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귀화의 문턱 낮추는 독일 사회의 미래는?‘이민자 국가’ 독일 사회의 경험⑨ 유학, 노동이민, 블루카드유럽 도시와 국가를 넘나드는 유학, 노동이민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벨기에에서 박사후과정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친구가 내년 1월 스웨덴으로 두 번째 박사후과정을 하러 가게 됐다. 주벨기에 스웨덴 대사관에는 비자 업무를 하지 않아 가장 가까운 파리 스웨덴 대사관으로 온다는 거였다. 아침 일찍 유로스타를 타고 브뤼셀에서 파리에 온 그는 한나절 나와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브뤼셀로 돌아갔다. 기차로 편도 2시간, 하루에도 두 나라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유럽살이가 새삼 신기하다.
이 친구는 석사과정은 영국에서 마쳤고, 독일에서 2015년 정치학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우리가 함께 했던 베를린의 시간을 떠올리며 얘기했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걱정됐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한 과정이 끝나면 또 다른 과정이 있는 건데, 이게 인생 같아요. 계약이 끝나면 또 다음 일을 찾아야 해요. 이젠 너무 불안해하지 않으려고요. 한국에 가도 되니까요.” 그의 말을 들으며 새삼 나 또한 그간 독일살이에 대한 마음의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헬조선’, ‘탈조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일 생활 초창기에 만난 사람 중에는 한국이 싫어서 왔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내 경우도 진보 진영 시민단체에서 몸과 마음, 영혼까지 갈아 넣으면서 일하다가 성폭력을 겪고 도망치듯 독일로 왔으니, 탈조선이 맞을 수도 있겠다. 다시는 한국에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마음이 2018년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시작되면서 바뀌어갔다. ‘돌아갈 수도 있겠다.’ 독일에서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밑도 끝도 없는 인종차별을 당할 때,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며 살 수는 없겠구나 생각했을 때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꼭 여기에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유럽에 일하러 오는 사람 중에는 비자 발급 쿼터로 오고 싶어도 못 오는 사람들이 있고(인도 출신), 국경 이동 시 더 철저하게 신분 검사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으며(주로 아프리카 및 마그레브 출신), 일정 기간 거주하는 국가를 벗어나면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난민 지위를 신청하고 기다리는 사람들). 유럽에서 ‘한국 여권’을 갖고 있다는 것, 기본적으로 고등교육을 받고 있거나 학력이 그 이상인 것, 두 개 이상의 언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다. 그런 특권을 가진 해외 노동자들에게 독일은 종종 기회의 나라가 된다.
“독일은 연간 150만 이민자가 필요하다” 올해 이민법 개정
올해 3월, 독일 정부는 기술이민법을 통과시켜 해외의 숙련 노동자들이 기존보다 더 쉽게 독일에 정착해 일할 수 있도록 이민법을 개정했다. 연방 노동사회부는 작년 한 해 약 198만 개의 노동력 공백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의료, 돌봄 전문직, 보육, IT 부문, 기타 생산 및 서비스 전문직에서도 일력이 부족했다고 발표했다. 독일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가장 큰 위협 요소라고도 언급했다.
독일 경제전문가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모니카 쉬니저(Monika Schnitzer)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은 연간 150만 명의 이민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덧붙여 그는 독일에 이런 노동 이민자를 환영하는 문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히 새로 개정된 기술이민법이 올바르게 시행되기 위해서는 이민청 역할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민을 막지 않고 (이민을 허가하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민사무소를 구축하는 게 우선이다. 우리는 외국인 숙련 노동자들이 ‘독일어’를 구사하도록 요구해서는 안 된다. 우리 이민청 직원들이 ‘영어’를 구사하도록 해야 한다.” 그의 말에서 독일 정부의 노동이민 확보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문득, 학생비자를 신청하기 위해 입학허가서를 가지고 이민청에 갔던 날이 생각났다. 담당 직원은 내게 “당신의 독일어는 박사과정을 할 수준이 안 된다”며 비자 발급을 못 해주겠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나는 “당신들이 안내한 학생비자 발급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가지고 왔다”고 했지만, 그는 임시 체류증을 내주며 돌려보냈다. 결국 지도 교수에게 “논문은 독일어와 영어로 병행할 것이며, 이 학생은 확실히 내가 지도할 것이다.”라는 편지와 대학원 등록서류를 추가로 제출한 뒤 비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 때의 경험은 유쾌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비자를 내주는 방향이 아니라 꼬투리를 잡아서 비자를 내주지 않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 같았다.
