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는 취직을 위해 고용주에게 보여주는 노동자의 구직 자기소개서이다. 이와 의미가 좀 다른 이력서로서, 청년 페미(feminist)+워커(worker)들이 같은 노동자의 위치에서 서로 “지금까지 해온 노동 이력”을 질문하고, 이야기하고, 소개하는 연재를 싣는다. 기록자와 인터뷰이는 모두 한국여성노동자회 청년여성 소모임 페미워커클럽 6기 노동기록팀이다. [편집자 주]
자기를 소개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사회의 언어로 자신을 호명하지만, 그것이 나를 설명할 수 있을지 혼란스럽다. 자신을 설명하는 데 여러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은하수 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떤 이유에서 자기소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일까? 은하수 님의 살아왔던, 살아갈 삶의 편린들을 모아 그 이유를 들여다보려 한다.
-먼저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근에 삶의 변화를 준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퇴사’입니다. 네, 퇴사하고 나니 지금 당장 저를 소개할 수 있는 마땅한 단어가 없네요. 만약 퇴사하지 않았더라면 ‘콜센터노동자’로 소개를 시작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소속이 없다 보니 어떻게 저를 소개해야 할지 막막함이 앞서네요. 요즘 하고 있는 일로 자기소개를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저는 전공이 다큐인데, 졸업작품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졸업작품에 보다 집중하고 있는 시기인데요. 퇴사할 당시에는 퇴직금으로 생활비를 쓰면서 졸업작품을 만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구인공고도 틈틈이 보면서 이력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콜센터에서 일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전공을 살려서 영상 쪽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콜센터는 전공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일과 학업을 병행했어요. 학교 수업 일정을 피해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던 차에, 알바 사이트에서 콜센터 공고를 보게되었어요. 아침 일찍 일할 수 있는 곳이라 하기로 마음먹었죠. 아침 6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 학교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일과 학업 병행하기에 콜센터는 좋은 선택지였어요. 학교를 다니는 내내 콜센터에서 일했어요. 그러다 작년에 듣고 있던 수업이 모두 끝나면서, 5시간의 파트타임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시간을 늘리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풀타임으로 일할 거면 굳이 여기서 일할 필요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어요. 퇴직금으로 몇 달 졸업작품에 집중하자는 생각도 있었고, 전공을 살려서 시민단체 미디어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서 이참에 퇴사를 결정했죠.
-퇴사 후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퇴직금이 줄어드니까 불안해지더라고요. 물론 콜센터에서 일했을 때도 형태는 다르지만 불안감은 있었습니다. 처음에 콜센터에서 일했을 때는 일의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일이 끝나면 그 후는 일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아도 돼서 편했어요. 그런데 몇 년 지나니까 그곳에서 노동하고 있는 시간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또, 나이가 들수록 지금 하는 일이 나에게 경력이 될 수 없다는 불안이 밀려왔어요. ‘영상 관련 일을 했더라면, 이력서에 경력을 기재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더라고요.
퇴사를 고민할 당시, 이직도 고려 대상이었죠. 생활비는 있어야 하니까요. 계속 이력서를 넣고 있는데, 그러면서 ‘내가 어디를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불안해져요. 직장인들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그 생각이 더욱 강렬해져요. 수많은 직장인들을 마주하면서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자기 자리가 있는데, 나는 왜 그거 하나가 없을까’ 싶고요.
콜센터에서는 4년 정도 일했어요. 이 경력을 이력서에서 넣어야 할까 말까 고민이 들어요. 넣자니 경력이 너무 들쭉날쭉이라고 느껴져요. 빼면 그것대로 문제구요. 비워진 그 행간을 어떻게 채울지 막막하더라고요. 저는 종종 ‘만약에 여성단체에 지원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랬다면 콜센터 경력을 꼭 넣었을 거예요. 콜센터 노동자라는 당사자성으로부터 자부심이 작동했을 테니까요.
-콜센터 하면 ‘실적’, ‘감정노동’ 등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는데요. 정확히 어떤 업무를 했는지 설명 부탁드려요.
TV 방송을 보다 보면, 짧게 나오는 상품광고나 보험광고가 있잖아요. 제가 일한 곳은 광고를 보고 전화를 주시는 분들의 접수를 받는 외주 콜센터였습니다. 저는 상품과 보험, 두 파트 중에 보험 파트에 배치되어서 일했는데요. 보험광고를 보고 고객들이 전화하면, 제가 상담 예약 접수를 하는 거죠. 보험 설계사 자격증이 있는 설계사분께 예약을 배정하는 거다 보니 “저희가 그 상품에 대한 안내를 할 수도 없고, 그 상품에 대한 모든 안내들은 전문 상담사와 상담해 보시면 되십니다.” 라고 매뉴얼대로만 하면 되는 곳이었어요.
