뉴스가 잦아질수록 불안은 커진다. 오래된 단관극장의 철거가 영화라는 매체의 지속과 전혀 무관한 일일까. 예술의 생명력과 결코 무관할까. 개개인의 삶과 존재는 이 일과 무관할까. 한때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어디서 바람이 불어와 꽃잎이 날아간 사건이 아니다. 분명한 의도를 가진 인간이 ‘허물어뜨리는’ 일이다. 포크레인은 건물에만 가지 않는다.

 

지난 7월, 영화진흥위원회의 애니메이션 지원 사업이 예산 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되며 폐지될 상황에 처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년도 영화진흥위원회 정부 예산안은 지역영화 관련 예산 전액 삭감, 영화제 예산 절반 이상 삭감, 독립영화 제작지원 40% 삭감 등 상업영화를 제한 지역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쪽의 지원을 대폭 삭감할 것을 예고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에는 국제영화제 참가활동 지원사업, 기획개발역량강화지원센터 매칭 프로젝트 지원사업이 ‘예산소진’으로 종료되었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올라왔다’가 아니라 ‘올라오기 시작했다’일까 봐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불안에 떨었다.

 

예산 삭감은 많은 독립영화의 탄생을 막는다. 작품활동에 들어가지 못한 채, 이끼 낀 물처럼 고여만 있다 보면 열정은 추상이 된다. 무엇을 위해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했는지, 왜 하는지 점점 뿌옇게 포커스 아웃이 된다. 반면 절망은 구체다. 40% 예산 삭감, 문화예술인 생활고, 10월 28일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 결국 다른 일을 찾아 나서지만 아무 일도 구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발걸음. 4D보다 생생하고 4K보다 또렷하다.

 

▲ 신수원 연출 영화 〈오마주〉의 포스터, 2022


사라진, 사라지는 것들

 

〈오마주〉(신수원 감독, 2022)의 주인공 김지완 감독은 세 작품을 찍었지만 흥행은커녕 아들에게 재미없다고 구박만 받는 신세다. 현재 쓰고 있는 시나리오는 투자 문제가 잘 풀리지 않고 있다. 오래도록 함께 해온 피디는 예산을 낮추기 위해 시나리오를 수정하라고 말한다. 김지완이 답한다. “나 진짜 쓰는 게 무섭다.” 한때 가장 사랑했던 일이 무서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중 1960년대에 활동했던 여성영화감독 홍재원의 〈여판사〉의 더빙 아르바이트를 받게 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진 필름들을 찾기 위해 김지완은 홍재원 감독의 자취를 따라 여기저기를 헤맨다.

 

영화는 곳곳에서 소멸을 끈질기게 다룬다. 첫 번째로는 세 편을 찍고 사라진 감독 홍재원이다. 그의 커리어는 갑자기 뚝 끊겨버렸다. ‘편집실에 아침부터 여자가 들어오면 재수 없다’는 말 때문에 소금을 맞으며 일을 해왔던 여성 편집기사의 이야기는 당시의 성차별 세태와 홍재원 감독이 커리어를 지속할 수 없었던 원인을 짐작하게 한다. 홍재원과 함께 일을 했던 이 여성 편집기사는 홍재원이 남자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고 말을 한다. 김지완과 편집기사는 편집기사의 집에서 빨래를 걷으며 이 대화를 나눈다. 두 배우는 흰 이불보 뒤에서 대사를 주고받는데, 흰 이불보에 해가 비쳐 만들어진 두 인물의 그림자가 마치 스크린 뒤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스크린 뒤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가려지기 일쑤인 여성영화인들, 그리고 그들이 겪는 차별의 비가시화를 강렬한 이미지로 전달한다. 이불보가 걷히고 편집기사가 묻는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 김지완이 답한다. “그때 보다는요.”