새로운 기술이민법은 독일에서 직업교육 및 대학교육을 이수한 비EU권 학생들에게도 기존의 블루카드(Blue Card, 2000~2004년 비EU국 대졸 IT 전문가들에게 5년짜리 비자와 노동 허가를 주기 위해 시행됐던 제도가 2005년 비EU국 숙련 기술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제도로 확대 개정됨) 발급을 확대했다. 또한 독일 대학 또는 외국 대학 학위가 없더라도, 노동자가 본국에서 해당 분야 최소 2년 전문 경력 등의 일정한 조건을 갖출 경우 블루카드를 발급하도록 했다. 발급 최소 연봉 기준을 기존 58,400유로에서 43,800유로(월 3,650유로)로 대폭 완화하고, 블루카드 발급 후 이직이 가능한 기간도 기존 2년 이후에서 18개월 이후부터로 앞당겼다.
블루카드를 발급해 외국의 숙련 노동자를 유입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노동력 제공을 위해 이들을 독일에 정착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독일에서 블루카드를 받은 사람은 근무한 지 33개월 이후에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다. 독일어 B1 수준을 증명한다면 21개월 이후부터도 가능하다. 일반 노동비자의 경우, 취업 후 5년(60개월 법정 연금보험 납부) 이후부터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것에 비교하면 매우 빠른 편이다. 독일 대학 졸업자가 취업 후 2년 후부터 가능한 것에 비교해도 빠르다.
이번 이민법 개정에서는 기존 비EU권 노동자의 배우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도 독일어 능력 증명 없이 독일 거주 허가를 받아 이민 올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비EU국 노동자가 본국에서 학위나 직업 경험이 없고 독일 내 고용계약이 안 돼 있더라도 거주 허가를 내주는 기회카드(Chancenkarte)도 도입할 예정이다.
귀화 문턱 낮추는 국적법 개정도 논의
2022년에 독일 노동비자를 발급받은 비EU국 출신 인구는 35만1천 명이고, 이중 약 8만9천 명이 블루카드를 발급받았다.(연방통계청 2023) 블루카드를 받은 사람 중 45%가 신규로 발급을 받아 독일에 온 사람들이고, 55%가 이미 독일에서 학생비자 또는 다른 형태의 노동비자로 거주했던 사람들이었다. 독일에서 대학교육 및 직업학교 훈련을 마친 비EU국가 외국인들은 독일사회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사회보장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이다.
독일 통계청은 2022년 10월, 최근 10년간 독일에 온 유학생들을 추적하면서, 독일에서 학업을 마친 후 많은 유학생이 현지 취업 시장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뿐만 아니라 귀화를 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6년부터 2011년 사이 유학을 시작한 비EU 출신 유학생 18만4천2백 명 중 약 절반이 5년 후에도 독일에 살고 있었으며, 38%가 10년 후인 2022년에도 여전히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취업에 성공해 노동비자로 살고 있거나(31.8%), 여전히 학업 중에 있거나(12.1%), 독일인과 가족을 꾸려 살거나(20.6%), 독일 시민권을 받고 산다(28.1%)고 답했다.
현재 독일 정부는 이민법 개정에 이어 국적법 개정도 논의 중이다. 국적법 개정을 예고한 연방 내무부는 최소 10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들(약 570만 명)의 독일 귀화 비율은 2.45%에 불과하며, 이는 다른 EU 국가와 비교해 귀화율이 낮은 편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독일에 오랫동안 거주하며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었던 상당수의 사람이 여전히 동등한 입장에서 민주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독일 장기체류 외국인들의 요구를 적절히 고려하여 국적법을 현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국적법은 독일 국적을 신청할 수 있는 독일 내 체류기간을 기존 8년에서 5년으로 줄이고, 일정한 독일어 능력이 검증되고 독일 사회에 유익이 되는 다양한 사회 참여 및 기여, 직업적 성과를 이룬 사람들에 대해서는 최대 3년까지 낮추는 안이다. 또한 많은 이민자가 출신 국가와의 연결을 끊지 않고 정체성의 일부를 포기하도록 강요하지 않는 복수 국적을 허용하는 안도 포함된다. 연간 150만 명의 외국 인력이 필요하다고 밝힌 독일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독일에 온 한국의 MZ세대가 경험한 독일 사회
독일에서 환경정책학 석사과정을 마친 유태선 씨는 독일의 한 중견기업에 취직해 올해로 7년째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환경단체 인턴으로 일하던 태선 씨는 환경정책에 관해 더 공부하고 싶었고, 등록금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학비가 저렴하고, 영어 프로그램으로 석사과정을 할 수 있는 독일을 선택했다. 교수와 학생의 수평적이고 협조적인 관계, 수강생들과의 협력적인 분위기, 독일 정부의 친환경정책이 반영된 도시 조성 사례를 배우고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을 좋았던 점으로 꼽았다.
