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소개] 김경민. ‘김미르’라는 이름으로 싸람(싸우는 노동자를 기록하는 사람들)이라는 공간에서 기록 동료들과 활동하고 있다. 경남 창원 공단에 위치한 한 공장에서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하루하루 써 내려갔던 일기를 바탕으로 『미르의 공장일지』(숨쉬는 책공장, 2023)를 출간했다. 이후 아르바이트나 물류센터에서도 일하면서 그 경험을 글로 쓴 바 있다. 스스로에게 부족한 모습을 끊임없이 찾아내서 채찍질하면서 내 ‘삶’이 더 나아지기 위해, 내가 속한 세상의 ‘삶들’이 더 나아지기 위해 일조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인생 제일 처음 연대했던 ‘한국지엠 창원비정규직 지회’에 아직도 마음으로 연대하면서 투쟁 승리를 기원하고 있다. 항상 사회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반응하면서 살고 싶다. 세상을 바꿀 알맹이들은 사람들의 투쟁 하나하나에서 나오는 거라 생각하며, 관심 갖고 귀 기울이며 기록으로 연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하다 아픈 여자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표지는 점묘법으로 그린 흐릿한 인물화로 보인다. 진하지 않은 연두색, 여성으로 보이는 얼굴 윤곽. 이 책 제목대로 일하다 아픈 여자들이 아득하게 보이지 않는 모습을 묘사하는 느낌을 받는다. 비가 올 듯 흐린 날, 여전히 시큰거리는 손목을 잠시 주무르다 책을 들어 펼쳤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산업재해는 어떤 모습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새까만 배경이 떠오르고 시끄러운 쿵 소리가 들린다. 언론 보도에 나오는 깔리고, 떨어지고, 절단되고, 사망하는 그런 ‘중대재해’에 해당하는 무시무시한 모습 아닐까 생각한다. 자본주의에서 기준으로 삼는 노동자, ‘건강한 비장애 남성’이 현장에서 일하다 사고가 나는 현장을 흔히들 떠올리지 않을까. 물리적인 사고만 산재라고 좁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하다 아픈 여자들』은 그 드러나는 표면에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서 산업재해를 바라본다. “산업재해는 사회가 노동하는 몸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라고 이야기한다. “노동자의 건강은 신체적 측면만이 아니라 성별화된 노동분업, 정상 규범에 따라 양산된 차별과 혐오, 폭력에 노출되고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물리적 사고만 산업재해라고 생각해서 “원인 진단과 개선방안을 고민한다면, 여성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의 사고와 질병에 영향을 미치는 젠더와 경제, 정치 등 사회적 영향을 간과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노동하다 아프게 된 이야기’가 담겨있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여성 등이 겪는 ‘일상적 산업재해’를 구체적인 사람과 사례로 들여다본다. 노동자들의 다양한 ‘몸’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면서 내가 현장에서 겪었던 무수히 많은 사례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음을 상기시켰다.
나 역시 여러 현장을 옮겨 다녔다. 불안정한 노동이 퍼져있는 사회에서 일반적인 노동자일 뿐이다. 한번은 전자제품 공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각자 공정에 맞는 보호구나 장비를 착용하고 일해야 하는 곳이다. 내가 맡은 공정에서는 장갑을 장비로 받았다. 주기적으로 제공받는 장갑은 작은 내 손에는 큰 편이었다. 그래서 헐렁한 장갑을 손가락 사이를 꾹꾹 눌러가면서 일했다. 이 현장에는 작은 손을 가진 사람을 위한 장갑은 없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평균적인 손가락 길이보다 짧은 내 손가락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은 분명히 당시 내 생각이 틀렸음을 말해준다. 다양한 신체를 고려한 보호 장비구가 생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배분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내가 자책하지 않아도 될 문제였다.
한편, 작은 손가락에 헐렁할 수밖에 없는 장갑을 끼고 억척같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다 보면, 같은 조에 속한 남성 동료들의 얄궂은 시선이 있었다. ‘손으로 휘적휘적하면 되는 공정’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나중에 그 남성 동료는 야간조 사람에게 인수인계할 노동자를 데려다주면서 ‘어? 이 일도 꽤나 복잡하고 어렵네?’ 하고 지나갔다.
나는 내가 맡은 일이 ‘단순하고 수월한 공정’으로 취급받는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여자들이 하는 일은 쉬운데, 실수까지 한다면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성의 수가 적지 않은 공장임에도, 중요한 부품을 다루는 업무는 남성이 맡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고, 여성이 하는 일은 간단하고 부차적이라는 생각이 보편화되어 있었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몸소 겪은 경험이 되살아났다.
여성들이 하는 일은 별거 아니라고 치부하는 인식은 여성들은 안전하게 일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산재 신청과 비율, 산재 인식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낸다. 결국 “모든 노동자에게 더욱 효과적인 노동안전 및 건강보호는 노동자의 성별 및 다양성에 맞추어진 보호를 통해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젠더 관점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이 책에서 제일 강하게 무릎을 탁 쳤던 건, 여성들이 ‘이게 설마 산재인가?’ 하는 현상을 짚어낸 것이다. 나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전자제품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탈 때 처음으로 방광염에 걸렸다. 한 번 생긴 이후로 조금만 잠을 못 자거나 밥을 제대로 챙겨먹지 않으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당시에는 이게 산업재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화장실에 자주 갈 수 없는 환경과, 여름이면 습하고 땀에 젖은 옷 때문에 걸리는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느 날은 화장실에 다녀와 동료들한테 털어놨다. 다들 ‘한 번쯤은 겪는 일인데 드디어 너도 겪는구나.’ 하는 눈초리였다. 그만두지 않고 버텨서 오래 일해야 걸리는 병이라며, 이제야 나를 동료로 인정해주는 느낌이었다. 같은 질병으로 동료의식이 생겨나는 일도 겪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동료가 공감하는 질병이라면 의심해볼 법도 한데, 그러질 못했다. “자신의 재해가 일 때문인지 몰라서”였다. “여전히 사고가 아닌 질병이 산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당히 낯설어했다.” 오히려 많이들 동일한 질병을 갖고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지금도 방광염은 나를 괴롭히는 만성질환이 되었다. 그래서 ‘이게 산재인지 인식하게 하는 예민함이 필요하다’는 구절에서 탄식이 흘러나올 정도로 공감했다.
몸을 끼워맞추는 게 아니라, 노동환경을 변화시켜야
『일하다 아픈 여자들』에는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산재 신청 여성 노동자 이야기가 나오며, 고용 안정성이 높아야 산재 신청 비율도 높아진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여성, 남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어떤 위치에 있든 고용안정이 현장안정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록에서 노동안전 보건의 관점으로 끈질긴 투쟁을 통해 전보다 나아진 지금의 현장을 만들어왔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누리는 것은 이전 세대 노동자들이 남긴 소중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어떤 것들을 더 할 수 있을지 고민 지점을 던져준다.
책을 덮고 다시 표지를 본다. 이제는 여성으로 보이는 얼굴 윤곽이 조금 선명해 보인다. 책을 펴기 전 알지 못했던 부분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 어느 곳이든 일하다 아픈 여자들이 가시화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안에서 드러나고 사회 전체 담론으로 회자되어 서로 연대하고, 노동하는 ‘몸’들이 자신의 자리를 잘 찾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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