 

편집기사와의 만남에는 또다른 소멸들이 있다. 편집기사는 필름 시대에 필름을 자르고 붙여가며 작업을 하던 영화인이다. 지금은 디지털 영화가 일반화되어 편집 프로그램과 외장하드가 편집기사의 주요 아이템이 되었다. 필름과 필름영화, 그것을 트는 영사기 모두가 사라졌다. 디지털 영화의 보급화는 필름값이 들지 않아 자본의 부담을 줄여주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주기도 했다. 〈오마주〉는 이렇게 각종 소멸을 다루지만 때로 어떤 소멸에 대해서는 가치판단을 하기보다는 그 소멸 자체에 집중을 한다. 무언가 계속 사라지고 변화하는 시대에서 어떻게 변화를 맞을 것인지, 그리고 지켜야할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나이가 지긋한 편집기사는 대화 중에 단어를 잊어버린다. 그 단어는 ‘영화’였다. 나이가 들어 젊음이 사라지고, 기억이 사라져간다. 젊음을 다 바쳤던 그 ‘영화’가 생각이 나지 않아 헤매게 한 망각은 비단 개인의 기억과 단어에 한정되어있지 않다. 영화 자체의 소멸을 암시한다. 상업영화에 치중된 정부 예산 설계는 다양한 사람의 가치가 담겨있는 ‘영화’를 흐릿하게 만든다. OTT의 활성화는 극장 산업을 흔들고 있으며 그 흔들림은 당연 대기업의 멀티플렉스보다는 예술영화 상영관에 빠르게 도달한다. 지난 몇 해간 신진영화예술인 발굴의 무대가 되었던 단편영화제들이 사라졌다. 그들의 ‘영화’는 어디로 가게 될까.

 

여성 영화인이 사라진다. 동료들이 사라진다. 극장이, 공간이, 영화제가 사라진다. 독립영화가 사라진다. 필름이 사라졌다. 검열로 인해 씬이 사라졌다. 젊음은 소멸되고, 기억 또한 소멸된다. 머릿속에서 단어가 사라진다. 의미가 흐려진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모든 소멸과 함께 우직하게 걸으며 복원해나가는 모습을 〈오마주〉가 보여준다. 김지완은 꼬리의 꼬리를 무는 소멸을 따라가며 필름을 찾아 헤맨다.

 

영화와 빛

 

끝내 김지완은 〈여판사〉의 잘려나간 필름들을 〈여판사〉를 상영했던 기록이 있는 오래된 극장에서 찾는다. 이 촬영지가 바로 원주 아카데미극장이다. 영화에는 상영관, 영사실, 그리고 그 둘을 잇는 좁은 계단 등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곳곳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영화는 본디 어둠에서 빛을 쏘아 볼 수 있는 매체다. 그런데 김지완이 도착한 극장은 천장이 뚫려있다. 마치 신의 계시처럼, UFO의 출현처럼 빛이 내려오고 있다. 전기가 끊겨 유일한 빛을 볼 수 있는 곳이 상영관이 되어버린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김지완은 영사실에서 발견한 필름 뭉치들을 들고 상영관으로 돌진한다. 뚫린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에 필름을 하나하나 대어본다. 빛을 받은 필름이 한 프레임, 한 프레임 보인다. 어둠이 있어야 가능한 영화, 상영인데, 이 씬에서는 빛이 간절했다. 빛이 없는 어둠은 그냥 어둠일 뿐이지만, 어둠 속의 빛은 별이 되고 달이 되고 그래서 길이 되고 영화가 된다.

 

▲ 〈오마주〉 중에서 영화감독 지완(이정은 배우)과 편집기사 옥희(이주실 배우)가 함께 영사기를 이용해 영화를 보고 있다.


필름을 들고 김지완은 편집기사에게로 달려간다. 편집기사가 과거의 실력을 발휘해 이어 붙이고 영사기를 이용해 영화를 ‘쏜다’. 영화계 내 성차별을 이야기하던 장면에서 그들을 그림자로 만들었던 이불보가 스크린이 되어주었다. 카메라가 스크린 뒤의 얼굴들을 잡는다. ‘영화’라는 단어마저 잊어가는 나이 든 편집기사, 발견된 필름이 돌아가는 영사기, 모든 소멸과 함께 복원을 성공한 중년의 감독의 쓰리샷이 필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컷은 셋의 측면 샷이다. 김지완 감독의 옆모습에서 편집기사의 옆모습으로 포커스가 이동한다. 이 짧은 컷은 마치 김지완 감독의 미래가, 여성영화인의 미래가, 지금의 편집기사인 것 같은 암시처럼 느껴진다. 더 많은 소멸을 겪겠지. 나도 소멸되겠지. 지완의 불안이 관객의 불안으로 퍼질 때, 편집기사가 입을 연다. “자네, 끝까지 살아남아.”