졸업 후 한국에 돌아가는 것보다 이곳에서 더 살아보고 싶어 독일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독일 TK엘리베이터에서 일을 시작한 태선 씨는 현재 IT 프로젝트/디맨드 매니저라는 직책으로 일하고 있다. 생산부터 판매까지 기업이 더 원활하게 경영할 수 있도록 IT 표준화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유럽-아프리카에 있는 지사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요구사항을 컨설팅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코디네이팅 역할이다.
태선 씨는 독일 대학원에서와 마찬가지로 회사 내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가장 좋은 점으로 꼽았다. 직급과 관계없이 의견을 나누고, 그것이 수렴되어 반영되는 구조가 마음에 들고, 탄탄한 노조 덕분에 노사 간 협상을 통해 결정된 임금에 만족하는 편이다.
태선 씨는 독일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일반 노동비자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회사 생활을 한 2년 후 독일 영주권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독일에 계속 거주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직업군에서 일해보고 싶어 지난 2년간 MBA 과정을 밟았고, 마음에 맞는 직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당연히 한국도 고려 대상이다.
태선 씨처럼 독일에서 학교를 나와 취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독일로 바로 취업 이민을 오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대학 졸업 후 IT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다가 한국에 돌아와 2년 동안 서울의 한 IT회사에서 일하던 우리(가명) 씨는 작년에 독일로 이주했다. 대기업에서부터 중소기업까지 영어사용자 IT기술자의 선택지가 많고, 대우가 좋으며, 비자 발급이 까다롭지 않고, 한국의 조직문화에서 불필요하게 받는 스트레스가 없는 곳. 우리 씨에게 그곳은 독일이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독일에 첫발을 디딘 우리 씨의 목표는 분명했다. 독일 회사에 취직해서 가능한 한 빨리 블루카드를 받고, 21개월 후에 독일 영주권을 받는 것이다. 입독 후 링크드인(LinkedIn)과 같은 비즈니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온라인으로 취업 준비를 하던 우리 씨는 얼마 안 돼 프랑스에 본사를 둔 뮌헨의 한 자동차 소프트웨어 회사에 백엔드 개발자로 취직했다. 월 3,650유로 수입 기준을 넘는 우리 씨는 독일 이민청에 블루카드를 신청해 어려움 없이 발급받았다.
우리 씨는 현재 회사에 꽤 만족한다. 중요한 사안들이 급하고 일방적으로 결정되기보다 천천히 진행되는 편이고, 외국인 출신 직원 비율이 높고 영어가 공식 언어인 점, 재택과 회사 출근이 자유로운 점, 해당 분야 자격증과 독일 어학 자격증 취득을 권장하면서 업무 외 공부를 지원하는 제도 등이 마음에 든다. 자격증 준비가 힘들긴 하지만 다음 커리어에 도움이 되고, B1 이상의 어학 자격증은 영주권 신청 기간을 33개월에서 21개월로 단축해 주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된다.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 중심의 비즈니스모델을 추구하는 스타트업은 취업 이민을 생각하는 고학력의 젊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이다. 유럽 내 스웨덴 다음으로 스타트업에 적합한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독일에는 점점 더 많은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독일 정부는 2030년까지 100억 유로(약 14조 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들 스타트업 중에는 독일에서 창업했지만 영어가 공식 업무 언어이고, 외국인 채용을 많이 하는 곳이 많다.
베를린 스타트업 중 대표적인 성공기업이 된 패션 소매 온라인 플랫폼 회사인 잘란도(Zalando)에서 파이낸스 컨트롤러로 일하고 있는 전주연 씨. 한국에서 중견 화학회사와 유명 엔터테인먼트 회사 재무팀에서 일하다가, 영국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한국과 영국에서 경험한 직업적 학업적 커리어로 새로운 도시를 경험하고 싶었고, 인터네셔널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베를린을 택했다.
코로나 기간 동안 화상 인터뷰를 통해 취업에 성공한 주연 씨는 100퍼센트 재택근무로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재택과 출근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형태로 근무한다. 영어가 공용어이며, 기본적으로 평등하고 관용적이고 오픈된 커뮤니케이션 문화, 법정 노동시간이 보장되고, 한국에선 상상도 못 했던 2주 연속 휴가를 쓸 수 있거나, 야근이 강요되지 않는 분위기 등 현재 직장에 매우 만족한다. 주연 씨는 잘란도에서 직무 전문성과 언어 능력을 더 연마해, 몇 년 뒤에는 또 다른 곳에서 직장생활을 해보고 싶다.
