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개] 여성들의 말과 글이 세상에 더 많이 퍼지고 새겨져야 한다고 믿으며, 서점에서 퍼뜨리고 싶은 여자들의 책을 고른다. ‘살롱드마고’의 신간 책장에서 마음에 새겨지는 책을 한 권씩 밑줄 그으며 꼭꼭 씹어 독자들과 맛있게 나누고자 한다.
“오늘 또 쓰레기같이 보냈다. 앞으로 나는 어떡하지?” (안예슬 지음, 책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을까 - 오늘도 고립의 시간을 살아가는 여성 청년들』 119쪽, 이정의 인터뷰에서)
세상에 문을 닫아걸어 둔 적이, 살면서 여러 번 있다. 처음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누군가 나에 대한 험담을 퍼뜨려 친구들에게 ‘은따(은근한 따돌림)’ 당했는데, 그때 교실에서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은 종일 엎드려 있는 것이었다. 한 공간에 있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열심히 지웠다. 대놓고 나를 무시하는 아이들을 차마 마주할 수 없어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긴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에 입학하며 나는 ‘찌질한’ 시절의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관계에서 더 큰 난관을 만났다. 과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에 문제 제기하고 그것을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선배들로부터 심하게 괴롭힘당한 것이다. 학교에서 사람들을 만나기가 두려워 나는 혼자 살던 자취방에서 한동안 잘 나오지 않았다. 종일 불을 꺼둔 컴컴한 방에서 끼니도 대충 때우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때 내가 뭘 했는지 지금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여성 고립 청년들은 고립의 일상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고립은 기억나지 않고 기억하기 힘든 ‘사건’이다. 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봤다. 피티에스디를 대표하는 증상이 기억 상실이다.” (112쪽)
어느 날 친한 선배가 안부를 물으려 자취방에 찾아왔는데, 세수도 하지 않고 잠옷을 입은 채로 언니를 맞았다. 내 방은 이부자리만 빼놓고 온통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언니는 먹을 것을 사와 나를 살펴주면서 아무렇지 않게 수다를 떨다 돌아갔다. 잠시 후 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네 방을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프다. 너 괜찮니?” 다른 이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통해, 내가 괜찮지 않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내 방은 나를 무서운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보호하는 곳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나의 상처와 분노, 외로움과 두려움이 적막 속에 소용돌이치는 공간이었다.
이제는 그 교실, 그 방에서 나와 사회생활을 활발히 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세상과 뚝 끊어지는 시간을 자주 만난다. 집에서 주로 누워만 있다.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않고, 종일 유튜브와 OTT 채널을 왔다갔다 하며 멍하니 영상만 본다. 사람들의 연락도 받지 않고, 쌓인 집안일도 못 본 척한다. 그러다 해가 져 창밖이 어둑해지는 순간이면 문득 자괴감이 먹구름처럼 밀려온다. 이건 휴식이 아니라 혼돈 속 방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 자신과 내 삶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 힘들어 하루를 그대로 침잠시키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떠나질 않아 다가오는 밤이 우울해진다. 하지만 발목의 족쇄 같은 무기력이 한 몸처럼 느껴진다. 철저히 고립되고 싶으면서도 진짜 영영 고립될까봐, 이대로 내가 조용히 소멸될까봐 무섭다.
“영상이나 게임에 몰두하는 행위는 고립의 시간과 자기 자신을 흘려보내는 방편이다. 중독이 없다면 고립의 시간을 견딜 수 없으며, 스러져만 가는 자신을 마주해야 한다.” (120쪽)
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만나기에 겁나는 마음이 있다는 것, 내가 자신을 제대로 돌보거나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아무에게도 제대로 말한 적이 없다. 스스로 ‘엉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 같아 부끄럽고, 이것이 내 성격 탓이 아닐까 하는 자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고립된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모두 주변 관계와 어떤 문제가 얽혀 있었고, 나는 그것을 홀로 돌파할 수 없었다. 따돌림과 괴롭힘은 집단의 차별적인 문화와 폭력적인 구조 속에서 힘을 발휘했다. 나는 그 집단들에서 안전함과 신뢰에 대한 기대를 잃으며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의 오래되고도 반복된 고립 경험과 그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꺼낼 수 있게 된 것은 안예슬의 책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을까』를 읽은 덕분이다. 책 제목을 보자마자 “내 이야기인가?” 생각했는데, 아마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 같다. 저자는 자신도 ‘고립 여성 청년’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해 열 명의 고립 여성 청년을 인터뷰하며 이 주제를 파고들어 연구했다. 그는 인터뷰를 한 결과 “여성 청년이 고립되는 과정에는 가부장적 억압과 불안정 노동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정리하며, 이들의 삶을 둘러싼 각 영역이 어떻게 고립과 연결되는지 들여다본다.
