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인 이내가 최근 가지게 된 꿈은 “마을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꿈을 꾸게 만든 씨앗 같은, 짧지만 강렬한 여행이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후, 일본 여행이 재개된다는 소식과 함께 떠난 그녀의 우연한 여행은 거기서 그치질 않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내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이미 연결되어 있었던 우리의 이웃 마을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과거의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함께 느끼게 된다. 인연의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이내의 로컬 여행기, 종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마을 이야기들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핸드폰 속 사진 한 장을 바라보고 있다.
단골 카페 사장님(이제는 동네 친구)이 길 바로 건너편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 주겠다며 내 손에서 캐리어를 뺏어 들고 비장하게 앞장을 서던 날이다. 마치 내가 이민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우리는 아쉬움의 포옹을 나눈다. 후쿠오카행 배를 타기 위해 부산항으로 가는 길일 뿐이지만. 이별 장면을 건너편 카페에서 누군가 찰칵, 비밀스럽게 셔터를 눌렀다.
버스로 30분이면 국제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는 동네에 살고 있다. 사실 걸어도 30분이 걸린다. 집이 산 위에 있기 때문이다. 차는 둘러 내려가고, 사람은 질러 내려가는 구조다. 최근 친구가 된 일본인 소라의 고향집 초대로 집을 잠시 비우게 된 나는, 나무와 집이 함께 촘촘한 우리 동네에 친구를 초대했다. 어디론가 쉽게 떠나지 않는 친구는 큰마음 먹고 우리 집으로 여행을 왔다. 나는 일본으로 떠나며 집과 단골 가게들의 빈자리를 바통처럼 친구에게 넘겨주었다. 덤으로 우리 동네에서의 애틋한 마지막 장면을 담은 사진 배웅을 받았다. 우리 집으로 여행 온 친구 덕분에 여행을 떠나는 내 모습과, 여행자를 배웅하는 얼굴들을 사진으로 남기게 되었다.
반면, 친구는 에어컨 없는 집에서 잘 지낼까 싶던 걱정이 무색하게도 나의 산책로, 단골 카페, 단골 빵집을 두루 다니며 원래 거기 있던 사람처럼 지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내가 운영하는 책방 〈피스 카인드 홈〉에서 멋진 워크숍까지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마중과 배웅
여행자와 여행자의 만남과 어긋남을 좋아한다. 마중과 배웅의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마중과 배웅을 자주 받는다.
배웅 편지의 주인공은 『엄마의 아들을 키웁니다』라는 독립출판물을 만든 이작가야 작가님이다. 한참 동안 들여다보게 되는 제목이다. 작가님은 1년 전쯤 뇌병변장애를 가진 동생을 돌보기로 선택했다. 완전히 새로워진 일상을 담담하게, 오히려 유쾌하게 기록해 책에 담았다.
우리 책방 〈피스 카인드 홈〉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작가님은 동생과 함께 일상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와 매일 밤 글 쓰는 습관을 들려주었다. 순전히 여행할 꿍꿍이로 부산에 왔다고 이야기하며 웃는 얼굴이 꼭 해바라기 같았다.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도,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동생을 돌보며 어느 날 생각했다고 한다. 다양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으로 동생에게 세상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멀리서 찾아와 준 너를 통해 나는 세상을 여행한단다.’ 그 옛날 언젠가 방문했던 부르더호프 공동체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가 내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그때 ‘기회가 된다면 작가님의 동생에게 방문해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걸까 봐 그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작가님이 책방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다는 말에, 전에 꺼내지 못한 용기를 냈다. 그날 작가님은 내 기타를 메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노래로 작가님 동생의 여행을 마중하고 배웅했다. 아니, 함께 여행을 한 건가.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으니.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 여행이 나만의 여행은 아닌 것 같다. 내 안에 있는 얼굴들을 몽땅 데리고 가면, 거기엔 또 다른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다. 기어코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사람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돌아보는 여행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손 흔드는 배웅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언젠가 그들의 얼굴 그림을 그릴지도 모른다는 핑계 덕분이었다.
다시 사진을 본다. 역에서, 자동차 안에서, 주차장에서, 집 앞에서, 가게 앞에서, 버스 앞에서…. 웃는 얼굴들이 손을 흔든다. 사진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그 눈동자에는 손을 흔드는 내가 찍혀 있다. ‘안녕하고 가면, 안녕하고 온다’는, 언젠가 공항에서 친구에게 들은 말이 떠오른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좋아서 노래를 만들었다. 내 삶을 가득 채운 배웅하는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른다.
연두색이 온 산 덮기 시작하면 두근두근 봄이 왔구나 웃다가 갑자기 눈물이 흘러버리는 건 눈부시게 사라지는 것들이 떠올라 모든 반짝이는 것들은 왜 그리 바삐 사라지는지 붙잡지도 보내지도 못한 이름이여 안녕 안녕 안녕 인사만 남았네 안녕 안녕 안녕 인사만 남았네
하얀 분홍 꽃잎 이내 떨어지면 연두색 잎들이 빈자릴 채우네 갑자기 눈물이 흘러버리는 건 지지 않는 살아있음이 떠올라 모든 반짝이는 것들은 왜 그리 바삐 사라지는지 붙잡지도 보내지도 못한 이름이여 안녕하고 가면 안녕하고 온다네 안녕하고 가면 안녕하고 온다네
*〈死注化〉 (2019) 컴필레이션 음반에 실린 ‘안녕’ https://youtube.com/watch?v=f1pOPMPg5DI
[필자 소개] 이내. 동네 가수. 어디서나 막 도착한 사람의 얼굴로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걸으며 발견한 것들을 일기나 편지에 담아 노래를 짓고 부른다. 발매한 앨범으로 『지금, 여기의 바람』(2014),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2015), 『되고 싶은 노래』(2017), 디지털 싱글 「감나무의 노래」(2020), 「걷는 섬」(2022) 등이 있고, 산문집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2018), 『우리는 밤마다 이야기가 되겠지』(2021, 공저) 등을 썼다. 가수나 작가보다는 생활가나 애호가를 꿈꾼다. 인스타 @inesbr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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