물론 독일 회사가 안정적인 직장을 늘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에 이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경제 침체를 겪고 있는 독일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스타트업할 것 없이 구조조정이 예고됐다. 올해 초 독일 최대 화학회사인 바스프(BASF)를 비롯해 여러 테크 관련 회사들과 스타트업 회사들이 수백 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절차를 밟았다. 지난 5월 캐나다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 이커머스 기업인 쇼피파이(Shopify)가 독일 법인의 90퍼센트 직원을 해고했다. 특히 영주권이 없이 블루카드 또는 노동비자로만 가지고 일하던 비EU국 노동자들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이들은 3개월에서 6개월 기간 안에 다른 직장을 구하지 않으면 비자가 만료되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우크라이나 난민은 환영하는 독일인들 반면 ‘이민은 독일 사회에 손해’…반이민 정서 높아져
이민법 개정에 이어 국적법 개정이 논의되면서, 독일 사회가 과연 이민자들이 적응하며 노동하고 생활하기에, 더 나아가 평생을 살아가기에 좋은 곳인가 하는 물음이 다시 한번 제기되었다. 이민자들이 독일 사회로부터 분리되는 것, 독일인들의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 다문화 사회에 대한 반감 등의 문제는 독일이 이민사회라고 불리기 시작할 때부터 있어온 문제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민자들과 난민들을 향한 혐오와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반이민자/반난민 정책을 내세우는 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공영방송 ARD가 지난 9월 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정부의 난민 정책이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답한 사람들이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가운데, 이민 전체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 사회에서 이민이 이득이 되는가 또는 손해인가’에 관한 질문에 64퍼센트가 손해라고 답했다. 이는 지난 5월에 비교해 10퍼센트나 높아진 것인데, 결과는 무척 놀랍다. 또한 64퍼센트가 난민 수용을 줄여야 한다고 답했고, 82퍼센트는 현재 국경 통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이민자 사회인 독일이었기에 2015년 독일에 온 나는 큰 어려움 없이 독일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독일어를 한마디도 못 하던 시절, 내가 베를린의 한 박물관에서 표를 파는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 수 있었던 것도, 우연히 만난 광부 출신 할아버지 덕분이었다. 은퇴하고 소일거리로 박물관 파트타임 일을 하던 그는 특유 한국인의 성실함으로, 채용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말해 미니잡(당시 월 450유로 이하 아르바이트) 한자리를 확보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인 사회에서 만난 60대 후반 어른들은 대부분이 광부 또는 간호사로 독일에 오신 분들이었다. 독일에서 한인 마트를 운영하며, 독일인과 결혼해 가족을 꾸리고 자식들을 키워내고, 병원 근무 정년을 1년 앞둔 분도 있었다. 집에 초대해 밥을 먹이고, 김치를 싸주고, 병원을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고, 이민청에 문제가 있으면 따라가 주셨다. 그분들 중에는 독일 정부가 계약이 끝났다고 한국으로 돌려보내려고 할 때, 거리에서 서명운동을 받고 독일 정부를 상대로 면담을 요청해 결국은 독일에 남아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신 분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분은 당시를 기억하며 “그때 독일 녹색당이 한국인 간호사들과 많이 연대해 줬다.”고 했다.
독일 정부는 그동안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이주 정책을 시행해 오고 있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노동계약이 끝난 노동자들을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가족을 데려올 수 있도록 했으며, 그들의 자녀 세대들이 부모의 국적과 독일 국적을 동시에 가질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전쟁 난민을 구조하기 위해 배를 보내고, 그리스, 터키 난민촌에 있는 난민들을 받아들였으며, 이들이 독일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와 언어교육, 직업교육을 제공했다.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가 전 사회로 번지기 전에,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함께 사는 삶’, ‘열린 사회’로 나아갈 것을 외치고, 그것을 얘기하는 녹색당과 같은 정당에 표를 주었다.
독일이 이주민들과 난민에게 다시 한번 빗장을 거는 것 같지만, 시리아 난민(2011년 내전이 시작된 이후 독일에 거주하는 시리아인 수는 2022년 말 기준 약 90만 명)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120만 명을 받았다. 사회의 다양성을 그나마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독일 의회가 앞으로 어떤 결정들을 할지, 자기 방을 난민에게 내어주려는 사람에서부터 이민자라면 눈을 흘기는 사람까지 다양한 독일 사람들과 우리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독일로 이주한 우리는 이곳에 정착할 것인지 혹은 떠날 것인지,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만들어질지 계속 추적하는 일이 남았다. [끝]
[필자 소개] 손어진. 한국과 독일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정치/사회 부문 기고, 리서치, 번역, 라디오 방송 리포팅을 하고 있으며, '지속 가능한 삶'이란 키워드로 독일에 사는 한국 녹색당원들과 만든 움벨트(umweltkorea.com)에서 활동하고 있다. 일다에서 [기후위기 시대의 정치! 독일 녹색당 이야기], [베를린에서 온 기후 편지] 등을 연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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