 

치열한 불안

 

김지완의 아들은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시 낭송을 하고 종종 가족에게 시를 적어 편지를 보내는 모임에 참여 중이다. 영화 초반부 아들은 지완에게 D.H 로렌스의 ‘현대인의 기도’를 적어 보낸다. 시는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달라고 재신(재물의 신)에게 기도하는 내용인데, 아들은 엄마가 재신이 되어주길 바라며 이 시를 보냈다. 이 시는 아들의 심정이기도 하지만 투자를 기다리는 김지완의 마음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아들의 새로운 시 편지가 온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내가 잠든 사이’다. 아들의 보이스오버로 들리던 시가 중반부에는 지완의 보이스오버로 바뀐다. ‘숨을 헐떡이며 뛰어다녔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 불안과 안도 사이를.’ 그리고 영화도 끝이 난다.

 

고정된 채로 재신을 기다리던 김지완은 이 여정을 통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물리적 이동도 있었지만 불안과 안도 사이를 적극적으로 오가는 심리적 이동도 있었다. 불안은 끝나지 않았다. 재신을 기다리는 일도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지완은 소멸을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소멸과 함께 걸으며 때로는 붙잡고 치열하게 불안하게 되었다. 무언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 주길 바라며 삼각대 위에 고정되어 있는 것과 무언가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 무엇이 더 빨리 원하는 것을 촬영하게 하는 방법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전자가 소멸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이라면, 후자는 소멸과 함께 달리는 것이다. 김지완은 달리기를 택한 셈이다. 정확히는 수영이다.

 

홍재원 감독의 집을 방문한 김지완은 생전의 감독이 남긴 글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한다. “너는 언젠가 지워질 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가 영화라면, 김지완이라면, 여성영화인이라면 이 문장은 절망적인 암시가 된다. 하지만 ‘너’가 뭐든 새 것으로 갈아치워 버리려는 세상이라면, 여성감독의 커리어를 끊어먹는 성차별이라면, 상업적인 이윤만 추구하고 그 외의 문화예술을 경시하는 세태라면, 극장을 부순 행정이라면, 이것은 깨달음을 주는 문장이자 경고다. 소멸의 대상이 아닌 것은 없으며, 불멸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판사〉처럼, 김지완의 열정처럼 복원은 가능하다. 숨을 헐떡이며 불안과 안도 사이를, 소멸과 복원 사이를 헤매는 삶, 그 동력의 하나가 예술이라고,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떤 소멸은 소멸일지언정 필멸은 아니다.

 

▲ “극장이 무너져도 시민은 무너지지 않는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위법 철거를 규탄하는 시민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12일 열린 시민대행진에서, ‘아카데미의 친구들’이 제작한 아카데미극장 미래 티켓이 배포되었다.(디자인: 프로파간다) [출처: 아카데미의 친구들 페이스북 페이지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 이후 극장 소셜네트워크 계정에 처참히 부서진 극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영화와 관객이 있던 곳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포크레인과 건물 잔해가 가득했다. 하지만 극장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은 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극장은 무너져도 시민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철거를 규탄하는 시민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결코 허물 수 없는 것이 있다. 포크레인보다 훨씬 크고 강한 것. 위의 문장에 오류가 있었다. 불멸이 여기 있다.

 

[필자 소개] 신승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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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3/12/07 [23:07] 수정 | 삭제
  • 영화도 영화평도 넘 멋지다
  • 2023/12/04 [21:13] 수정 | 삭제
  • 혹시나 했는데 넷플에 있음!! 이런 영화가 나와서 너무 좋네요. 꼭 보겠습니다. ㅎㅎ
  • 일량 2023/12/04 [16:39] 수정 | 삭제
  • 원주도 그렇군요 시장 바뀌면 문화예술 예산 싹 없어지고...
  • 소라 2023/12/04 [13:14] 수정 | 삭제
  • 눈물이 왈칵 나네요. 박남옥 감독도 떠오르고... 찾아봤더니 홍은원 감독 이야기가 모티브라고 하네요. 이런 분위기의 영화 정말 좋아요. 오마주가 사람만이 아니라 장소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는 것도.. 코아아트홀, 자주 갔던 영화관들, 지금 멀티플렉스랑은 너무 달랐던 영화관들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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