그 콜센터도 기본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실적이 있습니다. DB 건별로 실적이 되는 거라서, 하루에 평균 어느 정도 맞춰야 되는 실적이 있어요. 인센티브가 센 회사가 아니라서 엄청 압박을 주는 곳은 아니었는데요. 그래도 통화하는 시간이나 DB 갯수가 수치로 나오니까. 인센티브와 상관없이 실적이 신경 쓰이기는 했어요. 평균보다 떨어지면 파트장에게 불려가서 말을 듣게 되거든요. 그게 싫으니까 중간 순위에는 있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제가 콜센터에서 일하면서 문제라고 느낀 건, 정보 접근 권한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었어요. 한정된 정보로는 대처가 불가능한데, 그것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때 그 책임을 콜센터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종종 민원이 발생할 때가 있어요. 사은품을 못 받았다거나, 고장났다거나, 혹은 배정받은 설계사에게 화가 났다거나 하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제가 답변할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그저 ‘죄송합니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그러면 ‘똑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지 말고!’라는 답변이 돌아와요. 너희는 몰라도 된다, 시키는 대로만 해라, 하는 분위기에서 노동자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전화를 받으면 다 실적이 되는 구조인가요? 아니면 어떤 기준이 있었나요?
광고를 보고 궁금해서 전화를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궁금한 부분만 물어보고 전화를 끊으면 그거는 실적이 아닙니다. 민원도 종종 있는데 그것도 실적이 되지 않아요. 정확하게는 보험 상담 신청까지 완료되면 실적이 돼요. 1시간을 기준으로 본다면 12개에서 13개 정도 해야 합니다. 실적만 보는 게 아니고, 콜 시간도 봅니다. 그렇다 보니 5분 이상 못 쉬어요.
그래도 보험 같은 경우는 가입하는 게 아니고 상담을 신청하는 거니까, 전화한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접수할 생각을 가지고 전화를 걸긴 해요. 그래서 1시간 안에 실적 맞추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적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에 집중하면, 실적 요건이 되지 않는 전화가 걸려올 때 그 내용에 집중이 안 되더라고요. 상대의 질문이나 민원 내용을 들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계속 듣고 있기도 어렵구요.
그리고 만들어진 상담 신청 DB는 대리점으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이후의 일은 저희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에요. 그런데도 문제가 생기면 콜센터로 자꾸만 민원 전화를 주세요. 민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실질적으로 실적으로 채울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드니까, 늘 난감했던 것 같아요.
-미디어에서 콜센터 노동을 이야기할 때, 상당히 전형적인 재현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은하수 님은 어떻게 느끼나요?
코로나 때 콜센터가 집단 감염이 되면서, 그때 분석 기사가 많이 나왔어요. 콜센터가 왜 전염병에 취약한지에 대해 고발하는 내용이어서 그 공간의 문제점들이 나열되었죠. 분명 필요한 일이에요. 그런데 ‘닭장 같은 공간’이라는 표현을 볼 때면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거기서 묘사하는 표현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기분 나쁘다는 이 감정이 정당한지도 잘 모르겠어요. 왜 그런 감정이 들까를 계속 고민을 했는데요. 기사에서 상담원들이 처한 환경을 묘사할 때, 열악한 구조 속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리고 있다는 거죠. 매체가 그 공간이 문제적인 상황임을 강조할수록, 역설적이게도 상담사들은 무력한 존재로 읽히게 되죠. 상담사는 그 안에서 어떤 세트의 일부처럼 존재하는 것처럼요. 콜센터노동자를 그 공간을 바꿔내야 할 주체자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을까, 라는 고민이 자꾸만 들었어요.
-저는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이 부끄러워 설명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것을 단지 노동혐오나 노동의 타자화라고 정의 내리는 것은 한계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기를 시도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데, 은하수 님도 이런 경험이 있나요?
