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한다 해도”…진심의 혁명을 말하다〈책방에서 밑줄 긋기〉 다카시마 린 『이불 속에서 봉기하라』[연재 소개] 여성들의 말과 글이 세상에 더 많이 퍼지고 새겨져야 한다고 믿으며, 서점에서 퍼뜨리고 싶은 여자들의 책을 고른다. ‘살롱드마고’의 신간 책장에서 마음에 새겨지는 책을 한 권씩 밑줄 그으며 꼭꼭 씹어 독자들과 맛있게 나누고자 한다.
“애당초 인간의 생을 으깨려고 하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이 이미 저항입니다.” (다카시마 린 지음, 이지수 옮김, 『이불 속에서 봉기하라-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저항법』 178쪽)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요.” “뭐라도 하면 덜 불안해지나요?” “네, 작은 일이라도 하는 동안에는 불안을 잊을 수 있어요. 그런데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정확히 뭐가 불안한가요? 생계? 진로? 노후? 관계? 건강?”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말씀하신 것 중 무엇 하나도 불안하지 않은 게 없어요. 다른 사람들하고 늘 비교하게 되고, 그럼 더 불안해지고.” (*상담에서 자주 펼쳐지는 대화를 각색함)
책방에서 가끔 타로카드로 상담을 한다.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기 쉬운 연말연시가 다가오자 상담 요청이 좀 늘어났다. 상담을 하러 오는 이들이 표면적으로 가진 걱정거리나 이슈는 저마다 다양하지만, 그것의 근본을 들여다보면 세대와 성별을 막론하고 비슷한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 모두 매우 불안하여, 삶이 늘 위기라고 느낀다는 것. 최근에 내가 성평등 수업에 참여한 중학교 1학년 학생들도, 미래가 불안한 것이 ‘인생 최대 고민’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하지만 제가 저를 보는 시선은 스스로를 조금도 용서하지 않아요. ‘인생에 남을 만한’ 일을 전혀 안 하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어요. (중략) 아무것도 못 하는 자신을 되도록 허용하고 싶은데, ‘너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더 노력해야 해’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계속 들립니다.” (173~174쪽)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불안’은 현대인의 DNA에 새겨져 있거나 혈관에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모두가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문제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그것이 더욱 퍼지고, 심화되었다 느낀다. 이 현상은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나. 한편, 기시감도 든다. “나라가 진짜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온 국민에게 덮쳤던 IMF 외환위기 시기에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와 내 친구들에게 선생님과 부모님들은 하나같이 “교사나 공무원이 최고”라 했다. 결국 많은 이들이 어른들의 조언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꿈을 버리고 안정 또는 안주를 택했다. 아니 그걸 선택이라 부를 순 없겠다. 다른 모험이나 도전은 허용되지 않았으니까. 국가마저 나를 지켜줄 수 없을 때 자신의 힘, 능력으로 살아남는 게 최선이라는 교훈은 현재까지도 유효할뿐 아니라, 어쩌면 더욱 강화된 것 같다. 인간들의 불안을 자양분 삼아 각자도생, 무한경쟁의 사회는 탈락자와 약자들을 바퀴 아래로 짓밟으며 매끈하게 굴러간다.
우리는 지난 세월 여러 대형 참사와 사회적 비극의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기본적인 시스템이 붕괴되었음을 목격했다. 원칙이나 정의가 소홀하게 다뤄지는 모습에서 누구도 안전하지 않음을 깨닫게 됐다. “운이 좋아 지금껏 살아남았다”는 말이 냉소나 자조가 아니라 진짜일 수도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불안은 무능력하거나 나약한 개인의 탓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과 내면에 스민 불안감은 내 힘으로 나를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과,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을 거라는 불신이 만나 응축되었다.
“세상은 쓸모없는 사람에게 차갑다. 쓸모없는 사람에게 차가운 세상은 옳지 않다.” (163쪽) “사회는 반드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남아돌 정도로 많은 선택지를 준비해줘야 한다. ‘무언가를 하는’ 길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길도, 양쪽이 같은 가치를 가지고 열려야 한다.” (157쪽)
이럴 때 우리에겐 두 가지 갈림길이 있다. 하나는, 세상이 원하는 대로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는 것이다. 생산적인 인간으로서 가성비 높은 결과를 내서 체제에 올라타기. 거기에 더해 자신을 ‘갈아’서라도 노력을 기울여 남들보다 성공을 이루기. 또 다른 길은, 대안적인 삶을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이루는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하기. 운이 아니라 원칙과 정의가 지켜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행동하기. 내 주변에는 후자의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우리는 모이면 곧잘 불만을 터뜨린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성토하며 같이 주먹을 불끈 쥔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에서 서울까지 집회를 참여하러 가려면 왕복 8시간의 버스를 타야 한다. 시간을 반으로 아끼려면 버스비의 두 배를 지불하고 KTX를 타야 한다. 안타깝게도, 모두 주머니 사정이 고만고만한 데다 체력도 좋지 않다. 이 비정한 사회는 언제나 우리에게 자본과 신체 중 하나는(때론 둘 다) 포기하라 요구하는 것이다. “정작 문제는 그럴 기력과 체력을 빼앗긴 것인데.” 결국 인터넷 댓글 같은 말을 비통하게 내뱉고 만다. “이게 나라냐.”
