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다르고 무척 닮은 열아홉과 스물
어떤 1은 다른 1과 다르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달력 속 수많은 어제오늘과 마찬가지로 1일 차이일 뿐이지만 해가 바뀌기에 특별한 감상을 준다. 사람들은 한 해를 돌아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다짐하기도 한다. 다른 1과 유독 다른 1이 또 있다. (지금은 만 나이로 통합이 되었지만) 바로 열아홉과 스물의 차이다.
열두 시 땡. 갑자기 ‘어른’이다. 철들어야 할 것 같고 유치한 일은 그만해야 할 것 같다. 성인의 밥상에는 사회생활, 취업, 대학, 재수, 세금, 보험 등 전부 낯선 반찬만 올라와 있다. 뭘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될 때, 이제 삼십 대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이런저런 잡념들이 떠올랐지만 열아홉에서 스물이 될 때만큼의 당혹감과는 확실히 달랐다. 18에 1을 더하면 19가 된다. 29에서 30이 되려면 한 3,4쯤을 더해야 했다. 19에서 20이 될 때는 10 가량을 더하는 기분이었다. 떡국 열 그릇을 한 번에 먹으면 웬만한 사람은 체하기 마련이다. 나의 스무 살은 그렇게 체한 채로 지나갔다. 어디에도 적응할 수 없었다. 사랑, 술, 술집, 새로 알게 된 사람들, 원래 알던 사람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삼행시 클럽 같은 것
〈성적표의 김민영〉(이재은, 임지선 감독, 2022)에는 동갑내기 친구 유정희와 김민영의 열아홉과 스물이 나온다. 영화의 시작은 수능 백일 전 유정희와 김민영의 기숙사 방이다. 유정희와 김민영 그리고 수산나는 청주여자고등학교의 삼행시 클럽 해체를 위해 모였다. 학업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김민영이 자신의 이름으로 지은 삼행시를 마지막으로 낭독했다.
스무 살이 되고 수산나는 유학을 갔다. 셋은 삼행시 클럽을 지속하기 위해 화상으로 만났다. 수산나는 홀로 다른 시간대에서도 맞추려고 노력했건만 김민영은 늘 늦고 불성실했다. 어느 날도 김민영이 늦고 수산나는 속상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리고 영화에선 더 이상 삼행시가 나오지 않았다.
스물이 되었을 때, 어른이 되었을 때 돌연 하잘 것 없이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아니 하잘 것 없다고 느껴야 할 것 같은 것들이 있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그것들을 계속해서 다룬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모여서 만들었던 삼행시 클럽이다. 새로운 관계와 활동에 집중하게 되는 시기, 그래서 이전의 것들에 소홀해지는 시기, 하지만 이전의 것들을 대담하게 버려도 되는 시기, 버려야 하는 시기, 그래야 어른이 된다는 무언의 압박이 감도는 시기가 스물이다. 누군가에겐 스물한 살일 수 있고, 스물다섯일 수도 있다.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인데 김민영에게는 그것이 스물이었고, 유정희에게는 그렇지 않아서 둘 사이는 달라졌다.
김민영이 영화 처음 낭독한 삼행시는 외롭고 고독하고 슬프다. 삼행시 클럽은 이처럼 진지하게 임할 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창작력을 키울 수 있으며 다른 이에게도 감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철없다고 치부해버리는 사회가 있다. 독서모임에 비해서 유치해 보이고 시 쓰기 모임에 비해서 가벼워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오해를 벗겨낸 것은 열아홉의 김민영이지만, 스물의 김민영은 클럽 회원 셋 중에 삼행시 클럽을 가장 가볍게 여긴다. ‘유치함’, ‘철없음’의 기준은 무엇일까. 영화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가장 한국적인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가장 ‘한국적인’ 영화다. 한국 사회의 면면을 무척 세밀하게 드러낸다. 구조를 비춰서 문제를 꼬집고 큰 틀을 보게 하기보다는 아주 작은 구석구석을 찍어 이곳까지 사회 분위기가 스며들었음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일례로 ‘수능’이다. 문 앞에서 응원하는 사람들, 시계를 두고 와서 불안에 떠는 정일, 소지품을 제출하는 풍경,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 수험생을 바라보는 정희 등 그날을 겪은 사람이라면 공감할 기억들을 섬세히 담는다. 수능이 지나면 매해 텔레비전에서는 만점자의 인터뷰가 나오고 가장 나이 든 수험생의 이야기가 방송됐다. 평생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처럼 거대한 압박을 만들어 학벌주의를 견고히 하는 이 이상한 풍경은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다.
스무 살의 유정희는 대학을 가지 않는다. 테니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낸다. 유정희가 분식집에 떡볶이를 사러 갔을 때, 사장님이 유정희에게 묻는다. “학생이야?” 유정희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청소년을 마주하면 ‘학생’하고 부르는 문화는 학교 밖 청소년을 배제한다. 대학을 가지 않은 청년들을 배제한다. 한국의 견고한 학벌주의, 대학중심주의에 맞서는 ‘투명가방끈’이라는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2011년 대학입시 거부선언을 하며 시작했다.