모 소모임에서 콜센터 관련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는 제가 당사자라고 하면 제 이야기에 신뢰감이 더 실려요. 그 순간은 저의 노동이 자랑스럽더라고요. 그런데, 친하지는 않은데 가끔 안부를 묻는 대학 동기가 있어요. 그 친구가 요즘 뭐하냐는 질문에 콜센터에서 일한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때 ‘이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는구나.’ 알게 되었죠. 결국 사회적 시선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저는 사회적 시선에 그렇게 얽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신경쓰는 저를 보고 있자니 복잡해지더라고요.
돌이켜 보면 처음에 콜센터에서 일 못 하겠다는 생각도 분명 있었어요. 콜센터에 대한 특정 이미지가 떠올랐으니까요.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죠. 직접 일해 보니, 폭언을 들을 일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전화 상으로 상대가 저를 무시한다는 게 느껴져요. 그게 절 우울하게 만들더라고요. 일상에서 느끼는 무시감, 직업적으로 사람들이 나를 무시한다는 걸 매일같이 느끼죠. 그게 화나면서도 직업적으로 무시하는 사회적 시선에 저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음에 여러 고민이 들죠. 그러다가도 콜센터의 다른 동료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들을 보면, 이 일을 의미 없게 생각하는 거는 나 자신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어요. 마음이 어지럽더라고요.
-많은 매체 중 특별히 다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고등학생 때였어요. 이사로 인해 지역을 옮기면서 전학을 갔는데, 낯을 가리는 편이라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게 어려웠어요.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고 학교 도서실로 갔어요. 다들 점심시간에 친구들이랑 놀지, 도서실로 오는 사람도 없었어요. 도서실에 가면 제가 좋아하는 사진작가의 사진이 담긴 정기구독형 잡지가 있었어요. 그 사진이 너무 좋아서, 잡지를 보면서 사진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했어요.
대학에 가서 학생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막 잘하거나 그렇게 하지는 못했어요. 마음이 무거운 채로 방황하던 차에, 아예 다른 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난날 품었던 열망을 미디어 형태로 실현해 보고 싶었죠. 그래서 미디어센터에서 다큐멘터리 교육 과정을 밟으면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미디어센터를 방문할 때에 그런 생각도 했어요. 제가 사회학과거든요. 이 전공으로는 전업 활동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기술’이 있어야 된다라고요. 여러 가지 이유가 중첩되어 시작하게 되었죠. 배워보니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다큐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어요.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일이 끝나면 피곤해서 다른 생각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은하수 님은 다큐 작업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저는 제가 하고 있는 노동을 다큐에 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두 가지를 하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말씀처럼 병행하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5시간 일하다가 풀타임으로 늘리니까 상당히 피곤하더라고요. 저는 아침 6~7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합니다. 이 상황을 머리로 생각하고, 4시에 퇴근해서 집으로 가면 5시가 되니까 밥 먹고 작업을 하면 되겠다고 그림을 그려요.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주말에 몰아서 해야겠다고 또 생각하는데, 주말이 되면 막상 또 너무 피곤해서 일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게 반년이 지나갔어요. 그제야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내야 하니까 일을 그만두자 마음 먹은 거죠.
근데 문제는 막상 그만두고 나니까, 콜센터에서 있었던 그 많은 일들이 너무 옛날 일처럼 느껴지고 아득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순간순간의 여러 감정들도 금방 사라지더라고요. 이대로 계속 진행할 수 있을까 고민이 큽니다.
-어떤 주제의 다큐를 만들고 싶었나요?
‘여성 노동’에 대한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특정 사업장에서의 노동 이야기가 아니고, 여성 노동의 성격이나 특성, 특히 성별화된 노동 현장을 다뤄보고 싶었어요. 기획안도 여러 번 썼는데 몇 가지 문제에 부딪혔죠. 그 중 하나가 저는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친구들끼리 어디 가서도 같이 사진 찍자 하면 내키지 않아요. 어쩔 수 없이 찍어야 되는 상황 그 자체도 너무 싫은 거예요. 그리고 그게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영상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견디기 힘든 것 같아요. 그런 시간들이 쌓이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영상에 담는다는 게 어렵게 느껴졌어요.
왜 그런가 생각해 보면, 그만큼 책임질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다른 하나는, 앞서 말한 책임성과 연결되는 이야기예요. 지금까지 주로 사회운동 안에서의 이야기에 대해 작업을 했어요. 그 이슈가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운동적으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널리 알리는 게 필요하고 그게 되게 중요하지, 라고만 생각했던 거예요. 근데 그게 얼마만큼의 무게를 지게 되는 일인지 몰랐던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의 과정들 사이로 어쨌든 졸업작품은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지’라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졸업작품이 자꾸 밀리는데 돈은 없고,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래서 콜센터라는 주제를 잡게 되었죠. 일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어차피 여성 노동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고, 다른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렵다면 그냥 이거를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작업 중인 다큐에 어떤 세상을 담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생동적인 삶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은지 듣고 싶습니다.