“그러고 보면 ‘여기는 지옥이다’라고 생각할 때, 그 상황은 그저 쓰레기 같기만 한 게 아니다. 쓰레기 같은 상황과 그에 대한 무력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어떻게 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지옥이다.” (60쪽)
불안을 넘어 자책과 무력감에 잠식당하기 쉬운 시절의 우리에게 한줄기 위로와 반짝이는 영감을 건네주는 책을 발견했다. 일본의 작가이자 연구자인 다카시마 린이 쓴 책 『이불 속에서 봉기하라―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저항법』에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이미 실천”이라며, 저항과 혁명의 이미지를 새롭고 발칙하게 정의한다. 비록 지금은 이불 속에서 꼼짝할 수 없더라도, “저항의 의지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삶 자체가 이미 혁명에 가담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계속, 끝까지 살아남으라 주문한다.
린은 책 서문에서 자신을 ‘아나카 페미니스트(anarcha-feminist)’라 소개하는데, 아나카 페미니스트란 “성평등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모든 권력과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는 “진심의 혁명”을 이루고 기존 권력을 탈환하기 위해 아나키즘과 페미니즘이 양쪽 바퀴가 되어 굴러가야 한다고 믿는다. 린의 말대로 페미니즘은 단일하지 않으며 “시스터후드”의 관계는 정치적이고, 때론 전략이 필요하기도 하다. 다양한 입장과 사조가 존재하는 페미니즘 안에서도 그가 아나키즘을 끌어들인 이유는, “국가를 포함한 모든 권력을 부정하지 않는 한, 남성중심주의 사회의 종언은 없”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시민으로서의 위치보다 ‘국민성’이 강조되고 집단의식이 강한 한국 사회의 문화에서 아나키즘 사상은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특히 최근 들어 ‘K-○○’의 세계적 위상과 성공을 자축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는 그것이 나의 성과가 아님에도 긍지를 갖게 하며 마치 우리가 ‘하나’인 느낌을 준다. 그런데, ‘K’는 누구의 승리일까? 한 치 앞의 운명도 알 수 없어 불안으로 점철된 우리네 삶은 왜 ‘월드클래스 K’의 수준과 큰 괴리를 가지는가? 어쩌면 K라는 묶음은 환상에 불과한 것 아닐까?
“사회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마음인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추상적이고 커다란 하나의 마음을 공유하는 것을 우선시한다면, 무수한 인간을 자기 뜻대로 지배하려는 사람에게 이렇게 편리한 건 없을 터다. 그 공유된 하나의 마음을 말로 표현해주면 그것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감동받을 테니까.” (225쪽)
국가를 비롯해 능력, 외모, 전통과 의례 등 우리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믿어온 일상의 풍경과 가치를 저자는 하나하나 의심하고 깨부수며 뒤집는다. 특히 “노력하면 보상받는다. 그러지 못하는 것은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일본의 ‘통속 도덕’과 신자유주의 체제를 비판하면서, 노력 여부에 “우열을 가리는 사고방식 자체가 틀렸다”는 주장은 읽으며 속이 후련해졌다. 그는 “노력을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로 보는 것도 틀린 생각”이라 말하며 화살을 거꾸로 돌려 “사회의 속도가 가해적”이라 일침을 놓는다.
“게임판 자체를 때려 부숴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저자의 언어는 다분히 선동적이고, 그가 세상을 보는 시각은 예민하고도 예리하다. 그러나 밑바탕에는 타자와 존재 자체에 대한 따스한 염려와 응원을 품고 있다. 더불어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취약함과 모순을 겹겹이 솔직하게 드러내며 독자에게 “모든 풍경을 다시 이야기하자”고 손을 내민다. 세상에 혼자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불안은 고요히 걷힌다. 비록 이불 속에서라도, 함께 살아있는 한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나는 생을 긍정한다. 보다 강하게 긍정한다. 나는 생을 긍정하기 때문에 생을 위협하는 모든 힘에 대해 분연히 반역한다. 그러므로 나의 행동은 옳다.” - 책에 인용된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의 글에서 (170쪽)
*인사말: 〈책방에서 밑줄 긋기〉 연재를 마칩니다. 매회 독자 분들에게 어떤 여성 작가의 책을 소개할까 서가를 거닐며 설렜고, 2년간 스물세 권의 책을 글로 남겨 보람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자 소개] 달리. 단행본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2021), 『젠더 수업 리포트』(2023)의 저자이며 전북 남원에 있는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 ‘살롱드마고’에서 프로그램과 모임을 기획한다. 지역에서 여성들과 글을 읽고 쓰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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