“고립을 견디는 과정은 개인적이지만 고립에 접어드는 과정은 너무나 사회적이다.” (236쪽)
우리 사회에서 먼저 ‘고립’된 존재로 주목한 것은 중·노년 남성이다. 그 후 “청년 고립이라는 주제가 등장한 뒤에는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남성 청년’이라는 이미지가 청년 고립을 대표한다.” 저자는 다양한 배경과 서사를 가진 고립 청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분석하면서, 사회가 외면한 이들의 존재와 위치를 드러낸다. 고립은 개인의 문제나 선택이 아니며, 특히 여성 청년은 노동과 생계, 진로에 관한 문제가 고립 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저자를 포함해 인터뷰에 참여한 고립 여성 청년들은 “모두 일이 없는 공백기에 고립을 경험했다.”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할 때부터 불안정 노동을 경험한 여성 청년들은 자주 실업 상태에 놓이며, 실업이라는 공백은 이들을 다시 고립으로 이끈다.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여성 청년들은 안전망이 부족한 비정규직, 계약직, 프리랜서, 아르바이트 노동에 다수 포진되어 있다. 공공에서 만든 청년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에 참여하더라도 대부분 단기직이어서 그것을 ‘직업’으로 가지기 어렵고, 진로에 장기적 전망을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일자리 사업은 왜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가.”
반면 남성 청년은 여성 청년에 비해 안정적 노동시장을 경험하는 집단에 속할 가능성이 21퍼센트 높다. 또한 일터에서 여성 청년은 “노동자가 아니라 성적 매력을 지닌 젊은 여성으로 소비된다.” 성별화된 직종 분리와 성별 임금 격차, 직장 내 성희롱 문제 등은 여성 청년들로 하여금 사회적 신뢰를 잃게 하고, 한 개인으로서의 독립과 노동자로서의 성취 모두에 큰 방해물이 된다. 저자는 일터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동료 관계를 경험하는 것이 여성 청년의 고립 문제 해결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성 청년이 느끼는 차별 문제는 단순한 피해 의식이 아니다. 생계와 미래가 걸린 현실이다.” (188쪽)
‘가족 배경’은 고립 여성 청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관계이자 조건 중 하나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식의 진로와 미래에 바탕이 되는 사회에서, 가족 배경은 청년의 고립 구성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한다. 여성 청년들은 여전히 가부장적인 집안 문화와 성차별적인 양육 환경을 경험하며, 가족 내에서 ‘딸’로서의 감정 노동과 돌봄 노동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책에 인용된 2020년 서울시 청년수당 참여자 설문 결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가족 대면 횟수와 연락 빈도 평균이 남성에 견줘 높지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가족 평균 수는 남성보다 적었다.” 여성 청년은 가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그 관계에 책임을 지면서도, 정작 가족으로부터 실질적인 지원을 받기는 어려운 것이다. 특히 부모와 함께 사는 비혼 여성 청년은 더욱 취약한 위치에 놓여 “안정된 소득이 없어서 가족을 벗어난 자기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독립에는 “주변의 지지와 도움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인터뷰에 참여한 여성 청년들은 고립의 원인이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문제’라 여기고, 타인에게 부담이 될까 봐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나도 내 주변의 여성들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남들도 힘든데”, “내가 더 나아져야 하는데”라며 타인을 더 배려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 말이다. 저자는 사회가 이들의 공감 능력을 이용했기 때문에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들어주는 위치에 머무른” 것이라 분석한다. 그리고 공공에서 가족 개념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족 밖에서 신뢰 관계를 회복해 삶의 안전망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안전한 신뢰 관계 속에서 우리는 고립을 ‘낙인’이 아니라 ‘아픔’으로 읽으며 그것을 더 말하고 들어주는 장이 열릴 수 있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읽은 덕분에 나는 세상과 한 뼘 더 연결되며 오늘 하루 덜 외로워졌다. 혼자라는 고백이 더는 부끄럽지 않기를, 우리를 혼자로 만든 세상을 향한 말들이 더 많아지기를.
“우리 사회에서 아픔은 어떻게 읽히는가. 타인에게 내 아픔을 드러내면 아픔은 곧 약점이 된다. 약점은 나를 지킬 수 없게 한다. 나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97쪽)
[필자 소개] 달리. 단행본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2021), 『젠더 수업 리포트』(2023)의 저자이며, 전북 남원에 있는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 ‘살롱드마고’에서 프로그램과 모임을 기획한다. 지역에서 여성들과 글을 읽고 쓰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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