제 다큐는요, 첫 장면은 있지만 마지막 장면이 아직 없습니다. 이야기의 끝이 비관적이지 않기를 바라요. 그보다는 앞으로 나아가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싶어요. 그런데 그 희망이 단순히 힘내자 같은 근거 없는 낙관은 아니어야 한다고 봐요. 더 나은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찾고 있습니다. 결국 그러기 위해서는 제 삶에서 진정한 희망을 찾아야만 작품 마지막 장면이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오늘도 내일도 마지막 장면을 만들기 위해 희망을 찾아 여정 중입니다.
-이 사회가 임금노동, 정규직 노동과 같은 노동의 ‘정상성’을 가정하고 그 틀 안에 있으라고 압박을 주잖아요. 때로는 그 틀에서 자유롭고 싶지만, 그 틀에 속하지 못한 불안감도 느끼고, 두 마음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불안정한 다큐 작업과 불확실한 콜센터 일을 하면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은행 어플 들어가면 “지금까지 모은 내 자산은 얼마일까요?”라고 안내가 나와요. 그러면서 30대 평균 금융자산 6,200만 원 직업군이 떠 있어요. 그리고 저의 잔액이 나와요. 고정 수입이 있는 회사를 꾸준히 다니면서 일정한 저축을 계속했다면 그 정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아주 무리는 아닌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그렇게 생각할 때면 잘 못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돈을 모아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빚이 많아서 그것도 쉽지 않죠.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불안해요. 한 사람이 자기 하나 건사하는 것조차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아요.
부모님 생각하면 좋은 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제가 첫째거든요. 두 분 다 아직 일을 하시긴 하는데, 언제까지 계속 일을 하실 수 있을까. 그래도 제가 최소한의 부양을 해야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게 가능할까 싶어요.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저한테 꿈이 되게 많았어요. 그래서 교육에 관심이 크셨어요. 집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는데, 할 수 있는 이상을 저한테 쏟으셨어요. 거기에 보답을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한편으로 엄마도 전형적이죠. 저를 임신하고 육아에 전념하고 싶어서 일을 그만두셨어요. 엄마도 여러 가지 꿈이 있었을 텐데, 그 꿈 실현이 좌절된 게 나 때문은 아니지만, 저는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게 꼭 금전적인 보상이 아니더라고 할지라도요. 아마도 그렇게 느끼는 게 ‘나이’에 대한 불안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이 노동시장에서 현재의 나이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돈은 벌 수 있을까, 돈을 모을 수 있을까,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따라붙어요. 그러면 현실의 벽 앞에서 ‘안 되는구나’ 라는,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 질문은 메아리가 되어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를 좌표 위에서 불안을 느낀다. 어쩌면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여전히 자신을 소개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를 소개할 수 있는 건 뭘까. 취업할 때 쓰는 자기소개서의 경력 위주의 이야기를 풀어내면 되는 걸까. 은하수 님은 그 문장들과 자기 삶에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불안정한 노동의 연속,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임금을 중심으로 어떤 것은 노동이라 여겨지고 어떤 것은 노동이 아니라고 한다. 다큐를 찍는 것은 어디에 속할까.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계층 사회에서, 콜센터 노동은 일상에서 존중받지 못함을 경험한다. 수화기 너머 전해지는 태도들. 때로는 그 불안을 쓰다듬어본다. 때로는 그 불안을 삼켜 숨겨도 본다. 여전히 알 수 없음의 좌표 위에서 ‘나’라는 세계를 유람한다. 유심히 들여다 본 그곳에 삶의 조각들이 반짝거린다. 반짝이는 조각 사이로 언젠가 다큐의 마지막 장면을 찾게 되기를. 언젠가 ‘나의 언어’를 찾게 되기를 바라면서.
[필자 소개] 난설헌. 탈성장의 가치를 실천하는 삶으로써의 '한량'이라는 원대한 꿈을 꾸고 살아가는 지구의 방랑자입니다. '무(無)'의 길을 걷고 싶으나 현실은 온갖 '유(有)'들에 둘러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한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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