김민영은 한국이 너무 한국적이어서 싫다고 한다. 김민영이 한국에 질리도록 영화는 계속 한국적임을 보여준다. 예전의 방영했던 시트콤, 이제는 사라진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 과학의 날이면 만들었던 고무동력기, 정일의 재수와 김민영의 편입 등 끊임없이 한국의 구석을 담는다.
이런 디테일함은 누군가의 추억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런데 추억이라면 특정 시대의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인데 〈성적표의 김민영〉이 자극하는 추억의 폭은 한정적이지 않다. 시대적 배경이 모호하다. 인물들의 추정 탄생 연도와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의 시대적 배경이 맞지 않는다. 유정희는 김민영의 친오빠의 대학교 과 잠바를 입어보는데 이때 소매 쪽에 적힌 학번 ‘17’이 보인다. 김민영과 유정희는 적어도 1999년 이후에 태어난 셈인데, 유정희가 즐겨봤던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했다. 물론 다시보기를 통해 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의심 가는 곳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민영은 가수가 되고 싶어 한다. 유정희는 김민영의 방에서 김민영이 찍은 오디션 영상이 담긴 CD를 발견하고 재생한다. 영상 속 김민영은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김민영이 부르는 노래는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인데, 2000년 중반 미디엄템포 곡이 유행했을 때의 창법을 구사하고 있다. 김민영이 1999년생이라고 해도 10살도 안 되었을 때 성행한 창법이다. 이 다소 모호한 인물의 나이와 시대적 배경을 두고 누군가는 개연성이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영화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곳에는 연출의 적극적 개입이 드러난다. 두 감독은 유정희와 김민영이 겪는 변화와 불안을 한 시기로 특정 짓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한국 사회가 계속해서 만들어온, 그래서 한국의 모든 열아홉과 스물이 반복해서 겪게되는 갈등을 고스란히 담는다. 그렇기에 그 터널을 지나온 모두가 둘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품이 넓은 영화다.
무변의 불안
영화는 가끔 머뭇거리며 우스꽝스러운 줌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고정된 앵글로 촬영한다. 이 고정된 앵글은 유정희의 상황을 반영한다. 특히 테니스장에서 팥빙수를 먹는 정일을 우측에 걸고 멀리 있는 유정희를 함께 담은 샷은 고스란히 유정희의 마음이다. 이 샷은 일반적인 앵글과는 다르게 프레임이 정일의 얼굴을 불안정하게 자른다. 정일은 팥빙수를 먹느라 작은 움직임을 하는데 그 덕에 우측 프레임에 얼굴이 애매하게 들어왔다가 잘렸다가 한다. 고정되어있지만 불안정한 샷이다.
유정희의 스물은 열아홉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삼행시 클럽을 유지하고 싶어 하고, 10대 때 김민영이 내뱉었던 실없는 것들을 같이 해보고자 한다. 대학에 가지 않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귀여운 소망이 있다. 그 변화 없음을 김민영은 이해하지 못한다. 사차원 소리가 듣고 싶은 거냐고 묻기도 한다. 유정희는 변하지 않았고 한국 사회는 그런 무변을 다그친다. 끊임없이 달라져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 유정희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변화를 겪는 김민영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도 안정된 관계를 못 맺고, 학점 또한 그러하다. 영화의 큰 공간적 배경 중 하나인 ‘오빠가 군대를 가 비어서 김민영이 방학 동안 잠깐 머무는 서울 방’ 자체가 그 불안함을 담고 있다. 김민영은 너저분한 오빠의 짐들과 시켜놓고 개봉하지 않은 화장대 속에서 지낸다. 그 안에서 김민영은 안정될 수 있을까.
김민영은 자신을 보러 놀러 온 유정희를 두고, 성적 이의 제기를 위해 대구로 간다. 홀로 남은 유정희는 김민영의 일기를 보기도 하고 오디션 영상을 보기도 하면서 김민영의 불안과 고독, 꿈을 이해한다. 존재가 사라진 공간에서 존재를 더 알게 되는 아이러니다. 같이 있는 것보다도 존재가 있던 공간에 혼자 남는 것이 그 존재에 더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인 걸까.
1년, 1일, 1시간, 1초
둘은 열아홉과 스물처럼 다르다. 하지만 둘 모두 고독하고, 불안하고, 꿈이 있다. 유정희는 김민영에게 수능과 대학 학점보다 훨씬 중요한 성적표를 남기고 떠난다. 유정희는 산 속에 홀로 약초를 캐며 고독하게 사는 상상을 해왔다. 유정희의 상상 속에는 약초를 캐는 인물이 롱샷으로 작게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이 상상이 다시 나온다. 그런데 가까운 샷으로 넘어가니 그 인물이 유정희가 아니다. 고독이 두려운 건 유정희와 김민영 모두였다. 열아홉과 스물은 사실 그저 1년 차이일 뿐이다. 아니지 어쩌면 하루 차이, 한 시간 차이, 단 1초의 차이기도 하다. 1초의 차이를 두고 태어난 고독, 불안, 꿈은 꼭 닮은 쌍둥이 같다. 각자의 산에서 각자의 약초를 캐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모두에게 옆에도 산이 있다고 영화는 지도를 내민다. 부러 가지 않아도 좋다. 지도를 잃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고독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필자 소개] 신승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그리고 단행본 『극장 앞에서 만나』(오월의봄, 2023)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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